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花日將老 꽃잎은 바람에 시들어 가고
佳期猶渺渺 꽃다운 기약은 멀기만 한데
不結同心人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헛되이 동심초만 맺고 있으니
중국 당나라 시대의 명기(名妓)이자 여류시인이었던 설도(薛濤)가 지은 연작시 춘망사(春望詞) 가운데 세 번째 시라는데...한마음(同心)으로 묶여야 비로소 사랑이라 할 수 있지만, 마음과 마음은 서로 묶질 못하고 허허로이 풀잎만 묶고 있으니 이를 어쩐디야.
이 시는 안서(岸曙) 김억(金億) 선생이 '동심초(同心草)'란 제목을 붙여 번역한 데다, 김성태 선생은 여기에 멜로디를 붙여 같은 이름의 가곡으로 만들었단다. 해서리 문학이나 음악을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시이자 가곡이리라.
봄이 되어 지천에 널린 꽃들은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꽃잎 한장 한장의 입장에선 서럽기 그지 없다. 눈부시게 화려한 꽃의 아름다움도 잠시, 꽃잎은 시들어가고 이윽고는 하염없이 떨어질 운명이 아닌가. 그러 하니 꽃잎은 꽃을 만들되 꽃과는 다른 팔자를 타고 난 게 맞는 말이라...
왜 우스갯소리라지만 이런 말도 있잖은가. 지는 해가 유난히 아름답고 사위어 가는 불꽃도 꺼지기 직전에 더욱 아름다움을 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꽃과 여인은 그 반대라는 말 말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거하게 욕을 먹어야 할 말이지만 시든 꽃이 아름답단 게 없고 늙은 여자가 아름답단 말 들어본 적이 없는 게 사실 아닌가.
꽃잎이 상징하는 비극적 이미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아득하고도 멀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문학, 예술 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다루어져 왔다고 하겠다. 1919년 D.W. Grifith가 무성영화로 제작한 「흩어진 꽃잎(Broken blossoms」은 전직 복싱선수인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죽어가는 소녀를 떨어지는 꽃잎에 빗댄 후 꽃잎은 죽음과 희생의 코드로 자리매김되었다고들 하는데...
한편, 2004년 중국의 장률 감독이 한국에서 촬영·제작한 영화「당시(唐詩)」에 나오는 맹호연의 '춘효(春曉)'란 시에도 간밤의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을 애달파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한다.
春眠不覺曉 봄잠이라 새벽임을 모르다가,
處處聞啼鳥 사방의 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었네.
夜來風雨聲 지난 밤 사이 비바람 소리 들렸거니,
花落知多少 아마도 꽃잎 많이 떨어졌으리.
굳이 먼 외국 영화의 사례에서만 꽃잎의 아픔이 그려져 왔을까? 2014년 장선우 감독이 제작한 영화「꽃잎」은 5.18 민주화운동에 희생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떨어진 꽃잎이 물결 치는 대로 세류에 매몰되어가는 이름 없는 소녀의 서사를 그렸다고 하더라만...
슬픈 꽃잎의 이미지는 서정적인 영화의 전유물만은 아닌 듯한 게, 대만의 린신루(林心如)가 주연한 중국의 무협영화「칠검(七劍)」끝 부분의 10여 분에 걸쳐 아름다운 꽃잎들이 떨어져 흐드러진 마당에서 펼쳐지는 검투(劍鬪) 장면-물론 많은 여인들과 싸우는 남자 주인공은 주먹과 장력(掌力)으로만 대적하더만-은 운명을 건 장렬한 싸움에 더해 지천에 널린 꽃잎들은 보는 이들에게 애잔한 비애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아름다운 꽃을 만들기 위해 조용히 어깨를 곁고 그를 떠받치던 꽃잎들 작은 바람결에 갈 곳 모르고 흩어진다 해도 설워하지 말자.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 다시 생각나네'로 시작하는 김추자님의 노래 '꽃잎'을 듣자면 설움에 북받치는 그대일지라도, 영화 「재킷(The jacket)」에서 무려 1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서로를 알지 못했던 잭과 재키가 '꽃잎(petal)'이란 단어 하나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꽃잎이 서러움이란 상징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꽃잎」(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