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06년10월03일
산행코스; 구포 경혜여고~주지 1,2,3봉~불웅령~성지곡 만남의숲~금정봉~초읍 대진 아파트
백양산은 구포의 주산인 주지봉(蛛蜘峰)과 이어진다. 산 정상에 마치 거미가 웅크린 모습의 암봉이 연
이어 솟아 있어 낙타봉으로도 불리며 이 길은 백양산에서는 가장 옹골찬 산길로 시랑골과 음정골이 흘러
내린다. 시랑골 골짜기에는 차디찬 금샘터가 있어 찾는 이가 많이 있다.
백양산을 모라 운수사에서나,당감동 선암사에서나 오르면 눈에 항상 밟히면서도 그냥지나치는 곳이다.
보통, 백양산 능선을 종주하면 삼각봉-백양산-불태령-만남의광장 을 잇는 주능선을밟게된다.
낙동정맥의 줄기도 이 이음새와 궤를 같이하고 철쭉과 억새가 계절의 풍치를 돋울 뿐 아니라 사방팔방으
로 부산과 인근의 조망이 시원하기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다. 백양산에서 불태령으로 향하면, 좌측으로
구포,만덕 방향으로 뻗어내리는 연봉의 능선을 주목할 수 있다. 이 능선은 구포동,덕천동 일대에서 바라
보면 제법 위용을 발하며, 백양산의 모습을 또한 매번 달리 보이게 하는 매력을 풍기고 있다. 이름하여
주지봉-거미주, 거미지 字를 사용하여 "거미가 엎드린 연봉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혹자들은
낙타봉이라고하여 그 특징을 잘 살려 표기한다. 구포동, 덕천동 아파트 단지의 뒷산이니 어찌 등산길
이 잘 나있지 않겠는가. 형세로 봐 암릉이 제법 형성되어 있을 것 같기도 하여 사뭇 흥미를 끈다.
경혜여고 정문에서 보광사쪽으로 발길을 향한다.
양덕여중의 담쟁이 넝쿨이 가을을 먼저 맞이하는듯 하다.
보광사는 덕천주공 110동에서 바로 연결된다.
보광사 우측 돌계단이 산행초입이다.
산길은 편안한 소나무길을 지난다.
무심코 지나가는 돌길의 무수한 돌탑들은 쌓은이의 그 열정과 기술에 대해 경이감 마저 느낀다.
백천약수터와 체육공원을 지난다.
체육공원을 지나면 불웅령가는 이정표가 자세히 나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길이라 해야할듯..
돌탑이 세워진 556봉까진 가파른 오르막이 30여분 이어지는데..제법 땀깨나 흘린다.
드디어 주지봉의 위용이 나타난다. 긴장감이 흐르나 은근히 기대된다.
주지봉의 아찔한 칼날능선 암릉산행을 즐길수가 있다.
주지1봉은 정면으로 오르면 위험하나 지나치듯 진행하여 후미에서 오르면 쉽게 오를수 있다.
구만덕 뒤로 금정산 상계봉의 당당한 모습이 보인다.
주지1봉 발아래로 펼쳐진 조망은 구포3동 부산정보대학이다.
주지1봉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을 가로지른 지하철3호선의 철로가 시원스레 뻗어있다.
백양산 줄기중 가장 경치가 좋은 주지2봉이다.
가까이에서 본 주지봉의 주봉인 2봉의 칼날능선을 바라보니 아찔함이 극에 달한다.
바위를 잡고 조심스레 오르는 재미가 스릴를 느끼게 하지만, 의외로 수월하게 오를수 있다.
지나온 556봉
주봉아래에서 시원한 갈~바람과 함께 일망무제의 조망을 느끼며 잠시..無念에 잠기는듯 하다.
백양산 정상에서 뻗어내린 주능선길은 방화선의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마루금의 자태는 아름답다
정상부는 의외로 조금 여유가 있고 전망이 탁월하다.
배산임수라 하던가.. 백양산 자락에 움팍히 둘러쌓인 구포3동의 풍광을 말하는듯 하다.
조금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불웅령으로 향한다.
바위를 돌아 미끄러지듯 내리는데 다리가 긴사람이면 몰라도 내림길은 ㅠㅠ..
철탑을 지나면 불웅령이다.
간간이 들어난 억새밭을 지나는 맛도 특별나다.
불웅령 정상에서 마주 본 주지봉 암릉의 연봉 1,2,3 봉이다.
무명봉을 거쳐 초읍 만남의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이고 금정산에서 백양산으로 종주하시는 산님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코스이다.
