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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저녁쌀 씻어 안칠 때☆]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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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쌀 씻어 안칠 때]
김현주 시집 / 천년의시 065 / 천년의 시작(2016.11.01)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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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쌀 씻어 안칠 때
김현주
눈 내려 쌓인 날
갑자기 서성거려
수화기를 들고 싶다
수첩 속 전화번호를 뒤지며
너무 건방지다 할까, 제치고
배부른 짓거리라 할까, 제치고
바쁜데 폐 될까, 제치고
들킬까, 제치고
끝내 친구에게 전화 걸어
어느 학원이 좋다든지
어느 마트에 라면 값이 얼마가 싸다는
이야기로 수다를 떤 후
어둑발 내린 창 밖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저녁쌀을 씻어 안칠 때
목 놓아 울고 싶다.
박꽃
김현주
사립문 들어서기도 전
고무신 거꾸로 신고
달려 나오시던
할머니 머리 위
그 환한.
달맞이꽃
김현주
햇빛 속에 감출 수 없는
세상의 치부
눈 감아버렸던 낮을 지나
달빛 아래 너는 눈을 뜬다
비겁하다
낮의 무질서 속에서
비켜나
홀로 환한 너는
결코 어둠 속의 꽃일 수는 없다
모란
김현주
화려함이 너무 커
깊어지는 외로움
그 슬픈 향을
아무도 맡지 못했다
배 열리다
김현주
차마 달빛도 참견할 수 없어
문 걸어 잠근 그믐
어둠에 싸인 골짜기
내려와 길에 앉고
들이 산으로 올라가 섞이고
소복 속에 감추어진
네 욕망도 샌다고
가는 전선줄에 실려 보내던
하얗게 밤 밝히며
어금니를 문다던 너는
오, 바람결에 들리는
소복 벗었다는 너의 소식.
은행잎
김현주
누가 예까지 와서
나의 한 생을
예쁘게 담고 갈까
누가 나의 육신을
책갈피에 끼워
오래게 기억할까
칸나
김현주
잎 하나로도
하늘을 가릴 것 같았던
푸른 잎의
청춘을 지나온
흔적은
황혼도 붉다.
대나무
김현주
한 토막의 나무로
꽃 시장에 나온
푸르고 곧은
몸소 가르침으로
나오셨으니
내 한해의 끝은 늘 허전해
꽂아 보는 새해.
틀
김현주
작품 앞에 앉아
한 송이 꽃을
제자리 아닌 엉뚱한 곳에 놓고 싶다
세상의 문을 홀연히 열고
나가고 싶은 유혹
그 길을 따르고 싶은
마지막 한 송이
꽂힐 자리
선연히 눈에 보여
그곳에 꽂고 마는
내 안의 슬픈 질서.
능수버들
김현주
저것을 어째
저 멋대로 늘어진 몸짓
돌돌 감아
둥근 틀을 만들고 만들어버리는
나의 속셈은
한 잔 술을 걸친 듯
저 가지처럼
나도 휘어지고 싶어
그런데 이녁 맘이 이녁 맘대로
안 되는
시샘일 걸 아마.
꽃시장
김현주
새벽 6시 고속버스 타고
꽃시장 간다
시장엔 각각의 꽃들이
저마다의 내력을 안고
진열돼 있다
어떤 꽃이 튼실한가
저렴한가, 흠이 없는가
꽃은 이미 꽃이 아니다
머리를 맞대고 누운
침묵의 항변 앞에
가끔은 꽃 선뜩
집지 못한다.
동경
김현주
후루룩
작은 새 한 마리
창밖 유리에 붙어
창 안을 본다
나는 찻잔 들고
창 안에서
창밖을 본다.
봄에
김현주
뭉게구름 선연한 날
땅바닥에 귀 대어보면
기다린 적 없었던 사람들이
기적소리 울리며
지나간 시간의 기차를 타고 온다
순간 순간 같이했던 사람들
역마다 내리고 빠르게 지나며
안부 묻지 못한
마음 칸 칸 기억의 얼굴들
번지 없는 그리움이
마음 가득한 봄날에
묻는 근황.
