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삼일문' 현판 산산조각 나다/조문기

탑골공원 '삼일문' 현판 산산조각 나다
조문기 /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3·1독립운동의 성지 탑골공원 정문 위에 걸려있던 '삼일문'이란 현판이 어느 날 새벽 감쪽같이 뜯겨 내리고 문기둥에는 '민족의 이름으로 친일파가 쓴 현판을 철거한다'는 글이 나붙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뜯긴 현판은 조각조각 난 흉물로 변한 채 세인들에게 공개되었다. 계란과 페인트를 뒤집어써서 울긋불긋 흉칙한 몰골 그대로…
많은 젊은이들과 단체들의 철거 건의에도 불구하고, 또 나 자신도 '자진철거가 현판을 쓴 사람에게 욕이 돌아가는 것을 막는 일'이라고 당국에 건의한 바도 있었지만 문화재법 운운하며 미루어 오다가 예상대로 고인에게 욕되게 하고 말았다.
철거의 장본인들은 신문지상에 알려진 것처럼 곽태영씨 부자(父子)와
우경태씨 였다. 이들은 전에도 철거를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회를 기다리다가 기어코 철거를 결행한 의지와 집념의 사나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민족과의 인연은 예사롭지 않다. 곽태영씨는 일찍이
백범선생 살해범 안두희를 응징하려고 세수하고있는 그를 덮쳤다가
그에게 상처만 입히고 체포되어 곤욕을 치른 전력이 있는가하면, 우경태씨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권중희·김용삼·육철희씨와 함께
안두희를 끌어다가 백범살해의 배후 자백을 추궁하는 등 살해 진상규명 운동을 벌여온 전력이 있어 이를테면 이들은 백범선생을 매개로
한 끈으로 묶여 있는 동지들인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의 행위는 일시적인 흥분이나 단순한 영웅심에서가 아니라 식을 줄 모르는 민족애의 발로이고 뿌리 깊은 민족정기의 분출이었을 것이다.
왜 이분들은 그 현판철거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친일파가 쓴 수많은
현판 중에서도 어쩌면 제일 작을지도 모르는 그 조그만 '삼일문' 현판을 기어이 떼어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에는 그곳에 친일파의 글씨가
걸려서는 안될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의미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을 그들은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 순간 우리 눈앞에서
현판을 쓴 친일파를 우리 민족 제일의 위대한 민족지도자로 자리를
굳혀서 모든 선열들과 독립운동자들을 그 밑에 무릎꿇게 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친일시비를 잠재우려는 가공할 음모가 친일세력들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정부가 제일먼저 세워야할
기념관이 있다면 당연히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어느 구석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고난 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지키고 이끌어온 임정의 수반, 독립운동의 지도자, 민족혼의 상징인 백범선생의 기념관쯤은 저 밑으로 밀어놓고 백범기념관 건립비보다 일곱 여덟 배나 더 많은 어마어마한 국민의 혈세를 들여 한 사람의 위대한 민족지도자를 떠받들기 위한 웅장한 대역사를
시작하려 하고있다.
도대체 백범선생보다 몇 배나 더 위대한 민족지도자는 누구일까 단군성조일까, 세종대왕일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독립운동자 토벌에 앞장섰던 친일파를 받들어 모시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 백억원을 들여 기념관을 세워서 어쩌자는 것인가. 바로 이런 저의를 국민에게 고발하고 국민들을 깨우쳐 더 큰 민족의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곽태영·우경태씨 등은 그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 수많은 친일부역자들의 각종 기념물 숲 속에서도 유독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이분들의 사생결단의 투쟁이유가 바로 이 때문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이분들을 가까운데서 지켜보면서 이분들을
통해 준엄한 교훈을 배운다.
