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선댄스영화제 화제작이었던 「콜레트」의 감독 워시 웨스트모어랜드는 주연으로 키이라 나이틀리 말고는 다른 배우를 떠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콜레트는 영웅적인 여성들 가운데 프랑스 문화계의 아이콘이며 무엇보다도 천재적인 재능과 지적인 아우라를 가진 작가이기 때문이다. 키이라 나이틀리 또한 콜레트가 자신이 연기한 캐리터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여성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도 자신의 롤모델로 꼽고 있는 이 콜레트는 누구인가?
여성의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는 게 힘들던 시절에 콜레트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소설로 쓴 『클로딘, 학교에서』를 남편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이 첫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파리의 클로딘』, 『클로딘의 결혼생활』까지 남편과 공동 저자로 출간했는데 더 큰 화제가 되면서 ‘클로딘’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그러나 남편이 소설을 더 써내라며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자 불화를 겪고 결국 클로딘 연작에 대한 판권을 빼앗긴 채 이혼하게 되어 뮤직홀에서 연극배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친구 같은 자연을 벗어나 파리의 사교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극적인 사건을 겪었지만, 끊임없이 글을 썼고 결국 20세기 유럽에서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로 사회적인 성취를 이룬 예술가가 된다. 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저널리스트로서도 활동했으며, 1945년에 공쿠르아카데미 최초 여성 회원이 되는가 하면 결국 회장까지 지내고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프랑스 문학계의 영웅이 된다.
콜레트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감각(특히 후각과 감각)을 전달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설가이며, 식물과 고양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아름다운 문학에 녹여낸 자연 예찬가이며, 남녀간에 변화하는 사랑의 심리와 여성의 관능을 세밀하게 표현해 내서 ‘본능의 사제’라고도 불린 작가다. 장 콕토의 절친한 동료이기도 하고, 모리스 라벨과 함께 오페라를 만들기도 했으며, 자신의 소설을 뮤지컬화할 때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하는 등 문화 전반에서 크게 활동했다.
첫 번째 남편의 강압은 오히려 콜레트를 작가로서 독립하게 만들었고, 특히 클로딘 연작은 그녀에게 작가로서 정체성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물론 소설인 만큼 콜레트의 삶과 클로딘의 스토리가 똑같지는 않다. 결혼해서 파리로 오는 콜레트와 달리 클로딘은 가족이 파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도시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전형적인 파리지앵인 사촌 마르셀과 그의 아버지 르노를 통해 파리의 삶을 알아가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의 내적 모험은 온전히 작가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클로딘이 완전히 나뉘었다. 나는 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 목소리는 조금 먼 곳에서 들려왔다. 신중한 클로딘은 사슬에 묶인 채 유리방 안에 들어가 있고, 날뛰는 클로딘이 미친 듯이 수다를 떨었다. 유리방에 갇힌 클로딘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위로 무너질까 봐 내내 두려워했던 굴뚝이 마침내 와지끈 무너져 내렸고, 그 먼지가 천장의 등불 주위로 후광을 만들어 냈다. 신중한 클로딘, 그냥 보기만 해, 움직이지 말고! 날뛰는 클로딘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광인처럼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 섬세한 감각의 세계야말로 작가의 독창적인 존재 방식!
‘가장 프랑스적인 목소리’가 들려주는 삶의 기쁨과 진동,
그리고 그 감각적 글쓰기의 환희로 초대!
“오늘부터 나는 다시 일기를 쓴다. 그동안 몸이 아파서, 너무 많이 아파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이 아팠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 『파리의 클로딘』은 저자 콜레트의 분신 클로딘의 회상으로 이뤄진다. 클로딘은 “글을 배운 이후 늘 생쥐처럼 아빠의 서재를 들락거렸고” 볼테르의 『불온한 철학사전』뿐만 아니라 프랑시스 잠의 자연주의 시에서부터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사실주의 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는 책벌레 소녀다. 이런 독서광 클로딘은 자신의 욕망을 이렇게 다독여야 했다.