또, 산다는 것은
김현주
새로 생긴 진흙 벽 찻집
장독대 뒤
바람 사분대는 언덕을
오래 보았다
차 값 계산하며
‘저 언덕에 들국화를 심으세요’
일 년 뒤 다시 갔더니
‘누구신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들국화는 아니 심어지고
내가 심어져 있었다.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심어지고
뽑혀지는 일
또는 내 가슴에 심는 일
목숨 부지하는 일 아닐까
우리 또
산다는 것은.
억새
김현주
내 키보다 더 큰
갈대와 억새 군락을 지난다
줄기보다 더 큰 머리
휘청이는 갈대
억새 가비얍다
헛된 것들 다 날려 보내면
저리 경쾌한가
휘파람소리 들린다
그 소리 따라 가니
낯익은 마을 곳곳 저녁연기 오른다
귀가 서두르며 시골길 들어서는
가장의 고된 노동도
그곳에선 가볍다.
그- 눈사람
김현주
학습 저능아인
친구 없는 덕이는
혼자 눈싸움을 한다
바위에 던진 눈덩이는
그대로 눈사람이 되었다
입이 귀에 걸린
부처님 닮은.
그 나비
김현주
바다 건너
대륙 건너
날아온 소포
백화점 지나다 닮아서 샀다는
북마크에 조각된
화려한 나비
굼뜬 애벌레의 몸뚱이를 버리고도
가볍게 오를 수 없는
조각된 통념 하나.
멘토
김현주
커튼을 젖힌다
오늘도 그가 있다
그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일어나
나의 창을 지킨다
산책길도 따라나선다
그가 살짝 한눈파는
산책길을 더 좋아하지만
상관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게
그림자를 만들어주어
곧게 걷게 한다.
자벌레
김현주
뜯어 먹던 잎 지나
다른 잎으로 간다, 실룩이며
아,
세상살이에서 나는
먹히는 잎이었을까?
싱싱한 잎만 골라
조금씩 베어 먹은 벌레였을까?
세상이 먹을 잎 나하나
지니지 못했으면서
세상엔 싱싱한 잎이 없다고
빈정대는 삶은 아니었을까
자벌레가 지나간 자리
숭숭 구멍 뚫려 있다.
축복
김현주
버들강아지
먼저 물오른다
저, 빛나는 은빛
살을 에는 물속에
발 디디고
겨울을 견딘 자에게
내리는 예의.
갈망
김현주
꽃밭의 쑥을 뽑았다
쑥 구역에 쪼그리고 앉아
꽃을 뽑았다
세상 밭에서도
홀씨 같은 마음
이리저리 날려
꽃밭에서는 쑥밭을
쑥밭에서는 꽃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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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머뭇거리다 혼기가 찬 시들을 세상 속으로 밀어낸다.
돌아보니 나 자신과의 소통에 편협하다.
그래서 시들이 그냥 외롭다.
이제는 내 시들이 단순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깨어 있는 외로움으로 가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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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詩集 [※저녁쌀 씻어 안칠 때※]
[ 해설 ] -
꽃으로 쓰는 자서전
- 김현주 시집 『저녁쌀 씻어 안칠 때』에 부쳐
나태주 시인
1.
모든 시는 자서전이다. 아니, 모든 문학적인 글은 자서전이다. 그 표현의 방법만 달랐지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그것은 자기의 이야기요, 자기고백이요, 자기 체험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집을 내는 김현주 시인의 시들도 모두가 시로서 쓰는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것을 읽든지 이루지 못한 날의 소망과 하소연과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글들이다.
김현주 시인, 우선은 공주에 시는 여성시인이다. 고향은 경상도 함양이지만 젊은 시절 이래 남편의 고향인 공주에 와서 오래 살고 있으니 공주 사람이겠다. 청년시절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고 1992년부터는 공주에 사는 여성 문인들과 뜻을 모아 『금강여성문학』이란 동인지를 결성하고 거기서 회장의 일을 맡았다.
