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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우니 절로 겨울에 먹는 음식이 생각난다. 이효석의 수필 <유경 식보>에는 겨울밤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 친구 집에 갔다가 먹은 ‘짠지밥’ 이야기가 나온다. 평양의 김치는 고추 양념을 진하게 하는 것과 엷게 하는 것이 있는데 엷게 한 김치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 바로 짠지밥이다.
‘다 두 칸밖에 안 되는 방에 각각 부인과 일가 아이들이 누워 있었던 까닭에 동무는 방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노대(露臺) 옆에 벌벌 떠는 우리들을 앉히고 부인을 깨워 일으키더니 대접한다는 것이 찬 김치에 만 밥, 소위 짠지밥이었던 것입니다. 겨울에 되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더니 찬 하늘 아래에서 벌벌 떨면서 먹은 김치의 맛은 취중행사였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황해도의 짠지밥은 ‘해주교반’으로 불리는데 ‘김치와 돼지고기를 썰어서 쌀에 섞어 지은 밥’으로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 음식이다. 지금 김치밥으로 불리는 음식과 조리 방식이 비슷하다.
짠지는 김장김치 가운데서도 무를 좀 짜게 담근 김치를 말하지만 위의 예에 보듯 평양을 비롯한 지방에서는 김장김치 전체를 일컫는 경우가 많았다. 남한에서는 경상도, 전라도와 충청도 일부가 이에 해당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의 김칫국은 물김치의 국물이다. 떡의 대표인 시루떡이나 백설기를 먹을 때는 물김치를 곁들여 많이 먹었다. 물론 떡을 한 입 물고 김치를 끓여서 만든 국인 김칫국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뜨거운 김칫국에는 밥이 훨씬 잘 어울린다.
경상도에서는 김치국밥을 ‘갱죽’, ‘갱시기’라고 부른다. 김장김치와 밥, 콩나물 등을 넣고 끓여서 먹는 음식으로 겨울철의 별미이다.
김치를 볶고 불린 쌀에 멸치국물을 부어 죽을 끓이다가 볶은 김치와 콩나물 등을 넣어서 죽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갱시기와 비슷하지만 과정으로 보면 김치죽이다.
보통 ‘평양식’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요즘 음식점의 김치말이밥은 짠지밥의 후손이 틀림없다.
집에서 김치말이밥을 만드는 방법은 대략 이렇다. 중간 줄기의 김치 이파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참기름과 깨소금, 설탕, 다진마늘로 양념하여 조물조물 주물러 놓는다. 멸치육수와 김치국물을 섞은 후 밥을 넣고 소금, 식초로 간을 잘 섞은 뒤에 오이채, 계란, 구운김 등을 고명으로 하여 내놓는다.
짠지밥과 다른 점은 냉장고에 멸치육수와 김치국물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치말이국수는 밥 대신 국수가 들어간다. 포인트는 참기름 몇 방울이다. 너무 많으면 느끼하지만 전혀 없으면 담백하다 못해 좀 허전하다.
요즘은 떡 먹을 일이 많지 않다. 이에 따라 김칫국을 미리 마시는 경우도 많이 줄어들었고 ‘떡 먹듯’ 거짓말을 주워 섬기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하지만 ‘떡 하나 더 줄 미운 놈’은 많으니 떡이며 짠지밥이 없어지지는 않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