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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때에 - 헤롯이 세례 요한을 처형시킨 A.D. 39년 이후이며, 갈릴리 전도의 후반기가 시작되는 때로 예수와 반대자들과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가는 시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수의 선구자로서, 구속사적으로는 구약의 종말과 신약의 출발을 증언하기 위하여 특별히 부름받은 세례요한은 세례 행위와 예수에 따른 메시아의 등의 직접적 방법으로
선구자의 사명을 감당하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삶을 예표하였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의 삶과 죽음은 그 전체가 예수의 모형이었다. 즉 그의 투옥을 통해서 예수의 수난의 삶이, 그리고 그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예표되었다.
한편 이 세례 요한의 죽음을 기점으로해서 예수의 사역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 예수께서 직접 당신의 선구자라고 지칭하였다. 요한의 죽음 이후, 즉 의로운 말을 외치다가 세상 권력자에게 당하는 죽음에서 조차 당신의 예표의 역할을 한 요한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예수는 본격적으로 스스로 당신이 메시야이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수차의 수난 예고를 하시는 등 당신의 메시야직의 절정인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시게 된다. (2) 당시 팔레스틴 북부, 즉 헤롯 안디바스의 관할 지역은 물론 전 유대 땅에서 가장 큰 사회.종교적 이슈의 주제이던
세례 요한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예수 한사람에게 전 사회적 억압에 시달리던 일반 대중들은 예수에게 정치적인 기대를, 주로 정치 기득권층은 예수에게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1),(2)의 사실을 종합래 볼 때, 예수는 전 구속사적 관점에서 사역을 행하고 미래를 준비하셨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의 행위의 참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부단히 자신들만의 편협한 시각으로 예수를 오해하고 있었다. 이런 오해는 예수 부활 이후에야 비로소 해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분봉왕 헤롯 - 여기서 분봉왕(테트라아르케스)이란 '네 개로 이뤄진 한 벌'을 뜻하는 '테트라스'와 '통치'를 뜻하는 '아케르'의 합성어로 문자적인 뜻은 '한 나라의 1/4을 통치하는 자'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아 로마의 정복지역의 한 부분을 통치하는 괴뢰 정부의 왕을 가리킨다.
본문의 헤롯은 헤롯대왕이 죽은 B. C. 4년 부터 A. D. 39년까지 네 개의 통치지역으로 나뉜 유대 땅 가운데서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렸던 헤롯 안티파스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주무대로 활동하셨던 세례 요한 및 예수와 관계가 깊었던 사람으로, 예수로부터는 그의 교활하고 간사한 성품 때문에 '여우'라고 불리우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그에게 심문(審問)을 받으심으로써 그는 세례 요한 및 예수의 처형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되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 막 6:14에 의하면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 것'이며, 눅 9:7에 의하면 예수의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 헤롯에게 보고가 된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마가와 누가의 두 복음서에서의 예수에 대한 소문은 모두 그의 '제사 파송'과 관련된 것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러나 대략 A.D. 29년경, 즉 아무리 빨리 잡는다해도 주께서 죽기 1년전에 있었던 제자들의 전도 파송의 결과, 제자들이 행한 사역과 능력에 의해서 예수에 관한 소문이 더욱더 멀리 퍼져나갔다고
하더라도 헤롯이 지금 처음으로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일년 이상 헤롯의 통치지역인 갈릴리에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이적을 행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롯은 갈릴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주로 세례 요한을 가두어 놓았던 베레아의 마케루스 궁전에 있었거나
또는 사치와 향락에 심취해 있었으므로) 갈릴리 지방에서는 그가 예수에 관해서 가장 나중에 알게된 사람 중에 속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그의 신하들이 예수의 소문에 관해 언급하고 그 일을 문제삼으려고 하는 일은 예수의 사역이 예수의 진의와는