처음 글의 출발은 시가 아니라 소설과 수필이었다. 점차 시 쪽으로 기울다가 아예 시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금강시마을>회원으로도 활동을 했고『현대시』자매지인『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신인 추천을 받아 중앙문단에 데뷔도 했다.
그것이 이미 10년을 훨씬 넘겼으니 이번에 내는 그녀의 첫시집은 약간은 지각한 시집이지만 시인 자신의 신중함이 거기에 있어서 그렇거니 싶다. 여하튼 마음과 정성이 모아진 시집이다. 언뜻 읽어도 여러 가지 마음이 서성거린 흔적이 가득하고 많은 시들에서 다듬고 다듬은 표시가 역력하다.
우선 시들이 단아하다. 흔히 끌어다 쓰는 말이지만 프랑스 사람 뷔풍이란 이가 말한 ‘글은 사람이’라는 말은 김현주 시인에게도 해당된다 하겠다. 글이 깔끔해서 사람이 깔끔한가. 사람이 깔끔해서 글이 깔끔한가. 어쩌면 그 둘은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한 가지 말이 아닌가 싶다.
실상 나는 이런 글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너무나도 오래 시인과 지근거리에서 살았고 그를 잘 아는 사람이고 또 시인을 중앙문단에 소개한 사람이기에 그러하다. 가능하다면 소임을 피하고 싶었으나 모처럼 시집을 내는 시인이 여러 차례 요구를 해 와서 그 청을 끝까지 마다하지 못하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평론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이론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므로 그저 인간적인 면모에서부터 말을 할 것이고 시를 읽고 난 뒤의 감상 정도를 밝히는 것으로 주어진 주문에 응하기로 한다.
2.
김현주 시인이 처음 산문에서 시로 장르를 바꿀 때 나는 자기가 잘 아는 것,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가지고 시를 써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권한 일이 있다. 김현주 시인이 시를 쓰기 전에 했던 일은 꽃꽂이를 하는 일이었다. 꽃꽂이 전문가라는 얘기다. 그래서 공주 지역의 회장을 맡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라는 것은 결국 지극힌 개인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감정적인 문장이고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오는 고백체의 글이다. 시에 동원되는 이미지나 단어들은 굳이 ‘나’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내’가 되게 마련이다. 끝까지 일인칭의 문장이 시라는 것이다.
내 말을 드러서 그런 것인지 김현주 시인은 그 뒤, 꽃을 소재로 한 시를 자주 발표했다. 편편이 성공적이었고 감동이 따랐다. 나의 도움말이 효과를 본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파트 한 동
다 태우고 있는 접시꽃
문득 보았다…할머니
읍내 장에서 나 앞세우고
돌아오는 길
머리에 인 보퉁이 속 사탕 못 잊어
옥양목 치맛자락 앞 차일 때마다
석양빛에 더 붉은
아랫동네 어귀 접시꽃에
잔잔히 내려놓던
‘어여 가, 해 질라'
할머니 가슴속에서 타 올랐을
그 붉은 빛을
오늘에야 보았다
뜨거움 감추며 타는 것을
-「접시꽃, 그 빛」전문
맨 처음 마난 김현주 시인의 꽃 시이다. 시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다. 시인의 유년, 할머니와 시인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작품이다. 역시 소설에서 바로 돌아서서 쓴 시인의 시답다. 그래도 충분히 아름답다.
유년과 오늘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접시꽃’과 ‘붉은 빛’, 그 두 가지 요인이 과거와 오늘을 통제한다. 그렇지만 시인은 그것을 오늘에야 알았노라 고백한다. 그렇다. 시는 이렇게 깨침의 문장이고 발견의 문장이다.
“뜨거움을 감추며 타”올랐던 그 빛, 구체적으로는 “접시꽃”의 “붉은 빛”은 “할머니 가슴속에 타”올랐던 빛이고 오늘에 와서는 시인의 가슴에도 타오르고 있는 그 빛이다. 결국 그것은 사랑, 시인은 이렇게 세상에 이미 없는 할머니를 접시꽃을 통해 다시금 조우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다. 사람은 이렇게 늦되는 생물인가. 이것이야말로 시가 가진 아름다운 기능이라 할 것이다.
