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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모카할리치노
나 요즘 쩌리방에 글 올리려고 완전 여기저기서 사진 수집하고 있.... 자료도 수집하고 있....
그래서 여시들이 재밌게 읽어준다면 그걸로 만족해. (근데 말 안하고 여기저기로 스크랩 해가는 사람 많아서 스크랩하고 복사는
닫아줌. 미안하게 생각함...... T-T 하지만 다른데로 말도 안하고 퍼가는건 정말 기분나빠서. 암쏘쏘리 버달러뷰♡)
오늘은 글보다는 사진 위주로 봅시다!
이건 의민황태자와 덕혜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기 전 사진이야.
왼쪽부터 의민황태자(흔히 말하는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내가 그동안 쪄왔던 왕실 의복을 의거로 살펴보면 저 당시에 의민황태자는 황태자로 봉해져 있었기 때문에 가슴쪽과 양 어깨에
용포를 입을 수 있었고 순종과 고종은 각각 황제와 태황제였기 때문에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황색의 용포를 입었을거야.
순정효황후는 황후의 신분인데 저때는 대례가 아닌 간소하게 사진 찍는 거였으므로 치장으로 머리에 화관을 올리고 원삼을 입은
거고, 덕혜옹주도 간단하게 화관을 쓰고 당의를 입었어. 가슴부분에 흉배로 보이는 보 사진은 아마 왕실에서 황실로 바뀌면서 변
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덕혜옹주의 유치원 시절이야. 고종은 60에 얻은 고명딸인 덕혜옹주를 너무너무 예뻐해서 경운궁(덕수궁)안에 덕혜옹주만을
위한 유치원을 만들어 주었다고 해.
덕혜옹주는 사진의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있어.
순종의 2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사진이야.
왼쪽은 평상시에 당의를 갖춰입지 않은 모습이고 오른쪽은 황후의 정장을 한 경우야.
오른쪽 사진의 아랫쪽에 써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원래 미스코리아들이 하는 것 같은 띠를 안 했는데 어느순간부터 황족들이 사진
에서 저런 띠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다 일본의 잔재라고 보면 돼.
이것도 덕혜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가기 전의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인데 옹주를 가운데 두고 사진을 찍었지.
옹주의 오른쪽 옆옆에 기모노 정장차림을 한 여자와 여기저기 있는 고관들은 거의 친일파라고 보면 돼.
덕혜옹주 일본에서의 학습원 시절이야.
뭔가 청초하고 귀여운 모습이 참 예쁘다. 이때만해도 정신질환을 앓는 상태는 아니었다고 해.
그리고 학습원은 일본의 왕족이나 귀족들만 다니는 학교인데 아직도 '각슈인 대학교' 라고 해서 왕족이나 귀족만 다니고 있어.
덕혜옹주의 어머니인 복녕당 귀인 양씨의 사진이야.
원래는 궁녀였는데 고종이 강제퇴위 당하고 경운궁(덕수궁)으로 옮겨온 후에 승은을 입어서 덕혜옹주를 낳고 복녕당의 당호와
귀인의 책봉을 받았어. 덕혜옹주를 강제로 일본으로 보낸 후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1929년 유방암으로 사망.
소년시절의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사진들이야. 맨 위는 일본으로 끌려가서 찍은 사진이고 아래의 두개 가운데서 중간 사진은
이완용 내각과 찍은 사진이고 맨 아랫사진은 조정의 고관들과 찍은 사진. 물론 사진 둘 다 친일파들임.
두번째 사진에서 이완용은 가운데 있는 의민황태자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인물이야.
이건 정말 희귀한 그림인데 프랑스의 잡지로 알고있어. 순종황제의 강제 즉위식을 그린 그림이래.
노년의 순정효황후 윤씨 사진들이야.
맨 위는 황후의 정장을 갖추고 찍은 사진 가운데는 낙선재에서 의민황태자의 둘째아들인 회은황태손(이 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고
맨 아래의 사진은 6.25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찍은 사진인데 오른쪽에 계신 분은 고종의 형인 흥친왕 이재면의 둘째
부인인 흥친왕비야. (이 분의 젊은 사진은 아래에서 봅시다.)
위의 사진은 흥선대원군의 장남이자 고종의 형인 완흥군 이재면인데 경술국치 당시에 황족대표로 참가해서 한일합방을 지지하면
서 우리나라의 초대 국썅이 아닐런지 모르겠네. 그 당시에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다 못해 욕조 째로 뒤집어 쓴 인간이야.
그리고 아래 사진은 위에 올렸던 순정효황후와 함께 부산으로 피난 간 흥친왕비 이씨야. 원래 저 흥친왕(이라쓰고 개썅놈이라 읽
는다)이 57살에 부인이 죽고 상처를 해서 계실로 들인 분인데 나이차이가 37살이 났다고 해.
