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평범한 겨울입니다. 크게 춥지도 않았습니다. 평균 기온 정도라고 할까요? 새해는 그렇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벌써 한 주간이 가네요. 아마도 바쁜 건 정치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청룡열차 타는 기분 아닌가요? 오르락내리락, 햐 - 이거 기막힌 게임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당사자들도 그렇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말 오리무중입니다. 재밌네요. 도무지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의 게임 판입니다. 그나마 이제는 상대방 얼굴 할퀴는 작업은 조금 덜 하는 듯합니다. 할 줄 아는 것이 그 짓뿐이라는 인상을 준다면 어찌 믿고 나라를 맡기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이 코로나 사태가 좀 진정이 되는가, 기대가 됩니다. 확진자 만 명 가까이 다가갔다가 좀 주춤하여 5천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어서 천 명 이하로 떨어져서 정말 함께라도 살자 하고 싶습니다. 여기저기 방역패스, 새로운 신분증이 생겨서 귀찮은 과정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죽치고 집에만 붙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버텨왔는데 어서 마감하면 좋겠습니다. 겨울도 수자로는 거의 반이 되어가고 있으니 새로운 계절을 좀 더 가까이 느낍니다. 거실로 들어오는 해의 길이가 아직은 변화하는 것 같지 않지만 그것 역시 기다리겠지요. 걱정 없이 가는 건 오로지 시간뿐이니 말입니다.
좋은 날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꿈을 꾸자고요.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건강하게 또 한 주를 기다립니다. ㅎㅎ
2022년 1월 8일
쉽게 읽는 요한계시록 23
김종우 목사
다시 보는 생명나무.(계 22장)
우리는 크고 작은 예배 때마다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기도문의 뜻을 깨닫고 알고 기도하는 것인지, 그렇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기도문을 강해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소위 첫사랑에 빠졌을 때인 만큼 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목회자가 되어 저 자신이 성도들에게 강해해준 적도 있습니다. 솔직히 은혜만 받았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후에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분명 들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응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1 :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러니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고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기도하라 하신 것도 분명 그대로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 때 그 약속이 다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기도이며 우리의 기도입니다. 마 6 :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에 말한 ‘하늘’과 ‘땅’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영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육계(지상세계)입니다. 그러니 영계에서 이루어진 대로 여기 우리 사는 지상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해 와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영계에서 마귀가 쫓겨났듯이 마지막 때 마귀는 육계에서도 쫓겨나야 합니다. 우리가 요한이 본 것을 통하여 장차 그렇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20 : 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마귀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 나라가 임해 옵니다. 계 21 :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하나님은 이 지상에도 당신의 처소를 가지려 하십니다. 당신 백성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 지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구별된 곳을 정하십니다. 옛날 모세를 통해서는 하늘을 보여주시고 장막(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성소를 정하셨습니다. 출 25 : 8 - 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나중에 성전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이 들어옵니다.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이 변질되었습니다. 왕상 11 : 4 - 5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예수님 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 말씀이 아닌 사람의 계명이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떠나시고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진리 말씀은 왜곡되고 하나님 말씀이라 칭하지만 역시 사람의 계명과 세상의 말들이 차지합니다. 예수님이 일곱 사자를 보냈지만 그들 역시 변질됩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불러 회개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도록 합니다. 회개하고 악한 무리들과 싸워서 이기면 하늘의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계 2 - 3장) 그러나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에 심판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무리들과 마귀 세력을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계시록에서 보아온 3 가지 재앙이 그것입니다. 드디어 반역한 무리들과 마귀는 영원한 불못(지옥)에 던져집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하늘(장막)과 처음 땅(장막의 신자들)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 증거장막성전이 열립니다.(계 15 : 5) 이것이 계 21 : 1절의 ‘새 하늘 새 땅’입니다.
