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리미엄 초콜릿 업체인 샤펜버거의 다크 초콜릿. 사진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
샤펜버거는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콩 선택부터 콩 볶기(로스팅), 섞기(블렌딩) 등 초콜릿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는 ‘가내(
家內) 수공업’ 방식을 고수했다. 원가가 올라가지만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또 유통업자나 중간 바이어를 통해 최대한 싼 가격에 원재료를 공급받는 대형 초콜릿 업체와 달리 이 회사는 베네수엘라, 가나 등 제3세계에서 원두를 직접 조달했다. 원두 종류에 따라 로스팅 과정을 엄격하게 분리했고 값비싼 독일제 장비를 썼다. 유통 방식도 달랐다. 설립 초기부터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과 제과점을 뚫는 데 주력했다. 미식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진지하고 전문적인 초콜릿 업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초콜릿의 형태도 바(bar) 모양의 다크 초콜릿만 주로 생산했다. 아무리 잘 팔려도 품질 유지를 위해 생산량을 늘리지 않았다. 샤펜버거 초콜릿의 고급스러운 맛과 향은 곧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고,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다. 이 회사의 독특한 문화와 성장성을 눈여겨본 허시는 2005년 샤펜버거 매출의 5배를 주고 경영권을 사들였다. 허시가 미국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의 빠른 성장세를 뒤늦게 주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2005년 미국 전체 초콜릿 시장의 성장률은 2.5%에 불과했지만 프리미엄 초콜릿은 17%에 달했다.
샤펜버거는 소비자들에게 ‘진정성(authenticity) 을 인정받은 기업’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쌓았다. 진정성은 ‘정체성(identity)’의 한 형태로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브랜드는 회사가 통제할 수 있고, 사고팔 수 있으며, 규정하는 주체가 소비자일 때가 많다. 하지만 정체성은 회사가 통제할 수 없고 사고팔 수 없으며 소비자뿐 아니라 공급업체, 투자자 등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이 규정한다. 프리미엄 제품 시장, 특히 프리미엄 식품 시장에서는 진정성을 인정받는지 여부가 판매를 좌우한다. 초콜릿, 맥주, 와인, 예술 등 문화 상품에서는 비밀스러운 기법을 가진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 소비자들은 생산자가 지닌 진정성을 품질, 세련미와 동일하게 여긴다. 또 자신이 이 제품을 소비하며 신분이 높아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성숙 시장에서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 회사라면 고유의 정체성 확립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