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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꿀벌사랑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토피아
최근 토종벌 분봉 피해가 증가하자, 충북 청원군에서 토종벌 1500군을 사육하고 있는 청토청꿀 김대립 사장이 토종벌 분봉과 사육비법 사이트(www.ctcg.co.kr)를 제작하고 무료로 농가들에게 공급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벌통 개조 벌꿀집 투명하게 보존‘계절별 꽃 특성살려 빛깔·향 다양‘전통 사육기술 보완 … 특허 취득‘인공분봉법’ 으로 분봉시기 조절 “양봉업이 사양산업이라구요? 저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국내 양봉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자신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아 3대째 양봉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대립(충북 청원군 청토 청꿀 농장·31)씨. 김 씨는 토종꿀 생산에 벤처정신을 적용해 연간 2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벤처농업인이다.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인 시장 개방이 시작되면 칠레·호주 등지에서 저렴한 벌꿀이 많이 들어와 국내 토종꿀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응할 만한 고품질의 국내산 토종꿀을 개발하면 충분히 이를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국제무대에서도 한국 토종꿀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김씨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바로 오색 빛깔을 드러내는 무지개꿀. 가로로 잘라 판매하는 기존의 벌통을 약간 개조, 꿀의 저장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세로로 절단하는 기술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여왕벌의 산란을 억제해 벌꿀집을 투명하게 보존하는 것. 여왕벌이 산란 후 벌꿀집의 영양분을 섭취하고 분비물을 토해내기 때문에 벌집 색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만 꿀의 색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벌통으로 생산한 토종꿀은 계절별로 개화하는 꽃의 특성이 그대로 축적돼 있기 때문에 아카시아, 진달래, 국화 등의 다양한 꽃의 빛깔과 향,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씨는 “그동안 생산되는 토종꿀은 일년동안 수확한 꿀이 모두 섞여서 똑같은 색과 똑같은 향, 맛이 났지만 무지개 꿀은 각각의 계절에 맞는 꽃들의 꿀을 따로따로 음미할 수 있어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그동안 전통적인 방식에만 의존하고 있는 토종벌 사육기술을 보완, 여러 가지 특허를 개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발명한 기술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인공 분봉법. 벌통의 온도가 높으면 벌들이 분봉을 한다는 특징을 이용해 수시로 차가운 지하수를 뿌려줌으로서 자연분봉을 억제, 사육자가 원하는 시기에 분봉이 가능하도록 한 기술이다. 또한 벌통안에 전기선을 연결시켜 벌들의 동사율을 효과적으로 감소하게 만든 것도 김 씨의 노력 덕분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겨울철 토종벌·동사육이 70~80% 감소되는 것은 물론 분봉시기가 50일 정도 빨라져 생산량이 증가한다. 이외에도 토종벌 이외에 양벌이나 땅벌 등이 벌통에 침입해 피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는 벌통도 개발해 저장된 꿀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등 그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김씨 본격적인 양봉산업 발전 계획은 이제부터다. 화학농약이 있는 곳에서는 꿀벌 사육이 어려워 양봉은 친환경 농업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는 김씨는 이런 양봉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농장 근처에 국내 최대의 밀원을 조성하고 관광농업으로 함께 육성할 계획이다. 김씨는 “청원군에 5만평 정도의 다양한 밀원을 조성해 관광농업 육성과 함께 국내산 토종꿀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5년 안으로 계획을 실현시켜 개최 예정인 세계 벌꿀 박람회을 반드시 한국에 유치하도록 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농림부는 충북 청원에서 양봉업을 하는 김대립씨(29세) 등 17명을 올해의 '신지식농업인'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시장개방의 가속화와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앞서가는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으로 무장하면 우리농축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공학도 출신으로 토종벌 1천5백군을 사육하고 있는 김대립씨는 자연분봉시 벌의 숫자감소 등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한 끝에 '회귀성을 이용한 분봉', '콜크참나무껍질을 이용한 충격요법분봉', '야간분봉법' 등 10여종의 토종벌 인공분봉법을 개발, 꿀의 품질향상과 생산량을 3배이상 증대시켰다. 그는 '양벌·말벌퇴치벌통'과 '특수보온벌통'을 개발, 특허출원하는 등 축산분야 신지식농업인으로 연간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