지상에 이루어진 이 새 성전(새 하늘 새 땅)에 우리가 기도하던 대로 하나님 나라가 하늘(영계)로부터 내려옵니다. 계 21 : 1 - 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리고 여기에 그동안 새 하늘 새 땅을 세우느라 수고한 하나님의 종들이 들어옵니다. 그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할 것입니다. 계 20 : 4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후 계속 백성을 만들 것입니다. 계 7 : 9 - 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그렇게 하여 하나님 백성이 늘어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갑니다. 천년 동안 지구촌 전체로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천년이 차면 이들을 다시 한 번 키질합니다. 참 신자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를 가립니다. 몇 번이고 말씀하지만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에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을 정리해봅니다. 계 21 :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2 :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요한이 또 봅니다. 계 22 : 1 - 5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다시 말합니다. 요한이 본 것은 이상(환상)입니다. 실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나무가, 나무가 아니고, 강이, 강이 아닙니다. 물이, 물이 아니지요. 실과가, 실과가 아닙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뜻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을 돌이키고자 동방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당신의 목자를 세우셨습니다. 잘 아는 아담입니다. 돕는 자까지 붙여주십니다. 하와입니다. 그리고 명하십니다. 창 1 :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경계시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다른 존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 2 : 8 - 9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말 그대로 생명을 얻습니다. 창 3 :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하노라 하시고” 그렇습니다.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영생합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습니다. 창 2 :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먹지 말라고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계의 말씀을 무시하고 뱀의 말을 따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다. 무엇이 죽었습니까? 아담의 영이 죽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생기)를 가졌을 때는 생령(살아있는 영)이 되었지만 뱀의 말을 먹으니 도로 흙(육체)이 되었습니다. 갈 3 :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그 백성에게 해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무엇일까요? 세상, 땅 이야기일까요, 하나님 당신이 계신 하늘 이야기일까요?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세상 이야기 듣고 싶습니까, 하늘 이야기 듣고 싶습니까? 세상 이야기는 교회에서 듣지 않아도 세상에서 매일 보고 듣고 읽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는 궁금하면 인터넷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까지 와서 구태여 세상 이야기 듣습니까? 정말 궁금한 것은 땅이 아니라 하늘 이야기입니다. 여태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이 궁금하지요. 우리의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궁금하고 그것이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녀들에게 당신 계신 그 나라를 이야기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성경 가지고 땅 이야기하는 목자가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목자입니다. 당신 것 가지고 딴 이야기하고 있으니 밉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그런 목자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 라고 하셨습니다.(요 8 : 44)
본래 우리는 하나님을 뵐 수가 없습니다. 옛날 모세도 하나님을 보여주십사 했을 때 모세가 죽을까봐 뒷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출 33 : 20 - 23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종들이 그 얼굴을 봅니다.(계 22 : 4) 이제 그들의 죄가 사하여졌으니 가능하지요. 이제부터는 세세토록 왕노릇합니다. 천년 동안 왕노릇하던 때도 지났기 때문이지요.(계 20 : 4)
여태 말하던 천사가 말합니다. 계 22 : 6 - 7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 책’은 바로 열린 계시의 말씀 곧 ‘계시록’을 말합니다.(계 10 : 8) 이제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져 그 실체가 나타났으니 그것을 보고 믿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초두에 이미 언급된 것이지요. 계 1 :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다시 말하지만 처음 받아서 읽는 자는 한 사람 요한입니다. 그가 천사에게서 받아 종들에게 전합니다. 계 10 : 10 - 11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듣는 자들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들은 그 말씀을 믿고 지키느냐 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속히 될 일’이라고 하면서 벌써 2천 년이 지났다고 조롱합니다. 뭘 모르는 말입니다. 계시록을 처음 시작할 때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계 1 :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다시 말하지만 계시록은 예언서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장래 일어날 사건입니다. 그 일어날 시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건이 일단 발생하면 이 계시록에 예언된 사건들은 지지부지 시간 끌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요한이 이상을 본 시점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오해하는 것입니다. 마 22 :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우리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이 여태 안내해준 천사에게 경배하려 하자 말립니다. 계 22 : 8 - 9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다시 이야기하지만 계시록의 사건들을 보고 듣는 자는 한 사람 요한입니다. 마지막 때도 한 사람, 목자가 나타나서 먼저 보고 들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 11 :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로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천국도 ‘겨자 씨 한 알’로 출발합니다. 마 13 : 31 -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조금 다른 비유이기는 하지만 함께 통용되어도 좋겠다 싶습니다. 말 2 : 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하나님은 무엇이든 또 얼마든지 많이 하실 수 있고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로 출발하십니다. 미약하게 시작하였으나 끝은 창대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생육, 번성, 충만하여 정복하고 다스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놀고먹으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일하라고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생육, 번성, 충만하여 정복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신 것입니다. 권세 부리라고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5 : 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하나님도 예수님도 일하시는데 쉬고 있을랍니까? 그것은 천년왕국이 지나서 안식할 때의 일입니다. 그 때까지는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계 22 : 10 - 12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예언의 말씀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는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그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받아 인을 떼어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먹입니다.(계 10장) 실제의 사건들이 하나하나 벌어집니다. 요한이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그리고 그것을 증거하지요. 그러니 이제는 인봉하지 말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12 - 15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우리가 앞에서 본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열두 문이 있다고(계 21 : 12)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21절) 성의 길은 맑은 정금이랍니다.(21절) 그래서 찬송가에도 ‘황금길’이라고 나옵니다. 천국, 하나님 나라에는 정말 황금길이 깔려 있을까요? 그렇게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도 이루려면 ‘새 하늘 새 땅’에도 황금으로 깔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엄청 벌어야 하겠습니다. ‘문’이 문인가요? 더구나 그 문들이 진주로 되어 있으니 역시 돈깨나 들어가겠습니다. 모두 ‘천국어’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작 말씀하셨습니다. 요 14 : 16 - 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계 22 :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이 사자가 바로 보혜사 성령이고 계 1 : 1절에서 예수님께 전달 받는 천사입니다. 그가 이 땅의 한 목자인 요한에게 줍니다.(계 10 : 9 - 10)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신부는 씨(말씀)를 받는 자입니다. 말씀을 가진 자가 성령으로 함께 하여 전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 이 ‘오라’하는 초대에 응하는 신자가 얼마나 될까요?
