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 도전 가능
쉴 땐 뭐하지 골프 인사이드
“우승해도 누가 축하할까요?” 뜨거운 윤이나, 싸늘한 동료
카드 발행 일시2024.06.26
에디터
성호준
골프 인사이드
관심
6m 버디 퍼트는 홀 바로 옆에 멈췄다. 관중의 탄식이 나왔다. 윤이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홀쪽으로 걸어가 퍼터를 움직였다. 퍼터에 볼이 닿지 않았다. 윤이나는 다시 볼을 쳐 홀에 넣었다.
지난 4월 20일. KLPGA 투어 넥센 세이트나인 마스터즈 2라운드 2번 홀에서 일어난 일이다. 파 퍼트 거리는 10㎝ 정도에 불과했다. 갤러리들은 모두 윤이나가 아쉽게 버디를 놓쳐 파를 했다고 생각했다. 윤이나도 그랬다.
그러나 경기위원회는 파가 아니라 보기라고 했다. 볼을 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스윙했기 때문에 2번 홀 그린에서의 헛스윙도 타수로 계산해야 한다는 거였다. 윤이나는 “바람에 균형을 잃어 스윙처럼 보였을 뿐이지 볼을 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윤이나. 사진 KLPGT
KLPGA 조정이 치프 레프리는 “당시 윤이나 헛스윙을 보고 여러 곳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몇몇 선수와 선수분과위원에서도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윤이나가 경기하는 동안 동영상을 보고 검토해 스윙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윤이나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윤이나는 스트로크를 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가 결국 이를 인정했다. 윤이나의 2번 홀 스코어는 파가 아니라 보기가 됐다.
뜨거운 윤이나의 여름
윤이나의 상승세가 뜨겁다. 윤이나는 5월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했고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4강에 올랐다. 두산 매치 준결승 이예원과의 경기 순서 논란 이후 주춤하는 듯하더니 최근 벌어진 2경기(한국여자오픈,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에서 다시 우승 경쟁을 했다.
특히 BC카드-한경에서는 경기 막판 2타 차 선두를 달려 우승 문턱까지 갔다. 연장전에서는 두 번이나 버디 퍼트가 홀을 맞고 나오는 등 불운했다. 이 추세로 보면 곧 우승이 나올 것 같다. 게다가 윤이나는 여름에 강했다. 신인이던 2022년에도 여름에 열린 BC카드-한경 3위, 맥콜-모나피크 2위, 에버콜라겐 우승을 기록했다. 날은 뜨거워지고 있다.
23일 BC카드-한경이 열린 포천힐스 골프장에 윤이나를 응원하는 팬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우승자인 박현경은 “최종일 다른 조였는데도 팬들의 함성 소리로 윤이나가 버디를 몇 개나 잡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매니지먼트사의 한 간부는 “선수들이나 관계자들이 윤이나를 보는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고 했다. 또 다른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프로암 등에서 선수들이 윤이나와 말을 섞지 않아 분위기가 썰렁하다. 실제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윤이나가 우승했을 경우 아무도 축하해 주러 나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이나. 사진 KLPGT
“룰 관련 문제 너무 잦아”
선수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아 징계를 받고, 징계를 감면받아 조기 복귀한 윤이나에게 룰 관련 사건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다. 윤이나는 4월 넥센-세인트나인과 5월 두산 매치 플레이에서 룰 관련 문제가 있었다. 3개월 사이에 2건이다.
2022년 한국여자오픈 스코어카드 오기까지 포함하면 윤이나는 프로에서 활동한 7개월 동안 3건의 룰 사건이 있었다. 선수 출신 협회 간부는 “룰 문제가 있었으면 징계받는 동안 규칙 공부를 제대로 하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나 한 규칙 전문가는 “윤이나가 골프 룰을 모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규칙을 매우 잘 아는 선수”라고 했다. 그는 2022년 7월 대보하우스디 오픈 구제 요청 사건을 예를 들었다. 경사지 나무 옆이라 스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윤이나는 경기위원에게 “왼손 스윙으로 휘어서 치려 하는데 비구선에 중계탑이 있으니 무벌타 구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문가는 “왼손 스윙 구제 요청은 다들 할 수 있지만 왼손으로 휘어서 치겠으니 구제해 달라는 건 룰을 꽤 잘 아는 선수들만 할 수 있는 얘기”라고 했다.
만약 윤이나가 규칙에 정통하다면
이 전문가 말대로 윤이나가 규칙을 잘 안다면 기존 규칙 사건들을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순서를 어긴 사건은 다들 윤이나가 규칙을 모르거나 헷갈려서 그런 것으로 판단했다. 윤이나가 룰을 잘 안다면 먼저 홀 아웃해 파퍼트를 남긴 상대를 압박하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매치플레이 경기 순서 위반은 그리 중요한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헛스윙 사건은 스코어와 관계된 거라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골프를 전혀 안 해본 어린아이도 실수하지 않을 탭인을 넣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너무나 쉬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치다 실수가 나온다. 프로 경기에서도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다. 주로 버디 퍼트가 아깝게 빠져 실망감 속에 대충 스트로크할 때다. 이는 스윙이고 당연히 한 타로 친다.
