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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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믄 밤의: 천(千) 밤의
날으는: 나는, 날아가는
시늉하며: 같은 모양을 지으며
분석: 한 문장의 전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이 다루고자 한 주된 시적 대상이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자신이 마음 속 깊이 신성한 것으로 모시고 있는 존재로서 제시하고, 하늘에 옮겨 심는 행위로써 그것에 대한 시인의 애착과 외경심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인의 행위에 대한 반응, 즉 의미 부여로서 한 겨울에 날아가는 새의 매섭고 날카로움마저도 굴복할 정도로 그것이 높고 귀한 경지에 있음을 암시한다.
감상: 이 시는 설명을 배제한 채 고도의 상징적 수법을 통해 팽팽한 시적 긴장과 함축성을 자아내고 있다. 상징이란 표현된 언어 하나하나에 각각 독립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언뜻 무의미하게 보이는 그 언어들이 망라되어 어떤 내용을 암시하게 하는 표현수법이다.
이 시에서 ‘눈썹을 꿈으로 씻었다’, ‘매서운 새가 그 눈썹을 비끼어 간다’는 부분적으로 무의미하고 비논리적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긴 능선과 검은 하늘, 맑은 초승달과 쓸쓸히 날아가는 새를 떠올릴 수 있다.
이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오랜 동안 시인이 간직했던 그리움이 ‘님의 고운 눈썹’에 맺히고, 그것이 다시 초승달이 되어 춥고 차가운 겨울밤 하늘에 투영되며, 하늘을 날던 새 한 마리가 그 싸늘한 아름다움을 감히 범하지 못하고 피해가는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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