위기의 토종벌 사수작전‘토종벌 전도사’ 김대립 씨(왼쪽)와 청주시 문의면에서 토종벌을 기르는 농민들이 벌통 가득 들어찬 꿀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토종벌은 벌통 안에 집을 짓고 꿀을 저장한다. 꿀이 가득 들어찬 벌집 내부 모습. 토종벌(왼쪽)은 서양벌보다 크기가 다소 작은 반면 날개는 조금 더 큰 편이다. 토종벌의 몸통에는 검정 바탕에 흰 줄이 있고 서양벌의 몸통에는 노란 바탕에 검은색 줄이 있다. 한국한봉협회 제공 별 천지가 아닌 벌 천지였다. 벌통 가까이 다가서자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듯 날갯짓이 더욱 분주해졌다. 여러 마리가 크게 원을 그리거나 위아래로 연방 날아다녔다. 언뜻 보기에도 수천 마리는 족히 돼 보였다. 이들이 일제히 날개를 움직이는 소리는 마치 전동드릴 모터 소음 같았다. 토종벌을 지키는 사람들 지난달 14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의 한 농가. 이곳에선 꿀을 따려는 이들과 지키려는 벌들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다. “겁먹지 마시고요. 텔레파시를 주고받는다는 생각으로 눈을 마주치세요. 그래야 안전합니다. 팔을 휘젓거나 피하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김대립 씨(40)가 입을 열었다. 그는 옛 청원군(지금은 청주시) 일원에서 농민들에게 토종벌 사육법을 전파하는 ‘토종벌 전도사’다. 옆에 있던 이만수(64) 이찬희(66) 윤병환 씨(77)는 올해 처음으로 토종벌 사육에 뛰어들었다. 김 씨는 이들에게 사육과 관리 방법을 설명하고 꿀을 따는 모습도 보여주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뭐, 크게 쏘이기야 하것어. 겁먹지 말어.”(이만수 씨) 일행은 수천 마리의 벌 틈에서 긴장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벌통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김 씨는 일행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시선을 벌통에 고정시켰다. 30도를 넘는 기온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김 씨의 뺨과 목덜미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워매. 꿀이 제대로 들어찼네.” 김 씨가 벌통 뚜껑을 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아색 벌집에는 손톱보다 작은 육각형의 방마다 진한 색깔의 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벌들이 봄부터 분주히 실어 나른 꿀이었다. “꿀이 묻은 손을 물로 씻었을 때 바로 씻기면 진짜, 잘 안 씻기면 설탕 넣은 꿀이에요.” 김 씨는 벌집틀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뒤 벌통에 입으로 조심스레 ‘호∼호∼’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벌을 통 아래로 몰고 두 번째 틀을 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이것까지만 하고 그만 닫자고.” 김 씨가 벌통 속 꿀을 4분의 1 정도 채취했을 때,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윤 씨가 말했다. 토종꿀은 시중에서 보통 한 되에 약 15만 원에 팔린다. 일반 꿀보다 높은 가격이다. 그럼에도 일부만 채취하고 만 이유가 있었다. “당장 돈 벌 생각만 한다면야 한 번에 다 따도 상관없겠지요.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눈앞의 수익이 아니라 벌들의 건강입니다.”(김 씨) 비가 오면 벌들이 꿀을 모아오기 힘들어진다. 특히 장마나 태풍 때문에 여러 날에 걸쳐 비가 올 때면 사실상 ‘영업 정지’ 상태가 된다. 꿀을 모두 안 따는 이유는 벌들이 이 시기를 견딜 수 있게 영양분을 남겨둔다는 의미다. 그래야 체력을 보충하며 여름을 보낸 벌들이 가을에 더욱 활발하게 꿀을 채집할 수 있다. 김 씨에겐 다른 이유도 있다. 건강한 토종벌의 개체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30년 동안 토종벌과 함께한 그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책임과 같다. 김 씨와 토종벌의 인연은 그가 초등학생일 때 시작됐다.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벌통 2개를 준 것이다. 김 씨는 고등학교를 나온 뒤 본격적으로 토종벌 사육에 뛰어들었다. 기술도 뛰어나 2003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신지식농업인에 한봉(韓蜂) 분야 최초로 뽑히기도 했다. 90% 이상이 떼죽음… 2010년의 기억 김 씨에게 2010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남아있다. 낭충봉아부패병 때문이다. 이 병은 ‘토종벌 에이즈’라고도 불린다. 