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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맨 칭기스칸
- 지난 천년의 가장 중요한 인물, 칭기스칸
학살자에서 경제정복자로 다시 태어난 칭기스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은 칭기스칸 평전인 동시에 경세전략 분석서이다. 하지만, 기존에 나와 있는 다른 연대기적 소설이나 전기와는 달리 칭기스칸 제국의 문명사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짚어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보이고 있다. 칭기스칸은 과거를 살다간 인물이 아닌 21세기 문명전환을 이끌어 갈 키워드인 것이다.
태풍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세상을 격변시키는 어떤 거대한 힘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진다.
그 강렬한 힘에 짓밟힌 모든 것들, 그로부터 상처 입었다고 아우성치는 모든 수동적인 것들
에게 그들이 미처 이해하지 못한 어떤 진실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13세기, 유라시
아 대륙에 몰아친 ‘태풍’은 칭기스칸이었다. - 본문 中에서
1. 왜 지금 칭기스칸인가?
도대체 이 아찔한 속도와 정보의 시대에 800년 전에 죽은 칭기스칸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아찔한 속도와 정보를 움켜쥔 칭기스칸’을 우리에게 내놓으며 이것이 바로 칭기스칸이 세계를 제패한 비밀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정복한 것은 광활한 공간이 아니라 속도였다!
이제까지 칭기스칸은 역사 속에서 실종된 인물이었다. 역사 속에서 그는 야만인이며 살인자였고 약탈자였다. 또한 평화로운 문명을 짓밟고 광활한 영토를 독차지한 변방의 운 좋은 오랑캐일 뿐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칭기스칸이 어떻게 2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유라시아 전체를 차지하는 광대한 제국을 완성했는지, 100만 ~ 200만밖에 안되는 인구로 어떻게 1억~ 2억에 이르는 사람들을 150년이나 통치할 수 있었는지를 간과한다. 또한 칭기스칸의 제국 속에서 어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 변화는 향후 800년간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는 칭기스칸 제국이 가졌던 문명사적 의미에 대해 본격적인 의문을 던진다. 저널리스트답게 그의 질문은 지극히 현대적이고 경제학적이다(이제까지 칭기스칸의 성공을 현대적인 시스템적으로 파악한 책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칭기스칸은 단 10만의 군대로 중국, 이슬람, 유럽 문명을 정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제국을 150년간이나 효율적으로 통치했다. 그것이 어떻게 우연의 산물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세계를 경영한 CEO로써 칭기스칸의 경영 비밀은 무엇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칭기스칸을 무력정복자의 이미지에서 새로운 세계경제체제의 건설자로 복원시킨다. 칭기스칸 제국은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야만과 잔인함으로 세워진 것도 아니고, 칭기스칸이 신화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칭기스칸 제국은 지극히 미래지향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 합리적이고 열린 경영 마인드에 의해 탄생했다.
테크노 헤게모니, 속도 숭배, 정보 마인드, 중상적 실용주의, 철저한 실력주의, 다민족에 대한 열린 사고는 칭기스칸 제국 통치의 가장 핵심적인 마인드였다.
칭기스칸은 속도, 기술, 정보를 그 어떤 가치보다 존중했다. 칭기스칸은 정복지의 기술자를 절대로 죽이지 않았고 그 어떤 제왕보다 기술자를 존중했다. 칭기스칸의 군대는 역사상 그 어떤 군대보다 더 먼 거리를 비교도 안되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으며, 전 세계에 깔린 역참(驛站)과 대상(隊商)으로 조직된 네트워크로 제국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현대의 기업처럼 공룡을 만들었다가 어려워지면 살인적인 구조조정을 자행하는 둔한 시스템이 아니라, 변형과 변신이 자유롭고 철저한 실력 위주로 운영되는 천호제(千戶制)라는 제국 인력풀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칭기스칸의 제국경영에서 특히 빛나는 대목은 당시 몽골제국이 혼혈 잡종 사회로 신분의 수직 상승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판가름 나는 완벽하게 열린 사회였다는 점이다. 칭기스칸은 수많은 이질적 민족과 종교,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을 하나의 ‘팍스 몽골리카’ 내부로 수용하면서 아무도 차별하지 않았다. 다양성의 수용과 통제의 균형, 이것이 ‘개방성’으로 표현되는 칭기스칸의 수용정책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21세기 경영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칭기스칸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지나간 1천년에서 가장 거대한 사변은 하나의 단일 민족이 전 세계에 자신의 기질을
완벽하게 발휘한 것이다. 그와 그 후손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광대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냈고, 동서양 문명의 연결을 강화했다. 이는 중세의 GATT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터넷이 발생하기 7세기 전에 이미 전 세계적인 콤비네이션을 구축해 놨다.
