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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개 그늘아래
시 57: 1-5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찌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1-5)
요즘 일본은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배용준을 욘사마라고 부릅니다. 음식점, 안경점, 슈퍼마켓 어디를 가도 배용준 사진을 내걸거나 붙혀놓고 있습니다. NHK TV는 특집 재방을 하겠다고 하는가하면 주인공 최지우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욘사마의 인기는 일본 여자들에겐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떤 여자는 자기 집 방 하나를 온통 배용준 사진으로 장식을 하는가 하면, 어떤 여자는 공항에서 배용준이 씨익 웃으며 자기를 바라보는 순간 기절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남자는 자기 아내가 배용준한테 미쳤다며 이혼을 했습니다. 남편이 가지 말라는데도 아내가 배용준 나라 한국을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중국, 대만, 월남에서 부는 한류 열풍 특히, 인기 연예인을 에워싼 열풍 원인이 뭘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허」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기댈 것이 없고, 채울 수 없고, 바랄 것이 없는 동공화 현상의 결과인 것입니다.
예수 바로 믿고, 새벽기도 잘나오고, 주일 낮·밤 예배에 나와 말씀 먹고 사는 사람은 욘사마 때문에 기절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집도 있고, 돈도 있고, 이곳저곳 회원권도 있고, 동창도 있고, 좋은 차도 있는데 늘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하고 텅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은 빈둥지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있는데 없는 사람, 가졌는데 빈손인 사람들 그들이 바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둘째, 사는 동네도 신통치 않고, 가진 것도 변변치 않고, 주변도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늘 미소짓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인생이 행복하다며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한 사람입니까? 그리고 왜 이 사람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누릴 것도 없으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손으로 잡히지 않는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 57편은 다윗이 읊은 시 중에 하나입니다.
목동 다윗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BC 1025년이었습니다. 15년 뒤인 1010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971년까지 40년간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다윗도 사람이었던 탓으로 허물도 있었고 잘못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철저하게 지켰던 한가지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본주의자였고, 신본주의 정치가였습니다.
인본주의는 사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고 신본주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는 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철학과 사상과 이념을 따라 정치를 하는 것이고 신본주의는 정치의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며 그 뜻대로 정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정치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독재정치, 전제정치, 폭력정치, 억압정치, 통제정치, 공신정치 등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민주정치입니다.
민주정치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백성이 편히 일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정치이기 때문에 사람이 만든 정치 형태 가운데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정치를 이끌어 가는 주체들이 누구냐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변하기 때문에 변질될 가능성이 많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정치보다 더 좋은 정치는 없습니까?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독재 정치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상의 정치 형태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주체가 되는 정치 형태는 다 불완전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없습니까? 바로 그것이 신본주의이며 신주정치입니다.
하나님이 나라의 주인이시며 권력의 수반이시며 왕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왕이 됐든, 총리가 됐든. 장관이든, 대신이든 못된 짓을 할 수도 없고 권력을 제멋대로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진리를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주"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다윗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리 순탄한 생애는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기 전 10년 동안은 다윗이 왕 되는 것을 두려워한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통치는 제쳐놓고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는 대내외의 정적들로부터 숱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뿐입니까? 노년에는 친아들 압살롬이 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겠다며 구데타를 일으키고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뒤를 좇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위기에서도 쫓기는 망명생활 중에도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아둘람에 있는 굴에 피신해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위기, 절망, 비통 가운데서 읊은 시임에도 감사와 찬양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주경학자들은 시편 57편을 "다윗의 역동적 감사 찬양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고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57편 속에 들어있는 다윗의 고난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라고 했고, 3절을 보면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이라고 했고, 4절에서는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라고 했고, 6절에서는 "내 걸음을 장애 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다"고 했습니다.
재앙, 비방, 불같은 시험, 장애 공작, 웅덩이... 이런 것들이 다윗을 위협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노래하고 찬송하리라고 했고(7절), 주께 감사하며 찬송하리이다(9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그는 고통불감증 환자였는가? 그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1. 주의 날개 그늘아래 피했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날개는 보호와 안전을 의미합니다. 날개 중 가장 강한 날개는 독수리 날개입니다. 독수리는 날개로 새끼를 지키고 보호합니다. 그 날개아래 있는 한 새끼는 안전하고 평안합니다.
다윗은 위기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날개를 생각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 가장 평안한 곳은 주님의 날개 그늘아래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이 재앙이 지나가지까지"라는 고백입니다. 재앙은 느리던 빠르던, 크든 적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계속되거나 반복되는 재앙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패할 수 있고, 불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살핀대로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한심스럽고, 답답한 일들이 철장같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윗은 발견한 것입니다.
