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겪은 정예 예비군만 46만명… 이스라엘 강군의 비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나라 잃을 수 없다” 절박감에 똘똘 뭉쳐
노석조 기자
입력 2023.10.14. 03:00업데이트 2023.10.14. 10:44
이스라엘, 주민들에 총기 지급 - 12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북부 국경 인근의 한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이스라엘 주민들이 소총을 비롯한 무기를 지급받고 있다. 이날도 이스라엘 남쪽 가자지구와 북쪽 레바논, 시리아 국경 인근 등에서 로켓·미사일 공습과 교전이 이어지면서 양측 사망자가 2500명을 넘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이 지난 12일(현지 시각) 북부 국경 인근의 한 키부츠(공동거주농장)에서 주민들에게 소총 등 개인 화기를 지급하는 모습이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주민들은 지급 명단에 서명을 하고 군복 차림의 여군으로부터 소총과 함께 실탄이 가득 채워진 탄창을 받았다. 이들은 현역 군인 못지않은 전투 경험을 갖고 있어 실전 투입이 바로 가능한 ‘정예 예비군’들이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병역 의무를 마치고 예비역이 되는데, 필요할 경우 총기 취급 자격이 주어진다. 이들뿐 아니라 갓 입대한 열아홉 여군부터 반백의 중장년까지 자진해 군복을 입고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누가 돈을 주겠다거나 정부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도 해외 거주자들의 귀국 행렬이 줄을 잇는다.
◇정규군보다 더 정규군 같은 정예 예비군
이스라엘 군의 강점은 어느 때든 즉각 실전 투입이 가능한 정예 예비군을 총 46만명가량 두고 있다는 것이다. 현역의 2.5배 규모로, 이들은 20대 초반 전역 후에도 여성은 34세, 남성은 40~45세까지 예비군으로 연간 55일을 훈련한다. 전쟁이 잦다 보니 예비역 기간 실제 전쟁을 여러 차례 겪어 갓 입대한 현역병보다 노련하다. 2014년 ‘50일 전쟁’ 때도 하마스 점령지인 가자 지구(地區)에 지상 병력이 들어갈 때 선두에 서 분대를 진두지휘한 이들 상당수가 30·40대 예비군이었다. 가자 지구는 미로 같은 골목길이 많은데 예비역들은 이미 여러 번 다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자 지구가 처음인 20대 병력보다 ‘길눈’이 밝다고 한다.
그래픽=김성규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전쟁을 선포한 직후 예비군 30만명을 바로 소집한 것도 이들 대부분이 준비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군은 예비군이 정예군으로 유지되도록 연간 훈련도 자주 시키지만 각 지역 예비군 단위마다 창업 기회를 제공하는 등 각종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예비역은 총기 사용 허가증 발급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
◇나라 지키는 데 여자들도 앞장
이스라엘 군은 여자도 남자와 동일하게 병역의 의무를 다한다. 남자는 30개월 여자는 24개월로 복무 기간만 다를 뿐 전투부대에 배치되는 등 거의 똑 같은 수준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 이스라엘 군 병력은 간부·병사를 다 합쳐 18만명 수준인데 이 가운데 35%(약 6만3000명)가 여군이다. 여성 전투병은 2004년 50명 수준에 불과했지만 자원자가 꾸준히 늘어나 현재 2500명에 달한다. 간부를 제외한 전체 전투병 4만2000명의 6%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외 첩보부대, 해킹부대, 무인기 조종·교관 등 여러 병과와 부대에서 이스라엘 여군은 맹활약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여군 징병제는 여성들이 앞장서 이뤄냈다. 건국 당시 이스라엘 인구수는 지금(917만명)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80만명 수준이었다. 건국 선포 바로 다음 날부터 병력 30배가 넘는 아랍연합군과 싸워야 했던 상황에서 이스라엘 여성들은 군인이 되기를 자청했다. 1995년에 앨리 밀러란 여성이 ‘여성의 공군 조종훈련학교 진학을 허용해 달라’는 소를 제기해 승소함으로써 1998년 첫 여성 조종 졸업생이 배출됐다. 2004년에는 첫 혼성 최전방 전투부대 카라칼부대가 창설됐다. 여성의 군 복무 제도는 병력 수 등 전력 증가를 넘어 “모두가 함께 나라를 지킨다”는 안보 의식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또 나라 잃을 수 없다는 절박감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은 한 방문객이 나치에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야드바셈
