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에 이르러 로마 가톨릭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교회를 개혁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 레오 10세는 성베드로 성당을 고쳐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였다. 면죄부는 당시의 로마 가톨릭 교회에 관습처럼 되어 왔던 것으로, 교황이 돈을 받고 죄를 지은 사람의 벌을 면해 준다는 약속 증명서였다. 이에 독일의 신학자 루터는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며, 인간은 오직 신앙과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였다.
돈에 대한 교회의 무절제와 면죄부 판매 행위를 격렬히 비난하는 공개 반박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사이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이며 대학 교회의 설교자였던 루터는 그곳에서 이 주제들에 대하여 강의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 받은 바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내걸었던 95개 논제는 강의에 앞서 한번 공개적으로 논의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루터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토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서신으로 참여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당시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2주 안에 독일 전체로 퍼져 나갔고, 교회의 간섭을 싫어하던 독일 제후들의 지지를 받았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더 나아가서 종교 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후 파문 당했으나, 오랜 투쟁 끝에 루터파 교회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和議,The Peace of Augusburg]에서 정식 교파로 인정받았다.
[루터의 95개 반박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한번 쯤 읽어 볼 내용이다. 그 전문을 한영으로 소개한다.
1~7 서론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Our Lord and Master Jesus Christ, when He said 'Poenitentiam agite', willed that the whole life of believers should be repentance.
2. 이 말씀이 고해성사, 즉 사제에 의해 집도되는 고백과 속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This word cannot be understood to mean sacramental penance,i.e., confession and satisfaction, which is administered by the priests.
3. 하지만 이것이 단지 내적 회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내적회개(inner repentance)는 육신의 다양한 외적 수행을 수반하지 않는 한, 무가치한 것이다. Yet it means not inward repentance only; nay, there is no inward repentance which does not outwardly work divers mortifications of the flesh.
4.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형벌, 즉 참된 내적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The penalty [of sin], therefore, continues so long as hatred of self continues; for this is the true inward repentance, and continues until our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
5. 교황은 자기의 권위나 교회법의 권위에 부여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벌도 가감할 수 없다. The pope does not intend to remit, and cannot remit any penalties other than those which he has imposed either by his own authority or by that of the Canons.
6. 교황은 자신의 판결에 위임된 죄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음을 선언하신 것처럼 어떠한 죄도 용서할 수 없다. 교황의 권한을 넘는 죄는교황의 용서로 사하여 지지 않는다. The pope cannot remit any guilt, except by declaring that it has been remitted by God and by assenting to God's remission; though, to be sure, he may grant remission in cases reserved to his judgment. If his right to grant remission in such cases were despised, the guilt would remain entirely unforgiven.
7.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행자인 사제의 권력에는 복종하면서도 그밖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지 않으신다. God remits guilt to no one whom He does not, at the same time, humble in all things and bring into subjection to His vicar, the priest.
8~29 : 연옥에 있는 자의 사면 문제
8. 속죄의 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다. 그 법에 따라, 죽은자의 죄가 사하여질 수는 없다. The penitential canons are imposed only on the living, and, according to them, nothing should be imposed on the dying.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고함의 항목을 예외로 취급하는 교황의 교령(敎令)에서도 우리들에게 자비를 행하신다. Therefore the Holy Spirit in the pope is kind to us, because in his decrees he always makes exception of the article of death and of necessity.
10. 죽은 자들에 대하여 연옥 문제를 내세워 법적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은 무지하고 사악한 이들이다. Ignorant and wicked are the doings of those priests who, in the case of the dying, reserve canonical penances for purgatory.
11. 교회법 상의 벌을 연옥의 벌로 바꾸는 가라지가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분명히 뿌려졌다. This changing of the canonical penalty to the penalty of purgatory is quite evidently one of the tares that were sown while the bishops slept.
12. 이전에 교회법 상의 벌은 진정한 회개의 시금석으로서 사면 후가 아니라 그전에 가해졌다. In former times the canonical penalties were imposed not after, but before absolution, as tests of true contrition.