그는 사람과 기술을 이동시켜 세계를 좁게 만든 인물이다.
2. 정착 마인드와 이동 마인드
지금까지 우리에게 교훈이 된 인간형은 삼국지적인 인간형이었다. 삼국지적 인간형에는 왕국의 패권을 다루는 수많은 지혜와 교훈이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거울이고 인간 판단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삼국지적 인간형은 하나의 ‘파이’를 두고 서로 쟁탈하려는 제로섬 게임의 복마전에서 살아남은 영웅일 뿐이다.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살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죽어야하므로 필연적으로 권모술수와 배반이 인간관계의 기저를 이룬다. 저자는 삼국지적인 인간형이 역사의 교훈이 된 것은 천동설에 길들여져 성 밖의 넓은 대륙과 푸른 바다를 보지 못했던 정착문명의 슬픈 운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갇힌 문명’이 서로를 갉아먹으며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칭기스칸은 삼국지적인 인간형에서 벗어나 있는 21세기적인 인간형이다. 놀랍게도 칭기스칸의 세계정복사에는 단 한명의 배신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와 마주친 사람마다 신의와 충성이 가득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칭기스칸이 사람들을 한눈에 알아볼만한 안목이 있어서도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국지적인 인간형과 칭기스칸의 너커르(동지)들이 가진 인간형은 패러다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착 마인드와 이동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의 ‘가치 차이’가 삼국지적인 인간형과 너커르형 인간형을 구분하는 것이다.
정착문명은 성곽을 쌓았다. 이는 지상에 거대한 ‘이익의 칸막이’를 세우는 것이고, 대지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며, 사회와 사회, 문명과 문명 간의 소통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정착문명이 만리장성을 쌓으며 제 이익과 자리다툼의 기득권 보호에 혈안이 되었다면, 유목이동문명은 성을 쌓는 대신 길을 닦았다. 그것은 만리장성보다 더 소중한 인류의 유산으로 취급받는 실크로드이다. 정착문명 속에서는 누군가 많이 먹으면 누구가가 굶어야했지만 이동문명의 사람들은 길이 열릴 때마다 모두가 부유해졌다.
믿기지 않겠지만 칭기스칸 제국은 그 어떤 왕국보다 부유했다. 인류의 역사가 생긴 이래로 그렇게 많은 물자, 정보, 기술, 사람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렇게 넓은 영토를 자유롭게 왕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정착문명 속에서 잉여가 권력의 극대화를 위해 사용되었다면 칭기스칸 제국 속에서 잉여는 제국의 끝에서 끝까지 펼쳐진 길을 따라 자유롭게 왕래되었다. 잉여의 교환이 쉽게 이루어지는 사회는 모두가 부유해진다. 그 결과 칭기스칸 제국은 그 어느 시절보다 부유했다. 역사 교과서는 이 시절을 단지 서민 문화가 발달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의 진정한 의미는 가장 많은 영토를 확장했다는 것이 아니라 영토라는 개념에 대한 가치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칭기스칸은 영토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소통하고 왕래하는 하나의 길로 생각했다. 그 가치의 전환이야말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대 혁명이다.
