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출처: 네티즌초록꿈사랑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林悅堂 이비가연
|
||||||||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겨울철이면 눈 속에 파묻혀 죽은 '거지순경'이 생각납니다. 가상세계 속의 순경이냐구요? 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고 실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입니다.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무등산 자락과 연결되는 용암산 아래 자그마한 산촌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설날에 큰집에 갈 것인데 이렇게 눈이 많이 온 날 큰집에 꼭 가야 하나요?" "먼 소리다냐,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 허덜덜 말고 냉큼 준비 허거라." 밤 사이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도시 아이들 같으면 깡충깡충 뛰며 좋아 하겠지만 두메산골 소녀 양순이에게는 걱정거리다. 섣달 열이렛날이 할아버지 제삿날이니 꼭 참석해야 한다는 소리를 며칠 전부터 들었지만 막상 가야 할 날에 눈이 이렇게 많이 왔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눈이 왔다고 안가고, 비가 온다고 안가면 자손으로 할 도리가 아니란다, 암만 말고 따라 나서거라." 가고 싶지 않은 막내딸에게 박생원은 단호하다. 마당에 나가 눈을 밟아보니 무릎까지 빠진다. 하지만 아버지가 앞장서는데 도리가 없다. 두 아들은 서울 공장으로 돈 벌러 가고 일곱 살배기 막내딸 하나만을 데리고 큰댁 제사에 참석하는 박생원의 심정이 착잡하다.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跡 遂爲後人程 눈길 뚫고 들길 가도 어지러이 가지 못 하네 오늘 아침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백범 김구 선생이 붓글씨로 즐겨 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고 애송하면서 유명해진 이 시(詩)는 세간에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로 알려져 있으나, 조선 후기 시인(詩人)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작품이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눈 길 가는데 어지러이 가지마라" 통통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촐랑대는 막내 딸 양순이에게 박생원이 한 마디 한다. "녹으면 다 없어질 것인디 뭣 땜시라~" 난데없는 꾸중에 심드렁한 표정이다. "뒤따라오는 사람이 흉본 단다. 하나는 사람의 발자국이 틀림없는데 하나는 짐승의 발자국 같다고 말이야." 들판을 가로질러 '논재'로 접어들었다. 용암산 자락에 걸터앉은 '논재'는 한천리(寒泉里)와 춘양의 길목으로서 그 고개 마루가 가파르고 사나워 바람도 쉬어가고 구름도 쉬어 간다하여 '논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야 이거 봉우리에서 보니까 볼만 허구나!" 마루턱에서 내려다 본 은세계(銀世界)는 장관이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순백(純白)의 눈 나라였다. "이제야 여기 왔는데 큰집엔 언제 가나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이 아직 여물지 않은 양순이는 갈 길이 멀다하고 투정만 부린다. 통통거리며 걷던 양순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발걸음을 멈췄다. "아부지 저것이 뭣이다요?" 앞서가던 막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리키는 곳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온 산야(山野)가 은백색으로 변한 하얀 세상에 거무스름한 것이 보였던 것이다. "뭐긴 뭣이여… 한 눈 팔지 말고 얼른 가자!" "껌정 보따리 같구만이라~" "그런데 얼씬거리지 말고 얼른 가자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생원도 호기심이 생겼다. 막내딸의 성화에 가던 길을 멈추고 두 부녀는 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워메 쩌거시 머시다냐? "사람같은디라~~~" 손이 보였다. 분명 사람 손이었다.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미확인 물체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야, 참말로 사람인가 찬찬히 잘 보거라 잉~" "순경 같구만이라~" 막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뒹굴듯이 말했다. 순경은 경찰관의 계급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경찰관을 통칭하는 말이다. 검은색 제복과 제모가 보였던 것이다. 특히 둥그스름한 검은색 제모(制帽)는 어린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막내의 눈에 확 들어왔던 것이다.
