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고 시작하겠다. 나는 세상사와 관련해 그다지 쉽게 분위기가 바뀌지도 않고 그 기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은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중 한 명이다.특정인을 나무위에 올려 놓고 마구 흔들어대는 세태를 증오하는 쪽이다. 그렇다고 그냥 세상사를 편하게 긍정적으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한두가지 사항만으로 전체를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부류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을 조금 고쳐야겠다고 느끼게 한 사건이 오늘 새벽에 발생했다.바로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PSG와 툴루즈와의 경기를 보고 난 뒤 생각이다.
나는 축구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냥 즐기는 아마츄어 팬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기의 흐름과 상황전개는 어느 정도 안다. 다시 말해 요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특정 요리에 대해 그것이 맛있느냐 아니냐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든 세프의 정성이 들어갔느냐 대충 만들었느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오늘 새벽 시차가 꽤 나는 프랑스에서 열린 PSG경기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수준이었다. 나 자신이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인 리그앙의 관심도가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이탈리아의 세리에 A에 비해 낮았다. 하지만 이강인 선수가 그곳으로 갔다기에 그리고 그동안 프랑스를 한국에 그리고 한국을 프랑스에 알리려 노력한 파비앙씨를 생각하며 관심도를 높인 것이 사실이다. 또한 얼마전까지만 해도 축구의 신이라는 메시와 축구의 불세출 기린아 네이마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PSG유니폼도 한 벌 구입하고 싶었다. 없는 살림에 말이다.
하지만 슬슬 그런 망상에서 깨어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오늘 PSG경기만 보면 그야말로 2류리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세계 5대 리그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리그앙의 우승팀 그것도 그냥 우승제조팀인가 의심이 가기에 충분했다.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만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승리가 버릇이 되면 안되듯 무승부 또는 패배가 습관이 되면 정말로 곤란하다. 엔리케 감독은 명장으로 꼽힌다. 명장은 일반적인 감독과 차이가 많이 난다. 명장은 평온할 때 나타나지 않는다. 바로 험한 상황 그리고 불가능이라는 그 고지를 넘어설 때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엔리케 감독이 과연 명장인가 하는 의문을 수없이 갖게 했다.
먼저 엔리케 감독은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오늘 경기가 어떤 경기인가. 지난 경기에서 졸전끝에 무승부로 끝나지 않았는가. 상대가 10위권 수준이었다. 10위권을 우습게 아는 것이 아니라 예전 PSG수준에서 판단하면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골 한번 넣지 못하는 무승부였다. 하긴 그때는 네이마르와 음바페같은 기라성급 선수가 결장해서 그랬다고 치자. 그리고 네이마르를 내쫓고 음바페가 장악한 뒤 처음 열리는 경기는 달라도 뭔가 달라야 했다.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전투에 임했어야 했다. 하지만 엔리케 감독은 오늘도 전술 실험중이었다. 음바페와 뎀벨레 등 유력선수들을 초반부터 투입해 결전의 의지를 보여야 했다. 정말 엔리케 감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음바페와 뎀벨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전 게임의 복제판이 펼쳐졌다. 이강인은 왼쪽 윙어로 자리잡고 있었다. 전에 존재했던 이강인과 하키미 조합이 아닌 이강인과 파비앙 루이스였다. 오른쪽은 뭔가 공격이 형성되는 듯 했지만 왼쪽은 그냥 무주공산 상황이었다. 이강인도 활기를 찾지 못하고 그에게 공을 뿌려야 할 파이방 루이스도 다른 곳을 바라 보고 있었다. 둘의 사인도 맞지 않아 불편한 표정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는 상황이었다. 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케 했다. 전 경기에서는 이강인의 돌파장면과 볼 콘트롤 장면이 간혹 나왔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이 실종됐다. 그냥 이강인은 경기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후반전 이강인은 교체된다. 드디에 음바페와 뎀벨레가 등장한다. 상대팀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결사항쟁한다. 그래서 파울을 범하고 PK를 음바페에게 헌사한다. 1대 0. 