눈치 빠르고 나이에 비해 많은 걸 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안달 난 잘난 척 좀 어떻게 해 보지? 누구든 놀라게 만들고 싶고, 조용히 잘 있는 사람 흔들어 놓고 싶고, 지나치게 평온한 사람은 무조건 휘젓고 깊어지지. 그러다 분명 큰 코 다칠 거야.
독립적이고 적극적이고 감각이 남다른 클로딘은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주 많은 것들을 소리 없이 혼자 바라볼 줄 아는 거지. 혼자 들을 줄도 알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감미로운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열 번 가까이 빛깔이 바뀌는 초록빛 눈동자를 감지해 낼 수도 있다. 클로딘의 감각인상은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공감각적으로도 자유롭다. “하지만 그것은 꽃다발에 혹은 잘 익은 복숭아에 입을 맞추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향기들은 코보다 입으로 더 잘 맡을 수 있으니까.” 이처럼 섬세한 클로딘은 “야성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 어떤 세련된 파리지엔보다도 더 유혹적이다. 클로딘의 정신세계는 유난히 자연과 동물을 사랑했던 작가 자신의 감각 세계가 반영돼 있으며, 콜레트가 때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 감각적 글쓰기를 존재 방식으로 택했듯이 클로딘도 끊임없이 일기와 편지로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한다.
● 성숙한 파리지엔이 되어 가는 열일곱 소녀의 성장소설
“사랑은 여성의 자유를 앗아가기도 하고,
또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고 성장하게도 한다.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 콜레트가 그 사랑을 직조한다.” ―《뉴욕 타임스》
파리는 고향의 시골집과는 전혀 다른 위험한 세계다. “작년에 시작된 나의 전락을 멈춰 줄 브레이크가 없었다! 나는 이제 팡셰트(고양이)처럼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순수한 행복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아무 데나 휘젓고 다니지 못하고, 기어 올라가지 못하고, 뛰어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도시는 또한 내면을 성장시키는 용광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또 읽고, 정말 책만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이 나를 이곳에서 끌어내 줄, 나 자신으로부터 꺼내 줄 유일한 것이었다.” 클로딘은 새로운 시각을 갖고 스스로에게 성장의 문을 연다.
“됐어!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줘도 돼! 됐어! 책에서 다 읽었다고! 열일곱 살밖에 안 됐지만, 난 전부 다 알아!”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그런 내가 길거리에서 엉덩이를 꼬집는 남자 때문에 당황하고, 책 속에서 늘 만나 온 삶을 사는 친구 때문에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나는 겨우 우산을 휘두르거나 우아하게 밀쳐 내면서 사악함의 현장을 피했다.
또한 이 소설은 사랑에 눈을 떠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단짝이었던 뤼스가 파리에서 펼치는 전혀 다른 삶과 은밀한 애정을 실험하는 마르셀 사이에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고, 또 세련된 도시인 르노의 “거의 새까만 색으로 빛을 발하는 그의 눈”에 취하기도 했다.
사실 내 마음을 르노에게 너무 많이 보여 주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의 짙푸른 두 눈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매끈하지 않은 흑갈색의 속눈썹 아래 상대를 거북하게 만드는 그의 아름다운 두 눈은 왠지 믿음을 주지만, 그 눈이 자기한테 뭐든 얘기해도 된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희끗해지기 시작한 콧수염 아래로 번지는 미소가 갑자기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남편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했다.” 소설 속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 내내 클로딘은 변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내 눈이 나는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험가에게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이다. “이제는 자유가 무겁고, 홀로 서는 것도 힘에 겨워”할 때가 있지만, 그 결과가 “원하는 것을 얻은 정복자”일 수도 있는 반면 “형을 선고받은 죄수“ 같을 수도 있다. 콜레트와 클로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