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Letter_ 단풍 숲길을 걸으며
강 영은
하얀 뭉게구름 파란 하늘에 몇 점 떠가더니
코스모스 향기 수줍게 하늘에 흩뿌리더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 숲은 온통 단풍입니다.
아직도 소곤소곤 잎이 물드는 소리가 들리는 숲에서
단풍잎 하나하나마다 서린 사연을 읽어봅니다.
한 해 그렇게 많은 일을 겪은 나무는 할 말이 많은가 봅니다.
빨강, 노랑, 갈색, 잎잎이 마음을 담아낸 단풍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해 내 마음에 물든 사연도 비춰봅니다.
한 나무인데도 서로 다른 빛깔로 물든 잎들은
함께 겪었어도 말하고 싶은 사연은 다 다른가 봅니다.
문득 생각에 잠겨 봅니다.
만일 내 마음의 사연이 색깔로 피어난다면
무슨 색으로 물들어 피어날까?
눈부신 빨강, 사랑과 감사의 색으로 피어날까?
빛나는 주홍, 찬양과 기쁨의 색으로 피어날까?
혹은 황홀한 노랑, 행복과 환희의 색으로?
아니면, 검은 점 박힌 어두운 갈색, 슬픔과 원망의 색으로 피어날까?
꽤 큰 키에 잎을 많이 달고 있는 나무 위를 올려다봅니다.
햇빛을 많이 받은 높은 가지의 잎들은 잘 익어 예쁜데
햇빛을 덜 받은 부분은 물이 잘 안 들어 예쁘지가 않습니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려면 충분한 햇빛이 필요하다지요?
일조량이 풍부하면 나뭇잎의 광합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러면 충분한 염료가 만들어져 색깔이 고운 단풍이 된답니다.
초록잎이 형형색색으로 예쁘게 물드는 것은 다양한 염료 때문인데,
여름 동안 열심히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잘한 나뭇잎은
붉은색을 나타내는 염료 안토시아닌, 그리고 노란색을 내는 염료 크산토필이 많이 가지고 있어 노랗고 빨갛게 예쁘게 물이 듭니다.
나는 한 해 어떤 빛깔로 물들었을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
햇빛 같은 주님의 사랑을 흠뻑 받고 많이 간직해서
그 사랑의 흔적마다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나타날지,
사랑한 자국마다 노란빛 빨간빛 단풍들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지…
아니면 햇빛을 저버린 채 어두운 그늘에서 자란 잎처럼,
그래서 예쁘게 물들지 못한 잎처럼,
불평과 원망의 갈색 점 점점이 박혀 곱지 않게 붙어 있을지…
단풍 짙은 숲길을 걸으며
이 가을 햇빛을 많이 받은 잎처럼
곱게 물들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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