자, 이제부터 전설 속의 '거지순경' 이야기 속으로 우리 다 함께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아, 여보세요. 거기가 한천지서가 맞지요? 나 부면장인데 오 순경 좀 바꿔주세요." "전화 바꿨는데 누구십니까?" "아, 나 부면장이요. 오 순경 맞지요?, 그래, 무탈하게 근무 잘 하시지요? 내일 모레가 우리 아버님 회갑인데 꼭 오세요. 다시 전화하지 않을 테니까 꼭 오십시오." "이렇게 전화까지 넣어주시고 고맙습니다. 예, 꼭 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전 근무지 춘양면 부면장이 부친 회갑을 맞이하여 지금은 다른 관내에서 근무하는 오 순경을 초대한 것이다. 이렇게 오순경은 어디에서 근무를 하나 지역 주민들에게 인심을 얻었다.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하고 근무지 한천 지서를 떠났다. 며칠 전부터 내린 눈이 무릎까지 쌓였지만 오 순경은 개의하지 않았다. 다만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걸어가는데 1시간 반, 돌아오는데 1시간 반, 잔치 집에서 한 시간, 도합 네 시간이면 족하리라 생각하고 잔칫집으로 향하였다. 산업시설이 변변치 못했던 그 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생산 수단이 농사가 으뜸이던 그 시절, 만석꾼에 가까운 농사를 짓고 있는 부면장 부친 회갑 잔치를 치르고 있는 잔칫집에 들어서니 왁자지껄하다. "아따 오시느라고 욕보셨소. 얼른 들어오세요, 거 머시냐 면에 김주사는 진즉 왔구만이라." 눈길에 먼 길 걸어오느라고 차가워진 손을 붙잡으며 부면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김 주사는 먼저 와 있었다. "먼 길 오느라 애썻승께 이 술 한잔 받아 보세요." 부면장이 권하는 술은 일명 앉은뱅이 술이라 불리는 소곡주였다. 달착지근하여 홀짝홀짝 주는 대로 마시다보면 결국에는 주저앉고 만다는 알코올도수 60도짜리 우리의 전통주였다. 빈속이어서 그런지 알코올 기운이 짜르르 전해온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죽은 것에도 무신 꿍꿍이가 있다는데 참말 이다요?" 그 시절에는 TV는커녕 라디오도 귀한 시대였으며 입과 귀가 정보의 유통경로에서 큰 몫을 차지할 때였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잔칫집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세상 뉴스에 목마른 동네 사람들이 오 순경 주변으로 모여들며 질문을 퍼부어 댔다. 현직 대통령 이승만에 맞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이 한강 백사장에 30만 군중을 모아놓고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열변을 토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선거 유세도중 호남선 열차에서 서거한 것에 대하여 국민들의 여론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헛소문들이지요. 기차 칸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답니다."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다요?" 김구 선생이 총탄에 쓰러지고, 여운형이 쓰러졌으며, 장덕수와 송진우가 쓰러진 살벌한 정치판에서 대통령후보 신익희도 희생되지 않았냐 하는 것이 대부분 국민들의 정서였기 때문에 오 순경의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어야지, 잘못 하다간 특무대에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 맞을라' 취기로 희미해진 정신 속에서도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모가지 달아나고 특무대에 끌려가 혼찌검을 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 조심 해야지… 남자들이란 자고로 두 가지만 조심 하면 되니까' 오 순경이 소곡주 영향권에 들었음인지 혀가 꼬부라지며 자세가 흐트러진다. 특무대가 어떤 곳인가? 기무사나 국정원보다 더 무서운 대통령 친위 군 부대가 아니던가, 세상이 어떻고 이박사가 어떻고 미국이 어떻고 하는 동네 사람들의 말잔치에서 한발 비켜선 오 순경은 시야에 들어오는 푸짐한 잔칫상을 바라보니 5남매나 되는 자식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왔다.