역시 음바페의 존재가 대단하다는 중계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말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PSG의 병폐 즉 공격라인 깊숙히 공을 전달하지 못하는 그 우유부단함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뭔가 공이 와야 쑤시고 들어가 슛을 할 것이 아닌가. 상대도 전술을 파악하고 음바페와 뎀벨레를 묶어버린다. 그러면 그 누군가 상대 수비벽을 파괴할 수 있는 선수가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하지만 PSG에는 없었다. 결국 상대에게 PK를 허용해 동점이 되고 결국 무승부로 게임을 끝낸다. PSG 감독과 음바페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음바페는 정말 이런 팀과 무슨 우승을 할 것이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은 너무도 멀리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음바페의 팀과의 불화는 단지 네이마르와의 주도권 다툼이 다가 아니였다. 팀안에 바로 자신에게 공을 연결할 존재가 없었다는 것이 그를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영입한 선수가운데 그럴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것에 의기투합해 그라운드로 다시 복귀한 것인데 오늘 경기에서는 결코 그런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다. 예전 모습을 답습하고 있으며 새로 영입한 이강인은 자신과 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음바페는 심판진에 계속해서 어필한다. PK를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그랬다. 하지만 그가 PK에 대한 불만이 아니였다. 그냥 자신의 팀에 대한 불만이었다. 엄청난 선수들을 영입했다고 했는데 결국 경기를 해보니 도찐개찐수준이었다. 그래서 그 화풀이를 주심에게 한 것이라 나는 분석한다. 또한 네이마르가 사라진 PSG에서 호령하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정말 그러고 싶었는데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좌절하고 분노한다.
엔리케 감독은 전술 실험 단계라고 말하는지 모르지만 프로축구 리그의 매경기가 결승전이고 살얼음판 시간이다. 지금은 전술 실험할 때가 아닌 모든 역량을 다 쏟아 승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참으로 죄송한 말이지만 오늘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은 그냥 훈련하러 나온 분위기였다. 결의에 차 있는 것은 음바페뿐인 것 같았다. 음바페가 처음 PK로 공을 넣었을 때 그 호방한 표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그러지면서 예전 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결정적인 공이 오지 않는데 무슨 수로 골을 만들까. 그런 찬스를 만들게 하는 것이 감독의 지략아닌가. 경기시간이 모두 끝나고 인저리 타임에서도 그냥 공을 돌리는 그런 모습에서 이 선수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좀 더 노골적인 표현을 쓴다면 마치 노조의 준법투쟁하는 모습이었다. 그냥 시간보내기 위해 공돌리는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음바페나 뎀벨레에게 공을 연결해주려는 각오와 이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다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엔리케감독의 능력이 이 정도이면 이것은 정말 우려스럽다. 예전 바르셀로나에서 이룬 그 엄청난 업적도 당시 메시 네이마르 수아레스 등 당대 대표급 스타들이 있어 가능한 것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그 3명의 선수에게 그냥 맡겨도 우승은 기본이었다. 감독의 전술이 테스트 받을 기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엔리케는 정말 과대평가된 인물인가. PSG가 정기리그에서 상대한 두 경기 모두 상대가 중위팀 내지 하위팀인 것을 감안하면 PSG 팬들의 분노가 얼마가 클까 짐작이 된다.
요즘 PSG 경기를 보면 답답한 차원을 떠나 어린아이 물가에 놔둔 그런 느낌이 든다. 편하게 경기를 즐길 수가 없다.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도 위태위태롭다. 뭔가 큰 나사가 빠져있는 그런 기분이다. 현장에 가있는 광팬들은 오죽할까. 그러면 그 결과에 따라 상상치 못한 팬심의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 벌써 PSG 팬 커뮤니티에는 엔리케감독뿐 아니라 이강인선수의 능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나는 왜 일요일 새벽부터 아니 그 전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경기를 지켜 보는 것일까. 그것은 어려운 현실에서도 해외에 나가 힘든 활약을 하는 한국 출신 선수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래서 요즘 즐거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해외에서 즐거운 경기를 선사하길 바라는 그런 마음에서 경기도 지켜보고 힘들지만 이런 글도 작성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술을 테스트하는 연습경기가 아니고 실전중의 실전상황이다.
2023년 8월 2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