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이사야는 고난 받는 종을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으며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라고 묘사한다(사 53:2). 미켈란젤로가 그린 예수는 이사야가 묘사한 것과 전혀 다르다. 르네상스 시기 인간의 몸을 완벽한 근육으로 구현하려 했던 풍조가 그대로 반영된 까닭이다. 어색한 근육질 몸에 익숙한 흔적이 보인다. 발등에 붉은 못 자국과 옆구리에 가로로 찢긴 창 자국이다. 르네상스식 인간으로 표현된 예수는 번개를 들고 군림하는 제우스를 닮아 선뜻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기가 망설여지지만, 고통의 흔적을 보건대 우리가 믿는 예수가 맞다. 이사야와 미켈란젤로는 각기 전혀 다른 예수를 묘사했지만, 이사야도 미켈란젤로도 예수에겐 고통의 흔적이 있다고 이해한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누군가 예수를 닮았다면, 그에겐 고통의 흔적이 있다.
1901년 소녀 ‘옥분이’는 하녀로 팔려 갔다. 매일 중노동에 시달렸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소녀 옥분이는 급기야 1905년 겨울에 손과 발이 심각한 동상에 걸려 썩어 갔다. 구타펠 선교사가 8개월 동안 정성껏 치료했지만, 손과 발이 썩어 가는 고통을 어쩔 수 없었다. 절단된 양손과 한쪽 다리에 끔찍했던 고통이 뭉툭한 흔적으로 남았건만, 옥분이는 행복했다. 구타펠 선교사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옥분이는 미국에 있는 후원자들에게 자신을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로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이유는 첫째, 의사들이 옥분이의 고통을 없애 주었으며, 둘째, 병원에 온 이후 매를 맞은 적이 없고, 셋째, 더 이상 굶주림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넷째, 다시는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병원에서 살 것이며, 다섯째, 크리스마스트리같이 아름다운 것을 과거에는 본 적이 없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타펠 선교사는 1911년 미국에서 The Happiest Girl in Korea(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는 책을 출판해 행복한 옥분이를 미국에 소개했다(정성화·로버트 네프, 《서양인의 조선살이》(푸른역사, 2008), p. 227 이하).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무너지기 십상이지만, 옥분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옥분이는 잘려져 뭉툭한 손에 수저를 묶어 밥을 먹어야 하지만,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옥분이의 뭉툭한 손처럼, 부활하신 예수님 손바닥도 못으로 구멍 났고, 못 박혔던 발등엔 붉은 구멍이 선명하고, 옆구리엔 창에 찢긴 자국이 남아 있다(요 20:27).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참혹한 고통이라도 자랑할 만한 스티그마가 된다.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stigmata)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바울은 스티그마를 오히려 자랑한다. 자랑할 만한 고통의 흔적이 있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우리는 부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