금정산, 백양산을 잇는 만남의 숲이다. 많은산행객들로 항시 붐비는 곳이다.
남문과 성지곡수원지로 연결되는 산행로에는 가족단위와 부부 산님들이 많이 보인다.
금정봉 오르는 산길로 접어드니 구도가 잘 잡힌 걷기편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싱싱한 소나무 잎들이 우거져 있어 호젓함을 느낀다.
돌계단을 올라서니 약 80 평쯤 되어 보이는 덕석바위가 있다. 경사면도 거의 없을 정도로 평평하며
덕석바위 아래에 약 25m 길이의 베틀굴이 있다는데 방치된 상태란 말에 내려가 보질 않았다.
소나무 아래의 조망은 앞으로는 상계봉, 왼쪽으로는 백양산, 그리고 황령산과 장산도 보인다.
금정봉(金井峰, 금용산, 쇠미산)은 동래구에 소재하고 있는 산 중 가장 높은 산으로서 해발 408m이
다. 금정봉은 바다를 향해 있는 쪽은 매우 가파르고 금정산쪽으로는 능선이 곱게 뻗어있다.
금정봉에 대한 옛 기록을『동래부지(1740)』산천조에 보면, "금용산은 동래부 서쪽 5리에 있다"라고 했
다. 금용산의 "金"자는 신라에서 "쇠"라 훈차(訓借)하여 많이 쓰여진 것으로 "金川, 金惱"는 다같이「쇠
내」로 읽으며,「금정」을 「쇠잣」으로 읽는 것 따위가 모두 그런 유례인 것인다. "용"자는 솟는다는 뜻
이나 "솥"으로 읽어 마땅하다. 新羅古歌『균여전미찬여래가(均如傳彌讚如來歌)』에「일념악중용출거량
(一念惡中涌出去良)」이란 구절은「일념악해솟나가라」로 읽지만『계림유사』에 보면 "왈한세라" 했다
즉, 漢은 백색이며 歲는 "쇠"를 말한 것이며 "심일급흔(深日及欣)"이라 했고 또 박인을 朴紗賢이라 기록
했을 뿐 아니라, 吉語에 "屈自"는 大城의 뜻이며 『莫阿』는 마을의 뜻이 된다. 신라대의 우리말에 대한
한자 빌림은 상상외로 황당했던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이 "쇠솥이뫼"의 관계로 고려 의종조와 조선초
기에 들어 "富山浦"라 기록했지만 "富"자는 "釜"와 동음인데다가 '訓'도 거의 같은데서 잘못 기록된 것에
불과하며 이런 예는 그 시대에는 허다했던 것이다.
이 금용산을 일러 '쇠미산'이라 호칭하는데 그 이유는"쇠솥이뫼"가 "쇠뫼"로 "쇠모"가 다시 "쇠미"로 와
전된 것이다. 쇠미산 산정을 金井峰이라고도 불리는데 산정상 바로 밑에는 넓이가 80여평이나 되는 특이
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덕석바위'라고 부르며 이 바위 아래에는 약 25m의 동굴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여인들이 피난해서 군포를 짜서 전장에 나가 있는 낭군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
고 있는 이 동굴은 '베틀굴'이라고 불려 오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시 주민들이 왜군이 올 때마다 피신한
곳이며 굴입구에 항상 거미줄을 쳐주었기 때문에 왜군들도 속았다고 해서 그 뒤로부터 이 산을 '생명
산'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옛날 이산에 쇳물〔철물〕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쇠미산'이라고 했다는 설
도 있다.
금정봉은 양산 다방리에서 시작되는 금정대종주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정상엔 쇠미산(금정봉)이란 표지
석은 없고 코스모스가 우릴 반긴다.
바위돌로 쌓은 약 1m 높이의 성곽을 따라 하산한다.
경사가 매우 심한 내리막 길이다. 대진아파트에서 산길을 오를시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할듯 하다.
금정봉을 오르는 것이 힘에 부친다면 초읍 어린이대공원에서 놀이공원쪽으로 가 삼림욕장으로 올라도
좋다. 여기서는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도 좋고 땀을 내고 싶으면 속보로 걸으면 된다.
이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만남의 광장이 터잡고 있다. 오르막이기는 하지만 경사가 세지 않아 힘들이
지 않고 오를수 있다.
성지곡 삼환아파트와 대진 파레스 필드단지 사잇길이 금정봉 오르는 산행초입이다.
초읍 시립시민도서관 뒷길로 접어들어 초읍 대진아파트 왼쪽 능선에서 금정봉으로 오른다.
첫댓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