13. 죽은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형벌로부터 벗어나고, 교회법에 관한 한 이미 죽었으며 그로부터 해방될 권리를 갖고 있다. The dying are freed by death from all penalties; they are already dead to canonical rules, and have a right to be released from them.
14. 죽음에 이르는 사람에게 불완전한 경건이나 사랑은 반드시 커다란 불안을 수반한다.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두려움은 더욱 크다. The imperfect health [of soul], that is to say, the imperfect love, of the dying brings with it, of necessity, great fear; and the smaller the love, the greater is the fear.
15. 이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가 바로 절망의 공포이므로 연옥의 형벌로써 충분한 것이다. This fear and horror is sufficient of itself alone (to say nothing of other things) to constitute the penalty of purgatory, since it is very near to the horror of despair.
16.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의 차이는 절망, 두려움 그리고 구원의 확신 간의 차이와 같다. Hell, purgatory, and heaven seem to differ as do despair, almost-despair, and the assurance of safety.
17.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는 두려움이 감소되어야 하며, 사랑은 증가되어야 할 것 같다. With souls in purgatory it seems necessary that horror should grow less and love increase.
18. 또 연옥에 있는 영혼이 공과(功過)의 영역 밖에 있는지, 즉 사랑을 더 입을 수 없는지의 여부는 이성으로도, 성경을 통해서도 입증되지 않는 것 같다. It seems unproved, either by reason or Scripture, that they are outside the state of merit, that is to say, of increasing love.
19. 우리가 가진 구원의 축복에 관해서는 확신하고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지만, 연옥에 있는 영들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없어 보인다. Again, it seems unproved that they, or at least that all of them, are certain or assured of their own blessedness, though we may be quite certain of it.
20. 그러므로 교황이 “모든 형벌의 무조건적인 사면”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는 실제로 모든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할 수 있는 형벌에 국한되는 것이다. Therefore by "full remission of all penalties" the pope means not actually "of all," but only of those imposed by himself.
21. 그러므로 인간이 교황의 면죄부를 통해 모든 형벌을 면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Thereforethose preachers of indulgences are in error, who say that by the pope's indulgences a man is freed from every penalty, and saved;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는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형벌은 교회법에 의하여 현세에서만 받는 것이다. Whereas he remits to souls in purgatory no penalty which, according to the canons, they would have had to pay in this life.
23. 모든 벌의 사함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가장 완전한,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될 뿐일 것이다. If it is at all possible to grant to any one the remission of all penalties whatsoever, it is certain that this remission can be granted only to the most perfect, that is, to the very fewest.
24.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하고도 무분별한 약속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It must needs be, therefore, that the greater part of the people are deceived by that indiscriminate and highsounding promise of release from penalty.
25. 교황이 연옥에 대하여 갖는 일반적 영향력은 주교나 사제가 자신의 교구에 대해 갖는 특별한 영향력에 상응하는 것이다. The power which the pope has, in a general way, over purgatory, is just like the power which any bishop or curate has, in a special way, within his own diocese or parish.
26. 교황은 실제 자신이 갖지 못한 결정적인 열쇠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보기도를 통해서만 연옥에 있는 영혼의 죄를 사할 수 있을 뿐이다. The pope does well when he grants remission to souls [in purgatory], not by the power of the keys (which he does not possess), but by way of intercession.
27.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풀려난다고 말하는 이들은 단지 인간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They preach man who say that so soon as the penny jingles into the money-box, the soul flies out [of purgatory].
28.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면, 욕심과 탐욕도 분명히 증가한다. 그리고 교회의 중보의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It is certain that when the penny jingles into the money-box, gain and avarice can be increased, but the result of the intercession of the Church is in the power of God alone.
29. 성 세베리누스(St. Severinus)와 성 파샬(St. Paschal)에 관한 전설에서처럼,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는지의 여부를 누가 알겠는가? Who knows whether all the souls in purgatory wish to be bought out of it, as in the legend of Sts. Severinus and Paschal.
30~80 : 살아있는 자의 사면 문제
30. 누구도 자신의 회개의 완전성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더구나 속죄의 완전성 여부는 더욱 더 확신할 수 없다. No one is sure that his own contrition is sincere; much less that he has attained full remission.