한 사내를 감고 올라
내가 닿고 싶은 곳은
어디였을까
간밤에 비 내렸나
말짱 허공인 그곳에서
몸부림하다
통째로 떨어져 누운
욕망들
허공을 건너
차마 치닫지 못한
서러운 밤을
땅 위에 울긋불긋
펼쳐두었다
-「능소화, 달거리」전문
훨씬 성장한 여성, 성인이 된 여성이다. 능소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꽃은 여간 호사스럽고 적극적인 꽃이 아니다. 생김새며 빛깔이 고혹적이기까지 한 꽃이다. 이 시에서도 능소화라는 꽃은 시인의 감정적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시 속에 나오는 능소화는 성숙한 여성의 표상이다. “한 사내를 감고 올라”간다? 시의 시작부터가 끈적끈적하다. 어차피 인간은 욕망의 존재, 욕망이란 것도 생명의 한 발현이다. 그것은 여인의 그것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다만 여인의 욕망은 남성의 그것과는 달라 내면적이고 훨씬 정서적인 것이 다를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러한 인간 본연의 욕망, 원초적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도 추하지 않게 표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역시 꽃이란 소재가 주는 힘이요 시의 문장이 주는 축복이다. “땅 위에 울긋불긋/펼쳐”둔 꽃잎은 하나의 그림이고 마음의 꽃으로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불이었다
여름을 건너온 늦바람이
마음을 휘돌자마자
숨겨둔 욕망들이
타닥타닥 타올라
지금 나는 노오란 불길이다
나는 물이었다
노오란 불길에도 화상 입지 않는
언덕의 고요를 지닌
내가 지닌 물과 불이
덫이 되어
늘 외로운 바람이다
-「들국화」전문
어느덧
한세월
못한 일 너무 많아
마디마디 미련 담아
담 밑에서 서성댄다
어느 기운 여름날
내 생의 전부를 짓이겨
손끝에 붙이고
굿을 하면
걸어나간
시간들 몰려올까
아무래도 나는
남의 삶 산 것 같아
짓이긴 살점
손끝에서 피멍 든다
-「봉선화」전문
모두가 잠든 시간
하얗게 밤 밝히는
불면의 밤이
하나씩 켜지고
밤새 소쩍새 울었던가
어디선가 무더기로 토해내는
시간의 하얀 포말
유년을 돌아
너 어디메쯤 와 있느냐
묻기도 전에
부드럽고 달작했던 향기 사라지고
질긴 근육질의 무신경만 내 몫인데
어쩌자고 불면의 밤이
이리 환할까
-「찔레꽃」전문
인용한 세 작품 모두가 중년기를 살아낸 여인네의 한숨과 고달픔과 그 푸념이 한껏 배어 있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앞의 시「능소화」와 같은 계열, 유사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봐서라도 시인은 결국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고 시 작품은 그 자서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별히 김현주 시인은 그 자서전의 소재로 꽃을 선택했다는 점이 남다를 뿐이다.
잎 하나로도
하늘을 가릴 것 같았던
푸른 잎의
청춘을 지나온
흔적은
황혼도 붉다
-「칸나」전문
사립문 들어서기도 전
고무신 거꾸로 신고
달려 나오시던
할머니 머리 위
그 환한
-「박꽃」전문
마음은 이미
천리를 내달았는데
몸만 남아 무겁게 뒤척이는
하루가 진다
하루가 핀다
-「천리향」전문
화려함이 너무 커
깊어지는 외로움
그 슬픈 향을
아무도 맡지 못했다
-「모란」전문
최근에 보이는 시인의 작품이다. 매우 단출하고 간결하다. 군더더기란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더 이상 한 글자도 넣고 빼기 힘들다. 시란 결국은 이런 것이다. 오죽했으면 ‘말씀의 시원’이라 했겠는가. 촌철살인이다. 그렇다고 할 말을 다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할 말을 하기는 하되 가장 짧게 간결하게 적확的確하게 하는 문장이 시인 것이다.