사람의 병으로 치면 20세기 초 최대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같다고나 할까. 감염된 벌통에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말라죽은 애벌레들이 수북이 쌓인다. 벌들은 병으로 죽은 애벌레를 빼내다 벌통을 버리고 떠나는데, 결국엔 대가 끊겨 전멸하고 만다. 2008∼2009년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이 병은 2010년이 되자 전국으로 확산됐다. 전염력과 바이러스의 위력이 매우 강해 병에 걸린 토종벌 대다수가 손 쓸 새도 없이 죽어버렸다. 김 씨의 벌통 1000여 개도 이 병을 피해가지 못했다. 낭충봉아부패병을 겨우 피한 벌통은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그해 말까지 전국 1만7500농가에서 기르는 토종벌 41만8000군(群) 중 31만7000군(전체의 76%)이 낭충봉아부패병의 피해를 봤다. 하지만 토종벌 농가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전체의 90%를 넘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농식품부는 당시 토종벌 농가에 감염된 봉군(蜂群)을 격리한 후 소각하도록 했다.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죽은 벌뿐만 아니라 벌집과 벌통 덮개 등도 모두 태워야만 했다. 하지만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토종벌은 날아다니는 곤충이라 개체수를 정확하게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미연 한국한봉협회 사무장은 “당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 데다 꿀을 파는 데 문제가 될까 봐 적지 않은 한봉 농가가 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며 “많은 빚을 진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안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발병 원인 분석에 나섰다. 분석 결과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이 꼽혔다. 강승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연구원은 “낭충봉아부패병은 인도에서 처음 발병했는데 온난화로 기온이 점차 상승하면서 베트남과 중국 등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낭충봉아부패병을 처음 경험한 베트남은 이후 꾸준히 질병을 관찰 연구해 피해를 줄이고 있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박사는 “현재 베트남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베트남의 기술을 한국에 접목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고 있다”며 “한국의 토종벌은 베트남 벌과 유전자 차이가 있다 보니 눈에 보이는 성과는 아직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상한 애벌레 잡아 부화시켜 보니… 결국 김 씨는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토종벌과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벌집을 일일이 점검하며 문제점을 찾는 데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애벌레에 피해가 집중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문제가 있는 벌집에서 꿈틀거리는 이상한 유충을 떼어다가 밀폐된 공간에서 부화시켜 보니 명나방이 나오더라고요. 벌집에 자리 잡은 명나방은 벌 유충에 스트레스를 주고 면역력을 떨어뜨려요. 바이러스의 숙주 역할도 하고요. 그 결과 토종벌이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리게 되는 거죠.” 김 씨는 자신이 찾은 예방법을 알리고 보완하기 위해 곳곳을 찾아다녔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낭충봉아부패병을 경험한 중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좀더 나은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김 씨는 곧 명나방 같은 해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벌통을 고안해냈다. 이 벌통을 활용해 2012년부터 자신의 농장에서 실험을 해본 결과 약 95%의 방제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김 씨는 그해 특허청에 특허를 냈다. 그러나 주변 농가에서는 낭충봉아부패병의 악몽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지난해에도 청주시 일부 지역(옛 청원군)의 적지 않은 한봉 농가가 피해를 봤다. 한 농가는 자신의 집 주변에서 키우던 벌통 10여 개 전체가 병에 걸려 모든 벌이 폐사하기도 했다. “몇몇 농가만 질병을 예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적어도 이 지역 전체가 동참해야만 낭충봉아부패병이 없는 청정지역을 만들 수 있고 성공사례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김 씨는 주변 농가들과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옛 청원군 지역 한봉 농가들이 공동으로 ‘2015년 청원군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 제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 결과물이다. 