그린도전서 10:13을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고통을 겪고 시험을 당하더라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시험과 고통은 때가 되면 물러갑니다. 주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그늘아래 있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같은 섬이라도 미국에 속한 섬들, 하와이, 사이판, 괌은 잘삽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들은 못삽니다.
바울의 권면대로 "주께 붙어 있으면" 살고, 떨어지면 주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라고 했습니다.
확정되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콘"입니다. 그 뜻은 고정되었다. 확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두 번씩이나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로 한 그 마음이 고정되었고 확고부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4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확정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긴가 민가, 될까 안될까, 믿을까 말까, 할까 말까... 이런 태도는 흔들리는 태도이며 바로 서기 어려운 태도입니다.
열왕기상 18:21을 보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시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 지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24:15을 보면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확정하고 확신하고 결정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어떤 암도 조기 발견만 하면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때가 늦으면 치료가 어렵다고 합니다. 지금 확정해야 합니다.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3. 감사하고 찬송했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라고 했고, 8절에서는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고, 9절에서는 "주께 감사하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비파와 수금에 맞춰 새벽에 열방이 듣도록 감사하며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비파를 타고 수금을 타며 노래 부르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언제 잡힐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감사를 찾았습니다. 거기서 노래했고, 그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그때 거기서 두 가지가 가능합니다.
원망하고 탄식하고 포기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길은 더 어두워지고 상황은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길이 열립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임합니다.
주의 날개 그늘아래 보호를 요청합시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말고 확정합시다.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합시다. 찬송합시다.
감사와 기도와 찬송은 옥문을 엽니다. 주님의 날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그늘아래서 편히 쉼을 얻읍시다. 그 날래 아래서 행복을 찾읍시다.
출처: 여호와닛시 글쓴이: 주님의숲
다윗의 믿음
성경본문 : 시편 57: 1 - 11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시138:8
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찌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약3:6, 시64:3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112:7, 시16:9
8.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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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다윗의 믿음(57:1-11)
도움을 호소하는 다윗(1-6절)
다윗이 장인이자 왕인 사울의 무서운 칼을 피해 광야로, 산으로 도망을 다닌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윗의 목을 죄는 사울의 칼은 사라질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지금도 어둑어둑한 굴에서 이 시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안전하게 피신시켜주는 것은 이 조그마한 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비록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끝가지 신뢰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 높은 곳에서 주의 날개로 자신을 구원하실 것이며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지금 나의 상황이 힘들어도 곧 다시 회복될 것을 믿고 있나요?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다윗(7-11절)
믿음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록 어둑한 굴에 숨어 있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자신의 앞에 계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힘껏 찬양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피하기 위해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피하게 하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이 일시적으로는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셔도 그것이 지속되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악한 세력이 잠시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지만 하나님만이 이 땅의 왕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다윗과 같은 믿음이 있나요? 나의 힘든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을 믿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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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신앙생활을 잘 하는 방법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화초나 나무는 물이 충분하면 잘 자랍니다.
화초나 나무가 물을 공급받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뿌리로 땅속에 있는 물을 빨아들이는 방법과 잎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이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산 속 바위틈에 자라는 나무를 보셨습니까? 물도 없이 어떻게 자랄까요?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새벽이슬을 통해 나무의 잎을 충분히 적셔줍니다.
사람도 화초나 나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땅에서는 은혜의 샘에서 생수를 공급받고
하늘에서는 하늘 문을 열고 물질을 공급받습니다.
'은혜의 샘'이 넘치게 하려면 예배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늘 문'이 닫히지 않게 하려면 기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다른 비결 없습니다.
'은혜의 샘'이 막히지 않게 해야 하고, '하늘 문'이 닫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예배 잘 드리고 기도 잘하면 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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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다윗이 나를 위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한 의미는 무엇입니까(57:2)?
2. 다윗이 내 영혼이 짖밟혔다고 고백한 의미는 무엇입니까(57:6)?
3. 하나님을 담대히 의지할 때 생기는 일은 무엇입니까(57:8)?
4. 나를 두렵고 떨리게 만드는 상황에서 나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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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죽음의 고통도 승리하신 주님,
주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능히 역사하시는 주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어떤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내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넘쳐 흘러나게 하시고 쉬지 않는 찬송을 통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힘들 때 주님께 부르짖게 하옵소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주의 구원하심을 보며, 그 구원하심을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T E X T: [시편 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서 론
일본사람 ‘사이쇼 히로시’라는 사람이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 과 ‘아침형 인간의 비밀’이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올빼미 형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고, 또한 올빼미 형 인간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다. 참고로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일이다.
