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빚진 게 죄? 일가족 동반 자살까지
<앵커 멘트>
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채 괴로워하며 사는 채무자들이 있습니다.
어젯 밤에도 빚 고민으로 50대 부부가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던데요
최근 빚 고민과 독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박진영 기자..
채무자들, 어느 정도로 빚 독촉에 시달리는 건가요?
<리포트>
네. 취재진이 만난 채무자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돈은 빌렸지만, 원금보다 몇 배는 많은 이자와, 빚을 갚으라는 협박까지 이중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요, 아무리 돈을 빌려줬다고 해도 채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이지만, 불법 빚 독촉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인지 함께 보시죠.
어제 한 장례식장에서는 40대 부부와 고등학생 딸 등 일가족 세 명의 장례가 함께 치뤄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틀 전 새벽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아버지 강 모씨가 갑자기 저수지로 차를 몰고 들어가면서 변을 당했는데요,
<인터뷰> 강씨 유가족: “저는 동생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죽을 줄 생각을 못했죠. 그렇다고 형한테 돈을 빌려달란 소리를 하기를 했나. 한번도 없었으니까…”
당시 혼자 간신히 빠져 나온 중학생 아들은 경찰조사에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면 사채업자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앞뒤 문은 잠겨 있었고 부모는 끝까지 안전벨트를 풀지 않았다는데요.
<인터뷰> 최윤호(충남 아산경찰서 온양지구대장): “차를 타자마자 너희들은 졸리면 자라. 저수지 가서 차를 세워놓고는 부부가 밖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하고 오더니 타고 가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여기 앞에서 보면 차문이 여기서 잠그면 다른 문은 안 열리게 돼 있잖아요.”
숨진 강씨 부부가 하던 식당을 찾아가 봤는데요. 가게는 보름 넘게 문이 닫힌 상태였습니다. 장사가 안 돼 일수돈을 끌어다 쓴 부부는 숨진 당일도 사채업자가 찾아왔을 정도로 빚독촉을 당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이웃 주민: “사채업자들이 물건값도 못 받고 하니까 받으러 오고... 왜냐면 우리가 앞집이니까 장사하는지 안 하는지 물어봐요. 그러면 영업할텐데 말해주고, 장사 안 하고 있으면 나는 요즘 못 만났다 그러면서 불이 켜지”면 알려달라고 말하죠. 오늘도 한 팀이 왔었는데...”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심했으면 아들딸까지 데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까요. 채무자들은 빚보다 무서운 게 바로 빚독촉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사채업자를 피해 5번 째 집을 옮긴 택시 기사 이씨. 이번에도 얼마나 갈 지 몰라 불안한데요. 빚독촉이 시작된 5년 전부터 사람답게 사는 건 포기했다고 합니다. 집에 오면 빚독촉 편지가 있나부터 확인하는데요.
<인터뷰> 이응점(5년째 채무자): “저번에 한 3-4달 전에 다른 집에 있다가 거기도 사채업자들이 찾아오고 그래서 옮겼어요. 애가 그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불안해하고 있어요. 또 거기다가 할 수 없이 잠은 자야되기 때문에 월세 10만원짜리 방에 3가족이 함께 있습니다.”
작은 가게를 꾸리다 빚을 얻기 시작한 이씨 부부는 3년 전 아들이 간질 증세를 보이면서 병원비를 대느라 사채까지 쓰게 됐는데요.
<인터뷰> 이응점(5년 째 채무자): “사채를 꺼내서 이리 막고 저리 막고 그러다 보니까 실제로는 돈은 옳게 써 보지도 못하고 빚만 한 5000만원 이상 늘어나게 됐습니다. 갚으려고 해도 잘 되지도 않습니다.”
갚아야 할 부채는 10군데가 넘지만 돈이 생기는 대로 5만원 10만원씩, 이자 정도만 겨우 내는 형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채업자들은 툭하면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폭행을 일삼았는데요.
<인터뷰> 이응점씨 부인(5년 째 채무자): “그런데 사채업자들이 길에서 개 취급을 하고 그렇게 나를 망신을 시키고, 사람을 감금을 시켜서 내가 그 길로 충격을 받아서 뭐 조그만 일만 있으면 불안해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고...”
빚쟁이들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몇 차례 경찰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 한번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는 이들 부부에게 희망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말입니다.
<인터뷰> 이응점(5년째 채무자): “진짜 죽고 싶은 마음인데요. 차라리 교도소 잡아 들어가서 1년이든 2년이든 살아서 깨끗이 살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너무 힘이 들어가지고 교도소에서 새 삶을 살고 싶습니다. 깨끗하게…”
누나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카드를 쓰다 자살한 이후 그 빚을 떠안은 지체 장애인 김씨. 지난 4년간 빚은 7천만원에서 1억 3천만원으로 불어났고, 빚독촉은 더 심해져만 갔다고 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형편에 빚독촉은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는데요.
<인터뷰> 김씨(4년 째 채무자): “아침에 일어나서 고통 당할 것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요. 하루를 어떻게 힘들게 살아나갈까. 물론 먹고 사는 건 말할 것 도 없지만 그 사람들에게 당할 것 생각하니까 하루 사는 게 너무 끔찍하다는 겁니다. 하루 사는 게 24시간이 너무 힘들어요.”
김씨의 휴대 전화에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협박 메시지들이 찍혀 있는데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에, 집까지 찾아오는 추심원들은 자신을 사람 취급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씨(4년 째 채무자): “욕이나 모욕이라는 것은 비일비재하죠, 그런 것까지 우리가 항의를 못 하죠. 빚진 죄인으로 취급하더라고요. 너희는 빌어 먹어도 마땅하다. 그렇게 책임 못 질 일을 했냐 살지 않냐 모욕적인 언사를 쉽게 쉽게 하는 거죠.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이 같은 협박은 불법이었지만 민원을 넣어도 제대로 처리 한번 되지 않았는데요. 속으로 끙끙 앓던 부부는 현재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일로 아이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인데요.
<인터뷰> 김씨 부인(4년 째 채무자): “큰애를 볼 때 마음이 아픈 게 애가 벌써부터 마음의 증오심 같은 게 싹트고 집중이 안 되고 학교에서도 사색에 빠지게 되고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기초적인 집중력이나 주의력 같은 것을 아이가 잃어가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결국 견디다 못한 김씨는 최근 파산신청을 하고 빚독촉에서 벗어나기로 했는데요. 자신도 아닌 누나가 진 카드빚 때문에 돈 한푼 빌리지 않은 자신이 지난 4년간 당한 일을 생각하면 억울할 뿐입니다.
<인터뷰> 김씨(4년째 채무자): “그게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그런 문제가,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죠. 물론 카드를 썼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냐 하지만 카드 발급하는 부분이나 카드깡이나 그런 시스템이 잘 되어있으면 그렇게 억울한 사람이 안 생기고 이렇게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죠.”
이들이 당한 것처럼 빚독촉을 위해 한밤중에 전화를 하거나 제 3자에게 채무사실을 알리는 것, 또 빚을 갚으라며 폭언과 협박을 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감독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니 불법 채권 추심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요,
<인터뷰> 이선근(경제민주화운동본부 본부장):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인격을 모독당하거나 그리고 사생활을 침해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국법입니다. 이들(불법 채권추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제도를 더욱 더 완비해가야 할 것입니다.”
최근 정부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불법 채권추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는데요,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된 데에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책임도 있는 만큼, 이들이 돈 때문에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일은 다시 없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