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가을비에게, 달이 자꾸 따라와요, 고향의 천정 외
한남대학교 전 총장 김형태 장로님이 한교선 단톡방에 공유한 글입니다.
*사진은 김용섭 선생님이 인제와 근무지 양구 해안 오가며 찍은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화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비에게/이해인■
여름을 다 보내고
차갑게. 천천히
오시는군요.
사람과 삶에 대해
대책없이 뜨거운 마음
조금씩 식히려고 하셨지요 ?
이제는
눈을 맑게 뜨고
서늘해질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시는군요
당신이 오늘은
저의 반가운 첫 손님이시군요.
■사람에게 /문정희■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 너는 누구냐 ?
밤하늘 가득 기어나온 별들의 체온에
추운 몸을 기댄다.
한 이름을 부른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詩人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
허공을 뚫어 門 하나를 내고 싶다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었지만
門이 없는 곳 또한 없었다
사람, 너는 누구냐 ?
나의 사랑, 나의 사막이여
온 몸의 혈맥을 짜서 詩를 쓴다.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별처럼 내밀한 촉감으로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랑, 나는 아름다우냐.
(* 歲月不待人/ Time and tide waits for no man.)
■ 시월 / 오세영 ■
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 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 낮.
화상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하나 걸려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마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온기 溫氣 /박순화■
제 집으로 돌아간 자식들
아련히 남은 모습.
텅 빈 의자에 앉으면
쏟아지는 눈물 방울.
아직도
이부자리엔
온기 남아 따습다.
(* 명절 때 왔다간 자식들. 친척들
가게 문을 일주일 내내 닫아둘 수 없고,
시험이나 약속한 일 등. 귀경해 준비할 일들이 있다.
그래 며칠 머물다 가면, 반가움은 잠깐이고, 보낸 아쉬움은 오래 남는 법.
휑하니 비어있는 의자와 이부자리가 우리를 눈물 나게 만든다.
이게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다.
부모님의 소망은, 부디
ㅡ 아프지 말기를.
ㅡ마음 다치지 말기를.
ㅡ바쁘다고 배곯지 말기를.
(* 이승하 /문학평론가)
■지도자(리더)의 덕목■
1.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2.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지 마라.
3. 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하지 마라.
4.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5.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삶을 최대한 즐겨라.
6. 늙어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7.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8. 죽음에 대해 너무 자주 말하지 마라
9. 학생(배우는 자)의 마음으로 계속 남아라.
10. 소통능력을 계속 개발하라.
■言語능력이 치매를 예방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곧 나의 세계의 한계다'( The limits of my language are the limits of my world.)고 말했다.
언어능력을 키울수록 우리의 세계는 그만큼 더 창의적으로 커진다.
언어능력을 키우려면 독서능력을 키워야 한다.
'거울' 이 '창문' 이 되게 하려면 독서가 많아야 한다.
나만 보이는 '거울'이 좁은 시각과 작은 세계를 은유한다면 나뿐 아니라 타인도 보이는 '창문'은 넓은 시각과 큰 세계를 은유한다.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언어능력을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는 사고와 연결돼있다" (Language is connected to thought.) 그래서 인간은 언어가 없이는 사고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생각의 흐름과 단어의 연결이 끊기지 않도록 계속 쓰고 말해야 한다
치매는 '창문' 이 서서히 '거울'로 변해가는 것이다.
■ 그 냥 / 문삼석 ■
" 엄만
내가 왜 좋아 ?
ㅡ그 냥....
넌 왜
엄마가 좋아 ?
ㅡ 그 냥 "
(* 매우 짧은 詩지만 긴 文章의 설명보다 훨씬 더 정확한 대답이다. 좋은 데는 이유가 없다.)
■달이 자꾸 따라와요■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ㅡ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ㅡ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쇠똥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 이상국 시인)
■고향의 천정/ 이성선■
밭둑에서 나는 바람과 놀고
할머니는 메밀밭에서
메밀을 꺾고 계셨습니다.
늦여름의 하늘빛이 메밀꽃 위에 빛나고
메밀꽃 사이사이로 할머니는 가끔
나와 바람의 장난을 살피시었습니다.
해마다 밭둑에서 자라고
아주 커서도 덜 자란 나는
늘 그러했습니다만
할머니는 저승으로 가버리시고
나도 벌써 몇 년인가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후
오늘 저녁 멍석을 펴고
마당에 누우니
온 하늘 가득
별로 피어 있는 어릴 적 메밀꽃
할머니는 나를 두고 메밀밭만 저승까지 가져가시어
날마다 저녁이면 메밀밭을 매시며
메밀밭 사이사이로 나를 살피고 계셨습니다.