우연히 서재에 꽂힌 책들을 이 책 저 책 읽어보는 습관이 있는데 책을 펼치니까, 2005년 2월 1일에 최영일 목사님께서 안수를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하면서 저에게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제가 5년 내내 그 책을 읽어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다가 그 책을 읽고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인생을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한데 그 전환점이 바로 아침형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올빼미 형 인간과 아침형 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올빼미 형 인간은 잘못된 습관의 고착화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수정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에 영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에 깨어나지 않으면 밤 문화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에 늦게 자는 것은 영적으로 치명적인 손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을 올빼미 형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 중에 올빼미 형 인간이 많겠습니까? 아니면 도시에서 사는 사람 중에 올빼미 형 인간이 많겠습니까? 당연히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 올빼미 형 인간이 훨씬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드라마가 밤에 잠을 못 자도록 가장 흥미 있는 프로가 밤10시부터 시작하여 반드시 11시10정도에 끝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유혹자의 철저한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밤의 지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밤은 더 이상 암흑이 아닙니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대도시일수록 또렷한 야광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와 보자. 네온사인이 넘실대는 환락가, 24시간 편의점, 레스토랑, 비디오가게…….심야 영화관, 텔레비전의 심야 시청률도 매년 상승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국경은 물론 밤낮의 경계도 없습니다.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비즈니스맨들의 빌딩 숲도 쉽사리 불이 꺼지지 않는다. 가히 현대 문명은 ‘밤에도 잠들지 않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밤이 이처럼 불야성을 이루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극히 짧은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수천 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 일출과 함께 일찍 일어났다가 일몰과 함께 잠드는 것이 당연한 생활양식이었습니다. 나무나 기름을 태우는 수준의 조명기구로는 밤을 활용하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행동반경도 제한되고 할 수 있는 일도 극히 한정되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 내일을 위한 충전을 하는 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과였습니다. 전기의 발견과 전등의 발명으로 인류의 밤은 인간의 기본 패턴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드는 패턴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전기가 발전한 유럽이나 미국은 지금으로부터 약100년 전에 전구가 발명되었지만 보편화된 것은 약70-80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더욱더 늦어서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는 일찍 전기가 들어왔지만 제가 태어난 곳이 남양주시인데 서울 바로 외곽에 있었지만 제가 초등학교 3-4학년 그러니까 1973년-1974년쯤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40년 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유전자는 아침부터 낮에 일하고 저녁에 일찍 잠자는 것이 인간의 패턴이었습니다. 동물들 중에는 야행성으로 창조된 것이 있고 주행성으로 창조된 것이 있습니다.
본 론
Ⅰ. 인간은 아침형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음...........
야행성 동물들은 박쥐, 부엉이, 소쩍새, 호랑이, 살쾡이, 오소리 등이 있습니다.
야행성동물은 귀가 발달되었습니다. 박쥐의 경우 초음파를 보네 물체에 반사되어 나온 초음파를 분석하여 먹잇감이나 장애물의 위치와 거리가 얼마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부엉이나 호랑이등의 경우, 부엉이는 날개털이 부드러워서 비행할 때 소리가 나지 않아서 먹잇감이 들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호랑이는 강아지발바닥 보셨나요?? 막 검은색의 푹신푹신한 것처럼 호랑이도 되어 있어서 소리가 나지 않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아, 또 눈이 매우 좋은 종류가 있습니다. 부엉이종류입니다. 부엉이가 왜 야행성이냐면 시력이 매우 좋아서 적은 빛도 잘 모을 수 있어서 밤에 활동하기가 좋은데 낯에 활동하면 너무 빛이 밝아 눈이 부신다고 합니다.
이런 야행성 동물들은 밤에 활동하는 것이 낮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낮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도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주행성으로 창조하셨을까요? 아니면 야행성으로 창조하셨을까요? 인간은 전형적으로 낮에 활동하는 동물입니다.
일단 먼저 야행성과 주행성의 정의를 알아본다면
주 활동 시간대가 저녁이후인 동물을 야행성이라 하고 주행성은 주 활동 시간대가 낮인 동물들을 이릅니다.
쉽게 구분을 지으라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식동물은 야행성이고, 초식동물은 주행성입니다. 새들은 올빼미나 부엉이 등을 빼고는 거의 다 주행성 동물입니다. 참새들은 저녁이 되면 어디론가 다 가버려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되면 짹짹거리고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닭은 새벽이 되면 얼마나 시끄럽게 주변 주행성 동물들을 다 깨웁니다. 박쥐같은 동물들은 새벽에 너무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들 때문에 얼마나 신경질을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보통의 육식동물이 야행성이고, 새는 고기를 먹는 것들도 대개 보면 주행성 동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새들의 경우 높은데서 아래를 내려다봐야 하기 때문에 시력에 많은 의존을 해야 하거든요.
