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백구부대(해군 수송전대) 파병
1965. 07. 12 : 해군수송단대 창설
1966. 03. 15 : 해군수공단대를 기간으로 해군수송전대(백구부대)로 증편하고
주월한국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 배속에서 주월한국군사령부 예하부대로 전환
사이공항의 LST-812함 모습 1965
1965년 3월 4일 LST(Lading Ship Tank: 상륙함)-812(위봉)함은 인천항에서 군사원조단장(준장 조문환)을
비롯한 장병63명과 차량 및 수송물자를 적재하고 십자성을 길잡이로 삼아 남중국해를 지나 사이공으로 향했다.
해군 한국전대에서는 위와 같이 최초로 LST 1척 812함을 파월 한국군의 군사 원조단으로 배속 파견시킨데
이어 동년 7월 9일 LSM(Lading Ship Medium: 상륙함)-609함, 611함과 장병 261명을 증파하였다.
1965년 7월 12일 기파견된 LST-812함 및 추가파견된 609(월미), 611(능라)함 등 3척의 함정과 장병들을
근간으로 '해군수송단대’를 편성했다.
LSM-611함 모습
LST-807함 모습
부산항의 LST-808함 1965.2.13
남베트남내의 해상수송소요가 증대하게 되자, 1966년2월1일 LST-807(운봉)함과 808(덕봉)함을 증파했으며,
1966년3월15일 비둘기부대에 배속되어 있던 해군 수송단대를 ‘해군 수송전대(백구부대: 바다와 더불어 생존
을 걸고 나는 하얀 갈매기란 뜻)’로 증편함과 동시에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직할부대로 승격시켰으며
초대 단장 이응기대령에 이어 이계호,홍기경,홍영현,김용수,정원민,염인열,정종혁 대령이 지휘를 맡았었다.
이에 따라 해군 수송전대는 사이공을 모항으로 북쪽은 다낭으로부터 남쪽은 캄보디아 국경부근의 푸꿕섬에
이르기까지 1천여 마일의 항정에서 미군 및 남베트남군과 통합된 연안수송임무를 수행했으며 1969년8월29일
사이공의 월남 해군본부 기지에서 사이공 쿠롱(CUULONG)기지로 이동하였다.
백구부대가 수송한 물자와 장비중에는 한국군 뿐만 아니라 연합해군의 입장에서 남베트남군의 군수물자 수송
과 남베트남 정부가 요청하는 민간 물자수송도 상당부분을 담당했다.
한편 한국함대에서 운항하는 LST함1척은 한국군 보급물자수송으로 한국과 월남 간의 수송임무를 전담했다.
참전기간중 연인원 3,774명(장교 332명, 사병 3,44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파월기간중 탄약, 차량, 식량,
유류, 자재 등을 적기적소에 수송하여 한국군 작전 임무수행에 크게 이바지 하였고 전후방이 없는 월남
전에서 파도를 가르며 바다의 제왕처럼 백구의 위용을 떨쳤다
백구부대는 총 항정 284,992마일과 해상 수송 작전 462회를 실시하였으며 수로수송 실적은 지원선박
1,006척으로서 연인원 524,307명과 화물 620,073M/T을 수송지원했다. 또한 본국 부산과 월남 각 항만
간에 연안 수송 실적은 화물 561,270M/T의 수송실적을 올렸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해상 수송 실적
은 차량 159,421M/T 탄약 54,394M/T 실량 79,227M/T 유류 31,119M/T 자재 234,033M/T 기타 3,533M/T
총 561,727M/T을 해상 수송했다. 월남 주요항만 연안수송은 주로 LST선박이 맡았으며 부산과 월남항만
간 대양수송은 미수송함 업쉬어호와 바렛트호가 주로 운항하였다.
백구부대 수송 해역도
백구부대가
피끓는 청춘을 조국에 바친 미덥고 씩씩한 해군의 용사
자유의 날개를 바다에 펴고 월남을 도우러 우리는 간다
우리는 백구부대 바다의 방패 우리는 백구부대 대한의 해군
필승의 결의를 가슴에 품은 빛나는 전통에 충무공 후손
정의의 날개를 바다에 펴고 파도를 헤치며 우리는 간다
우리는 백구부대 바다의 방패 우리는 백구부대 대한의 해군
백구부대 부대기와 부대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