달리 그들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정의와 진리는 그것이 굳이 불의와 비진리를 정면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해도 물과 기름이 서로 갈라지듯이 서로 서로를 밀어내기 마련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마 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 누가는 이 부분에 대해 먼저 신하 중 몇몇이 보고하고 헤롯이 곧 그 사실을 거부하는 듯한 인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에 비해 마가는 헤롯이 신하들의 말에 동조한 것으로 기술했다 아마 이러한 차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튼 심경의 변화를 표현한 것으로,
누가는 헤롯이 신하의 말을 듣고 난 즉시 일어난 상태를, 마태와 마가는 시간이 조금 더 경과한 뒤에 헤롯의 감정이 가라일은 후 헤롯이 예수를 세례 요한으로 판단할 때의 일을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세례 요한이라 - 헤롯이 예수를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으로 오해한 원인은 (1) 그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2) 예수의 사역과 세례요한의 사역에 있어서 유사점, 곧 설교에 있어서의 회개 촉구와 하나님 나라 도래의 임박성 강조, 유대 교권주의자들에 대한 책망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사실 헤롯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예수를 부활한 세례 요한으로 이해는 예수를 유일무이한 메시야로 고백한 제자들의 신앙고백과는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 이러한 결론을 내린 사실에서 적어도 헤롯은 미신적이며 절충적인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바리새적인 부활관에 영향을 받은 듯, 자신이 살해한 요한이 부활하여 죽기 전보다 더욱 강한 모습으로 행동한다는 미신적 사고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때문에 그는 훗날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하는데도 묵시적 동조를 하게 된다. 한편 유대인들의 부활관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정립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구약 시대에도 이미 부활사상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몇몇 구절들이 있다. 그러나 부활사상이 훨씬 다양해지고 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신구약 중간시기를 거친 신약 시대였을 것이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신앙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사상을 전면 부정하였다실로 여기서 죽은 자는 모두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신약의 가르침과 달리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할은 의로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차이점이 있다. 이런 권능이 - 세례 요한이 그의 사역 중에 비록 어떠한 표적도 해하지 않았다(요 10:41) 하더라도 헤롯의 이 말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그를 권세와 능력을 갗춘 자로, 즉 적어도 그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권위에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자 심지어 11:11에 묘사한대로 여자가 낳은 자, 즉 사람의 피를 받고 태어난 자 중 가장 큰자가 예수에 대한 선구자로서 예수의 메시야직에 대한 증거라는 점에서 마태는 이를 부각시킨 것 같다. 운동하는 도다 - '
운동하다'는 헬라어 '에네르게오'는 '활기를 돋우다','움직이다'의 의미인 말이다. 즉 무엇인가 초월적 힘이 한 인격에게 영감과 동력을 주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다른 초자연적인 힘(바알세불 등)늬 도움으로 행한다고 생각했듯이 헤롯도 죽은 세례 요한의 영(靈)이 예수 안에서 그 권능들을 행하게 생각하였다.
[마 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전에 - 이 말은 3-12절의 내용이 적어도 1, 2절의 시점 이전에 일어났던 일의 회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관복음 모두 이 헤롯의 공포와 세례 요한 살해의 사건을 12제자 파송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12제자 파송을 즈음하여 요한 살해가 있었고 12제자 파송으로 전국이 예수 소문으로 들끓자 헤롯이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동생 빌립 - 헤릇 빌립 세를 말한다. 헤롯 대왕과 대제사장의 딸 마리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헤로디아의 첫 남편이며 살로메의 부친이다. 한편 그와 헤롯 안티바스와의 관계는 이복 형제간이었다. 헤로디아의 일 - 여기 헤로디아는 헤롯 안티바스의 이복 형제인 '아리스토블루스'의 딸이었다.
그녀는 헤롯 빌립, 곧 자신의 삼촌과 결혼하여 살로메를 낳았다. 그런데 사바티안 왕인 아레타스의 딸과 이미 결혼한 바 있는 또다른 삼촌 헤롯 안티바스가 그녀를 유혹하여 남편 빌립을 버리고 자신과 불법적인 재혼을 하게 했다.그런 까닭으로 인해 아레타스의 딸은 본국으로 도망가게 되고 끝내 두 나라 간에 전쟁이 발발 하게 된다.
