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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끝나지 않은 마지막 수업
여국현 추천 0 조회 170 10.12.18 02:36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월요일, 직업 군인으로 학업을 병행하던 두 명의 4학년이 수강생의 전부였던 야간 전공 과목의 마지막 수업을 했다. 학기 첫 시간에 두 학생은 직업 군인으로서 학업을 병행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면서 근무와 훈련, 또 예고 없이 실시되는 비상 대기 등으로 인해 수업 시간에 정확하게 오지 못하거나 빠지는 날이 있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내게 양해를 구했다. 피치못할 경우라는 전제 하에 사정이 허락되는대로 가능한한 이해하면서 한 학기 수업을 진행했다. 부득이한 경우 수업 대신 과제와 리포트 제출로 수업을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 문학작품을 영화화 한 작품들을 보고 비교하는 과목의 특성상 일정 부분 리포트로도 가능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그것을 가능하게도 했다. 그랬던 수업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이 지나고 한 30여 분 늦게 두 학생이 도착했다. 계획했던 진도를 다 마치지 못한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한 학기 내내 단 두 명뿐인 수업의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생각에 강의실에서 수업하는 대신 자리를 옮겨서 하자고 제안했다--사실 우리가 수업하던 영문학과 전용 멀티미디어 강의실은 최신 시설이었지만 우리에겐 너무 컸다. 70인 강의실을 셋이 썼다!--두 학생은 흔쾌히 동의했고 우리는 학교 앞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업과 관련된 몇 마디의 이야기 뒤에 주제는 자연스럽게 4학년인 두 학생의 상황과 진로 등에 대한 화제로 옮겨 갔다. 두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살았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

 

공군기술사관학교 1년 선후배 사이인 둘은 공군 하사관으로 복무를 하며 학업을 하고 있었다. 고교 선후배 사이였지만 학년은 같았던 둘 가운데 후배는 관제사, 선배는 전투기정비사였다. 공군기술사관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졸업후 의무 복무기간인 7년을 복무한 다음에는 계속 군에 남거나 혹은 전역하거나 선택할 수 있었다. 직업군인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이미 보장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업군인이 비록 안정된 것이긴 했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둘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후배는 공항 관제사가, 선배는 민간 항공사로 옮겨 항공기 정비사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했다.

 

둘은 꿈을 꾸고만 있지는 않았다. 둘 가운데 선배는 미국 항공기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학기 중에 그 시험을 치기 위해 미국에 다녀온다고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 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민간 항공사의 관제사가 되려는 후배는 이미 국제관제사 자격증과 자가용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해 놓았다고 했다.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특례로 POSCO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기 까지의 과정이 그대로 그들에게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시간도 공간도 달랐지만 서로가 느끼고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과 길은 같았기에 비슷한 과정,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면서 비슷한 길을 가려는 후배들을 보는 느낌은 남달랐다. 뒤에 남은 수업--1학년 학생들이 암기한 표현들을 확인하는 기말시험 대체 과제 확인 시간이어서 이런 자리가 가능했다-- 때문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들과 같았던 내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예전에 내가 느꼈던,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느끼는 이야기와 꿈을 나누면서 즐거웠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진지하게 사고하고 실천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언제나 기쁘고 즐겁다. 나는 그 두 학생이 이미 자신의 꿈의 첫 단계를 이루었듯이 앞으로 그들이 꾸게 될 더 큰 꿈들도 이루어 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계획되었던 대로 세 시간 수업을 했다면 나는 이들을 이렇게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이름과 인상으로, 수업에 함께 했던 많은 학생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어렴풋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삶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고, 내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들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을 보았다. 그들 또한 그들과 같은 고민을 안고 지내왔던 내 삶의 한 부분과 시간을 공유했다. 세 시간 수업과 맞바꿀 충분한 가치 이상이었다.

 

그 시간이 둘에게는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간이자 4학년의 마지막 시간이었고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둘은 그 시간이 기억에 남을 것이라 했다. 둘에게만 그렇겠는가. 수업때문에 둘을 남겨 두고 다시 학교로 올라가야만 했던 아쉬움은 서울에서 이어가기로 했다. 그들의 마지막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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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2.18 10:18

    첫댓글 저번주 일요일 혜화에서 시험공부하고 밤에 나오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4년 동안 나름 정들었던 공간인데 학교 공부하러 오는 일은 이제 없겠구나 싶으니까... 오늘은 성수에서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날이네요~~~ 물론 내일 시험에 전과목 과락 면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 작성자 10.12.18 11:04

    뭔 그런 걱정을...ㅎ^^*~ 오늘, 마지막 정리 잘 하고, 학교에 꼭 공부하러만 오나? ㅎ, 놀러도 오잖아, ㅎㅎㅎ~

  • 10.12.18 11:07

    두 공군아저씨에게 많이 부끄럽군요. 조금한 장사를 시작하려다고 어긋나고 다시 멀해야한다는 생각은 굴뚝같지만 그냥 "무었을 해야하나"하고 두려워하고 나태해지고 하고 싶은 거와 해야할 것가 자꾸만 충돌되어서 맘만 상하고.. 직장에 학업에 열심히 하는 울님들에게 화이팅이란 말은 할 수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을 가감없이 써주신 여교수님께 감사합니다. 더불어 두 공군아저씨들도 꼭 스스로가 정한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하겠습니다.

  • 작성자 10.12.18 11:23

    두 친구, 그런 시간 없었으면 어쩌면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으로만 기억되었을 선생과 학생이 되었을 뻔 했지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어디서나 놀라고 어디서나 배우게 됩니다....다만 언제나 제가 그것을 못 볼 뿐인 게지요....두 친구, 자기들 꿈은 충분히 이룰 친구들이라고 마음으로 믿어주고 또 기원하고 있습니다...

  • 10.12.23 00:42

    기말시험 끝낼 때마다 다시는 안하리라 다짐을 하며 교문을 나오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책을 펴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인생이 모순 투성이구나 하는...두 친구분!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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