마지막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18 - 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거짓말은 하나님 말씀 가지고 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신 4 : 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 12 : 3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찌니라” 하나님 말씀 가지고 가감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잠 30 : 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모르면 가만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 싶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모두 기다립니다. 과연 정말 기다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구원과 천국, 영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함께 이렇게 기원할 것입니다. 계 22 : 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 날을 소망한다면 말씀을 깨닫고 알고 신앙해야 합니다. 그냥 ‘예수 천당’ 식으로 신앙해서는 안 됩니다. 히 6 : 1 - 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그러면 계 22 :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비단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바라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평화를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해서 전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이기도 합니다. 그 평화를 반대하거나 훼방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물리쳐야 비로소 바라는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그러자니 전쟁이 불가피합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한다니 이 무슨 모순입니까? 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어쩌지요? 살려두면 악을 자행하며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자에게 사랑을 표방하는 박애주의자는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까? 잡았어도 살려두어야 합니까? 물론 평생 가둬두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행여 탈옥한다면?
수용소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구호물품을 전해주고 봉사하려 왔는데 그만 적들(?)에게 사살당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잃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최전방으로 나가서 남들이 감히 이루지 못한 공로를 이룬 아들이 반역자로 오인되어 아군에게 사살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잃습니다. 이제 남은 가족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속된 말로 무슨 재미로 삽니까? 술에 절어 폐인이 되어갑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이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오랜 시간과 아픔이 따르지요.
‘옥스포드 공작’은 보좌관의 도움으로 그런 아픔을 이겨냅니다. 보좌관의 일침에 도전을 받은 것이지요. 죽은 아들이 지금의 아비 모습을 기꺼워하겠는가 그 말입니다. 아들의 이루고자 했던 과업을 자신이 행하고자 합니다. 심기일전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전쟁, 특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을 허무한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전쟁은 끝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누가 또는 무엇이 전쟁을 일으킵니까?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 욕심과 야망을 지닌 자들이 전쟁을 충동합니다. 자연히 나라를 들먹이며 젊은이들의 충성심을 자극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막을 알아야 하고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야 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과 그 속내를 알아채야 합니다. 현장에서 오가는 말들을 알아내야 하고 그들이 몰래 속삭이는 대화를 엿들어야 합니다. 또한 그들 서로 나누는 통신 내용을 밝혀내야 합니다. 고도로 훈련된 비밀요원이 있어야 하고 사용될 기구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20세기 전쟁은 암호로 이루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작전이나 전략을 미리 알아야 대책을 세워 상대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이고, 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며, 최소의 손실로 이기는 것이 차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
가장 얄미운 적은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소위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당사자도 놀랐지만 구경하던 우리도 놀랍니다. 아, 저 자가 그 놈이었구나 싶지요. 아무튼 대단한 악당입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강대국들을 쥐락펴락합니다. 그런 머리를 왜 세상의 선과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는지 아쉽습니다. 하기야 그런 마음이 처음부터 없는 것이지요. 그런 자의 이루고자 하는 평화는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평화입니다. 방해가 없으니 평화입니다. 오로지 자기의 안락만을 위한 평화. 한 사람, 또는 단 몇 사람을 위한 평화입니다. 그것을 위해 수많은 목숨이 제물로 바쳐져야 합니다. 엄청난 대가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 나라 전체를 그리고 국민 전체를 비극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아직 군주가 전권을 쥐고 있던 때는 그 비중이 훨씬 컸습니다. 옆에 직언하는 신하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군주의 권위에 눌립니다. 이 악의 화신이 바로 그 점을 이용합니다. 누구는 전쟁에 들어가게 하고 누구는 전쟁에서 빼고, 하는 짓을 자기 맘대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옥스퍼드 공작은 바로 그 악의 발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찾아갑니다. 그것을 위해 놀라운 첩보력을 구사합니다. 그 과정은 모두 생략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상만 해봐도 그것을 위해 얼마나 큰 자금력과 권력의 배경이 있어야 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1, 2편이 나왔습니다. 이번 것은 그 모두의 시작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이야기해줍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배경으로 깔려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좀 과장된 장면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그런 것은 별로 마음 쓰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개인의 아픔을 이겨내고 작지만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냅니다. 말 그대로 왕만큼이나 권력과 재력을 안고 있으니 가능하다 싶습니다. 영화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The King's Man)을 보았습니다.
