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는 면적이 199,990km²론 남북한(22만)을 합친 것보다 조금 적고 인구는 5,789,122명(2017)이며
1인당 GDP는 1,293 달러로(2019년 기준) 세계에서 159위로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보다 더 가난한 나라이다.
인종은 키르기스인 68%, 우즈베크인 14%, 러시아인 9%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는 이슬람(75%), 러시아 정교(20%),
개신교 등 기타(5%)으로 종교를 보면 이슬람이 지배했던 기간이 길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나라도 1863년 제정 러시아에 정복당해서 병합이 되었다가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면서 1926년
키르기스 자치공화국으로 개칭을 하면서 구소련의 연방공화국이 되었다가, 서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8월 31일 독립을 하게 되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자연...인터넷
키르기스스탄의 자연...인터넷
키르기스스탄의 자연...인터넷
이 나라는 고산이 많고 사막이 없는 천혜 환경을 지니고 있어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리운다고 하지만,
민족이 조상대대로 목축을 하면서 살았던 민족이기 때문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국민들이 유목민이기도 하고 지하자원도 빈약하다가 보니 경제개발이 어렵게 되고 그 결과 일인당 GDP가 말해 주듯이
아주 가난한 나라인 셈이다.(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일인당GDP가 9,139달러이다.)
나린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천산산맥 아래 있는 교통의 요지로 나린주(州)의 주도(州都)이고 인구는 30만 정도 되는 소도시이다.
그리고 이곳은 나린 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고 이 강물이 우즈베키스탄까지 흘러간다고 하며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환전만 하고 가는 도시일 뿐이다.
은행이 몰려 있는 거리...중심가일 듯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또 하나의 은행
이곳도 은행...열시가 넘었는데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고...
이곳은 소련의 지배아래 있었던 곳이어서 소련의 글씨인 키릴 문자를 쓴다....읽기가 어렵다....이곳도 은행 흩어져서 환전을 한다.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의 부인과 아들...
우리는 이곳에서 앞으로 키르기스스탄에서 머물 동안 쓸 돈을 환전을 해야 하는데 중앙아시아 대부분에서 달러가
통용이 되지 않는다.(관광지에서 상품을 살 때는 달러사용이 가능)
각자 은행을 찾아서 환전을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환전이나 은행서비스가 빨리 빨리 되는 것이 아니라서 이리 저리
은행을 찾아서 흩어져서 환전을 하고 마트에 들러서 빵과 음료 등을 산다.
시간이 남아서 거리를 둘러보는데 길에 보이는 사람들이 몽골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겨서 우리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구분은 가는 모습이다.
이 곳에서는 슬라브족인 소련이나 우크라니아 같은 모습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나라도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국교가 이슬람교이기는 하지만 러시아부터 소련의 통치아래 있었기 때문에 남녀
불문하고 파키스탄처럼 이슬람인을 나타내는 복장은 찾아 볼 수 없다.
길거리에 다니는 여자들 중에는 수건을 머리에 썼는데 이는 결혼한 여자임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는 이 나라의 아래와 같은 결혼풍습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알라 카추" 이라는 유구한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알라 카추 라는 단어는 '붙잡아서 뛰기'라는 뜻으로,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납치혼(拉致혼(婚)으로 유목민 시절의 약탈혼 관습과 중동 문화의 가부장적 의식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다고 한다.
실제 1년에 결혼하는 수가 54,000쌍인데 이중 50%가 알라 카추에 의한 것이라고 키르기스스탄 정부에서 인정하였다고 한다(2014년).
대개는 양 집안의 합의하에 전통적인 퍼포먼스 정도로 행하고 있지만, 매년 1만 명 이상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결혼의 피해자가 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강간, 폭행, 살인사건도 종종 발생한다고....
충격적이게도 경찰에서도 이런 행동을 묵인하고 있기도 하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여자를 납치를 하는 모습..아마도 연출이겠지만 이런 행위가 용인이 되기도 한다니....
국제 여성단체에서 여권이 열악한 나라로 간주되고 있다고 한다.
나린에서 출폰 아타까지 세시간 반이 걸렸다.
