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하룻밤새 내렸을 뿐인데 완두콩도 훌쩍 커버렸고
며칠전 옮겨놓은 배추모종도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
온밭의 모든 작물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일제히 일어선다.

엊그제만 해도 진달래 몇개 선보이던 앞산도
언제 이렇게 연초록 고운 빛으로 물들었는지
한동안 마른 땅 위에 단비 한번 내렸을 뿐인데
온 세상이 푸르른 축복으로 넘실거린다.
그동안 기웃거리는 마음만 먼산에 보내고
거름도 만들고 밭 기슭도 정비하고 밭도 만들어
이것저것 심느라 애쓰다보니 볼만해진게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여간 흐뭇한게 아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단비소리 들으며 하우스에 고추를 심었다.
작년 이맘때 고추 이야기를 카페에 올렸던 생각을 하며
해가 갈수록 즐겁고 편해지는 농사일머리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요즈음 이런저런 농법의 유행시대에
풀천지도 희안한 농법 하나를 선보일 생각이다.
물조리개 농법이라면 무슨 소리인가 하시겠지만
원래 물조리개로 화단에 물을 주었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농촌만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말이
그 힘든 농사를 어떻게 지을수 있을까 ? 인데
물조리개로 즐겁게 물을 주다보면 무엇이든 심을 수 있고
날마다 지켜보다가 제때에 거두면 되는게 농사의 전부다.

한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땅은 몇평쯤 될까 ?
다시 말해보면 한사람이 몇평의 농사를 짓는게 바람직할까 ?
속된말로 자동차나 핸드폰 따위를 끓여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
누군가 농사를 지어야겠는데 비어가는 농촌에 힘을 잃어가는 노인들 뿐인데도
걱정하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나듯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때 경제기적에 성공한 우리 국민들을 위해
이리저리 착취당해 헐벗고 굶주리며 죽어가는 먼 나라 사람들 덕에
여전히 잘먹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미리 걱정할 필요야 없겠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현상의 문제들을 추적해보면
무엇이든 넘쳐서 탈인 시대이다.

편리한 자동차가 거리를 메우다보니 오도가도 못하고
매연 감옥에 갇혀지내는 신세이고
버리는 음식 쓰레기가 산을 이루는 가운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는 천연 기념물이 되어간다.
우리의 문화는 간곳이 없고 서양바람 좋아하는 민족이다보니
웰빙바람 만들어 무공해 유기농산물을 찾아 헤매이는 모양인데
내 먹거리도 만들기 힘든 유기농가들이 충분한 양을 공급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기만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너도나도 텃밭 농사라도 지어 먹으면 될터인데
무더위에 얼굴 그을리며 모기에 뜯겨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포기하고 병든 삶을 선택하기 쉽상이다.
그래도 열심히 농사짓는 유기농가들을 찾아 잘 관계맺어
상부상조하며 밥상을 살리는 노력이라도 해야되지 않겠나 싶다.
속보이는 얘기가 되었지만 정말 제대로 먹어야 잘 살아갈 수 있다.

어쨌든 물조리개 농법이나 소개해 보려는데 즐거운 마음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요즈음 시골은 일을 시작했다 하면 기계소리 먼저 요란하다.
농사를 짓는건지 공장을 돌리는 건지 토목공사를 하는건지
트랙터 소리부터 시작해서 경운기 관리기 소리에 이어
손쟁기를 대신하는 골타는 기계도 나왔다.
하루종일 들락거리는 비료 실은 대형 트럭들도 시끄럽긴 마찬가지이고
어느것 하나 심더라도 경운기 모터에 연결하여 긴 호스 어깨에 이고
물 주랴 약 주랴 바쁘기만 한데 기계라도 고장나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조용한 산천은 옛말이 된지 오래이고 농약과 비료에 범벅이 된 흉측한 비닐들만
온 산천을 뒤덮어가고 있건만 전부들 모른채 하느라 뻔뻔함을 불사한다.

아무것도 사용하지않는 부드러운 풀천지 밭에
손쟁기로 골을 타고 호미로 구멍내어 물조리개로 물을 주고
맨손으로 심으면 되는 풀천지 고추심기는 어쩜 그리 즐겁고 간편할까...
네 식구가 저리 슬슬 일해도 일년동안 잘 먹고 잘 살아갈수 있는데
무슨 문제가 그리많아 세상은 별 문제없이 잘 사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 ?
고추를 몇만주 심어서 큰돈을 벌려 하니 등골이 휘지만
한두포기 즐겁게 심는 기분으로 맨손으로 심을 만큼만 심어나간다면
일은 즐거운 놀이가 된다.

세상엔 중요하다 생각되는 일들이 나름대로 많겠지만
내가 날마다 먹는 걸 살피고 돌아보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풀천지엔 두 아들이 있고 물조리개가 두개가 있는데
둘다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물조리개 농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첫댓글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온가족이 함께...아우님 모습이 오늘은 잘 보입니다. 머리는 저보다 더 희고...아드님이 있어 든든하시겠습니다. 좋은 하루가 되시길.....
우리 마을에 머리가 허연 중년이 두집 있는데 우리집과 또 서울에서 귀농한 부부입니다. 오히려 시골 노인들은 머리가 검습니다...^^ 나중에라도 시골에 살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