31. 실제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실제로 회개를 하는 사람만큼이나 드물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Rare as is the man that is truly penitent, so rare is also the man who truly buys indulgences, i.e., such men are most rare.
32. 면죄부를 산 것 때문에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는 이들은 그들의 교사들과 더불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 They will be condemned eternally, together with their teachers, who believe themselves sure of their salvation because they have letters of pardon.
33. 교황의 사면을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특별히 경계하여야 한다. Men must be on their guard against those who say that the pope's pardons are that inestimable gift of God by which man is reconciled to Him;
34. 왜냐하면, 그 사면의 은혜는 오로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 행위에 대한 형벌에만 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For these "graces of pardon" concern only the penalties of sacramental satisfaction, and these are appointed by man.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속량하거나 고해 신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허가증을 사려는 이들에게는 회개가 필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비기독교적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They preach no Christian doctrine who teach that contrition is not necessary in those who intend to buy souls out of purgatory or to buy 'confessionalia'.
36.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도 죄와 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Every truly repentant Christian has a right to full remission of penalty and guilt, even without letters of pardon.
37.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살았든 죽었든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과 교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Every true Christian, whether living or dead, has part in all the blessings of Christ and the Church; and this is granted him by God, even without letters of pardon.
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축복과 용서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6조]에서 언명했듯이, 이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Nevertheless, the remission and participation [in the blessings of the Church] which are granted by the pope are in no way to be despised, for they are, as I have said, the declaration of divine remission.
39. 아무리 박식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면죄부와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It is most difficult, even for the very keenest theologians, at one and the same time to commend to the people the abundance of pardons and [the need of] true contrition.
40. 진정으로 회개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죄 값을 달게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면죄부는 벌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벌 받기 싫어하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는 벌 받기를 싫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True contrition seeks and loves penalties, but liberal pardons only relax penalties and cause them to be hated, or at least, furnish an occasion [for hating them].
41. 사도적 면죄[교황의 면죄를 의미]는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위들보다 더 낫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Apostolic pardons are to be preached with caution, lest the people may falsely think them preferable to other good works of love.
42. 교황이, 면죄부를 사는 일이 자선사업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the pope does not intend the buying of pardons to be compared in any way to works of mercy.
43.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he who gives to the poor or lends to the needy does a better work than buying pardons;
44. 사랑은 행함으로써 더욱 커지고, 인간은 이를 통해서 더욱 선해지나, 면죄부를 통해서는 인간이 선해질 수 없고 단지 벌을 면할 뿐이다. Because love grows by works of love, and man becomes better; but by pardons man does not grow better, only more free from penalty.
45. 궁핍한 사람을 보고도 이를 지나치면서도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he who sees a man in need, and passes him by, and gives [his money] for pardons, purchases not the indulgences of the pope, but the indignation of God.
46. 그리스도인들은 생계의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충분히 저축하여야 하며, 결코 이를 면죄부에 낭비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unless they have more than they need, they are bound to keep back what is necessary for their own families, and by no means to squander it on pardons.
47. 그리스도인들은 면죄부를 사는 것이 자유선택의 문제이지, 명령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the buying of pardons is a matter of free will, and not of commandment.
48.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이 면죄해주는 데 있어서는 그들이 들고 온 돈보다 경건한 기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the pope, in granting pardons, needs, and therefore desires, their devout prayer for him more than the money they bring.
49.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의 면죄부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때에만 유용한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면죄부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망각한다면 매우 해로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the pope's pardons are useful, if they do not put their trust in them; but altogether harmful, if through them they lose their fear of God.
50.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이 면죄부 교사들의 진상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의 뼈와 살 그리고 그 가죽으로 성베드로성당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원이 재로 변하기를 원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if the pope knew the exactions of the pardon-preachers, he would rather that St. Peter's church should go to ashes, than that it should be built up with the skin, flesh and bones of his sheep.
51.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은 면죄부 판매자들로부터 돈을 갈취당한 많은 이들에게 성베드로성당을 팔아서라도 돈을 나누어 주기를 원할 것이며 또 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taught that it would be the pope's wish, as it is his duty, to give of his own money to very many of those from whom certain hawkers of pardons cajole money, even though the church of St. Peter might have to be sold.