21세기는 닫힌 계(界)가 아니다. 21세기의 글로벌 환경 속에서 칸막이를 세우고는 그 누구도 생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착문명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둔 삼국지적인 영웅은 21세기의 변화에 적합한 인간형이 아니다. 저자는 21세기에 닥친 우리의 모순을 이동문명이라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정착형 인간이라고 본다. 세계는 이동문명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정착문명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학습되고 세뇌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칭기스칸에게 배워야 할 것들
21세기에 닥친 세계의 변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당황한다. 일찍이 속도가 이처럼 모든 경쟁력의 핵심이 된 시절도 없었고 정보가 현실에 미치는 역학 관계가 이렇게 대규모로 전개된 적도 인류 역사에 없었다. 예를 들어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곳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면 그 소식은 인터넷, 휴대전화, 인공위성, 지상파와 공중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 주식, 투자, 유통, 소비 등등 지구상의 모든 경제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나비효과라고나 할까. 저자는 이런 21세기의 생소한 환경을 이동문명이라고 정의한다.
그 이동문명의 틀은 바로 유목문명 속에서 나왔다. 요컨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인터넷, 디지털, 벤처, 지구촌, 세계 경영, 열린 마음, 지구공동체, 연방제, 지방자치, 다국적기업 등의 개념들은 정착민족보다는 유목민족의 특성에서 기인했다. 칭기스칸의 경제 정책은 오늘날 세계무역협약인 GATT의 원본이고 그의 통신수단인 역참제는 오늘날 세계를 하나로 잇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원형이었다. 중세 유럽은 그로부터 시장과 사회를 개발하고 타지역과의 통합이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제 단일 통화제도, 자유무역지대, 다민족 공동체, 국제사회에 관례가 된 외교관의 신분과 지위 보장도 역시 칭기스칸의 산물이다. 오늘날 국가 경쟁력의 주요 개념이 된 전문가 집단 양성, 열린사회의 다국적군, 기술 패권주의, 정보 우선주의, 국가 리엔지니어링, 속도주의 등도 칭기스칸 세계관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칭기스칸이 행한 정치 사상의 자유는 오늘날 국제화 시대의 정치 철학이고 그가 전쟁에 승리한 후에 공평하게 분배한 것은 투명한 경영과 인센티브 제도의 모체이며 실력 있는 지도자를 조직원이 직접 뽑게 한 후계자 선정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칭기스칸에게 본받을 점은 그가 세계의 모든 부를 거머쥔 후에도 평생을 천막에서 살았다는 점이다. 입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지도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칭기스칸은 화석화된 인간도, 전설의 인간도, 바람의 인간도 아니며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지나간 교훈이나 던져주는 무력한 인간도 아니다. 칭기스칸은 800년 전에 이미 속도, 네트워크, 수평이동 마인드 같은 지극히 현대적인 패러다임을 창조해냈고 그것을 자신의 제국 속에서 실천해냈다. 칭기스칸이 이루어낸 세계 연방은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너무나 흡사하다. 인류는 칭기스칸으로부터 촉발된 세계의 변화, 거기서 발생한 숱한 성과물 아래서 살아 왔다. 동양과 서양,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의 지구촌 질서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대성의 일부를 칭기스칸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4. 또다시 불어오는 칭기스칸 바람
오랜 기자 출신답게 이 책은 학문적인 딱딱함에서 벗어나 저널리즘적인 요소가 가득 들어가 있다. 몽골 전문가이며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끝없는 현장성과 현재성에 주목하고 있고 또한 그 방향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칭기스칸의 평전 혹은 정복사의 사적인 영역에서도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몽골 현지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몽골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책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고, 몽골의 학계, 재계, 정계에서 ‘우리들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던 유목 사회의 정체성을 정착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널리스트가 제기했다’고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은 또 다른 저작물인 《유목민이야기》와 함께 몽골어판으로 번역되었다.
