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이제 <昨年, 과거>라는 시간의 창고로 옮겨졌으며, 2023년은 <今年, 현재>라는 시간의 진열대에 올라왔습니다. 교수신문은 2022년 한해의 사자성어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습니다. 과이불개는 논어의 '위령공편'에 나오는 글귀로 공자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 우리말로 풀이하면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2023년 새해 첫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로 올 한해, 우리 각 개인과 가정, 공동체, 교회와 우리나라, 온 세상에 평화가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리는 새해 첫날 아침,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데 이는 곧 하느님의 축복에서 출발한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독서 민수기에서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사제 직분을 맡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백성들에게 축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민6,24~26) 그렇습니다. 이는 단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한 축복의 기도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다만 세상 사람이 바라는 복과 하느님을 믿는 우리의 축복이 다를 수는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어둠과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이 인생의 올바른 삶이며 가치인가를 찾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축복을 참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빌어주어야 하는 축복은 바로 참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예전 제주교구에서 사목할 때,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모든 사제단과 교구 신자들이 함께 평화의 모후이신 천주의 성모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모님께 자신을 바치는 기도를 함께 바치며 새해를 시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새해 첫날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함께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처럼 그리고 마구간의 구유에 누워계신 갓난아기를 찾아 달려 온 목동들처럼 우리 모두 ’세상의 빛이신 주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찾고, 그 평화를 간직하며 새해를 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우리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간직하면서, 이 평화가 세상으로 번져 나가고 퍼져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평화가 세상에 충만할 때 비로소 세상에는 다름으로 말미암은 차별, 곧 성性, 인종, 피부, 종교, 신분, 지역 차별을 받지 않고, 다름으로 인한 갈등과 불목, 억압과 폭력, 불의와 부정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함께 배려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세상을 이룰 수 있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는 바로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현존의 표징‘이며, 고난과 죽음을 통해 가져온 새 삶(=부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올 한 해 세상의 어린양이신 주님을 천사들과 함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2,14)를 노래하며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힘차게 출발합시다.
이 평화를 우리가 먼저 살고 세상에 빌어주기 위해서, 우리 모두 오늘 복음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본을 보여주신 신앙의 태도를 본받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뜻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아기에 관해 들었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자, 이를 들은 이들은 모두 놀라워하였다고 증언합니다.(2,18참조) 왜 그들은 목자들의 말을 듣고 놀랬을까요? 아마도 무식하고 천한 그들의 입에서 천상의 신비가 선포되었기 때문일 것이며 동시에 그들을 예언의 도구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느꼈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분명 아기의 부모이신 요셉과 마리아 또한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루카는 홀로 마리아만이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2,19)고 전하는 의도는 곧 우리 역시도 성모님의 이 마음의 태도를 배우며 실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성모께서 마음에 간직한 ’이 모든 일‘은 포대기에 싸인 채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장래에 대한 계시입니다. 성모께서 <마음에 간직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마리아가 이 모든 일을 한 번 간직한 것이 아니라 후에 표현된 <되새겼다.>라는 말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곧 되새겨서(=자꾸 골똘히 생각하다.) 간직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울러 <마음속에 간직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기억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바로 성령의 기억과 어머니 마리아의 기억에 힘입어 성경을 기록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공생활 시작하실 때까지의 모든 일은 바로 어머니 마리아의 기억과 진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가장 고유한 특성 중 하나는 기억력입니다. 특히 어머니들의 자녀에 관한 기억은 너무도 생생합니다. 이처럼 어머니 마리아는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신이 겪은 일은 간직하였을 것이며 그 힘은 바로 자녀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속에 간직했다.>는 표현은 이후 예수님이 성전에서 되찾으셨을 때,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라고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2,51)는 대목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처럼 성모님께서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일들 앞에서 평안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기다리시는 모습은 참 평화를 바라는 신앙인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참된 평화는 예수님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모든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고 하느님의 뜻을 살려는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이를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참된 신앙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한 해가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나의 영광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갑시다. 새해 첫날인 오늘 다시금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빕니다. 저 역시도 2023년 올 한 해, 예전 프란치스꼬 교황님께서 언급하셨던 것처럼 목자로써 양들 곁으로, 특별히 요양병원에 머물고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그들의 먹을 것 곧 말씀의 양식을 챙겨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끌어안고 함께 나눔으로써 저 자신에게서 <양 냄새가 물씬 나는> 목자가 되길 희망하며 다짐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도록 결심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네.”(복음환호성:히1,2참조) 2023년 첫날, 우리 모두 성모님처럼 하느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며 평화를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다짐하면서 새롭게 시작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