농가들은 가까운 지역별로 3∼5명이 팀을 이뤄 공동으로 질병에 대응하기로 했다. 또 자신의 벌통에서 질병 징후가 발견될 경우 바로 소각하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발생하는 금전적 피해는 같은 팀 농가로부터 벌통을 지원받는 방식으로 보전하기로 했다. 치료제 상용화엔 시간 많이 걸릴 듯 올해는 농가들이 결의문에 따라 행동을 시작한 첫해다. 4월 중순 한 농가가 피해를 본 것을 빼곤 아직까지 다른 농가에서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징후가 발견될 때 바로 대응하면 멀리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직선거리로 2km만 떨어지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물론 김 씨처럼 민간에서만 낭충봉아부패병을 막는 데 힘을 쏟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현재 토종벌을 증식하기 위한 ‘토종벌 종 보전사업’을 벌이고 있다. 핵심은 피해를 본 농가에 다른 농가의 토종벌을 분양하는 것. 건강한 벌을 증식하기 위한 시범단지사업도 진행 중이다. 질병으로부터 격리된 청정지역에 시범단지를 조성해 토종벌을 증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큰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다. 치료제 개발도 진행 중이지만 상용화까지는 시일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강승원 연구원은 “100∼200마리를 대상으로 한 실내 실험에서는 양호한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야외에서 직접 실험을 진행해본 적은 없다”며 “제약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일반에 판매하는 약제로 개발하려면 10년에서 15년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낭충봉아부패병을 막으려면 현장에서 좀더 면밀하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농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꿀벌의 고향은 인도 북부… 2000년전 한반도 들어와 ▼ 토종벌의 역사 꿀벌은 일반적으로 꽃에서 꿀을 채취하는 벌을 일컫는다. 원산지는 인도 북부 지역으로 이들이 전 세계로 이동하면서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분화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꿀을 따기 위해 사육하는 종은 유럽이 원산지인 서양종 꿀벌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토종벌이라고 부르는 꿀벌은 동양종이다. 인도, 베트남,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 분포돼 있으며 재래꿀벌로도 불린다. 약 2000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종과는 뒷날개 중앙에 위치해 날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맥(脈)의 모양으로 구분한다. 서양종보다 벌꿀 생산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추위를 잘 견딘다는 장점이 있다.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큰 피해를 본 것이 바로 토종벌이다. 베트남, 중국 등에서도 양봉농가들이 이 병으로 피해를 많이 봤다. 학계, 전문가 등은 낭충봉아부패병의 퇴치법을 찾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듬성듬성 새싹만 올라와 있던 돌밭에는 메밀꽃이 만개했다. 마치 굵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물들어 있는 산 속 풍경. 산들바람이라도 휘-익 불어오면 꽃들도 덩달아 인사를 건넨다.
충북 산골의 양봉 농장 집 아들이던 고교생은 1992년 어느 날 큰맘 먹고 먹고 아버지한테 이렇게 털어놨다. 아버지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벌을 쳐 온 집안. “공부를 한다면 뭐든지 뒷바리지해 줄게. 일단 대학 가서 생각해 보자.”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를 아들은 차마 거스르지 못했다. ‘싫어요’의 ‘싫’자가 목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아들은 벌 농장 바로 옆의 시골집을 떠나 읍내에 자취방을 얻었다. 방과 후에 입시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다. 일단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머릿속에선 벌이 계속 왱왱거렸다. 고교 학생주임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내 학교 옥상에서 벌 다섯 통을 키우며 관찰했다. 충청전문대(전자공학과)에 진학한 뒤에도 대학 뒷산에서 벌을 치는 게 취미였다. 졸업 후 아들은 다시 아버지 앞에 꿇어앉았다. “그럼 이제 벌을 치겠습니다.” 이번엔 아버지도 반대할 수 없었다. “공부를 했으니 됐다. 하고 싶은 걸 해.” 그로부터 10년 뒤, 아들은 벌 1000통을 키우는 대규모 토종벌 농장의 운영주가 돼 있다. 