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가면 피부터 뽑는다.
또 소변도 받아오게 하고 필요하면 대변도 받아 오게 한다. 신체 내부 흐름과 외부로 배출되는 변만 보아도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기술이 발달해서 피 한방울로 온갖 질병유무를 파악 할 수 있고 암의 발생여부도 알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동네에 약국도 없고 병원은 구경조차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배가 아프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내 손이 약손'이라며 배를 쓰다듬어 주는 게 고작이었고 오장육부가 안 좋으면 모두 속병이라 했다. 속병이 나면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는 숨을 거두었다. 상도 할배도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그때 나이로 마흔 넷이었다. 지금 세상으로 보면 한창 나이임에도 당시에는 할배라 불렀고 속병이라 하는 것은 위장암이나 대장암 아니면 간암이 아니었나 싶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다. 피도 90%는 물이다. 그 피 속에 적혈구,백혈구,혈장이 들어 있고 심장이라는 펌프와 10만 킬로미터의 혈관을 통해 60조라는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다. 내 몸 하나가 지구 전체와 같은 하나의 큰 세상이나 다름없다. 유전자 속에 온갖 정보가 들어 있어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그 정보들을 거의 다 파악이 됐고 이중나선으로 된 잘못된 DNA서열은 유전자 가위를 통해 잘라 내는 세상이 되었으니 신의 경지가 점령될 시기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에미 생일이라고 서울에서 딸아이 가족들이 내려와서 모처럼 밖에 나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미리 기장에 있는 일등각이라는 오리불고기집에다 예약을 했다고 해서 미리 차를 타고 나갔는데 휴일이라서 그런지 고속도로가 엄청 밀렸고 게다가 오랫만에 운전을 한 탓인지 출구를 잘못 알고 나가는 바람에 예약시간보다 30분이나 더 늦었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니 코로나 팬데믹이라해도 밀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출입통제를 엄격히 하고 있어서 입구 안내인한테 코로나 2차접종까지 완료했다는 문자 메시지까지 보여주어야 2명까지 더 앉을 수가 있었다.
룸으로 안내되어 룸 안에서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오리불고기로 식사를 한 후에 소화도 시킬겸 힐튼호텔앞 오시리아 갈맷길을 걸었다. 사람들이 코로나로 지친 탓인지 다 밖으로 나온듯이 해안 산책로는 사람들로 붐볐다. 개도 상전 모시듯이 안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바람에 나붓기는 갈대꽃 너머로 저 멀리 크다란 컨테이너 한 척이 짐을 가득 싣고 유유히 항해를 하고 있었다. 더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푸른 바다 위를 떠가는 배를 보면 내 몸 속의 피가 요동을 친다. 81년에 배를 내렸으니 정확히 40년도 더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으니 내 피 속에는 뱃놈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