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두륜산 천년고찰 대흥사에 쌓인 눈
천년고찰 대흥사 일주문
대흥사란......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찰로
진왜란 때 선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차 안에 부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 생각한 초의선사가
대흥사의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넓은 산간분지에 자리 잡은 대흥사는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원과 남원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고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당우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이 특징이다.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동국선원 내에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대흥사에는 국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비롯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옥발, 비취옥발과 서산대사의 친필, 교자, 신발
그리고 금과 은으로 쓴 불경 등 총 24종의 유물이 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유서 깊은데 아름답기까지 한 사찰들이,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구례 화엄사, 승주 송광사, 강원도 인제 백담사 등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찰입구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절길이 가장 예쁜 곳 하면 해남 대흥사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두륜산 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장장 십여리에 이르는 절길은,
봄이면 봄 벚꽃과 동백꽃으로 어우러 지고, 여름이면 진한 녹음으로 터널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단단풍이 붉게 물든 화려한 세계를 연출하고, 겨울이면 이렇게 순백의 세상이 됩니다.
부도전
대흥사는 대한조계종 제13교구 중 한 곳으로 장장 천여 년의 역사를이어오고 있으니,
그동안 배출된 고승들만도 서산대사 등 여러분,
이런 고승들의 진신사리를 안치하는 부도전에도 하얀 눈이 솜이불처럼 덮여있습니다.
대흥사는 일반 가람들의 전통적인 배치양식을 벗어나 자유분방 합니다.
크게 남원과 북원, 별원으로 나뉘고, 일지암과 북암 등을 거느리고 있는 형식입니다.
이곳은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지역의 계곡길, 끄트머리에 보이는 다리가 심진교 입니다.
불교의 궁극목적이 니르바나, 즉 해탈에 이르는 길 아니겠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러니 우리가 진리와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면
생노병사 때문에 고통받는 인과를 끊고 해탈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 이 다리가 바로
그 진리를 찾아 넘어가는 다리인 것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대웅보전과 만나게 됩니다.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
격변의 세월을 300년 이상 버티면서 대흥사와 고락을 함께해온 대단한 고목입니다.
그래서 이 추운 한겨울에도 이리 당당하게 대흥사를 굽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는 눈 쌓인 북원 침계루 옆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무량수각
대흥사의 중심 법전으로, 사찰의 북원(北院)에 자리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전각이며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내부의 대들보와 기둥은 휘어진 자연목을 이용했으며,
용두와 칠보문양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석가와 약사·아미타 협시보살로 이루어진 목조삼존상을 모셨고,
삼장탱·칠성탱·감로탱 등의 불화를 소장하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은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이다.
추사 김정희가 한때 이 현판을 떼어내고 자신의 현판을 올렸으나,
추사체를 완성한 후 이광사의 글씨를 이해하고 다시 옛 현판을 달게 했다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흥사 대웅보전 [大興寺大雄寶殿]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남원과 북원을 잇는, 진리를 찾아가는 다리, 심진교 위에서 잡은 침계 설경입니다.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이 침계루이고, 왼편으로는 300년 고목과 천불전이 자리합니다.
심진교 위에서 계곡 윗쪽을 잡았습니다.
이 계곡의 끄트머리에는 일지암과 북암, 그리고 노승봉이 자리합니다.
웅진당 삼신
남원 대향각과 별원 표충사를 뒤로하고 일지암으로 향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도 그 길을 밟아본 적 없는 전인미답의 순백의 길입니다.
행여 내가 함부로 발자국을 남기게 되면 내 뒤를 따라 이 길을 걷는 사람 역시
그 난삽한 발자국을 따라 걷게 되겠지요. 그래서 허투루 발자국을 남겨서는 아니 된다는,
조선후기 정조새대 이양연이란 문인이 남긴 야설이란 시가 있습니다.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跡
遂爲後人程
눈 길 뚫고 들길 가도
어지러이 가지 못하네.
오늘 아침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이 전인미답 순백의 길에 차마 어지러운 내 발자국을 남길 수 없어
담벼락 가장자리만 골라서 걷습니다.
일지암 본전 대웅전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이 이 대흥사가 자리한 두륜산 밑자락 마을이지만,
이렇게 탐스럽게 눈에 덮힌 일지암은 처음 봅니다.