황조롱을 예로 들어보죠. 높이 1500미터에서 아래 지나가는 쥐를 식별해야 하기 때문에
낮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여타의 새들의 경우, 주 먹이가 작은 곤 충 따위인데 이네들은 낮에 활동하거든요. 그래서 주 활동 시간대가 낮입니다.
야행성 동물들이 귀가 발달된 것에 비하여 주행성 동물들은 시력이 훨씬 발달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박쥐는 시력이 무척 안 좋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올빼미인데 올빼미는 야행성이지만 시력이 무지하게 좋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야행성 동물의 경우 더위와 천적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맹수들 사자 표범 등등해서 고양잇과 동물은 거의 다 야행성이고, 얼룩말을 비롯해서 영양류와 초식동물들은 주행성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야행성으로 태어났습니까? 아니면 주행성으로 태어났습니까? 인간은 전형적으로 주행성 동물입니다.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자도록 되어있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육식동물이 아닙니다. 밤에 활동하는 동물들은 대개 눈에서 불이 납니다. 그래서 고양이 눈이나 살쾡이 눈에서 이상한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초식동물이 대게 주행성이기 때문에 인간도 역시 초식동물이다. 그런데 야행성으로 바꾸고 식성도 초식에서 육식으로 바꾸니까 질병에 많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Ⅱ. 무병장수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침형 인간들이다
요즈음에 아침형 인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이 장수한다고 말은 하지만 인생은 질기게 오래 사는 것이 진정한 장수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몸이 아파서 20년 동안 병원 침대에서 입에 호수를 꽂고 89세까지 살았다고 하면 그 사람이 장수한 것입니까? 현대인들 중에 건강한 가운데 장수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사람들 중에 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사이쇼 히로시’가 말하기를 일본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20%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들 병원에서 혹은 요양원에서 혹은 약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원주 기독병원에 가면 환자들로 바글바글합니다. 그런데 아침형 인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밝힌 것 중에 하나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 중에 야행성 인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침형 인간과 야행성 인간 중에서 질병에 노출될 확률은 야행성 인간이 몇 배나 높다는 사실입니다.
무병장수하는 노인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심리적으로 다툼이 거의 없고, 낙천적이며 희노애락의 감정의 기복이 적습니다. 그리고 늘 평상심을 유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일로 울그락 불그락 하는 사람들치고 오래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쟁이 나도 태연한 사람들이 조바심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욕심이 적은 사람들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 배려심이 적은 사람들이 너무 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수 없는 사람들이 대개 화를 잘 못 참아서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사려 깊게 잘 들어주는 것도 건강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식생활과 생활환경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육류 소비량이 극히 적고, 대신 잡곡, 야채, 해조류를 즐겨 먹습니다. 식사량도 약간 적은 듯 한 정도의 소식이 대부분이고, 언제나 서두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급적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밝은 태양, 온난한 기후, 깨끗한 공기 등에 둘러싸여 있고 예외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만 보아도 100세 이상 노인 중 90%가 밤 8-9시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4-5시에 눈을 뜨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야행성을 찾아볼 수가 없고, 야식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야식을 파는 식당이 불야성을 이루면 예외 없이 그 도시에서는 병원이 대 호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밤에 밤참을 먹고 야식을 하는 것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입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야식으로 라면을 삶아서 먹는 사람들은 어떻게 빨리 병원에 가서 누워 있을까를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참고로 저녁만 대충 먹어도 건강은 훨씬 보장되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한동안, 특히 고도 성장기에는 밤을 지새가며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움’, ‘정열’의 이미지로 비쳐졌습니다. 치열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자녀의 모습은, 비록 건강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기특하고 뿌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입사해서는 밤을 새워가며 일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안착할 만한 40대-50대의 나이가 되어서 이들은 갑자기 돌연사 하기도 하고, 중년이나 노년에 심각한 질병을 얻어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기도 합니다. 행복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 해온 사람들이 결국 행복과는 거리가 먼 병원에서 몇 개의 주사 바늘에 의지해서 목숨을 연명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 야행성 생활에서 벗어나기
1급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스다 다츠오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당당하게 대기업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는 입사 직후부터 심심찮게 지각을 하는 바람에 상사에게 꾸중을 듣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각을 하지 않은 날이라 할지라도 점심 후 졸거나 멍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금방 문제 사원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시골에서 올라와 대도시에서 대학에 다니면서부터다.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비디오 영화를 보다 잠드는 등 전천후 생활이 계속되었다. 밤새 즐긴 탓에 아침 강의는 빼먹기 일쑤였고 완전히 야행성 인간으로 바뀌었다. 이런 습관 때문에 그는 회사에서는 골칫덩이로 전락하였다. 새벽 3-4시까지 잠을 이룰 수 없으니 회사에서 머리가 멍해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 선배를 만나 충고를 듣게 된 것이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선배가 충고하기를 “일이 끝나면 저녁 식사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하고, 집까지 걸어서 가봐” 처음 그 말을 들은 ‘스다’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 집까지는 얼추 계산해 보아도 걸어서 2시간이 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2시간은커녕 최근 30분도 지속적으로 걸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나 더도 말고 사흘만 해보라는 선배의 말에 ‘스다’도 마음을 바꾸었다. 선배는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집에 가서는 잠들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욕조의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좀 보다가 10시가 되면 정확히 잠자리에 드는 거야.”