한국에서도 칭기스칸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다. 저자의 전작인 《CEO 칭기스칸》은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저자는 삼성, 현대 등의 기업체와 대학, 정부기관 등에서 다수에 걸쳐 강의를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KBS TV에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후속편으로 〈칭기스칸〉 방영을 확정한 상태이다. 정복자, 학살자, 전쟁광으로 알려진 유목민 칭기스칸이 한국사회에서도 21세기의 새로운 코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책 속으로]
재벌들! 당신들은 천하가 자신을 위해 돈다고 착각하는 천동설의 나라에 사는 벌거벗은 임금들이다. 난 원래 장사꾼을 가장 아꼈던 사람이다. 상업이야말로 막힌 것을 뚫어주고, 멈춘 것을 움직이게 하는 피요 힘이다. 얼어붙은 들녘으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이다. 마른 풀밭에 적셔드는 강물처럼 생기를 주는 성스런 직업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들아! 당신들은 진정으로 상업의 신성함을 받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인(人)의 장막을 쳐놓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말단 병사도 나를 부를 때는 이름만 부르면 됐다. 난 내 뺨에 화살을 쏜 적이나 포로까지 만나 함께 일하려고 애를 썼다. 지금 이 시각 당신들 주위에는 누가 있는가?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멋대로 결정하고, 지시하고, 바꾸고, 조석으로 변덕을 부리지 않았는가? 그러다가도 일이 잘못되면 아랫사람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목을 잘라댄 게 당신들이다.
나는 내 참모들과 의논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독단으로 처리한 적이 없다. 내가 결심한 일이라도 먼저 전문 장인 그룹의 의견을 묻고, 그 다음에는 반드시 참모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그러고도 무당들을 데리고 보르칸산으로 달려가 3박 4일, 5박 6일 굿을 하면서 하늘에 그 뜻을 물었다. 그랬기 때문에 설사 전쟁에 져도 나는 한 번도 부하들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운 적이 없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푸른 하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진심으로 참회했다.
내가 비자금이나 챙겨 정치 놀음에 한눈을 팔고, 오직 내 새끼라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남겨주려고 혈안이 됐다면 어떻게 내 부하들이 만리나 되는 사막길을 달려가 콰레즘제국과 7년 전쟁을 벌일 수 있었겠는가. 사사건건 의심하고 호령이나 해댄다면 어떤 종업원이 백리길을 멀다 하지 않고, 하루해를 길다 하지 않겠는가.
내 부하들은 전쟁터를 직장으로 알고 산 전사들이었다. 말을 타고 칼을 잡으면 그게 곧 출근이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면 그게 근무고, 그러다 죽으면 그게 퇴직이었다. 나는 순직한 전사자에게는 3대가 편안히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을 내려 유가족을 위로했고, 승리한 부하들에게는 공평하게 약탈물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최전선에서 칼을 들고 말을 달렸다. 직접 적과 맞서서 작전을 구상했고, 앞장서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내가 얻은 것은 기업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다. 나는 사나이답게 호탕하게 살았으므로 그것으로 족하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이다. 새처럼, 짐승처럼, 나는 날마다 새 전쟁터로 말을 달렸다. 창고에 곡식을 쌓아둔 채 놀다가는 농사짓는 법도, 사냥하는 법도 잊어버리고 만다.
내 군대의 숫자와 맞먹는 부하 직원을 거느리는 재벌들아! 당신들은 나 칭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한 나 칭기스칸이 무덤도 없이 한 줄기 바람처럼 이 세상을 살다 갔다고 한다면 과연 믿겠는가. -〈칭기스칸으로부터 온 편지〉 中에서
[저자 소개]
김종래
1952년 충남 논산 출생. 서울 경복고 및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정치부․편집부에서 근무했고 이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정치부 차장, 〈주간조선〉 부장(직대)을 지냈으며, 조선일보 사회부장, 편집국 부국장(편집총괄 및 디지털미디어 담당)을 거쳐 현재 출판국장이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우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CEO 칭기스칸-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삼성경제연구소, 2002), 《우마드-여성시대의 새로운 코드》(삼성경제연구소, 2003), 《유목민 이야기-유라시아 초원에서 디지털 제국까지》(꿈엔들, 2005) 이 있다.
2002년 11월 몽골정부로부터 친선훈장을 받았고, 몽골국립대학과 칭기스칸 아카데미에서 명예박사 학위(역사학)을 수여했다. 2002년 6월에는 한국교육방송(EBS TV)에서 “칭기스칸에게서 배우는 CEO 경영전략”과 “21세기는 유목민의 시대”라는 주제로 강연하였고, 삼성과 현대 등의 기업과 정부 부처, 대학 등에 다수 출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