52. 비록 면죄부 담당 주교나 교황이라 할지라도 자기 영혼의 안전을 위해 면죄부에 의한 구원을 믿는 것은 헛된 일이다. The assurance of salvation by letters of pardon is vain, even though the commissary, nay, even though the pope himself, were to stake his soul upon it.
53. 면죄부 판매를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금하는 교황은 그리스도의 적이다. They are enemies of Christ and of the pope, who bid the Word of God be altogether silent in some Churches, in order that pardons may be preached in others.
54.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는 것이다. Injury is done the Word of God when, in the same sermon, an equal or a longer time is spent on pardons than on this Word.
55. 극히 무의미한 것인 면죄부가 한 단어, 한 문장, 한 구문으로 표현된다면, 매우 중요한 것인 복음은 백 단어, 백 문장, 백 개의 구문으로 설교되어야 한다. It must be the intention of the pope that if pardons, which are a very small thing, are celebrated with one bell, with single processions and ceremonies, then the Gospel, which is the very greatest thing, should be preached with a hundred bells, a hundred processions, a hundred ceremonies.
56. 교황이 면죄부를 둔 교회의 보물 창고는 그리스도의 사람들 사이에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The "treasures of the Church," out of which the pope. grants indulgences, are not sufficiently named or known among the people of Christ.
57. 면죄부가 이 세상의 보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많은 면죄부 판매자들이 이를 마음대로 나누어 주기보다는 이를 긁어모을 뿐이기 때문이다. That they are not temporal treasures is certainly evident, for many of the vendors do not pour out such treasures so easily, but only gather them.
58. 이 보물 창고는 또 그리스도와 성자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교황 없이도 그리스도의 공로는 속 사람에게는 은혜를, 겉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Nor are they the merits of Christ and the Saints, for even without the pope, these always work grace for the inner man, and the cross, death, and hell for the outward man.
59. 성 로렌스(St. Laurence)는 교회의 가난한 자들이 교회의 보배라고 말하였다. 이는 그 당시 말의 어법에 따른 것이다. St. Lawrence said that the treasures of the Church were the Church's poor, but he spoke according to the usage of the word in his own time.
60.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가 바로 보물이라는 우리의 말은 충분히 숙고한 결과이다. Without rashness we say that the keys of the Church, given by Christ's merit, are that treasure;
61. 왜냐하면 분명한 것은 교황의 권한이 자신에게 부여된 벌과 재판을 면해주기에만 충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For it is clear that for the remission of penalties and of reserved cases, the power of the pope is of itself sufficient.
62. 교회의 진정한 보물 창고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증언인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The true treasure of the Church is the Most Holy Gospel of the glory and the grace of God.
63. 하지만 이 보물 창고는 가장 싫게 여겨지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는 처음 된 자를 나중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But this treasure is naturally most odious, for it makes the first to be last.
64. 한편, 면죄부의 보물 창고는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나중 된 자를 처음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On the other hand, the treasure of indulgences is naturally most acceptable, for it makes the last to be first.
65. 그러므로 그들에게 복음의 보물 창고는 예로부터 돈 많은 사람을 낚던 그물이었다. Therefore the treasures of the Gospel are nets with which they formerly were wont to fish for men of riches.
66. 이 보물 창고는 오늘날도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재산을 낚는 그물이다. The treasures of the indulgences are nets with which they now fish for the riches of men.
67. 선동가들이 최고의 은혜라고 주장하는 면죄부는 실제로는 면죄부가 이익을 증진시킬 때에만 그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The indulgences which the preachers cry as the "greatest graces" are known to be truly such, in so far as they promote gain.
68. 하지만 이는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신앙에 비교해 볼 때 가장 무의미한 은혜에 불과하다. Yet they are in truth the very smallest graces compared with the grace of God and the piety of the Cross.
69. 감독과 사제들은 교황 면죄부 사절들을 기꺼이 그리고 매우 경건하게 맞아들여야 한다. Bishops and curates are bound to admit the commissaries of apostolic pardons, with all reverence.