다음날 선배의 말대로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집을 향해 출발한 ‘스다’는 후회가 막심했다. 20분도 채 못 걸었는데 벌써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온 것이다. 하지만 하루만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이 땀에 젖고 다리는 풀려 있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10시에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거짓말처럼 스르르 잠이 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스다’는 참으로 오랜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조금 뻐근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선배의 말마따나 일찍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속도 한결 편했다. 그리고 매일 걷고 깊은 잠을 푹 자는 생활 덕에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몸에 점점 힘이 생겼다. 스다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지만 몇 달 만에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고 나서는 회사 내에서 ‘영 파워’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스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는 일의 대략을 다 말해버렸다. 즉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낮에 열심히 일하고 운동하고 생활한 사람들만이 아침형 인간이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절대로 늦게 먹거나 야식을 먹는 행위는 자기 몸에 대하여 범죄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저녁에 밤10시 이전까지 위장을 깨끗이 비워나야 새벽 일찍 일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만으로 새벽형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녁에 포식하고 나서 잠을 일찍 잤다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비몽사몽 정신이 없다. 그리고 하루 중에 적어도 1시간 정도는 땀이 쏟아질 정도의 운동을 해주면 굉장히 좋다. 스다처럼 직장에서 집까지 걸어 다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원주시에서는 어디든지 차타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Ⅱ. 야행성 인간들 중에 하늘에 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한 아침형 인간으로 개혁됨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욕도 생활 습관도 애굽의 이교 문화에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애굽의 우상숭배를 위한 여러 행사들이 밤에 진행되어서 밤에 여러 행사가 많았고 밤에 만찬을 즐기는 습관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아주 가난한 집이라도 그 조상님들의 제사 때가 되면 아끼지 않고 정성껏 제사상을 마련한다. 그런데 꽤 잘사는 사람들은 제사를 크게 지내는데 죽은 조상들의 제삿날은 먹을 것이 변변했던 그 당시에는 포식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제사가 끝나면 떡이고 부침개고 과일이고 여러 맛난 음식들을 얻어먹으려고 밤새도록 놀고 시간을 보낸다. 왜냐하면 꼭 제사는 밤 12시에 지내도록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옛날에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제사가 끝나면 12시 30분쯤입니다. 우리는 그 음식 얻어먹으려고 밤새도록 술래잡기를 하던가 담방구를 하던가 아니면 기를 쓰고 밤12시까지 버티려고 아이들과 12시 10분까지 놉니다. 그 당시에 밤 8시만 되면 잠자던 우리들에게 12시까지 버틴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그 음식을 먹으려고 작정한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졸림을 참지 못하고 미리 잠들면 그 아름다운 음식은 못 얻어먹습니다. 이방의 문화는 예로부터 이렇게 밤에 제사를 지내고 우상에게 절하고 밤에 주연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 불신앙의 애굽에서 불러내어 전혀 새로운 훈련을 시켜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서 사막 한 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하여 내셔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들을 일찍 재우고 일찍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야행성 인간입네 하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전혀 허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리셨는데 아침 해가 떠서 나가면 지면에 있던 만나는 다 스러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만나를 언제 거두러 나갔습니까? 반드시 새벽 일찍이 나가야만 그들이 그것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새벽이 지나면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았을 때에는 단 한사라마도 아침형 인간이 아닌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아침형 인간이었고, 올빼미 형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침 일찍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음식물에 관한 권면, 173【많은 사람들이 취침 시간 바로 직전에 먹는 해로운 버릇에 빠진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세 끼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배고픈 것처럼 허기진 감이 들기 때문에 밤참 혹은 네 번째 식사를 하고자 한다. 이 그릇된 행습에 빠지므로 그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식사를 하지 않고는 잘 수 없을 것같이 느낀다. 많은 경우에 허기가 지는 원인은 온 종일 너무 자주, 너무 많은 분량의 음식을 위장에 밀어 넣은 불건전한 음식을 처리하느라고 소화 기관이 너무 심한 부담을 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짐을 진 소화 기관들은 피곤해진다. 그래서 고갈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수고로부터 완전히 쉴 시간을 요한다. 두 번째 식사는 위장이 먼저 한 식사를 소화시키는 수고로부터 쉴 시간을 갖기 전에는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한다. 만일 세 번째 식사를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가볍게 할 것이요 잠자리에 들기 몇 시간 전에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연약하고 피곤한 위장은 피곤하다고 불평할지 모르나 쓸데없는 일이다. 더욱 많은 음식을 위장에다 억지로 떠맡긴다. 그러므로 그것이 소화 기관들로 하여금 운동을 개시하게 하며 또 다시 잠자는 시간 동안 내내 꼭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한다. 그러한 사람의 잠은 대개 불쾌한 꿈으로 침해를 받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노곤한 느낌이 들며 입맛을 잃는다. 위장이 쉴 시간이 없었으므로 소화 기관들은 오래 가지 않아서 낡아 못쓰게 된다.】
2)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사에 잠을 자야 하는가?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충분한 운동과 간단한 저녁 식사가 아침형 인간이 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 것이 좋은가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대체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인지, 또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올바른지…….
