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작가의 셰익스피어보단, 시인으로서의 그가 중심에 있는 게시판인줄 뻔히 알면서도 오늘 너무 기쁘게 본 탓에 함께 올려놓습니다. DVD 감상 후기입니다. 역시 제 성격처럼 알맹이 없이 장황합니다. 오늘 뜻하지 않게 도배하네요. 그것도 죄송.
드뷔시의 눈이 춤춘다란 곡을 들을때면, 함박눈이 내릴때 고개를 홱 제쳐 하늘을 보는 느낌입니다. 잿빛 점점들이 내게로만 쏟아지는 듯 다가오는 느낌. 그런 눈은 아니였지만, 오늘 지하철간에서, 그리고 늘 낯선 서울거리에서 내리는 눈을 맞았습니다. 눈온다고 걸화걸어서 기쁨을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과, 이젠 빼도박도 못할 30대 후반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서글펐습니다. 10월부터 이겨낼 수 없는 일거리로 15살이후 최저 체중을 기록하더니, 결국 이명과 무릎관절통증까지 겹쳐서, 더 서글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곤 저와 함께 DVD가 도착했습니다. 모짜르트의 모든 현4와 몇몇 음반이 함께 왔지만, 아직 뜯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과 헨리5세를 서둘러 돌렸지요. 이제까진 로렌스 올리비에를 좋아할만큼 나이가 많지 않다는것을 퍽 다행스럽게 여겼는데, 오늘 그의 햄릿을 보면서 저 배우와 함께 사춘기를 보내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단 생각까지 하게되었습니다.
평면도 아닌 볼록한 구닥다리 티비 옆에 걸쳐진 초라한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필하모닉의 배경음악은, 또 한번 비어있는 지갑을 서럽게 했지만, 서러움은 이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버나도와 마셀러스, 그리고 호레이쇼의 1막1장은 늘 있으나 마나한(물론 저한테)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치 교향곡의 도입부처럼 여기서 부터 서서히 조여온다는 느낌을 새롭게 받았지요. 오랫동안 햄릿을 봐왔던 것이 이유일수도 있겠지만, 대배우가 준 영향이 더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평생에 햄릿의 충직한 친구이자 신하가 되어준 3사람이 함께 선왕의 유령을 보게 되는것도,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중에 단점이 드러나지 않는 3인으로 극을 시작하는것은 필시 그가 미리 정해논 것은 아닌가 하는데까지 생각이 펼쳐졌습니다.
간결한 무대는 감독이기도 했던 대배우가, 관람자인 저와 연극적교류를 꿈꾸는 것이지 싶었구요. 궁정에서 오필리어의 집까지 이어지는 카메라가 특히 그런 생각을 더하게 했습니다.
우선 다른 햄릿들과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이 비교되었을 때, 2가지차이점을 들 수 있을것 같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등장인물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뚱뚱한 로즌크랜츠와 얍삽한 길든스턴이 등장하지 않고, 또 한사람 감독의 머리에서 완전히 지워진 사람이 있는데 예측하시겠지만 포틴브라스입니다. 그럼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시겠네요. 호레이쇼가 대신 했습니다. 존왕의 마지막에서 왕위가 뜸금없이 등장치도 않았던 그의 아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허망했던 것처럼, 햄릿 역시, 몇번 이름으로, 그리고 단 한장면 비치는 포틴브레스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것은 뜸금없어, 늘 큰 혼란함이로 남겨져있던 저에겐 산뜻했습니다. 산뜻 그 자체! 물론 대배우가 저와 같은 미숙함으로 제외시켰다곤 생각치 않습니다. 물론 저에겐 , 철부지 어린아이가 툭툭 토닥여주는 어른의 손길을 인정받은 것으로 느끼는 착각쯤될것입니다.
그다음 특징이 편집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았던, 과감한 생략입니다. 이 영화는 2시간40분 가까운 시간으로 다른 비디오에 비해 좀 길었지만, 생략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랜전에 본 비디오들이라서 다른 작품은 어땠는지 기억하기 어렵지만, 보는 내내 생략이 많다는 것 뚜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조연배우들이 몇몇 빠져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봤지만, 예를 들면 극중극은 모든 대사를 뺀 무언극으로 처리되었고, 배우와의 만남도 짧게 잘렸습니다. 선왕을 처음 만난 후의 대사도 많은 부분 삭제되었습니다. 또 3막에서 어머니에게 분노하는 장면 역시, 무덤지기와의 장면도 역시 알렉산더부분이 생략되었습니다. 2막1장의 장면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역시 줄였습니다. 후에 미친 오필리어의 장면도 아주 많이 사라졌더군요.
그럼 이제 등장인물들을 살펴볼까요?