70. 하지만 그들은 이 사절들이 교황으로부터 위임받은 것 대신에 자신들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도록 보다 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But still more are they bound to strain all their eyes and attend with all their ears, lest thesemen preach their own dreams instead of the commission of the pope.
71. 사도적 면죄에 관한 진리를 거스르는 이는 파문되어야 한다. He who speaks against the truth of apostolic pardons, let him be anathema and accursed!
72. 하지만 면죄부 사절의 욕심과 방종을 경계하는 이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But he who guards against the lust and license of the pardonpreachers, let him be blessed!
73. 어떤 방법으로든지 면죄부 판매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서 교황은 당연히 책망하려고 할 것이다. The pope justly thunders against those who, by any art, contrive the injury of the traffic in pardons.
74. 하지만, 교황은 이보다는 더욱 더 거룩한 사랑과 진리에 해를 도모하기 위한 구실로 면죄부를 사용하는 이들을 꾸짖기를 원한다. But much more does he intend to thunder against those who use the pretext of pardons to contrive the injury of holy love and truth.
75. 면죄부를 과대평가하여 인간이 아무리 못할 짓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어머니를 범했다 할지라도 면죄부가 그 죄를 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To think the papal pardons so great that they could absolve a man even if he had committed an impossible sin and violated the Mother of God -- this is madness.
76. 우리의 주장은 교황의 면죄부는 아무리 하찮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We say, on the contrary, that the papal pardons are not able to remove the very least of venial sins, so far as its guilt is concerned.
77. 성 베드로가 지금의 교황이라 할지라도 더 큰 은혜를 베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동시에 모독하는 것이다. It is said that even St. Peter, if he were now Pope, could not bestow greater graces; this is blasphemy against St. Peter and against the pope.
78. 우리의 주장은 지금의 교황, 또는 어떤 교황이라 할지라도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대로 복음과 여러 능력 그리고 치유의 은사 등 훨씬 더 많은 은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We say, on the contrary, that even the present pope, and any pope at all, has greater graces at his disposal; to wit, the Gospel, powers, gifts of healing, etc., as it is written in I. Corinthians xii.
79. 교황의 성의에 그려진 십자가와 면죄부 사절이 세운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To say that the cross, emblazoned with the papal arms, which is set up [by the preachers of indulgences], is of equal worth with the Cross of Christ, is blasphemy.
80. 그러한 말을 퍼뜨리는 감독, 사제 그리고 신학자들은 다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The bishops, curates and theologians who allow such talk to be spread among the people, will have an account to render.
81~91 : 평신도로서의 면죄부 반대
81. 이 무분별한 면죄부의 강조 때문에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세인들의 중상 또는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교황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This unbridled preaching of pardons makes it no easy matter, even for learned men, to rescue the reverence due to the pope from slander, or even from the shrewd questionings of the laity.
82. “교황이 교회를 세우는 데 드는 하찮은 돈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영혼을 구속한다고 한다면, 그는 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절박한 필요를 들어주거나, 또는 거룩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연옥을 완전히 비우지 않는가? 후자는 가장 사소한 것이 아닌가?” To wit: -- "Why does not the pope empty purgatory, for the sake of holy love and of the dire need of the souls that are there, if he redeems an infinite number of souls for the sake of miserable money with which to build a Church? The former reasons would be most just; the latter is most trivial."
83. 또, “이미 구속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부당한 것인데, 왜 죽은 자의 장례 미사나 기념 미사는 계속되는가? 그리고 왜 교황은 그러한 이유에서 바쳐진 기부금을 돌려주지도 않고, 이의 취소를 허락하지도 않는가?” Again: -- "Why are mortuary and anniversary masses for the dead continued, and why does he not return or permit the withdrawal of the endowments founded on their behalf, since it is wrong to pray for the redeemed?"
84.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원수 된 사람이라도 돈만 내면 연옥으로부터 경건한 영혼을 구하도록 허락하면서도, 돈을 받지 않고 은혜로만 온전히 구원하지는 않는다면, 무엇이 새로운 신성함인가?” Again: -- "What is this new piety of God and the pope, that for money they allow a man who is impious and their enemy to buy out of purgatory the pious soul of a friend of God, and do not rather, because of that pious and beloved soul's own need, free it for pure love's sake?"