이에 대한 답을 얻자면 먼저 밤부터 아침까지의 시간들이 우리 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먼저 새벽 다섯 시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의 맥박은 오전 5시에 가장 빨라진다고 한다. 이는 외부의 기온, 습도, 기압의 상태가 가장 불안정한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자고 있는 동안에도 몸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반응한다. 맥박이 빨라지는 것은 다름 아닌 불안정한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방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오전 5시부터 아침 시간까지 잠들어 있기 보다는 깨어있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기상시간은 5시로 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다면 몇 시에 잠드는 것이 가장 좋은가? 수면 시간은 보통 8시간 자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게 통설이다. 그렇다면 저녁 9시에 잠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 리듬으로 볼 때 오후9시에 잠드는 것은 다소 무리이다. 지켜지지 않을 계획을 세우는 것은 결국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오전 5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여섯 시간만 자도 늦게 자는 사람의 8시간 수면효과와 똑같아서 밤11시 정도에만 잠자리에 들어도 좋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수면시간은 10-1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사람의 체온이 낮을 때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얘기합니다. 그래서 여름에 열대야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잠을 설치는 경우가 그래서 그렇고 겨울에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이유가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체온은 오후2시경에 최고점에 달하고, 반대로 한밤중인 새벽2시-4시 사이가 최저가 된다. 그리고 4시경부터는 다시 체온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오전2-4시는 가장 숙면하기가 좋은 시간대이다. 결국 새벽 2시에서 4시까지는 인간은 잠을 자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같은 체온이라 해도 체온이 내려가는 국면(밤11시-새벽1시)은 잠이 깊이 들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체온이 올라가는 국면(오전 5시-6시)은 잠이 얕아지는 조건이 된다. 따라서 체온이 최저점을 향하는 오후 11시 전후에 잠들어서, 체온이 상승곡선에 접어든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것이 24시간 중 가장 효율적인 수면시간인 셈이 된다.
잠을 깬 5시부터 1시간가량이 지난 오전6시부터 8시까지는 두뇌가 가장 명석해지는 시간이다. 이때의 집중력이나 판단력은 낮 시간의 3배에 달한다. 이 시간 중에서 1시간만 공부나 업무를 해도 낮의 3시간과 맞먹는다.
새벽이면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5km, 10km씩 달리면 땀을 흘린다. 물론 아침에 달리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격한 운동일수록 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는 주로 가벼운 체조와 산책, 가볍게 뛰기 등으로 몸을 워밍업 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상식적으로 아침5-8시까지 하루 중 뇌 활동이 가장 원활하고 머리가 맑은 시간인데 저녁이나 밤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시간이다. 이런 지성적으로 뛰어난 시간에 육체적인 운동으로 소비하기는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명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간이다. 이 시간대에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속에서 기도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조깅을 하거나 마라톤을 하게 되면 하루를 균형 있게 활용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침형 인간의 비밀의 저자 ‘사이쇼 히로시’도 말하기를 아침 식사는 가장 풍성하게 먹으라고 권유하여 우리 재림교회와 똑같은 주장을 한다. 아침 식사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세끼 식사 중 가장 중요하다. 아침에 섭취한 음식은 그 날 하루의 에너지, 특히 뇌의 활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침을 먹지 않는 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충실히 아침밥을 먹는 학생들에 비해서 두뇌 회전 속도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침밥을 거르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조만간 뒤쳐질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을 강조한 속담을 보면, 먼저 일본에서 유명해진 말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병을 모른다.”
“거지도 부지런하면 더운밥을 얻어먹는다.”
