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 여인(4) : 장희빈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페비 윤씨는 자신에게 사약을 내린 성종을 원망하기보다는
다른 두 후궁 엄씨와 정씨를 저주했다. 반면 장희빈은 그 책임을
숙종에게 물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자신의 아들을 성불구자로 만든 것은
숙종과 왕실에 대한 복수이자 부계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폐비 윤씨의 경우 자신을 왕이 가는 길목에 묻어달라 하여 결과적으로
아들 연산군에게 복수를 의존한 반면 장희빈은 훨씬 독립적이다.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와 원망도 스스로 해결하고 가겠다는 듯이
아들에게 자신의 명예회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러한 발칙한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원인 제공자인 숙종은 아무런 죄도 성립되지 않는 사회,
여성만 희생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장씨의 발악은 저항에 가깝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
여종의 딸로 태어나 스스로 싸워 쟁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여성의 처절한 삶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왕을 낳은 후궁들 -김영사- 최선경 지음 120-121 쪽 인용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일세
철을 잃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닐더니
제철 가면 어이 놀까 제철 가면 어이놀까
위의 동요는 숙종,인현왕후,장희빈을 빗대어 노래한 것이다.
호랑나비 숙종을 두고 사철 푸른 인현에게 돌아오라는 것이니
봄에만 피는 장다리는 버리라는 은유이다.
김만기의 손자 김춘택은 거대한 정치자금을 들여 위 노래를 장안에 퍼트렸다.
민심을 살피던 숙종에게 적중하여 인현의 복귀는 성공했다.
조선사회는 충과 효로 틀을 이루었다.
충성은 임금께 효도는 부모에게 섬김으로 위계와 질서를 세웠다.
권선징악은 왕조의 체제 유지 수단으로 작동한다.
서오릉 대빈묘에서 장희빈을 만난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두 분의 이야기는 진부하리만큼 흔한 방송국 드라마 깜이었다.
여성 특유의 시기와 질투를 깔고 정숙한 조선의 여성상으로 인현을 세워
권선징악으로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리면 관객은 최루성 박수를 쳤다.
장희빈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그 당시 몇 대에 인동 장씨 가계에서는 역관 시험에 20여명이 합격했다.
그 중에서 장원급제가 7명이나 되는 수재의 집안이다.
희빈의 미모는 뛰어났다. 숙부 장현은 거부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부자였다.
나는 그 녀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격려와 환호를 보낸다.
현대 생활에서 우리는 스스로 이루어 성취하는 자아 신화의 시대다.
그녀는 무에서 이루어 낸 성취의 삶을 살았던 희대의 찬란한 여성상이 아닐까 ?
지금의 시간을 미리 살다 간 아쉬운 여인이여.
스스로 돕는 자의 길, 운명을 개척했던 장희빈의 창조적 인생.
그런까닭인지도 모른다.
서오릉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대빈묘 이다.
계속,서오릉 여인(5) : 인수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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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
지킴이 일기 : 서오릉 여인(4) : 장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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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창조적 삶을 개척한 장희빈이라, 나혜석의 삶도 떠오르네요.
ㅋㅋㅋ
용부님은 여성을 아끼고 이해하고 사랑하사.....
ㅎㅎㅎ
한 남자의 조강지처로 장희빈에게 격려 환호 저는 보낼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ㅜㅜ 자신의 영달을 위해 다른 이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일을 아무 죄의식 없이 해내는 사람은 또 다른 사회적 싸이코패스로 볼 수 있다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무서워요.
누가 살아 남느냐 : 정글의 법칙 : 첩이 밉다 조강지처 왈 ㅋㄷㅋㄷ ㅍ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