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백리 세분의 자녀교육 ♧
우리는, 청렴 결백한 관리를 청백리라 호칭하며 그분들 존함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조선시대 초기 어수선 할 때 청백리의 표상...
이 세분이 없었다면 세종과 같은 대왕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감히 해본다.
지금 이 시대 세분의 삶을 비교 해 보면...
먼저, 황희 정승께서는 아들 셋 중에 한명의 아들이 주색잡기로 방탕한 짓을 해서 골치 거리였을 때 몇 번을 좋게 타일렀지만
고쳐지지 않아서...
하루는 밤늦은 시간까지 관복을 차려입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 고주망태가 돼서 들어오는 아들에게
“이제 들어오는 것입니까?”
그러자 아들은 깜짝 놀라며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께서,
“무릇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집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아니라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나 마찬가지가 되지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은 예의인즉, 저는 지금 손님을 맞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무릎을 꿇어 통곡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둘째, 맹사성 선생께서는 세종 초기에 이조판서였다.
그의 복장은 늘 허름하고, 낡은 차림이었다.
하루는 내를 건너가려고 짚신을 벗고, 옷을 걷어 올리는데, 한 젊은이가 맹사성에게
“제가 내를 건너야 하는데 제 옷이 물에 젖으면 안돼서 그러니 저를 업어다 건너에 내려 주면 10전을 드리겠다.”
맹사성은 그 젊은이를 업어다 내려 준 후
“어디를 가는데 좋은 옷을 입고 가는가?”
“제 부친이 맹사성 이조판서와 친구인데,
저의 관직을 부탁하러 부친의 서찰을 가지고 맹사성 어른을 뵈러갑니다.”
“내가 맹사성이다.
자네가 관직에 오를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부친에게 가서,
‘자식 인성교육이나 똑 바로 시켜서 관직에 보내라.’ 한다고 전해라.”
하고서는, 호되게 야단을 쳐서 보냈다 했다.
벗의 자식이지만 잘못을 지적하여 야단을 쳤고,
그 청년은 몇 년을 자숙하며 겸손을 깨달은 후, 말단 관직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세 번째로, 세종 초기 대사헌(검찰총장)과 판서를 역임한 정갑손 선생께서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셋째 아들 정오는 효성이 지극했고 문재가 빼어났다.
정갑손이 함길도(함경도의 옛 이름) 관찰사로 있을 때, 아들 오도 어느덧 훤칠한 대장부로 자라 있었다.
함경도 관찰사 재임 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에서 한 달 가량 머물다 함경도로 돌아와서, 밀린 서류를 점검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사이 치러진 향시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아들 '오'의 이름이 ‘장원 급제자’로 적혀 있었다.
향시는 지금의 도청격인 각 도의 관찰부에서 치르는 지방과거로, 향시에 합격하면
초시나 생원이 되어 한양에서 치르는 본 고사인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정갑손은 즉각 향시 출제위원들을 불러서 "정오의 합격을 취소하라." 명령했다.
출제와 채점을 했던 위원들은 “채점은 공정했고 장원 자격이 충분하다.”며 거세게 항변했지만, 정갑손의 태도는 꿈적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이곳 관찰사로 있는 한, 정오는 합격시킬 수 없소이다.”
그날 밤, 정갑손은 셋째 아들을 조용히 불러서
“오야, 나는 네가 함길도 향시쯤이야 장원을 하고도 남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들 ‘오’ 역시 미소로 답했다.
“네, 아버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후 ‘정오’는 경상도 외가로 잠시 내려갔고, 그곳 향시에서 장원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한양에서 치러진 과거에서 장원급제, 어사화를 꽂고 함길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청렴했던 정갑손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초가집에서 평생토록 무명 이불에 부들자리를 깔았고, 비단 이불 한번 덮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몰염치가 오히려 당당하게 호도되며,
당연지사로 여기는 즉물적 가치관이 횡행하는 혼란스러운 이 시대,
선현들의 검박했던 청백리 표상 세분의 올곧은 삶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담아서 새겨본 것이다.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여러분의 하루에 평화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옮긴 글
첫댓글 왜!
이 시대에는 청백리를 찾아볼수 없을까?
아마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겠지요.
3분 처럼 우리 주변에서 청백리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