멜깁슨의 햄릿은 미친척햄릿에 비중을 두었단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배우의 미친척이 과장되어 있고, 전체적인 느낌도 붕떠있는 허풍쟁이 같은 느낌이 강했구요. 케네스브레너의 햄릿은 머랄까~ 얍실하지요. 비열하다고까지 하면 과하겠지만, 헛소동에 나오는 베네딕트의 재치가 과해 나타나는 조롱조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케네스 브레너의 햄릿은 짧은 인생을 기쁘게 해주는 큰 위안거리입니다. 올리비에의 햄릿은 미치지 않았습니다. 늘 뚜렷한 이성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수녀원 이야기가 나오는 오필리어와의 대면 장면에서도 그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미친척 해야되는것 아니냐고 물어보실것 같은데, 커튼뒤에 숨어 있는 왕와 플로니어스를 이야기를 미리 엿듣는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적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의 대사는 감동이 좀 덜했던것 같습니다. 바닷가 절벽위에서 독백을 했습니다.
오필리어에 대해선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후에 미친 오필리어를 염두해두고 고른 배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했어요. 눈모양과 눈빛이 극 후반부 오필리어에 딱 맞았습니다. 상상되실지 모르겠네요.
제 닉이 호레이쇼라고 해도, 햄릿을 볼때 그에게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호레이쇼는 연기를 못하지 않는 이상 눈에 띄긴 힘든 역이니까, 눈에 안뜬걸 보면 그의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은 모양입니다.
케네스 브레너의 레어티즈는 그게 머랄까 약간 사기꾼같은 인상이잖아요. 저만 그렇게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딱 맘에 드는 레어티즈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생긴 모양은 딱 맘에 들었습니다. 햄릿이 오필리어의 장례때 "나는 쭉 너를 사랑했었다."는 말을 하는 걸로 미루어서, 호레이쇼나 마셜러스류로 생겨야 할것 같단 생각을 내내 했었는데, 정말 그랬지요. 다만! 정말 딱 하나! 흠이 있었는데 연!기!를 못했습니다. 그 부자연스런 몸짓.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어스는 잘 어울렸습니다. 햄릿이 말!말!말를 하는 장면에서 서로 계속 상의하는 것으로 설정했던것이 새롭게 눈에 띄였구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거트루드를 약간 색을 밝히는 것으로 해석한 연극도 본적이 있고, 또 이런 류의 해석이 요즘 들어 유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번 영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3막4장 이후 그녀는 선왕 햄릿이 뱀이 아니고, 다른 음모에 의해 죽은건 아닌지 정말 의심하는 듯 보였습니다. 또 마지막 결투장면에서 그녀는 클로디어스의 진주가 독이라는 것을 미리 아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아들을 위해 자기가 마셔버리는 것으로 했습니다. 생긴 모습도 전혀 야시시하진 않았구요. 오래된 영화라서 그럴까요? 제 남편은 거투르드와 클로디어스가 이미 선왕햄릿이 죽기 전부터 정분이 났고, 햄릿도 그들의 자식일거라 우겨대는게 말이지요.
그리고 꼭 이야기 드려야 할 인물이 오즈릭입니다. 정말 멋졌어요. 확실히 보여주었다고 해야할까요? 멜깁슨햄릿의 오즈릭은 죽은시인의 키딩선생이였거든요. 일단 인상이 안맞는다 싶었는데, 이번엔 생긴것에! 그 완벽한 몸짓! 환상이였습니다. 오즈릭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제가 쓰는 닉도 그렇고, 리어의 켄트나 오셀로의 캐시오, 리처드2세의 고온트 존이나, 헨리6세의 글로스터 공작같은 캐릭터에 큰 애정을 갖는걸 보면, 저는 천성적으로 무거운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오즈릭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귀엽단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모두 기대하시는 무덤지기장면이 조금 실망했습니다. 어쩔수 없는 일인것 같아요. 케네스브레너의 햄릿처럼 재치와 조롱을 넘나드는 햄릿이였을때, 가장 완벽하겠지만, 끝까지 진중하고 무게있는 햄릿과, 그 옆에 또 진실되고 절대 가벼울수 없는 호레이쇼에 그리고 젊잔게 생긴 무덤지기. 3박자가 모두 가능하지 않았다고 미리 귀뜸해주는 꼴이였지요.
이제 정리해야 될것 같습니다. 주절주절이 너무 길었습니다. 케네스브레너의 햄릿을 보던 날! 보잘것 없고, 하찮아서 지루했던 제 인생에, 오래 지속될 기쁨이 다녀갔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의 4시간짜리 원판비디오를 꼭 구하고 싶다는 아직도 이루지 못한 소원이 생겼던 것이구요. 오늘 초저녁에 본 로렌스 리비에의 햄릿은 옛기억을 뛰어넘는 또 다른 즐거움이였습니다.
그래도! 케네스브레너의 4시간짜리 햄릿을 보게되면 그걸 첫손에 꼽을 것 같은 예감은 버리지 않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