“아침 시간은 입에 금을 떠 넣는 것.”(이탈리아)
“일찍 얼어나는 새가 좋은 먹이를 얻는다.”(영어권)
“아침의 새는 멀리 날아간다.” “아침은 밤보다 현명하다.”(이상 동유럽)
“신은 일찍 일어나는 자를 돕는다.”(포르투갈)
“아침 일찍 일어나는 자에게는 신의 은총이 내린다.”(폴란드)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계절을 골라 시작해도 좋다. 예를 들면 겨울은 아침형 인간으로 출발하기가 여러모로 악조건이다. 우선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칠흑 같은 암흑 속에 눈을 뜨기가 쉽지 않고 또 추운 겨울에 따듯한 이불의 유혹은 더없이 강하다. 이불을 걷어차고 미련 없이 일어나기에는 아무래도 포근한 날씨가 유리하다. 눈을 떴을 때 바깥 공기와 체온의 차이가 적을수록 일어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래서 정 자신이 없다면 아침형으로의 변화는 봄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다. 어떤 결심이든 초반 페이스가 중요하다. 초반에 습관이 되기 시작하면 이후 과정이 쉬워지는 반면, 초반에 한두 번 거르기 시작하면 급격하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사람들이 야행성인간들이다. 이들은 야행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얼마나 나태해지고, 얼마나 도덕적으로 유혹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밤에 늦게 자는 사람들이 한 밤중에 선행을 하는 것 보다는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밤에 거리를 돌아다녀보라, 우리의 마음은 퇴폐적인 것을 많이 보게 될 것이고 우리의 생각들도 퇴폐적인 생각들로 가득찰 것이다. 그런데 새벽에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그 자체가 은혜스럽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아도 은혜가 넘치고, 새벽에 우유를 돌리는 아주머니를 보아도 신선하다. 새벽에 기도하러 교회로 총총걸음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 마음이 은혜가 넘친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가장 강하게 역사하시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 밤중에 나쁜 일들이 저질러진다. 밤 문화를 극복하고 승리하려면 아침을 깨우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야만 우리의 죄의 여리고성이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여호수아6장에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경절을 유심히 보면 새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수6:12]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 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수6:15] “제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에 자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작은 성인 ‘아이성’을 우습게 여기었다. 그리고 그 성을 정복하는데 실패하고 나서 여호수아는 다시 한 번 회개하고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를 면밀히 반성하였다. 그리고 결국 아이성을 정복하는데 다음 성경 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찾게 된다.
[수8: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새벽 미명에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무덤 앞으로 여인들이 달려간 시간대도 새벽미명이었습니다. 새벽에는 우리의 영적인 영성이 부활하는 시간이고, 새벽에는 부활한 예수님을 발견하는 시간이고, 새벽에는 우리의 망가진 영성이 회복되고 부활하는 시간대입니다.
위기의식은 변화의 계기가 된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깨닫는 순간이 기회이다. 야행성 생활의 폐해를 깊이 절감한 사람일수록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변화의 다짐은 변화의 시작이다. 100일 정도를 참고 적응하면 새로운 생활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는다.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순간에 시작하라.
결 론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7:22-23).
하나님은 모세가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먼저 머리의 훈련을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일꾼 역할을 잘하도록 훈련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22절에“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는 것은 지금 식으로 말해서 고시는 적어도 3개 이상 패스했고 박사학위도 몇 개는 된다는 말이지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극기가 필요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하면서 공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행7:30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하나님은 그에게 머리로 하는 공부를 가지고 그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라를 집어먹는 사람들은 대개 똑 소리 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미디안 광야로 내 쫓았습니다. 애굽궁정에서 호의호식하던 그가 거친 음식과 거친 잠자리, 그리고 혹독한 추위와 싸워가면서 모래바람을 이기어 가면서 물도 없고 나무도 없는 곳, 한 낮의 땡볕과 밤의 냉기로 일교차가 극심한 곳에서 제멋대로인 양을 치는 목자의 생활을 통하여 모세를 훈련시켰습니다. 저는 우리 자신들을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젊은 청년들이나 학생들의 비유나 맞추어주고 그들의 입맛만 만족시켜주는 그러한 청년회는 그들을 믿음의 투사로 키우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더욱더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분주한 마음이다. 기도하려고 하면 마음이 분주하게 사단은 우리를 조종한다.
‘드 살레’는 말하기를 “기도 후에 마음이 분주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받은 귀한 향유를 모두 쏟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 후에 가능하다면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킨 다음 천천히 마음을 다른 일들로 옮기라. 그리고 당신이 받은 사랑의 느낌을 오랫 동안 간직하라.”
정신 분석학자인 칼융은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귀이다.” 라고 하였다.
현대의 소란함과 조급함으로 부터의 탈출 훈련이 바로 침묵이다. 조용한 가운데 명상하는 것이다. 기도의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있게 되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제어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의 소리와 생각이 더 많이 생긴다. 이것은 매우 참기가 어렵다. 그래서 기도에는 그것을 참고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서서히 기도의 시간은 우리를 고요하게 만들어 주고 하나님과 자신을 깊이 의식하게 해 준다. 침묵을 통해서 영혼은 성장하고 영성은 깊어진다.