충북 청원 청토청꿀(www.ctcg.co.kr) 농장의 김대립(35) 대표다. 120통에서 시작해 8배 넘게 키운 것. 일손을 획기적으로 덜어주는 신기술을 개발한 것이 사업을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토종벌에 관한 특허가 4건, 실용신안이 3건에 이른다. 그의 e-메일 아이디(ID)는 ‘beespapa’, 그러니까 ‘벌 아빠’다. 벌 농장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벌에 빠졌다. “게임에 빠져서 PC방에서 날 새는 아이들 많잖아요. 저도 벌과 씨름하면서 밤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비실비실한’ 벌통을 공부 재료 삼아 아버지한테서 받아 키우며 관찰했다. “벌 치는 이들은 벌통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요. 꿀이 찰 때까지 가만히 두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어차피 안 될 벌통을 받은 덕분에 벌집을 쪼개어 벌의 습성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신기해서 열심히 들여다본 것인데, 그런 것들이 이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밑거름이 되더군요.” 벌 치는 일에 뛰어들어 처음 도전한 것이 ‘인공 봉분’이었다. 벌 농사의 핵심 중 하나가 봉분, 즉 무리 나누기다. 해마다 5~6월이면 벌통 속에 마릿수가 늘어나고,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하면서 벌떼 일부가 벌통을 빠져나와 새 무리를 이룬다. 언제 이렇게 ‘자연 봉분’을 할지 알기 힘들다. 그래서 5~6월이 되면 벌통을 지키고 있다가, 무리 나누기를 하려고 집단 비행을 시작할 때 쫓아가 새 벌통으로 유인해야 한다. 벌통마다 일일이 그렇게 해야 하니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다. 벌 농장을 키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어려서 관찰한 벌의 습성을 떠올리며 인공 봉분을 하려고 온갖 시도를 해 봤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3년 만에야 방법을 찾아냈다. 2003년 특허까지 받은 이 기술을 동원하면 5분이면 봉분이 끝난다고 한다. 일손을 확 덜게 돼 혼자 벌을 치면서도 농장 규모를 1000통까지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토종벌 농장 규모는 대개 100통 이하다. 봉분 시기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했다. 봄 꽃이 만발하기 직전에 인공 봉분을 했다. 다른 농장의 벌들은 꽃이 활짝 핀 5~6월에 무리 나누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가 치는 벌들은 이미 봉분을 마치고 열심히 꿀을 땄다. 생산성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서양벌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한 특수 구조의 벌통이나 켜켜이 색이 다른 ‘무지개 꿀’도 김 대표의 아이디어다. 일반 토종꿀은 1.2㎏ 한 통에 12만원 정도인데, 무지개꿀은 50%가량 비싼 18만원을 받는다. 한때 백화점·대형마트에 납품했으나 이젠 소비자 직거래만 한다. 맛본 고객이나 입소문을 전해들은 이들의 주문 수요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매출은 연 3억원 안팎. 순익이 얼마인지 정확히 따져본 적은 없단다. 김 대표는 인공봉분 기술 보급에도 열심이다. 지방 농업기술센터에서 강의하고, 농장을 찾은 이들에게 1박2일 실습비로 1만원만 받고 기술을 전수한다. 특허까지 낸 독보적 기술을 왜 남들한테 거저 주는지 궁금했다. “요즘 토종꿀이라는 것 중에는 토종벌에 설탕물을 먹여 만든 것이 많아요. 꽃에서 나온 진정한 토종꿀 업계가 커져야 제 사업도 더 잘되겠다는 생각에 기술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어요.” 다만 뭔가 한 가지는 숨겨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무지개꿀 제조 방법은 비밀이란다. 올해도 다음 달 12~20일에 그의 농장에선 ‘토종꿀 축제’가 열린다. 일반인들이 꿀 따기, 밀랍 만들기 같은 체험을 할 기회를 마련했다. 제대로 된 토종꿀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강연도 할 생각이다. 김 대표는 미혼이다. 혼인을 해 생긴 자녀가 벌꾼의 대를 잇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 치기 싫다고 해도 이 길로 가라고 강권할 것 같아요. 애써 개발한 기술과 노하우를 제대로 이어가게 하고 싶어요.” 김대립 대표가 개발한 기술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카메라를 들이대는 연신 눈앞의 벌들이 신경 쓰인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의 벌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벌이 주위에 있기만 해도 온몸이 얼어붙는 나로서는 종군기자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벌통을 한 손에 쥐고 서있는 청년. 그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벌에 둘러쌓여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는 담담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역시 무덤덤한 표정은 마찬가지. 