■ 시 여 / 이상윤 ■
나는 언제쯤이면 저
옥상의 빨래들처럼 보송보송한
귀로
조용히 세상을 펄럭이며
너를 만날 수 있을까.
가을 아침처럼
나에게 가벼워질 수 있을까.
■ 생명 / 김남조 ■
생명(生命)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 김남조/2023. 10. 10 세상떠남 / 96세)
■ 서시 / 김남조 ■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 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하여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 사막 13 / 김남조■
그대도 쉬고 싶거든
예 와서 누워라
이 말이 좋다
내 노년이 깊은 이 시절엔
누워 벗하며 멈춘 바람처럼 쉬자는 말이
오로지 황홀하다.
(* 김남조/1927~2023)
■ 절계 / 折 桂 ■
중국 한무제(漢武帝)때 극선이란 인물이 조정에서 인재를 뽑을 때 선발되어 자사(刺史)라는 벼슬까지 고속 승진하자 武帝가 그를 불러놓고 물었다.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이때 극선이 대답하였다.
"계림지일지, 곤산지편옥" (桂林之一枝, 昆山之片玉/ 계수나무 숲속의 나뭇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옥돌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후로 '절계'(折桂/계림의 가지를 꺾다) 란 말은 과거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한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배신자 /부르터스와 가룟 유다■
에트 투 브르테 (Et tu Brute ! / 브루투스 너마저 ! )
B.C. 44년 3월 15일.
씨이저(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조각상 아래서 양아들같은 심복 브루투스에게 23군데를 찔려서 죽었다.
이후 황제체제로 바뀌어져 씨이저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황제가 되자 존칭어 호칭 '아우구스투스' 라고 불렀다.
줄리어스 씨이저의 '벽돌같은 로마' 가 아우구스투스의 '대리석같은 로마' 로 변해갔다.
아우구스투스가 77세로 죽자 " 우리에게 다시 옥타비아누스를 보내주소서 !" 란 요청이 비등했다.
3년동안 동고동락하며 사제지간으로 지냈건만 은 30량을 받고 스승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도 만고의 배신자로 취급되고 있다.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국처럼 달콤하다."
* 평화주의자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에 대해 무저항, 불복종, 비폭력으로 경제 독립, 물산 장려를 추진하다가 과격한 힌두교인에게 암살당했다.
그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났다
사후에 그가 남긴 재산은
손때 묻은 물레와 / 낡은 담요와 수건 몇장/ 찌그러진 밥그릇과 양젖을 담는 빈 깡통 / 값나가지 않는 허접스런 몇가지 집기들.
■ 밥 먹는 자녀에게/이현주 ■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거여.
■ 직업 선택의 십계명/거창고 ■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곳을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 드는 곳엔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변두리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절대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 없다. 의심하지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 경남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교장의 철학)
* 나의 모교인 大建中·高等學校의 교훈은.
'선으로 이기자' (以善勝之 / 성경 로마서 12: 21 )이다. 충남 논산에 있다.
가톨릭 교회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바티칸 성직자성 장관)과 김홍신 작가를 길러낸 사학이다
■제 577돌 한글날■
10월 9일(한글날)에 <훈민정음> 복간본(해례본/언해본)이 출간된다.
해례본은 1443년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며 창제 원리와 뜻, 문자 표기법 등을 한문으로 풀어쓴 해설서요, 언해본은 세종이 저술한 <정음/正音> 편의 서문 등을 우리말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쓰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바로잡아야 한다.
국어사전으로는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1857년부터 71년에 걸쳐 1,000명 이상의 학자가 동원돼 1928년 초판이 완성됐다.
실제 문학작품이나 신문 기사에서 뽑아온 다양한 용례가 가장 큰 장점이다.
해당 단어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려면 예문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
또 4,000여만 부가 팔린 일본의 <신메이카이/新明解 사전> 의 뜻풀이도 좋은 모델이다. 개성이 넘치는 표현으로 듣는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단어의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애' 에 대한 일본어 사전의 풀이를 보자.
"특정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고양된 기분으로 둘만 함께 있고 싶고 정신적인 일체감을 나누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육체적인 일체감도 얻고 싶지만 항상 이루어지지는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사로잡히거나 드물게 이루어져서 환희하는 상태에 몸을 두는 것이다."
'연애'에 대해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이라고만 풀이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표준국어대사전>도 수록 어휘의 량보다 국어 발전을 위한 실제 내용을 보강해서 개정해야 할 것이다.
제 577돌 한글날을 맞아 우리 모두 한글 사랑과 국어발전에 더욱 노력하면 좋겠다.(박일환 시인)
* 말과 글은 그 나라의 혼과 정신이니 더욱 갈고 다듬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