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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낸 한철 - 아르튀르 랭보(김현 번역)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미(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 그러고 보니 지독한 치(痴)였다 -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나는 죽어 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나는 피와 모래에 범벅이 되어 죽기 위해 재앙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서 팍 쓰러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지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나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 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가 그 열쇠이다 -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 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꽃을 나에게 씌워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 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 UNE SAISON EN ENFER -Arthur Rimbaud Jadis, si je me souviens bien, ma vie était un festin où s’ouvraient tous les coeurs, où tous les vins coulaient. Un soir, j’ai assis la Beauté sur mes genoux. - Et je l’ai trouvée amère. - Et je l’ai injuriée. Je me suis armé contre la justice. Je me suis enfui. O sorcières, ô misère, ô haine, c’est à vous que mon trésor a été confié ! Je parvins à faire s’évanouir dans mon esprit toute l’espérance humaine. Sur toute joie pour l’étrangler j’ai fait le bond sourd de la bête féroce. J’ai appelé les bourreaux pour, en périssant, mordre la crosse de leurs fusils. J’ai appelé les fléaux, pour m’étouffer avec le sable, avec le sang. Le malheur a été mon dieu. Je me suis allongé dans la boue. Je me suis séché à l’air du crime. Et j’ai joué de bons tours à la folie. Et le printemps m’a apporté l’affreux rire de l'idiot. Or, tout dernièrement, m’étant trouvé sur le point de faire le dernier couac ! j’ai songé à rechercher la clef du festin ancien, où je reprendrais peut-être appétit. La charité est cette clef. - Cette inspiration prouve que j’ai rêvé ! "Tu resteras hyène, etc..." se récrie le démon qui me couronna de si aimables pavots. "Gagne la mort avec tous tes appétits, et ton égoïsme et tous les péchés capitaux." Ah ! j’en ai trop pris : - Mais, cher Satan, je vous en conjure, une prunelle moins irritée ! et en attendant les quelques petites lâchetés en retard, vous qui aimez dans l’écrivain l’absence des facultés descriptives ou instructives, je vous détache des quelques hideux feuillets de mon carnet de damné. |
*이해를 돕는 말 (펌)
아르튀르 랭보의 산문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나쁜 주문(呪文) 같은 시다.
뒤틀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일그러진 목소리가 끔찍이 배어 있다.
길이가 서로 다른 9편의 연작시 중에서 첫 번째 시(일종의 序詩)에 등장하는 ‘나’는
정의에 항거하고, 재앙을 부르며, 불행을 신(神)으로 섬긴다.
시의 화자인 ‘나’는 시쳇말로 악질이다.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나’는 진창에 팍 쓰러져, 젖은 몸을 ‘죄의 바람’에 말린다.
‘나’는 광대를 잘 속인다. 여기서 광대는 말 없는 신이다.
‘나’는 사탄 내지 악마와 다름없다. 사탄이 주인공으로 분(扮)하는 시를 당대 프랑스 교양사회가 상상이나 했을까.
시를 읽다 보면 사탄과 ‘나’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러나 ‘나’는 죄에 빠진 악마일망정 죄에 몸부림치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다.
4연 첫 행에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나에’라는 표현이 나온다.
‘껄떡’ 소리는 ‘꿱’ 소리, ‘꼴딱’ 소리다. 죽을 때 나는 외마디다.
‘나’는 죄에 빠져 ‘꿱’ 하고 죽기 직전, ‘자애의 열쇠’를 찾으려 한다. 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탕자와 같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귀향’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17c 화가 Guercino의 〈탕자의 귀향〉은 누가복음 15장의 죄를 뉘우치는 탕자에게 새 옷을 건네는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자 4연 마지막 줄에 화가 난 악마가 이렇게 저주를 퍼붓는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을 짊어지고 죽으라’
여기서 죄종(罪宗)이란 가톨릭에서 말하는 죄 7종 세트를 의미한다. 교만과 태만, 사음(邪淫), 분노, 질투, 탐심, 탐욕.
시인은 마지막 연, 첫 행에서 이렇게 소리친다.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영화 〈친구〉의 장동건 버전으로 말하면 “고마해라. 마이 무따(많이 먹었다)”의 뜻이다. 그러면서 사탄에게 하는 말.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사탄의 화를 더 돋우는 말이다. 하지만 탕자의 ‘나’는 귀향을 선언한다.
‘내’ 죄를 ‘아듀(adieu, 고별)’하기 위해 시인은 고통스럽게 보낸 지옥의 날들을 처절히 들여다본다.
*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
프랑스 초현실주의의 최고봉으로 이후에 끼친 영향으로 보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 시인이다.
위에 소개한 <지옥에서 보낸 한철(1873)>이란 유일한 산문시집 하나로 그런 명성을 남겼다.
어려서부터 겪은 주관적(?) 불행과 광적인 경험을 초현실적으로(?) 승화시킨 (오해받은) 명작이다.
(*베를렌(Paul verlaine·1844~1896)이란 시인과의 광적인 동성애 관계 및 방랑의 경험을 담은 산문시)
그러나 이후 20대에 시를 포기하고 반문명적 삶을 살며 아프리카 무기거래상 등으로 방황하다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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