<식스 센스>
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모를까요? 하기야 우리가 죽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려나봅니다. 왜 그럴까요? 몇몇 영화에서 본 것처럼 죽는 순간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처럼 행동합니다. 조금 후에 스스로 놀랍니다. 비로소 자신의 몸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몸을 다른 물체들이 그냥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부딪쳐서 다치든지 깨지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그냥 통과해버립니다. 자신이 이전의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모양은 보이는데 몸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것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이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의 상상입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를 따라가면 보통 세상에 그냥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분명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보통 종교에 따라 나뉩니다. 좋은 곳으로 갔다고 말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곳을 이야기할 때는 답을 피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주하고 싶은 대상일 때 쉽게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도 꽤나 많겠지요. 그럴지라도 죽음을 가까이 두게 되면 남에게 표현은 하지 않아도 생각은 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어디 갈지도 모르고 간다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따로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면 막연히 바라고 살 것입니다. 착하게 선하게 살면 어련히 좋은 곳으로 가겠지 하는 희망 말입니다. 살아가며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하여 듣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조합하여 나름대로의 희망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기는 종교를 가지고 살았다 해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막연히 두려워하며 떠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위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죽음은 과연 우리 인생들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죽음이 있기에 자신의 삶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더 책임을 져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 다음의 어떤 새로운 삶(?)을 만들 기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음이 있기에 사람이 인생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동 심리학자인 ‘말콤 크로우’ 박사는 주지사에게 공로상까지 받아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 기쁨을 안고 아내와 집에 돌아온 말콤은 집안에 낯선 침입자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래 전 자신에게 치료를 받던 환자임을 알게 됩니다. 낯선 방문객 ‘빈센트’는 말콤의 실패작임을 주지시키며 총격을 가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총으로 자결을 합니다. 사건 후 1년 반이 지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말콤은 8살 된 자폐환자 ‘콜’을 맡습니다. 정말 서먹한 관계에서 부단한 노력과 정성으로 콜과의 대화가 시작되고 이어집니다. 그리고 콜은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해줍니다. 죽은 사람이 보인다는 겁니다. 믿을 수가 없지요. 그러나 콜의 여러 가지 언행으로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말콤은 자기 일에 빠져서 아내와의 사이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결혼기념일까지 잊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챙기지 못합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에는 열중합니다. 아내로서는 매우 서운한 일이지요. 자기에게 주어야 할 마음이 거의 전부 고객(내담자)에게 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혼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말콤으로서는 시간을 할애하여 이것도 저것도 모두 챙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기야 열심과 성실을 다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용케 줄다리기를 잘하는 부부들이 있기는 합니다.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콤으로서는 속만 타는 일입니다.
어느 날은 모처럼 일찍 귀가했는데 아내가 젊은 남자와 헤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나중에 그 남자를 집 앞에서 또 봅니다. 아내와 헤어지고 자기 차를 타고 떠날 때 소리 지릅니다. 잠깐 보자고 말이지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튼 잽싸게 떠나버립니다. 이제 아내와 헤어져야 하는 때가 된 것인가 싶지요. 사실 뭐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합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자꾸 멀어져가는 느낌입니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갈팡질팡 하는 듯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콜과의 상담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서로가 만족스럽게 헤어집니다. 그런데 콜은 말콤의 상황을 잘 아는 듯 조언해줍니다. 아내의 잠든 옆에서 고백하고 떠나라고요.
콜의 엄마는 콜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자기 최면일지도 모르지만 혼자서 키우는 금쪽같은 자식입니다. 그런데 콜이 엄마의 과거를 이야기해줍니다. 놀라지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줍니다. 엄마의 응어리졌던 상처를 풀어줍니다. 콜은 산 자나 죽은 자에게 오히려 상담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매우 묘한 반전을 봅니다. 그리고 콜 역의 이 어린아이 연기가 정말 일품이지요.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를 보았습니다. 1999년 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