조용한 산 속의 새소리가 적막감을 더한다. 그러기를 잠시, 벌통을 쥔 청년이 입을 열자 사람들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30대 청년의 토종벌 교육 이곳은 충청북도 청원의 한 야산. 청토청꿀 김대립(35) 대표의 토종벌 교육 현장이다. 토종벌을 키우고 있거나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의 토종벌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올해 들어 4번째 열린 이날 교육에도 100여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토종벌 키우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이 늘었어요. 하지만 아직 양봉처럼 체계화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토종벌 키우는 사람끼리 서로서로 노하우를 공유해야 되는데, 아직 폐쇄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립씨는 이들과는 생각이 달라요. 대립씨가 기술에 있어 국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고 있습니다."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반종대씨가 김 대표 칭찬에 아낌이 없다. 하지만 토종벌 양봉업계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서양벌 양봉처럼 토종벌을 체계화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서로 견제만 하니 답답하다는 것. 그래도 김 대표 같은 이들이 토종벌 농가 육성에 힘쓰니 고마울 따름이다. 실제 토종벌은 서양벌 양봉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토종벌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거의 없는 등 학문으로 체계화되지 못했고, 성분 분석조차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또 공식적으로 토종꿀이란 표현을 쓸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기준에 토종꿀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종꿀이 서양벌이 모은 꿀과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이들 모두 토종꿀과 서양벌꿀은 엄연히 다르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토종꿀의 가격이 서양벌 양봉꿀에 비해 10배 가까이 비싼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 이는 서양벌에 비해 꿀이 나오는 양이 적기 때문인데, 비단 희소성만으로 이런 가격이 형성됐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시루떡 같은 토종꿀의 힘이라고 해석한다. "토종벌이 서양벌과 다른 점은 꿀의 성분에 있쥬. 서양벌은 대부분 하나의 꽃에서 꿀을 물어오는데, 토종벌은 달라유. 서양벌보다 몸집은 쪼그만해도 멀리 날 수 있어서 다양한 꽃에서 꿀을 물어오는 거쥬. 그런데 나중에 채밀할 때가 되면, 그게 마치 시루떡처럼 층이 생겨유. 1년 동안 계절을 바꿔가며 산과 들을 넘어 다양한 꽃에서 꿀을 물어왔기 때문이에유."
토종벌, 너는 내 운명 토종벌 얘기가 나오자 두 눈이 반짝이는 김 대표. 토종벌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 나온다. 그의 토종벌 사랑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토종벌을 자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토종벌을 키웠고, 또 할아버지가 토종벌을 키웠다. 자연스레 토종벌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게 지금의 김 대표를 만들어 준 밑거름이 됐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속리산 줄기를 타고 이어진 오봉산 자락에 있다. 깊은 산 속이기에 인적이 뜸했고, 그의 가족 외에는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가 만난 첫 손님이 토종벌이었고, 함께 놀아준 유일한 동무가 토종벌이었다. 학교에 들어가서야 자기 또래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 정도니, 이런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토종벌을 친구처럼 여긴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토종벌을 키웠다. 아들이 토종벌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안 아버지가 그에게 벌통 하나를 내어준 것. 뛸 듯이 기뻤던 김 대표. 그에게는 마치 또래 아이들이 애완동물 키우는 것과 다름 없이 느껴졌다. 이때부터 토종벌과 김 대표의 길고 긴 인연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된 토종벌 사육은 학창 시절 내내 계속됐다. 일어나서 벌의 안부를 묻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벌통 관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렇게 9년이 지나고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토종벌 키우는 실력이 제법 늘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아예 학교 옥상에 벌통을 가져다 놓고 토종벌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김 대표가 키우는 벌통에서 상당한 양의 꿀이 모였다. 