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꼬박꼬박 월세를 낸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나눠줄 광고지 한 켠
초상권을 사용해도 된다는 계약조건이다
인적 드문 초겨울 바닷가,
바다는 세를 내릴 기미가 없고
민박집 주인은 끝물의 단풍처럼 입이 바짝 마른다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게 없다
슬쩍 들이마신 공기와
내 몫을 챙겨온 하늘
게다가 무단으로 사용한 바람까지
불평 없이 길을 내주는 백사장 위
스물 몇 해 월세가 밀려있는 나는
양심불량 세입자인 셈이다
수평선을 끌어다 안테나를 세운 그 민박집
바다가 종일 상영되는
발이 시린 물새 몇 마리 지루한 듯 채널을 바꾼다
연체료 붙은 고지서처럼 쾡한
석모도 민박집에서
내 추억은 몇 번이나 기한을 넘겼을까
바닷가 먼지 자욱한 툇마루엔
수금하러 밀려온 파도만 가끔 걸터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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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석모도에는 바다가 산다.
겨울무렵,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백사장에는
이따금 길 잃은 파도소리와
배고픈 철새들만 들락거릴 뿐
외포리 선착장은 지난 계절이 남기고 간
빈 수평선만 가득하다.
화자는 민박손님마저 끊어진 휑한 민박집에서
종일 채널을 바꾸어 상영하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세상에 공짜로
세들어 살고 있다는 데까지 인식이 닿고 있다.
어느 누군가는 오늘도 석모도 바닷가의
툇마루에 앉아 파도소리와 대작하면서
유통기한이 없는 추억을 곰씹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