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생활에 있어서 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숙이 우리 생활에 자리
잡고 있다. 어디를 가든지 다방이 군데군데 있고 건물마다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어 그 야말로 차문화가 역사상 유래 없이 우리 생활에 꽃 피우고 있다.
각 민족마다 기호에 맞는 차를 음료수 마시며 나름대로의 차문화가 형성되어
왔고 또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차라 하면 어디까지나
차나무에서 자란 잎을 말하는 것이다. 같은 녹차라도 잎을 딴 계절에 따라 춘차와
하차 그리고 추차로 나뉘는 데 일반적으로 봄에 잎을 딴 춘차가 더 맛이 좋다고
한다. 또한 잎을 말리는 방법에 따라 증기로 쪄서 말리는 찜차와 볶아서 말리는
덖음차로 나뉜다. 찜차는 주로 일본 사람들이 즐기는 방법이고 덖음차는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많이 이용된다. 내 개인적인 기호로서는 덖음차가 다소
구수한 향이 나는 듯 하다. 이밖에도 녹차를 반 발효시킨 우롱차가 있고 완전 발효
시킨 홍차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영국인들이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인들이
녹차를 마시는 것을 보고 그 녹차를 자기네 나라로 운반하던중 배에서 녹차잎들이
발효를 해서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마시게 된것이 홍차의 기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립튼'등 굴지의 회사들의 세계의 홍차시장을 거의 석권하고
있다.
차를 우려내는 방법은 70-80도 정도의 물에서 1-2분 정도 우려내면 된다. 차가
고급일수록 예를 들면 작설차(까치의 혓바닥을 닮았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짐)의
경우는 70도의 낮은 온도에서 우려내고 다소 질이 떨어지는 차 일수록 높은
온도에서 우려내야 한다. 우롱차의 경우는 약간 더 높은 온도인 90도 정도의
물에서 우려내야 제맛이 나고 홍차의 경우는 그보다 더 높은 95도 정도의 물에서
우려내는 것이 좋지만, 개인의 입맛에 따라 온도와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차나무에 원산지에 대한 학설은 많지만 가장 확실한 곳은 티벳고원 동부의
중국의 운남성과 사천성 일대로서 이곳에서는 기원전 2,700년 경부터 원숭이로
하여금 차나무 잎을 따게 했을 정도로 잎이 크고 키가 큰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다. 한의의 원조 중국의 신농은 자기 자신에게 직접 실험하여 70여종의 독을
차나무 잎으로 하여금 해독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중국의 육우는
다경을 저술하여 차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고귀하게 하였을 뿐아니라 중국 차
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중국에서 이렇듯 차가 발달하게 된 것은 그들의
식성이 주로 돼지고기와 같은 고지방을 섭취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황하와 같이
강의 물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국지에 보면 유비가 어머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차를 구해드린것을 보면 차는
역시 옛날부터 고귀한 음식이었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리하여 다도(茶道)란
것이 생겨났고 차한잔을 마셔도 선인들은 깊은 자연의 정기를 마셨고 몸과 마음을
정화시켰다.
명절날 모시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한다. 제사는 그 집안에서 마련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조상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따라서 차례라는 이 말은 차가
조상에게 바치는 최고의 음식물이란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제사뿐만 아니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 조상들은 혼인에
있어서도 역시 차를 귀중품으로 다루었다. 즉 약혼이 성립되면 양가가 서로
봉차라는 이름으로 차를 사돈댁에 선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왜
차를 그처럼 귀중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 하나가
삼국유사의 한 대목에서 얻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경덕왕이 "찬기파랑가"의 작자 충담선사를 만나 안민가를
짓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그날은 마침 제비가 강남에서 돌아오는 삼월 삼짇날이었다. 경덕왕은 다구
한벌이 든 행통을 매고 남산 쪽에서 내려오는 충담에게 어디서 오는길이냐고 묻자,
"예, 저는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 이면 남산의 미륵 부처님께 차를 달여
드립니다. 오늘도 그러고 오는 길입니다." 라는 대답을 들은 왕은 자기도
차한잔을 청해 마셨는 데 그맛이 향기로 왔다] 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단군 초기부터 조선말까지 우리의 토산차인 백산차가 있었다.
이것은 장백산 즉 지금의 백두산에서 나던 차이다. 그후 신라 흥덕왕 3년에 당시
견당대사였던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파종하면서
비로소 차나무 재배가 성행하였다.