1983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헤일 어윈이 그 한 타로 우승을 놓쳤다. 어윈은 “스트로크를 했는데 볼을 맞히지 못했다”고 동반 경기자들에게 곧바로 얘기했다. 렉시 톰슨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톰슨도 군말 없이 헛스윙 한 타를 더한 스코어카드를 냈다.
윤이나는 처음엔 헛스윙 스트로크를 포함시키지 않으려 했다.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공을 치려 한 게 아니고 바람이 불어 균형을 잃었다”고 하기도 했고, “스트로크하려 한 건 맞지만 치는 도중 공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아 손을 뺐다”고도 했다. 스트로크 중이라도 칠 의사를 철회하면 스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규정을 이용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이나의 스윙은 중간에 생각을 바꾸기엔 너무나 짧은 스윙이어서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윤이나가 공을 치려 했다고 본다. 경기위원회도 그렇게 판단했다. 기자가 동영상을 보여준 사람 모두 윤이나가 공을 칠 의도가 있었다고 했다. 단 그중 일부는 “치려고 했더라도 공을 안 건드렸으니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일반 스윙도 아니고 퍼팅인데 뭐가 그리 중요한가”라고 했다.
골프 규칙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명랑 골퍼가 아니고 프로선수라면 이 규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윤이나도 모를 리 없다.
※윤이나의 2번 홀 퍼트 헛스윙 장면. 바로 시작되지 않을 땐 아래 유튜브 동영상의 2분30초 지점을 확인하세요.
또 다른 스코어카드 오기 사건 생길 뻔
만약 스코어카드를 제출한 후 이 일이 불거졌다면 어땠을까. 벌타인지 몰랐을 경우엔 스코어카드 제출 후라도 벌타만 부과하면 되지만, 윤이나 헛스윙 사건의 경우 한 타를 빼먹은 거라 스코어카드 오기 실격 사안이 된다.
2022년 윤이나의 한국오픈 사건은 알면서도 틀린 스코어카드에 사인을 한 ‘고의’ 오기 사건이다. 그래서 엄한 징계를 받았다. 헛스윙 스트로크 누락 사건이 생겼다면 고의일까 아닐까. 윤이나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KLPGA 조정이 치프 레프리는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와 경기위원회가 미리 알고 대비하고 있다가 윤이나가 스코어카드에 사인하기 전에 알려준 게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기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의 판명 여부와 상관없이 스코어카드 오기 사건이 생기면 윤이나의 선수 생명이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일어난 대회는 윤이나가 룰 관련 위반으로 징계를 감면받아 복귀한 첫 달, 세 번째 경기였다.
헛스윙 사건을 감안하면 두산 매치에서 이예원이 순서를 어긴 윤이나에게 다시 치라고 한 것도 이해가 간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순서 위반 같은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클레임을 거는 게 인지상정이다.
윤이나에 대해 미심쩍은 것들
윤이나는 2022년 한국여자오픈 고의 오기 사건 이후 최고의 골프를 했다. 2등, 3등, 우승을 했다. 불안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어떻게 이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윤이나 측은 지난해 “대한골프협회에 자진신고한 후 마음이 편해져 우승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따져보니 자진신고한 건 윤이나가 2등을 하고 3위를 하고 에버콜라겐 대회 1, 2라운드에서 65타와 68타를 친 후였다. 신고 후 잘 쳤다기보다는 잘 치는 동안 신고했고, 이어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2022년 7월 17일 열린 에버콜라겐 퀸즈크라운에서 우승한 윤이나. 사진 KLPGA
외롭게 싸우는 윤이나의 모습은 안쓰럽다. 한 번 유혹을 이기지 못한 어리고 유망한 선수에게 부과된 골프 규칙이 너무 과하다는 주장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런 윤이나를 돕고 싶어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도 충분히 알 것 같다.
그러나 윤이나의 스코어카드 고의 오기 사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골프의 본질인 정직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헛스윙 사건 같은 것들이 일어난다면 윤이나가 아무리 많이 우승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복잡해질 것이다.
요즘 경기를 보면 윤이나는 세계 랭킹 1위에 오를 자질이 있는 것 같다. 윤이나를 응원하고 싶다. 그러나 진정 골퍼로 성공하려면 실력에 앞서 동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동료 선수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이에 앞서 골프의 정신과 이를 구현하는 규칙을 존경해야 한다.
윤이나가 징계 감면을 받은 직후 기자가 쓴 칼럼에 썼던 문장을 다시 한 번 쓴다.
골프에서는 스코어를 속이는 등의 치팅(cheating)을 주홍글씨와 연결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에서 혼외 자식을 낳은 헤스터 프린이 평생 달고 다닌 그 주홍글씨다. 헤스터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도와 존경을 받았다. 헤스터가 달고 있던 주홍글씨의 A는 Adultery(간음)의 약자인데 사람들은 그 A를 능력 있는(Able)으로, 나아가서는 천사(Angel)로 인식하게 됐다.
에디터
성호준
관심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8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