위의 두 부부는 흥친왕 이재면의 아들인 영선군 이준용과 그 둘째부인인 김씨부인이야.
위위에 올린 이씨부인보다 영선군은 13살이, 김씨부인은 7살이 많았다고 해.
내가 일화를 찐다고 했던 의왕(의친왕)의 둘째아들 이우 공(얼짱왕자)가 이준용이 죽고나서 이준용의 대를 잇기위해 양자로 들어
오는데 이 김씨부인이 이우 공의 부인이었던 박찬주 여사를 무지하게 싫어했다고 하더라구. 박찬주여사의 아버지인 박영효가 친
일 행적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아. (그... 그럼 레알 친일파였던 시아버지 흥친왕은....)
낙선재로 다시 돌아 온 덕혜옹주의 모습이야.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 된 후라고 하네.
날짜 보이지? 1962년. 그런데 이 당시에 덕혜옹주는 이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덕혜'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서 '양덕혜' 의 호적을
만들어야 했어야 했데.
이건 의민황태자와 의민황태자비 마사코의 사진이야. 이 분들에 대한 일화는 쩌리방 여기저기에 많이 써두었으니 검색의 생활화
를 부탁드림.... ^^;;; 아 땀나....
이 우공에 대한 일화를 알아보잣!
이 우공은 의왕(의친왕)의 둘재 아들로 태어나서 다섯살에 흥선대원군의 증손자로 입적 됐어. 손자인 영선군 이준용이 후손을 남
기지 못하고 죽었거든. 그래서 이 후에 결혼을 할 나이가 되자 일본에서는 일본인 여자와 결혼을 시키려고 했는데 끝내 조선인 신
부를 고집해서 원래는 독립투사인 유동렬의 서녀(첩의 딸)인 유정순과 정혼을 해둔 상태였데. 그런데 일본에서는 당연히 황족과
독립투사 가문의 결합을 허락했을까? 그래서 타협을 본게 친일파였던 박영효(갑신정변 참가)의 손녀인 박찬주와 혼인을 하는거였
어.
원래 박영효는 철종의 하나 밖에 없던 딸인 영혜옹주의 부마였는데 영혜옹주가 젊은나이에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리자 부
마의 경우엔 재혼을 할 수 없는데 왕실에서 박영효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첩실을 내려주었고 첩실로 부터 후손을 보게 됐어.
비록 독립투사의 딸은 아니었으나 일본인과 혼인하지 않은거로 고종황제도 이 우공을 굉장히 뿌듯하게 여겼다고 해. 이 우공의 친
부인 의왕은 독립에 관심이 많았고 그 의왕을 가장 많이 빼다박은게 바로 이 우공인데 이 우공도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
나서 일본의 군인이 돼. 1931년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 포병과로 입학하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일본인 급우들과 마찰을 많이 일으
켜서 일제의 감시에 요주인물이었고 일제가 금지곡으로 포고한 '황성옛터' 노래를 부르며 향수병을 달래곤 했데. 그리고 조선출신
의 생도에게는 대놓고 조선말로 호령을 하는 일화도 있었다고 하더라구.
일본인들에게는 엄청 강하고 무섭게 대하고 그에 비해 조선인들에게는 그렇게 부드럽고 자애롭게 대할 수가 없었데.
어느날 이 우공이 서울에 있을 때 전라도 곡창지대를 뺐으려고 하는 일본에 대해 농민들이 호소를 하자 그 음모를 꾸미고 있던 용
산의 일본군 사령부로 달려가서 담당자에게 총을 겨누며 '너같은 놈 하나 죽인다고 황족인 내가 감옥에 가지 않는다. 어쩔테냐.'
이래서 그 음모를 막았다고도 해.
일본의 군인으로 있으면서도 독립군에게 일본군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고 직접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는 등 독립군의 든든한 후원
자 이자 정신적인 지주로 활동을 했고, 특히 태항산 유격대 및 백두산 근처의 독립군을 한데 모아 일본의 관동군에 맞설 계획 또
한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
그런데 이 원숭이 같은 일본놈들이 이걸 미리 알아서 이 우공을 일본 히로시마로 발령을 내고 이 우공은 그 전출을 거부하면서 운
현궁에 6개월간 칩거하며 다른곳으로 전출을 시도해 봤지만 일제가 거 to the 부. 아들인 청에게 설사약을 먹여가며 아들의 병구완
을 해야 한다면서 뻐겨봤는데 어쩔 수가 없어서 결국 히로시마로 가게 돼.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하필이면 히로시마에서 첫 출근을 하던날인 바로 그 날. 8월 6일.
태평양 전쟁을 종결짓는 원자폭탄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이 우공 또한 피폭을 피해가지 못해. 일본군에 의해 구출되어 그날 밤 도
쿄의 병원으로 옮겨지는데 그날 밤 갑자기 사망. 일각에서는 이것 또한 일본의 독살이라고 하는데 정확한건 알 수 없어.