물론 사진으로 담는 작업 역시 처음이지요.
이 추운 겨울날 손가락을 호호 불며 40여분 넘게 걸어올라와 사진작업을 한
보람이 있어서, 이리 예쁜 절경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일지암에는 암주스님과 보살님들 마저 폭설을 피해 아랫절로 피설을 하시고
아무도 없는 빈절입니다.
일지암 차실입니다.
지금 차실 기둥 하나가 썩어서 많이 기울었습니다.
암주스님의 유일한 걱정은 어서 돈을 모아 이 차실이 무너지기 전에 보수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일지암 차밭
일지암 다실
대흥사에서 유일한 초옥입니다.
현재는 초가지붕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물이라서
볏짚으로 이엉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도 구하기 어렵고,
또 지붕작업을 해낼 수 있는 전수자들이 없어서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내 친구 중에 시를 쓰는 강제윤이란 시인이 있습니다.
이 친구가 2,000년대에 보길도 세연정 근처에 "동천다려"라는 찻집을 열고
귀향활동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우리나라 섬여행에 꽂혀서 섬기행을 하고 있는데, 이 친구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내가 앞에 언급한 이양연의 "답설행"이란 시를 일반인들은 여태까지 서산대사의 시로 알고 있었고,
나 역시도 그렇게 알면서 인용하고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아준 친구가 바로 시인 강제윤이었지요.
그 친구가 2004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걸을 때면 이 시를 한번쯤은 떠올리거나 읊조리며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했을 것입니다.
나 또한 정초에 눈길을 가며 시를 떠올리니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붓글씨로 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고 애송하면서 유명해진 이 시는
흔히 서산대사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는 실상 서산대사가 지은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 시인 이양연의 시라고 합니다.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정조, 순조 연간의 문신으로
본관이 전주이고 광평대군의 후손이기도 하지요.
나 또한 이 시를 오랫동안 서산대사의 시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한양대 국문과의 정민 교수였습니다.
"옛날 김대중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던 한시 중에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밟고 들길 걸어가노니,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못하네. 오늘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나니)란
시가 있다. 이 시도 김구 선생께서 붓글씨로 쓴 것이 있어, 김구 선생의 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서산대사의 시로 둔갑되어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조선 후기 시인 이양연의 시임이 밝혀졌다."
이 시가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는 논란은 진작부터 있어왔습니다. 서산대사가 지은 시라고 구전되어 오지만
정작 서산대사의 문집인《淸虛堂集》에는 이 시가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이제 일지암 차밭을 뒤로 하고 하산길에 오릅니다.
정적마저 흐르는 눈덮힌 산사,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지요?
순백의 눈길이 끝나고 이제야 조금씩 사람들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인간세상의 길이 나타납니다. 이곳이 대흥사 종무국과 찻집이 있는 동다입니다.
범종각
대흥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 중 하나인 천불전
이 천불이 해남 대흥사에 안치되기 까지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에 그 진귀한 인연을 자세하게 풀어드리도록 하고 일단 엎로드부터 합니다.
대흥사 입구에는 그 유래가 일제침략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선장이라는 보물급 여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장군의 아들이란 영화의 촬영지이자, 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와 동호 남매가
동호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장독대 곁 오래된 팽나무 그루터기 입니다.
1960년 전라남도 보성군의 소릿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청년 동호(김규철)는
이복 누나 송화(오정해)를 만나기 위해 보성의 소릿재 주막에 묵게 된다.
이 주막의 주인인 세월네는 동호의 요청에 따라 판소리 득음(得音)을 내게 되고
동호는 그 장단에 맞춰 직접 북을 치는데 이때 동호는 잠시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동호는 세월네로부터 송화가 장님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임권택 감독을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작 "서편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지난 시절의 이 영화를 다시 꺼내 시청하시라.
풋풋했던 젊은 날의 오정해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참고로 해남 공용버스터미널에서 대흥사행 버스는 매 두~세시간 터울로 있고,
해남 관내를 운행하는 버스요금은 거리와 관계없이 1,000원 정액제입니다.
대흥사 주변 약 5km 거리에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도 있으니 함께 여행하면 더욱 좋습니다.
사진작품 / 뜬구름 나그네
첫댓글 고요한 침묵.....
성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