나린에서 환전을 하고 먹을 것도 준비하여 출발한 시간이 11시 반으로 이식쿨 호수의 ‘출폰 아타’까지 260㎞를
세 시간 반을 달려서 도착한 시간이 오후 세시이다
익스쿨 호수로 가는 길에 보이는 조각상...아마도 조상들 중의 유명한 사람인 듯
작은 협곡을 통과하여 ...
이런 초원으로 나간다....이 짐승들은??
이런 산길을 기나면
초원과 마들들도 보이고...
또 협곡으로 들어가고...
이렇게 반복이 된다.
길 가에 있는 간이 상점들...이곳에 간이 화장실이 있다....아직도 속이 불편한 사람들이 꽤 있어서 차가 서기 무섭게 화장실로 간다.
가게에서 파는 것은 물과 치즈볼로 무엇인지 모르고 치즈 볼을 샀다가 먹지를 못했다.
길가를 가로지르는 말들
말 주변에 불을 피운 것은 모기나 파리를 쫒기 위해서??
옛날 사람들이 고달프게 산길을 다녔던 흔적이 지그재그의 길로 남아 있다....지금은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 듯
이런 골짜기를 지나면
고개를 올라가는 길에 말들과 유르트 들이 보인다....오른 쪽에는 강이 있다.
가는 길의 모습들
골짜기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어서 목이 골짜기를 따라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있다.
우리라나 같으면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카페라는 글씨는 읽을 수 있다.
처음보는 길가에 있는 이슬람 사원...초승달을 보아서 이슬람 사원인 줄 알겠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보이는 경치들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경치들과는 다른 풍경으로 초원과 메마른 평야지대의 중간쯤으로
지루할 수도 있지만 보이는 산이나 들판 초원의 모습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차를 타는 것이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된다.
우리가 사는 곳의 모습의 경치와 사람들을 본다는 것이 본래 여행의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을 사이로 난 길...평지로 들어섰다.
감자가 심어진 들판도 보이고...
그런가 하면 황량한 사막 같은 들판도...이런 모습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이런 호수도 보이는데...구글지도에서 나타나는 글씨를 읽을 수 없다.
흰 순록....
사막처럼 보이는 주변
바다처럼 보이는 것이 이식쿨 호수이다.
설산에서 흘러온 추라는 강...이식쿨 호수로 들어가는데 ...50개의 강들이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고...
길 가에 보이는 이슬람식 무덤 ...자주 보아서 친숙하다.
이식쿨 호수 옆에 있는 발락치라는 도시... 호수 주변에 이런 도시들이 있다.
이곳이 종점인 수도인 비쉬켁까지 연결되는 철도
키르기스스탄인르로 부터 추앙을 받는 근대의 여성 지도자 쿠르만잔 다뜨까의 석상..비쉬켁의 오크 공원에도 석상이 있다.
호수를 따라 숙소로 가는 길에 잠깐 쉬고..
호수에서 잡은 고기도 구경을 하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사가지고 저녁에 요리를 해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고...송어비슷한 종류같다.
이렇게 건조를 한다....살구 먹어 본지 오래되어서 살구도 사 먹고...
우측으로 호수를 보면서 출폰 아타로 간다.
가로수를 보면 이 길이 얼마나 오래 된 길인가를 알 수 있다
길가에 있는 설표... 이 나라에 사는 동물들을 이렇게 길 가에 만들어 놓는다.
바다 같은 이식쿨 호수...건너 천산산맥이 보인다.
출폰 아라타는 간판 글씨
드디어 숙소에 도착을 하고.. 소련(키릴 문자)문자로 적힌 환영 현수막
식사를 하는 곳...방을 배정 받기 전 대기를 하고 있는데 덥다.
나린에서 이식쿨 가는 길(나린쪽)
평지로 내려온 이식쿨 쪽
첫댓글 십삼년쯤 다녀온 키르키즈 .이스쿨 호수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이스끌 호수는 수원면적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네요 전 여름에 다녀왔는데
이스클 호수 가는길에 길가에 사과 나무 각종 과일이 많이던
기억이 납니다 소금산도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글을 올리는 목적 중의 하나가 다녀 오신 분들 추억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