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게 여길 시험
약 1:1-4
새벽몌배20180325.hwp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1-4 / [인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나라 밖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2) [믿음과 지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3) 험난한 길은 여러분에게 인내를 기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4)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알고 있는 바를 행하라”는 야고보서 전체의 외침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는 야고보는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라고 권합니다. 그 이유는 인내를 만들어 주는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종 야고보(1)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 2:14-26)이라는 말씀을 선포한 인물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합니다. 30년 가까이를 한 부모 품에서 자란 육신의 형제가 자신을 종 즉, 노예라고 표현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에게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한 때 그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저항했으며, 이상한 자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참조 막 3:21, 31).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 한 후 예수님은 더 이상 육신의 형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던 겁니다.
1절은 야고보서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통치와 율법,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 성도들은 자신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예수라고 확신하며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회당예배에도 참석했고 율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고보는 새로운 그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알고 있는 바를 행하는 자가 되라고 격려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2-4)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팎으로 여러 가지 시련을 당했습니다. 특히 기존 유대교 공동체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믿음 가운데 주어지는 시련은 그 목적이 넘어뜨림에 있지 않기에 유익이 됩니다. 3절을 보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라는 열매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이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르고 있던 일이 아닙니다.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삶에서 이루어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거룩한 도전입니다.
적 용 :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알고 있는 말씀이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삶은 우리를 위해 조직되어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의 깊은 뜻을 알게 된 사람의 입에서는 비로소 진실한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그 시련의 끝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 설 교 >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야고보서 1:1-4
성경에 보면 ‘야고보’라는 이름이 참 많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등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마태복음 13:55절에 보면 예수님의 동생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님을 형님으로만 알았지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단순하게 형님으로만 알았지 그 이상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자라난 과정과 가정환경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목회를 잘 안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형님 예수를 언제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신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야고보에게 나타났을 때입니다.
야고보는 형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 지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분명히 자기 손으로 무덤에 장사지낸 형님이 다시 살아서 눈앞에 서 있었을 때 그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못 박힌 손과 상처 난 옆구리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믿은 자 중에 나중 될 자도 있고, 나중에 믿은 자 중에 먼저 될 자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는 늦게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믿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누구 보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야고보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그의 무릎은 낙타의 무릎과 같았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이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이 생활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말씀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로마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로마서는 한마디로 믿음의 이론을 공부하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야고보서는 믿음의 실천편입니다.
앞으로 얼마 동안 야고보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믿는 자가 어떻게 생활하기를 원하시는가? 우리가 믿는 사람들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운전면허처럼 필기와 실기를 통과해야 면허증이 나옵니다.
믿음도 이론과 실기가 통과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가짜믿음)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온전’이라는 말과 ‘성숙’이라는 말입니다.
온전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신앙을 말합니다. 즉 건강한 믿음생활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균형잡힌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조건 믿음만 강조해도 안되고, 무조건 행위만 강조해도 안 됩니다. 믿음만 강조하면 율법주의자처럼 형식과 외식에 빠질 우려가 있고, 행위만 강조하면 도덕주의자, 선행주의자로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내용도 있어야 하지만 실천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한 믿음의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도 ‘여러 가지 시험’만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살다가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결코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하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가 무슨 일이든 속뜻을 알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학생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선생님들이 시험을 통하여 학생들의 학업성적을 향상 시키고, 그동안 배운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임을 알면 열심히 시험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속뜻을 모르면 왜 이런 어려운 시험을 보나, 시험 없는 나라에 태어났으면 좋겠다, 시험 때문에 시험 든다, 시험만 없다면 살만하겠는데 등등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욥이라는 사람은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사업의 시험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뜻을 알았게 때문입니다. 자녀의 시험을 당할 때에도 그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건강의 시험을 당했을 때에도 그는 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식물학자들은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리는데 그 때 나무의 뿌리가 땅 속 깊이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평온할 때 성숙하고 온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큰 바람이 불 때에 오히려 그 바람 때문에 더 튼튼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 신앙도 언제 온전해 질까요? 우리 믿음이 언제 성장할까요? 평온할 때가 아니라 신앙의 어려움이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오히려 우리가 더 성숙해 집니다.
그래서 시편119편 71절에 다윗은 고백하기를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오히려 더 큰 유익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확신할 것은 고전 10:13절에 “하나님은 미쁘사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감당할 시험을 줍니다. 그리고 시험 당할 때쯤에는 반드시 피할 길도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 뜻을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았지만 그는 피할 길을 열어 놓고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속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숯양을 준비해 놓으시고 아들을 바치라고 시험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시험을 기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3절 말씀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니라”
우리가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인내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에서 참지 못해서 실패한 인생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습니까?
요즘 가장 큰 문제는 어려움을 잘 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참았는데 요즘은 조금만 힘들면 삶을 포기합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직장에서 해고 되었다고, 카드 빚 때문에, 친구가 배신했다고, 친구가 애인을 빼앗았다고, 우리는 참지 못하고 실패하는 인생을 봅니다.
우리가 어떤 건축물의 도면을 볼 때 단면만 보면 안됩니다. 모든 건물은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도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단면만 보면 못 참습니다.
예를 들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보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의 인생을 단면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의 일생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 여자는 새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건을 볼 때 단편적으로만 보지 말고 종합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통전적인 신학이라고 말합니다. 통전(通典)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온전해지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됩니다.
본문 4절 말씀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결 론
■ 카프만의 “광야의 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과학자가 고치 속의 나방이 나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구멍이 너무 작아 힘들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위로 구멍을 넓혀주었습니다. 넓은 구멍으로 나방이 쉽게 나오기는 했지만 이번엔 잘 날지를 못합니다. 작은 구멍으로 나온 것은 잘 나는데 넓은 구멍으로 나온 것은 날지 못합니다. 연구를 했습니다. 이유는 고치안의 나방의 영양분은 어깨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구멍을 나오면서 그 영양분이 날개쪽으로 밀려갑니다. 그래서 날개에 힘이 생기고 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납니다. 물질 때문에 어렵고, 자녀 때문에 힘들고, 건강 때문에 괴롭고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야고보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더욱 온전해지고,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