당시 이 우공을 간호했던 간호사는 '그 분은 매우 큰 분이셨다. 아마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셨을 것.' 이라고
나중에 이 우공을 회상하기도 했다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매우 안타깝지.
그리고나서 1945년 8월 15일 이 우공의 시신은 한국으로 돌아오게 돼.
Aㅏ..... 난 끝을 쓰는게 항상 어렵더라.
특히 이 우공의 일화는 가슴이 너무 먹먹해져.
아직도 대한제국의 황족들은 너무 맥없이 일본에게 당했다고만 하는 의식이 우리나라는 좀 강한 것 같아서...
그렇게 당한 사람도 많지만 안 그런 분들도 계셨다는거!!!
특히 이 우공은... 흡.... 얼굴도 잘 생겼는데 독립운동까지!!!
정말 너무 안타까움... 그 최후가....
근데 난 왜 쩌리방에 항상 역사글만 찌게 되는걸까..... -ㅂ-ㅋㅋ;;
첫댓글 첫번째 사진이었나??????? 옛날에 서프라이즈에서 본거같은데 ㅠㅠ 그사진은 뭐지? 왕실 가족 사진을 일본인들이 합성시켜놓은거! 옛날이라서 되게 조잡하게 합성을 해놨었다던데
나는 저 당시 사진만 보면 먹먹하다 진짜...... 일본ㅇ 개새끼들
아 가슴이 먹먹해...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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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 결론은 이승만 진상 개새키
이우왕자님.........ㅠㅠ가슴아프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건 내가 다른글에 이미 쪄놨음 ㅎㅎ
언니 고마워요!! 아픈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써!
헐 우공................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공......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운현궁 아녀? 근데 덕혜옹주 제외한 그 당시엔 공주나 옹주 없음요.... ^^;
운현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운현궁 오빠.......★
이...............우.................공..
아..며칠만 더 버텼으면 역사가 바뀔 수 있었던건데...ㅠㅠ
ㅜㅜㅜㅜ이우공ㅜㅜㅜㅜ 확실히 이우공이 초대대통령이 됐다면 분단 안했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드네...
저분만 살아계셨더라면......아슬프다
아 ... 이우공이 저렇게 돌아가셧구나 워낙 우리나라 황실이 일본에 의해 소용돌이가 휘감았었으니 이우공의 마지막을 자세히 알려준 사람은 언니밖에 없음 ㅠㅠ 학교에서도 안알려주더라ㅡㅡ
삭제된 댓글 입니다.
헐 야스쿠니신사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진짜 열뻗쳐ㅠㅠㅠㅠㅠ
어머어머...........................
황족이면서도 나라팔아먹는거에 앞장선분들 보면 갑갑하다.. 그런반면에 이우왕자님 같은분은 저렇게 떠나시고ㅠㅠ
아 정말....ㅠㅠ헐이다...안타깝고...슬프다...휴.
헐.....ㅠㅠㅠㅠ 언니 사진보고 검색해서 일화보러왔는데 이우공 쩌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ㅜㅜㅜㅜㅜㅜㅜㅜ 우리나라 역사는 공부할때도 빡치고 이렇게 정리된걸 봐도 빡치고... 에휴
ㅠㅠㅠㅠㅠㅠㅠ이 우공 대단한 분이셨네....ㅠㅠㅠㅠㅠ진짜 안타까움 ㅠㅠ
운현궁오빠입구....대입구.......만약에 초대 대통령이 되셨으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정말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ㅠ_ㅠ
[다시보기] 언니글 전부 다 봐야겠다ㅠㅠ
언니글 역주행중 ㅠㅠ 하 정말 주옥같은 글 많타 ㅠㅠ 운현궁 오라버니는 참..안타까움 ㅠㅠ
만약에 살아 계셨더라면...
나 연어질 하다가 옴ㅋㅋㅋㅋ이우공이 일부러 자기가 말이 타고 싶어서 구런다고 니가 내 차를 대신 타고 오라고 했다고 본 것 같음 그리고 이우공 피폭 당하고 그 분 자기탓이라고 자살 하시지 않았나..자기가 차를 타는 바람에 자기만 살았다고..그 분 마을에서 신처럼 모셔지고 있다고 봤엉 이우공 보면 진짜 운명인가 싶은게 8월 15일 한신가 장례식이었는데 한 시에 일왕의 중대 발표가 있다고 미뤄졌는데 그게 패전선언한 거 였다고..그렇게 바라던 광복을 못 보고 가샸다니...황족들끼리 편가르고 할 때도 이우공은 꼭 운현궁에 애들 모아놓고 놀고 그래서 다들 잘 따랐다던데 진짜 너무 안타까워...
언니 글 딴 것도 봐야겠다! ㅎㅎ
진짜...가슴아픈역사다 우리나라초대대통령이 되셨다면 지금우리나라가또어떻게 달랐었을까 생각해보게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