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臺灣旅行>
2013-0202-0205
조카(명희와 권중균 博士) 내외의 권유로 약 30년 만에 대만여행을 했다.
중국 본토 여행이 불가능했던 시절에는 대만여행을 몇 번 다녀온 일이 있다.
1975년 10월10일 쌍십절 행사 때 처음 가 본 뒤에 '70년대 말과 '80년대 중반에도
대만에 갔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이 네 번째다.
'75년 처음 갔을 때는 당시 청와대에 출입하는 방송기자들을 대만 정부가
초정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KBS에서 나, MBC의 이득렬, TBC의 구박,
DBS의 박응칠, CBS의 김진기 등이 대만을 방문했다.
총통부 광장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에어쇼, 저녁의
휘황찬란한 불꽃놀이 등 쌍십절 경축행사를 참관 취재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쫒겨 오면서 본토에서 가져왔다는 엄청난 분량의
중국 보물과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고궁박물관! 그 고궁박물관을 돌아보고
중국역사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뛰어난 예술성과 정교함에 모두들 감탄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미세한 조각 작품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神品들이었다. 쌀알 한 톨에 새겨 넣었다는 수백자의 佛經과
야구공만한 상아(象牙)에 17겹의 투각(透刻), 투각 정 중앙에 신선 둘이
마주앉아서 바둑을 두는 신품(神品)을 보며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와 같은
神技를 부릴 수 있었을까?
무엇을 위하여 대(代)를 이어서 저 작업을 했을까?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원력(願力)은 무엇이었을까?...하는 궁금증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明 淸朝의 도기 자기 조각 작품들...역사적 의미와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고 하지만 가격으로 따져도 환산이 어려울 지경이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청나라 때 빚은 엷은 색 청자 접시 하나를 주면
지금의 고궁박물관보다 더 좋은 박물관을 지어주겠다는 미국 측의 제의를
거절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접시 하나에 수억 달라를 준다고 해도 팔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자존심과 문화유산에 대한 높은 긍지을 나타내는 일화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을 위한 환영 만찬석상에서 대만의 대표적인 방송사인
중국광파(中國廣播)사장이 "중국통일은 대만이 주도해서 中華思想으로의
통일을 이룩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했던 연설도 인상적이었다.
최근에도 중국과 대만이 양안(兩岸)문제로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는 기사를
대할 때마다 그 당시 방송사 사장의 확신에 차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계적인 규모의 호텔이라고 중국 측 안내자가 자랑하던 元山 大飯店의 위용도
인상 깊었고 베이투(北投)에서 받았던 특별 대접(?)인 미녀들의 라이브 누드쇼
관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과거 여행은 취재가 主였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이번 여행은
쫓기는 일 없이 느긋한데다가 일행 중에 80세 안팍 노인들이 네 분이나 있어서
어떻게 늙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묵시적(黙示的)으로 일깨워주는
기회도 됐다. 각기 특별한 이력(履歷)과 스토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생활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컴 도사(道士)로 불리우는 심윤근 할아버지는 군포지역 정보화 마을을 이끌어가며
컴퓨터 카페도 운영하고 전국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동호인 모임인
老클럽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여행하는 동안 수시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메모하며 카페에 올릴 기사를 취재하기에 바쁜 모습으로 老益壯을 과시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하신 오영은 할아버지, 해병대 영관장교를 퇴역한 뒤에는
외국 기관에 다니셨다는 현기도 할아버지, 88 서울 올림픽 때 문화체육부 국제국장으로서
대외 관계를 총괄하셨다는 류영우 할아버지 등은 모두 영어 일본어에
능통하고 중국어 대화에도 불편이 없어보였다.
이 분들은 모두 희수(喜壽)가 넘은 고령이지만 컴퓨터, 영어 일본어 중국어
배우기, 한 가지씩의 악기를 배우는 문화 복지회관의 단골 수강생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의 다양한 호기심과 탐구심 결코 젊은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는
여행 매너를 보며 고령의 노인들이라고 하는 분들의 수준에 깜짝 놀라고
이 나라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
둘째 날 일정이 끝난 뒤 조카 내외는 호텔방에서 노인들에게 양주를 대접해
드리겠다고 자청했다. 노인들은 흔쾌한 마음으로 응하셨다. 나도 명희와
權 博이 고마웠다. 셋째 날은 노인들께서 우리 일행을 방으로 초대해서
답례를 하시는 바람에 밤 12시가 넘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지에서
풍광(風光)을 보고 느낀 것보다 사람 사는 모습을 통해 느낀 것이 더 많은
여행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 沈 할아버지는 대만에서 찍은 사진을 편집해서
음악까지 넣은 간이 앨범을 내게 보내셨다. 역시 道士는 남다르다.
장호원 도월마을 이석희선생 글
(전 KBS 방송기자/ 보도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