차가 이렇게 귀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우선 차엽 성분중에 비타민을
비롯하여 tanine, nitrogen, protein이 함유되어 있어 각종 작용과 항암 성분
(특히 전립선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최근에 발표되었다)과 소염 성분이
들어있어 이뇨, 강심, 해독, 피로회복등의 약리작용 뿐만 아니라, 차나무의 종자는
화장용과 식용으로도 이용되고 있고, 프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은 구강건강에
좋다하여 일부 껌제품에 함유 되긴도 하며, 종자의 착유박은 비료나 가축의 사료
또는 비누재료로도 사용되기도 하는 등의 이용가치가 큰 식물이다. 그리고 차를
우려내고 오래 놓아 두면 그릇 바닥에 침전물이 보이는데 주로 탄닌 성분과 단백질
성분들이 중금속과 결합하여 바닥에 가라 앉은 것이니, 만일 어느 지역의 물이
다소 많은 이물질을 함유하고 있을 경우 녹차를 많들어 보리차처럼 냉장고에 두고
음료수로 대용하면 상당히 물맛이 좋아진다.
이러한 성분적 효능 외에도 차는 산속의 이슬과 정기를 받고 자란 것이므로
우리의 심신을 맑게 해 준다. 일찍이 우리선인들중에도 차를 무척 사랑했던
분들이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며 차를 즐기는
민족은 흥한다고 할 정도로 술은 마음을 흐리게 하고 차는 마음을 맑게 해준다는
뜻의 명언을 남기 셨다.
옛날 사람들은 혼자 있고 싶으면 산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곳에서
세상을 잊고 자연의 언어를 들으며 바위틈에서 샘솟는 약수를 마시며 명상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오늘날은 혼자 있고 싶어도 갈곳이 없고 자연과
벗삼기란 더욱 힘들다. 몸과 마음은 물질 문명에 황폐화되어 가고 더욱더 강한
자극과 난잡한 소리에 우리의 자제력을 잃고 언제나 붕떠서 이리저리 유행이란
강물에 흘러간다. 디스코 텍에 가서 요란한 음악에 몸을 흔들고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셔야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
마음의 평온은 고요함 속에서 일체의 잡념을 끊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을 벗
삼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 생활에서는 구하기가 어렵다. 그럴수록 나는 차에
대한 고마움이 절실하다. 차의 그윽한 향기는 깊은 산 속의 이끼냄새를
연상케하고 그 맛은 바위틈의 샘물을 느끼게 한다.
나는 다도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때론 국이 없을때 차에다 밥을 말아 먹을
정도로 차를 좋아할 뿐이다. 그리고 선인들의 경지처럼 차의 깊은 맛을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차를 마심으로써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그 구수하고 비릿한
맛에 근심 걱정을 잊어 버리고 자유로와 질수 있는 명약이라고 생각한다.
커피와 같은 수입차가 판을 치는 요즘세상, '전통찻집'에나 가야 녹차를 구경할수 요즘,
가을에 단풍이 붉게 타는 까닭은 인간들로 하여금 단풍처럼 붉게 마음을 태우라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라는 말을 생각하며 깊은 명상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싶은
분들에게 차 한 잔을 권하고 싶다.
첫댓글 ()()()
미소님 !! 차는 큰사발에다 우려내서 뜨거울대는 음미하며 조금씩 마시고 식어지면 벌컥벌컥 숭늉 마시듯해야 제맛이 나는것 같은데요....@@
茶잎에는 원래 독이 강해서 아홉번을 덖어야 되고 시중에는 그렇지 않은것도 나돈다고 합니다. 녹차는 정신을 맑힐뿐 아니라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그만이라는군요 茶스님에게서 들었읍니다().
연꽃님 // 나의 마음의 독은 코브라의 독보다 강해서 독이란 글이 뚫고 지나갈길이 없는데요..하얀연꽃님이 화담을 처버리듯 이 우공을 시험에 빠뜨려 보시면~~~ 아휴~~ 독하신 분이네./...ㅎㅎㅎㅎㅎㅋㅋㅎㅎㅋㅋㅋ
아홉번 마음..茶잎처럼 덕끄시면, 愚公님 왕찻잔에 달빛이 어리어 비추이리 ㅎㅎㅎㅎㅎ....
그런데 그녹차잎을 정말로 아홉번 덖는거 맞나요?...그러면 다 타버릴것 같은데...@@
덖는거 모르시남.. 덖어서 비비고...아홉번을 그렇게..@@ 입장 난처하네요.. 우군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