만물이 언제 자라는가? 침묵 가운데 성장한다. 깊이 뿌리 내리는 나무는 소리가 없다. 열매 맺는 나무도 소리가 없다. 소음은 영적 성장의 장애물이다. 외적 소음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내적 소음이다. 육의 생각을 통해 만들어지는 내적 소음, 육의 소리를 잠잠케 하는 것이 침묵이다. “성도들은 고요함에 의해 성장한다.”
기도도 침묵이 수반되지 않는 기도는 깊은 기도가 아니다.
키에르 케골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점점 더 조용하게 되엇 결국 기도는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종들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도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외로움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킨다.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홀로 있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을 본다.
모세, 침례 요한, 바울 등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홀로 외로운 광야의 경험을 가졌다.
토저(A. W. Tozer)는 “큰 독수리는 홀로 날아간다. 큰 사자는 홀로 사냥한다. 위대한 사람들은 홀로 간다.”고 했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비결은 기도의 자리에서 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작은 문제들은 친구에게 말하지만 나에게 닥친 큰 문제는 사람들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 문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이다.
교회 7권, 243 [ 기도가 그대들의 힘의 근원임을 기억하라. 급하게 기도를 드리고 등한히 여겨지거나 잊혀질까 봐 염려하는 어떤 일을 돌보기 위하여 급하게 달려 나가는 일꾼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는 ‘광야’이다. 그리고 영적인 광야의 시간은 새벽이다.
새벽에 에너지를 충전한 사람들은 영적 면역력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본 훼퍼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려 하지 않고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서 마리아처럼 마음에 두고 생각하라.”고 하였다. 서두르지 말고 그 말씀을 깊이 받아들여라.
새벽에 말씀을 연구하라. 성경은 학문을 분석하기 위해 연구하는 대신 생명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구해야 한다.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
‘본 훼퍼’는 한 본문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묵상할 것을 권고했다. 오관을 통해서 묵상하라. 파도 소리를 들으라. 모임 무리를 보라. 바다 냄새를 맡으라. 해변의 공기 속의 소금기를 맛보라.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보라.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 보라. 그리고 그렇게 받은 말씀을 삶속에서 온전히 실천해 보라.
모든 말씀을 내 삶에 적용시켜서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라.“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서 그는 결코 형들보다 더 안락한 대우나 특별한 대접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형들의 질투나 질시의 날카로운 눈짓을 견뎌야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더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고서 가장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하였습니다. 그가 골리앗과 싸우고 이스라엘의 인기를 독차지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안락한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그의 가족이 아닌 사울 왕의 질투와 질시를 견뎌야 했던 것입니다. 어떤 적에는 그가 왕을 위하여 하프를 연주하고 있을 때 사울 왕은 창을 던져 다윗을 벽에 꽂으려고 죽이려고 하였고, 다윗은 아찔한 순간을 몇 번이고 넘겨야 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본격적인 미움이 시작되어 토굴로 들판으로 거친 광야로 사울 왕을 피하여 죽을 고생을 다하며 그를 훈련시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는 혁명을 위하여 하루에 팔굽혀펴기 800개를 했다.”공산주의 혁명을 하기 위해서도 팔굽혀펴기를 800개나 하며 엄정하게 그들 자신을 추슬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사무엘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를 성전으로 데려와 그 나이면 엄마 앞에서 재롱이나 부릴 나이지만 그는 엘리제사장 밑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서 깊은 회심의 경험을 합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유다의 빈자리를 제비뽑아 맛디아로 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도바울을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사도로 임명이 되자마자 승승장구한 말씀사역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요단강 동편에 있는 혹독한 사막으로 가서 물도 없고 나무만 있는 곳에서 무려 3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그것도 모자라서 고향 다소에 가서 6년간이나 하나님에게 훈련을 받은 다음 무려 9년이라는 세월동안을 준비한 다음에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것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너무도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전사가 되기 위해서 먼저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면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근본적인 내 문제인 하나님의 생활패턴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롬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시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연주되는 사랑의 음성들이 깨어납니다. 암흑의 소리들이 사라지고 희망의 밝은 소리들이 우리 속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은 반드시 새벽이어야 합니다. 새벽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인 것을 사단이 알고 있기에 그는 새벽을 말살하려 합니다. PC방에서 밤새도록 아이들을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것도, 노래방에서 밤새도록 우리의 아빠 엄마들을 붙들어 두려는 것도, 소주방에서 밤새도록 우리의 아빠들을 붙들어 두려는 것도 사단의 음모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에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신 분들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김 일환 목사(마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