민족은 잠들어 있어도 역사는 잠들지 않고 왜곡의 과정을 쉼 없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그분들의 철학을 통해서 역사와
만나는 행운도 누린다. 그분들은 이것이 내 철학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그분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침없고 굽힐 줄 모르는 실천력은 철학의 소산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위대한 힘의 용광로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하는 자책감과 함께 스스로 움츠러들곤 한다. 결코 그 분들을 과찬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이 행동으로 실천해 보인 결과가 그것을 실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철옹성같이 다져놓은 친일의 토양 위에서 친일천국을 구가해오던 친일반민족세력들이 마지막 승리의 금자탑을 세우려는 것이 바로 박정희기념관 건립이다. 누가 감히 앞을 가로막을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분들이 지금 앞을 딱 가로막고 서있다. 그 거대한 친일의 물줄기가 이름 없는 두 분들을 선두로 한 몇 사람의 저지선 앞에서 딱 멈추어 선 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착공일자가 몇 차례씩 연기되고 자신만만하던 수 백억원의 모금계획도 1년여가 지나도록 겨우 몇 십억원을 모금한 선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사이에 감쪽같이 근대화의 우상으로 자리잡았던 한 사람을 천인공로할 친일반역자로 몰아넣은 꼴이 되어 그 추종자들조차 운신의
폭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참으로 역사의 위력은 오묘해서 이제 그들 자신에 의해서 촉발된 기념관건립 반대의 물결을 친일청산의 큰 물결로 역류하면서 막강한 친일세력의 기세와 방해책동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친일청산운동이 크게 용트림을 하면서 힘찬 시동을 걸고 있다. 바로 기념관건립운동이 친일파 단죄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로 반전되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앞지른다고 할 것인가.
우리 국민들 중에 혹자는 조국이 해방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일·반역'문제를 논하는 것은 그 시기와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할 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나고 전승국들은 패전국의 사죄를 충분히 받아냈고, 자국내의 반역자들을 철저히 응징하였기 때문에 '반역'문제로 더 이상 논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 해방직후 결성된 '반민특위'는 숨소리 한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해산된 이후 친일파들의 행각이 우리 문화·정치·사회 어느 곳 하나 파고들지 않은 데가 없지 아니한가, 우리가 지금
'친일·반역'문제를 지금까지 거론하는 것은 이와같은 취지에서임을
우리 국민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외람스럽게도 독립운동자와 그 유족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반역에 재미 붙이고 기득권에 맛들인 친일반역자들은 나라를 팔아먹어도 벌받지 않는 기상천외한 시대 사회에 길이 들어 앞으로도 기회만 있으면 다시 나라를 일본에 또는 외세에 팔아 자손만대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려고 할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원통한 사람은 당연히 독립운동자요 그 유족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앞에 두고 우리들은 분노하는 이를 볼 수가 없다. 그저 방관자로만 남아 있으려 한다. 방관자는 방조자와 다르지 않다. 방조자는 공범자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친일반역세력에게 빼앗긴 조국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립운동이다. 요란한 기념사업이나 추모사업은 독립된
나라에서 해야 사리에도 맞고 의미도 있다. 그들이 짓누르고 있는 민족정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우리 모두 뜻을 모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우리가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민족정기는 친일청산이 이루어지면 떠들지 않아도 저절로 바로 서게 마련이지만 친일청산
없이는 하늘을 뒤집어쓰고 도리질을 하는 재주가 있다해도 민족정기는 바로 설 수 없게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친일문제를 그대로 덮어두고는 민족문제 아무 것도 해결될 수 없으며 민족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친일청산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민족정기만을 줄기차게 외쳐대는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나 식자층이 그렇게 가증스러울 수가 없다. 그것은 애국의 탈을 쓰고 민족을 농락하는 자들의 위선이고 기만이며 말장난일 뿐인 것이다. 여기 우리가 손뼉치고
합창하며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길, 우리의 할 일은 선대 선열들의 뜻을 이어받아서 그분들이
가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후일 선열들 앞에 갔을 때 우리도 민족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친일 반민족자들과 맞서 싸우고 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왜 친일 천국을 후손에게 물려준 죄 많은 조상이 되어야 하는가.
<월간 순국 2002년 1월호 통권 1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