강한 이스라엘 군의 뿌리에는 정치적으로 좌든 우든 출신 지역이 어디든, 피부색이 희든 검든 모두가 공유하는 국가관·역사관이 있다. 이스라엘 군은 ‘이스라엘 국민’이라는 세속적 정체성과 ‘유대인’이라는 종교적 정체성, 그리고 ‘하쇼아(홀로코스트·유대인대학살)’라는 역사적 정체성으로 무장해 있다. 같은 국민이라도 종교적 신앙, 역사적 의식이 여러 갈래로 나뉘거나 양분화된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3중으로 똘똘 뭉친 독특한 국민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로마 제국에 멸망당하고 2000년 가까이 ‘이방인’으로서 유럽과 아랍 전역에 흩어져 살다 옛 이스라엘 영토에 ‘유대인 국가’를 헌법에 새기며 세운 나라가 ‘현대 이스라엘’이다. 해외 이스라엘 국민뿐 아니라 국적은 미국·영국·독일·폴란드인데 ‘종교적 정체성’이 유대인인 이들까지 ‘이스라엘을 지키겠다’며 달려가는 것도 ‘나라를 또 잃을 순 없다’는 역사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치권이 이번에 ‘사법 파동’ ‘총리 비리’ 등 각종 이슈로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하마스 사태가 터지자 군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댄 것도 ‘안보가 무너지면 끝’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다.
마사다 요새 - 제1차 유대 로마 전쟁에서 유대인들이 최후의 항전을 펼친 마사다 요새 전경. 예루살렘 점령 이후에도 로마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의 유대인은 천혜의 절벽 요새 마사다에서 1만5000명의 로마군에 맞서 2년이나 버텼다. /대니 스턴펠드(Dany Sternfeld), 플리커(Flickr)
◇'동맹강화’ ‘자주국방’ 양축으로
미국 상하 양원 의원 약 100명이 지난 12일(현지시각) 저녁 국회의사당 앞에서 촛불 기도회를 열고 이스라엘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인이나 외교관, 모사드 요원들은 ‘밝은 곳을 혼자 걷는 것보다 어둡더라도 친구랑 걷는 게 낫다’라는 속담을 자주 이야기한다. 전쟁과 외교는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고대부터 예루살렘 등 요르단강 주변에서 왕국을 건설했지만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여러 외세의 침략을 받고 되찾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기원후 73년 저항군이 마사다 요새에서 끝까지 싸우다 자결하면서 로마 제국에 패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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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2차 대전 후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 당시 영국 도움을 받았고, 1953년 수에즈 운하 전쟁 전후로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뒤에는 유대인 커넥션 등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정치·군사·경제 등으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미국도 이스라엘을 중동 지역에서 사실상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이란 등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등 전략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동맹, 우방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안보의 다른 한축으로 자주국방력 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내수 시장이 작아 제조업이 거의 없다시피한 이스라엘은 이미 50년 전 ‘메르카바’ 탱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군사정찰위성 ‘오페크’, 저고도 방공시스템 ‘아이언돔’, 자폭 드론 ‘하피’ 같은 무기를 잇따라 만들어내는 등 자주 국방 정책을 추진해 왔다. 미국 몰래 핵무기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석조 기자·'강한이스라엘군대의 비밀(메디치 刊)’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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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Koreas correspondent & Author of "the Secret of Israel military forces(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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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쟁 겪은 정예 예비군만 46만명… 이스라엘 강군의 비결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