그러한 국책사업이 펼쳐지기 전, 그러니까 오순경이 소곡주 한 잔에 취기가 거나해진 이 시대는 정부의 인구 정책이 무대책이었다. 생기는 대로 낳고, 낳아 놓으면 죽을 놈 죽고 살 놈 살며, 저 먹을 것은 지가 갖고 태어난다는 그런 세상이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그래도 아들하나 얻어 보려고 낳은 것이 딸 넷에 아들 하나, 5남매가 되었다. 한천 지서로 전근 와서 마을 유지가 무상으로 내어준 단칸 셋방에서 5남매를 거느리고 일곱 식구가 봉급 25000환(당시전차요금20환)에 살아가려니 곤궁하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부인은 동내에서 김메기 등 품팔이를 해야 했으며 큰딸 원희는 항상 남루한 옷차림이었다. '큰 놈이 떡을 잘 먹는데 저놈 좀 갖다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저 잡채는 셋째 녀석이 잘 먹는데… 막내 놈이 그래도 남자라고 고기를 잘 먹지…?'
'그래, 체면 불구하고 쫌 싸 달라 해서 어서 가서 애들 먹여야지' 오순경은 취기가 채 가시지 않아 비틀거리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서둘러 일어났다. "날씨가 굉장히 추운데 산길 넘어 가려면 추운께로 이거 한잔 더 하고 가세요." 돌아가겠노라고 부면장에게 인사를 하자 소곡주 한 잔을 권한다. 오순경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이것이 생애 마지막 술잔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이거 애기들 묵으라고 쌌으니까 갖다 주세요." 눈치 빠른 부인이 챙겨준 보따리를 부면장이 오 순경에게 건네준다. "잘 먹고 갑니다. 잘들 계세요." 잔치가 한참 무르익어 가고 있는 부면장 집을 나서니 짧은 해가 서산에 기울어 뉘엿뉘엿 지며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못 하네 오늘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나니… 한시(漢詩)를 읊으며 막내딸을 데리고 큰댁 제사에 참석하러 눈 덮인 들길을 거닐던 박 생원은 눈앞에 펼쳐진 미확인 물체가 눈 속에 파묻힌 사람으로 드러나자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마을로 내려왔다 "논재에 사람이 죽어 있다네…." 박생원의 얘기가 동네에 전해지자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50호 남짓 조그만 마을 한천리에 의문의 변사 사건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크나 큰 사건이었다. 이장을 비롯한 동네 청년들이 속속 지서로 모여들었다. 경비전화로 본서에 변사 사건 보고를 한 지서 주임은 청년들을 앞세우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지서주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현장에 도착하여 거무스름한 물체를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그것은 경찰관이라는 것을 느꼈다. 경찰관의 겨울철 제복 제모가 뚜렷했던 것이다.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로 뉘었을 때 또 한 번 놀랬다. 그 모습은 자신의 부하이자 동료 경찰관인 오 순경 이었던 것이다. 회갑 잔칫집에 다녀오겠노라고 배시시 웃으며 지서를 나서던 때가 불과 몇 시간 전 같은데 이렇게 싸늘한 주검으로 눈앞에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얼어붙은 손을 만져 본 순간 뜨거운 슬픔이 가슴을 치밀고 올라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오 순경은 애들 먹일 주먹밥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쥐고 죽어 있었던 것이다. 주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흘러내리던 그 눈물이 얼어붙은 오순경의 손등을 적시고 있었다. 손전화가 보편화 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호랑이 담배피던 옛이야기 갔지만 우리의 현실이었고 이 땅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주머니에서 주먹밥이 나왔다며… 아이고 가엾어라!" "얼어붙은 손이 떡을 꼭 쥐고 있었데… 어휴 불쌍해라!!" "안주머니에서는 나물도 나왔대… 어이구 측은해라!!!" 장례 행렬을 바라보는 동네 아낙네들이 한마디씩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하늘도 울었고 땅도 울었고 온 동네 사람들이 오열했다. 오 순경은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
| |||||
|
첫댓글 마루,,시사하는 바가크네 .잘 읽었네.....................................................
종락이 동생처가집 동네 이야기여...한천 화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