85. 또, “이미 오래 전에 취소되었고, 사실상 사문화되었으며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회죄총칙(悔罪總則)이 왜 면죄부 판매를 통해 아직도 살아있고 강력한 힘을 갖는 것처럼 통용되고 있는가?” Again: -- "Why are the penitential canons long since in actual fact and through disuse abrogated and dead, now satisfied by the granting of indulgences, as though they were still alive and in force?"
86. 또, “오늘날 최고의 부자였던 크라수스(Crassus)보다도 훨씬 부자인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돈으로 이 성베드로 성당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Again: -- "Why does not the pope, whose wealth is to-day greater than the riches of the richest, build just this one church of St. Peter with his own money, rather than with the money of poor believers?"
87. 또, “이미 전적인 회개를 통해 완전한 구속과 축복을 받은 이들에게 교황은 또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축복하겠다는 것인가?” Again: -- "What is it that the pope remits, and what participation does he grant to those who, by perfect contrition, have a right to full remission and participation?"
88. 또, “교황이 지금 하루에 한 번 모든 신자들에게 베풀고 있는 사면과 축복을 하루에 백 번을 한다고 하여 얼마나 더 큰 축복이 교회에 임하겠는가?” Again: -- "What greater blessing could come to the Church than if the pope were to do a hundred times a day what he now does once, and bestow on every believer these remissions and participations?"
89. “교황이 면죄부를 통해 돈보다는 영혼의 구원을 구하고 있다면, 왜 그는 지금까지 행해 온, 똑같은 효력을 갖는 사면과 특사를 중지하는가?” "Since the pope, by his pardons, seeks the salvation of souls rather than money, why does he suspend the indulgences and pardons granted heretofore, since these have equal efficacy?"
90. 세인들의 날카로운 논박을 오직 힘으로만 억누르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소치 않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적들의 웃음거리고 만드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To repress these arguments and scruples of the laity by force alone, and not to resolve them by giving reasons, is to expose the Church and the pope to the ridicule of their enemies, and to make Christians unhappy.
91. 그러므로 면죄부가 교황의 마땅한 뜻과 생각에 따라 설교된 것이라면, 이 모든 의문들은 이미 해결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 의문들 모두는 이미 없어져야 했을 것이다. If, therefore, pardons were preached according to the spirit and mind of the pope, all these doubts would be readily resolved; nay, they would not exist.
92~95 : 면죄부 판매 동기의 잘못 지적
92.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향하여 평안하지도 않은데 “평안하라, 평안하라”하는 모든 선지자들은 다 떠날지어다. Away, then, with all those prophets who say to the people of Christ, "Peace, peace," and there is no peace!
93.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십자가, 십자가”를 외치는 모든 선지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는 십자가가 없을 것이다. Blessed be all those prophets who say to the people of Christ, "Cross, cross," and there is no cross!
94.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만을 형벌, 죽음 그리고 지옥을 거치면서라도 부지런히 따르도록 격려 받아야 한다. Christians are to be exhorted that they be diligent in following Christ, their Head, through penalties, deaths, and hell;
95. 이를 통해 하늘나라는, 평화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많은 고난을 통해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And thus be confident of entering into heaven rather through many tribulations, than through the assurance of peace.
면죄부는 영혼의 구원과 성화에 공헌하지 못하고, 다만 교회법에 의해 부과된 일시적인 형벌을 사면할 뿐이다. 그리스도는 어디에서도 면죄를 증거하라고 하지 않았고,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주교들이 복음보다 면죄를 더 중히 여기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면죄만 뻔뻔스럽게 선포하도록 용납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 루터는 반박문의 사본을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흐트에게 보내었다.
• 루터는 로마 가톨릭(천주교)의 잘못을 지적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문 밖에 게시하였다.
• 그는 누구와도 토론 하기를 원했으며, 선동이 아닌 토론을 통해 그릇된 관행을 고치고자 하였다.
• 이러한 루터의 항거는 로마 가톨릭에 대한 선전포고가 되었고, 종교개혁의 봉화를 드는 사건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