특히 위의 시 가운데「박꽃」이 빼어나다. “박꽃”을 말하고 있으면서 전혀 박꽃을 드러내지 않고 박꽃을 말하고 있다. 시의 끝은 바로 이런 것이다. 끝내는 할머니가 바꽃이다. 그것도 “사립문 들어서기도 전/고무신 거꾸로 신고/달려 나오시던/할머니”, 시인의 유년 속 할머니 바로 그분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 인용한 시「접시꽃,그 빛」에 나오는 할머니나 같은 할머니든. 시의 소재나 표현이나 형식은 많이 달라졌지만 시인의 내면에 있는 그 무엇은 이렇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의 내용이란 것은 불변의 성격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르고 결국은 인생이라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언급하지 않은 다른 시들 「칸나」나「모란」,「천리향」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시인의 한 장점이요 특성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한 한계이기도 하리라. 시집을 내면서 시인은 이 점을 곰곰이 살펴야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가 중요하다. 자기의 마음속에서 시의 길이 열리고 자기가 이미 쓴 시 속에서 새로운 시가 싹트는 법이다.
3.
김현주 시인,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다. 고달팠다. 시에는 스승이 없는 법, 스스로 자신이 스승이다. 언젠가 시인과 나는 대화를 길게 나눈 적이 있다. 시에서 중요한 것이 ‘내용(What)’인가 아니면 ‘어떻게(How)’인가. 그때 시인은 선뜻 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이 ‘어떻게’라는 데에 의견을 함께 해주지 않았다. 내용이 훨씬 중요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현주 시인의 시를 일별하면서 이미 시인도 그 어떻게(표현)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이렇게 훌륭히 실천했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일단 오늘의 시는 성공이다. 그러나 일 단계의 성공에 머물지 말고 더욱 멀리 더욱 넓은 세계로 나아가 더욱 원대한 성공이 있어야 할 일이다. 그리하여 시로서 쓰는 자서전, 아니 꽃으로 쓰는 시인의 자서전이 보다 더 두툼하고 현란하게 완성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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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김현주 시인의 시작품들은 주로 꽃과 나무를 소재로 하는 식물적 상상력이 주조를 이루면서 이를 구체적 삶의 국면과 연계를 시키고 있다. 은은한 향기를 품은 꽃밭과도 같은 작품집이지만 그 속에는 시인의 예리한 관찰과 감성에 의하여 포착된 자연과 인생의 진수가 녹아 있다.
"집착을 사랑이라 말하는/ 그 여자/ 자꾸만 발돋움한다" 이런 구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꽃과 나무의 특성이 사람 혹은 삶과 병치되면서 동질성의 묘를 표출하고 있으며 긴 언설이 아니면서도 서사성을 내포한 작품들이 읽는 이의 감응과 공감을 불러오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 허영자 / 시인, 성신여대 명예교수
박꽃은 고향에 갔을 때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달려 나오시던 할머니, 그 '농촌의 상징이자 정신이며 실체'입니다. 꽃꽂이는 늘상 이런 시 창작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꽃꽂이가 상업적 행위라면 시작품은 예술적 행위가 다를 뿐. 쑥밭에서 꽃도 뽑히고 맙니다. 이것이 김현주 시인의 꽃 시입니다.
- 구중회 / 시인, 공주대 명예교수
김현주의 시들은 서늘하고 아름답다. 얼핏 차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하고 그리운 것들을 이승으로 다시 불러내ㅔ는 뜨거운 힘이 숨어있다. “가시 돋운 꽃일수록 무르고 외롭다”는 그녀의 노래들에서 꽃에대한 시 중 최고의 경지를 발견한다.
- 양애경 / 시인, 한국영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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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주 시인∥
∙ 경남 함양 출생.
∙ 현재 공주에서 거주 중.
∙ 공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석사) 졸업.
∙ 2004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 제7회 웅진문학상 수상.
∙ 오랫동안 몸 담았던 꽃꽂이 학원을 접고 지금은 논술학원을 운영하며 짬짬이 꽃을 심고 꽃차도 덖으며 여전히 꽃과 함께 전원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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