이를 어찌 처리할까 고민하다 그는 판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를 위해 사업자등록을 내고 신문에 광고까지 냈다. 세상 물정 모르는 20살 청년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였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품질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여기저기서 주문이 쇄도했고, 1년 후에는 자동차 한 대를 마련할 정도로 돈을 벌었다. 대학 입학까지 미루고 토종꿀 사업에 매달린 성과다. '석꿀'이란 브랜드로 내놓은 그의 토종꿀 인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청원군 지역특산품에 선정돼 '청꿀'로 이름을 바꿨고, 양봉장의 규모가 확대돼 벌통이 1천여 개로 늘어날 정도가 됐다.
인공 분봉 성공으로 토종벌 양봉 현대화 그의 명성은 단순히 돈만 버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토종꿀 양봉업계의 질적 도약을 이끌었다. 업계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인공 분봉에 성공한 것. 5~6월이 되면 여왕벌이 벌통 안의 벌들 중 절반 가까이를 데리고 자연으로 도망가는데, 이를 자연 분봉이라 한다. 벌의 수가 줄어들면 벌통에 모이는 꿀도 자연히 줄어들게 되고, 이는 양봉업자들의 큰 손실로 이어진다. 그런데 김 대표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인공 분봉에 성공했다. 그것도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자기의 노하우를 세상과 나누고 있다. 2000년에 언론에 알려진 그의 인공 분봉 비법이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 알려졌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는 그들을 뿌리치지 않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시작했다. 홈페이지도 만들어서 그의 비법 전부를 공개했다. 2003년부터는 현장 교육을 실시중이다. "토종벌 양봉은 아직 무엇 하나 체계적이지 못해유. 그저 저를 통해서 토종벌 양봉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체계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그저 기쁠 뿐이쥬. 그리고 이런 활동을 통해 토종벌을 키우는 양봉업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을 텐디… 앞으로 서로서로 자신만의 정보를 공유했으면 더 좋겠시유." 나누는 삶이 그저 기쁜 토종벌 전도사. 이러한 그의 나눔 실천에 세상이 화답했다. 신지식인농업인상, 신지식인상(행정자치부), 청원군민대상, 충청북도지사 표창, 대한삼락회 표창, 바이오농업대상(충청북도) 등 한마디로 상복이 터진 것.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이 잘 해서 받은 게 아니라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농가소득 올리는 곱셈농법 성공가도만 달렸을 것 같은 그의 삶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공 분봉을 성공하기 위해 수도 없이 실패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보온 벌통을 개발하기 위해 벌통 50개를 잃은 적도 있다. 또 아카시아나무에 병충해가 들면서 벌통 2천여 개를 손해 보기도 했다. 벌통 하나에 40만 원의 수익을 올리니, 총 8억여 원의 손해를 입은 것. 그래도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힘들고 괴로울 때 그의 오랜 동무인 토종벌만을 생각했고, 그러한 의지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김 대표는 벌에 대한 관심을 농민들의 삶으로 확장했다. 토종벌 농가만 잘 사는 게 아니라 주변 농가도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를 곱셈농법이라 말한다. "벌들에게 필요한 건 들판에 가득 핀 꽃이구요, 농민들에게 필요한 건 안정적인 소득이에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바로 곱셈농법이쥬. 주위 농민들을 설득해 메밀과 복분자, 해바라기 등을 심었시유. 벌들이 아주 횡재한 거쥬.(웃음)" 그의 말처럼 벌들만 횡재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복분자 값이 크게 오르면서 농민들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메밀도 짭짤한 소득을 올렸고, 해바라기도 고부가가치가 기대된다. 물론 무책임한 권유는 아니었다. 애초에 판로 확보를 그가 책임진 것. 해바라기의 경우, 이미 각종 인터넷 쇼핑몰과 홈쇼핑 등 해바라기 상품의 판로를 만들어 놓은 상태다. 욕심 많은 그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김 대표와 뜻을 함께 한 농가들이 늘어나자 곳곳에 조성된 밀원을 체험마을로 조성하려는 것. 끝없이 펼쳐진 꽃의 아름다움과 토종꿀 맛의 즐거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마을이 그가 꿈꾸는 고향의 모습이다. 앞으로 2년. 활짝 핀 해바라기와 메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