결국 안티바스는 이 전쟁에서 참패하게 된다. 유대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때가 세례 요한을 참수(斬首)시킨 바로 직후였기 때문에 이 참패의 원인을 의인의 살해로 말미암은 징벌이라고 간주한다. 한편 본문의 '헤로디아의 일'이란 헤롯 안티바스와 헤로디아의 불법적인 결혼에 대한 세례 요한의 책망을 가리킨다.
이 일로 인해서 헤로디아는 신약의 엘리야인 세례 요한을 미워하고 죽이고자 계획하였는데 이는 바알의 선지자를 죽인 일로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던 이세벧의 경우와 좋은 대조가 되는 사건이었다
옥에 가두었으니 - 요한은 유대인의 3대 요새 중의 하나인 마케루스에 있는 감옥에 갇히었다고 한다. 이곳은 헤롯과 헤로디아가 주로 거처하는 베레아의 남부를 방어하는 요새로, 표고 736m의 사해 동편 황량한 사정에 위치하고 있었다.
요한의 투옥 이후에 그의 제자들 중 일부는 별개의 집단으로 계속 존속하고 있었으며 그가 옥에 갇혀 있을 동안에는 계속해서 그의 지시를 받았던 것 같다
[마 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 헬라어 동사 '엘레겐은 과거 미완료시상으로서 '그가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이 헤롯을 직접 만나 그를 책망했다고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설교 하는 중에 혹은 세례를 주는 등의 여러 행위속에서 헤롯과 헤로디아의 불법적인 결혼에 대해 공공연히 비난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 '광야에서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세례 요한의 '고발 내용'이다. 요한이 헤롯을 책망한 것은 그가 첫번째 부인인 아라비아 왕 아레다의 딸을 버림으로써 외교적 갈등으로 인하여 나라의 정치적 위기를 몰고 온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방인 출신인 헤롯이 자신이 유대인이 되었음을 자처하면서도 유대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법에는 형제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은 그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 뿐이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첫 님편인 헤롯 빌립 1세는 여전히 살아있었으므로 그들은 간음죄를 범한 것이며, 또한 헤롯파 헤로디아는 삼촌과 조카 사이로 이들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것이 된다.
[마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 그 이유는 두 가지, 즉 (1) 도덕적 이유, 즉 요한이 자신의 비윤리성을 비난했기 때문에, (2) 정치적 이유, 세례 요한이 민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심각해졌기 때문에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문제는 상호 연결된 것으로서 나누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유대인 사가 요세푸스등은 정치적 이유에 초점을 두고, 성경 기자들은 비교적 전자에 기울어진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세례 요한에게 있어 헤롯가문이나 로마의 식민체제 등을 비판하는 것이 임무는 아니었다. 오히려 구속사적 입장에서 구약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인한 신약의 시작을 증언하는 것이 그의 주 임무였다.
또한 그가 세속 정치인에게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은 예수께서도 정치적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 것과 연결되어 다시 한 번 세례 요한이 예수의 선구자였음을 상기시켜 준다.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 막 6:20에서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하여 그를 처형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때 헤롯이 요한을 단번에 처형치 못한 것은 백성들의 폭동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전한다.
여하튼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제외한 민중의 태도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매우 호의(好意)적 인 것이었다. 그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와 지지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유대지도자들과 율법주의자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그들을 책망하였기 때문이다. (2) 적국인 로마를 등에 업고 민중들을 억압하고 있는 헤롯왕가를 비판하였기 때문이며,
(3) 예수께서도 그를 크게 칭찬하셨으므로 예수를 따른 자들도 세례 요한을 참선지자요, 예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선구자로서 인식하고,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했기 때문이며, (4) 헤롯이 세례 요한을 불법적으로 감금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와 동정으로 인해서 세례 요한의 인기가 더욱 더 고조되고 전국민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