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문고 50년 발자취
평범한 진리, ‘독서는 국력이다’ 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것이다. 겨울밤 아랫목에서 서너명의 형제가 이불하나를 덮고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책을 읽었던 기억은 오래돼 모서리가 야들야들해진 책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12월20일 새마을문고중앙회(회장 오흥배) 중앙연수원 대강당에서 ‘새마을문고 운동 제50주년 기념식 및 대통령기 제31회 국민독서경진대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여기서 새마을문고 경주시지부(회장 이순득)가 최우상을 수상했다.
새마을문고는 지역 주민의 교양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마을에 설치한 작은 도서관으로 1961년 2월 경주시립도서관의 전신인 경주읍립도서관 초대관장이었던 엄대섭 선생이 창설했다.
새마을문고 창설자 엄대섭(嚴大燮)선생 - 독서운동은 농촌계몽운동
|
|
|
▲ 엄대섭 선생 |
엄대섭 선생은(1921~2009) 경남 울주군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소작이 떨어지고 생계가 막연해지자 고향을 등지고 부모와 함께 여덟 살 때 일본 땅으로 가게 됐다. 그의 부모는 공사장을 번갈아 돌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국민학교 3학년 어느 날, 아버지는 제철소에서 일하다 중상을 입고 불구가 됐다. 열네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어머니와 함께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내면서 자수성가했다.
엄대섭 선생은 현대 한국 도서관운동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큰 인물이다. 1951년 6월 경남 울산군에서 개인 장서 3000여 권을 토대로 사립 무료도서관을 세우고 인근 주민들을 이용하게 하는 한편, 군내 전 농어민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 50여 개의 순회문고를 마련해 농어촌 지대에 봉사했다. 이때 순회 문고함으로 폐품 탄환상자를 수집해 활용했다.
오늘의 마을문고를 창안하게 된 동기는 이 탄환상자에 도서관 책 열 권 정도씩을 넣어 농어촌 주민들에게 돌려가며 읽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서운동은 당시 농어촌의 독서인구가 아주 적었고, 또한 그들에게 읽힐 도서가 적어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울산도서관의 모든 도서 및 시설을 경주시에 기증해 그것으로 경주읍립도서관을 세우고 10년간 관장직을 맡았다. 한국도서관협회 사무국장직의 심부름을 맡고 연세대학교에서 도서관학을 연구하면서도 계속 농촌문고라는 이름으로 농어촌에 ‘책보내기’ 운동을 실시했으나 이 또한 실패했다. 책보내기 운동의 실패는 충분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농어촌의 독서운동은 주민 스스로가 자조, 자립적인 운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뒤떨어진 사회의 농어촌일수록 독서운동은 책을 무료로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10여 년간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드디어 1960년 가을 경주시 변두리 마을 ‘탑리문고’ 가 전국에서 맨 처음 설치됐다. 그 해 12월에 ‘마을문고 아이디어’를 창안하게 됐고 1961년 2월 경주에서 새마을문고의 역사가 시작됐다.
새마을문고의 역사
농어촌 주민에게 간이 독서시설 마련
우리나라 새마을 문고의 역사는 바로 경주의 도서관 역사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45년 이후 도서관의 사정은 매우 빈약해 지도층과 도서관계 지도자들은 식민지치하 교육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지름길로 도서관 설치운동을 벌였다. 이름하여 1군1관운동이 전개됐다. 이후 6·25전쟁으로 전쟁복구에 힘쓰면서 도서관설치운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60년까지 도서관은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농어민이 혜택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농촌독서운동은 농촌사회교육의 일환으로 주로 정부기관에 의해 추진됐으나 사회단체나 개인 차원에서도 산발적으로 전개됐다.
1961년 2월에 엄대섭 선생은 사재 20만원을 기금으로 마을문고진흥회를 조직하고, 문교부(현재 교육부)의 후원을 얻어 마을문고보급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 범국민적 독서운동으로 발전했다. 경주에서 ‘농어촌마을문고보급회’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이 모임은 1962년에 ‘마을문고진흥회’, 1968년에 ‘마을문고본부’로 개명한다. 이러한 마을문고 운동은 20여 년 동안 맹렬히 추진됐다.
1961년 첫 해에 26개였던 마을문고는 1968년에 만 개를 돌파했으며, 1971년에 2만 개를 넘어서고, 1974년 말에는 3만 206개 촌락에 3만 5011개의 문고가 만들어졌다. 마을문고 운동은 단계적으로 상승을 거듭했다. 1980년대는 새마을운동을 민간주도로 추진한다는 정부방침에 따라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설립하고 마을문고본부를 회원단체로 가입하게 하며, 의식개혁의 중추적 기능의 독서문화운동으로 발전, 확산케 됨으로써 단체 명칭도 새마을문고중앙회로 바꼈다.
이후 마을문고는 1981년에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 정식회원단체로 가입해 새마을운동 체제로 전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문고 운동은 현대 한국 도서관 운동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엄대섭 선생의 기발하면서도 장대한 마을문고 운동은 한국 사회 전역에 근현대적 의미의 ‘작은도서관’을 심어 놓았다.
|
|
|
▲ 불국동 민들레 소도서관 개관식 장면 |
새마을문고 경주시지부
책 읽는 즐거움, 골목마다 작은 도서관
새마을문고 경주시지부는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새마을회에 소속돼있다. 감포읍(해맞이도서관), 안강읍(정다운도서관), 양남면, 내남면(내남새마을문고), 천북면(반딧불도서관), 중부동(중부동새마을문고), 성건동, 용강동, 황성동(황성동새마을문고), 불국동(민들레작은도서관) 등 읍면동 10개지역에서 활동을 하며 7개 지역 마을 도서관에 2만1200권을 보유하고 있다.
한 도시 한 책읽기
새마을문고는 해마다 한 도시 한 책읽기를 통해 지역민의 독서의식을 높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권장할 만한 한권의 도서를 선정, 시민이 함께 읽음으로써 시민의 공감대 형성과 독서인구 저변확대에 기여하며 책을 통해 책 읽는 행복을 느끼고 지식 함양과 토론문화를 형성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2007년 제1회 『경주산책』(강석경 저), 2008년 『리버보이』(팀보울러 저), 2009년 『마지막왕자』(강숙인 저), 2010년 『스프링벅』(배유안 저), 2011년 『바보빅터』(호아킴 데 포사다, 레이먼드 조 저)를 선정했다.
독서지도사강좌
2005년 기초과정 제1기를 시작으로 2011년 7기까지 약 3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강좌는 독서지도관련 이론부문과 실용부문인 신문을 활용한 글쓰기, 독서지도법, 동화구연과 북아트를 활용한 독서지도 등이다.
지난해에는 스토리텔링과 독서치료 등 5명의 전문강사가 22회에 걸쳐 총 66시간을 강의했다. 이 강좌를 수료한 주부들은 산그늘 두레박 소나무, 글동무 독서회 등의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활발한 독서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
|
|
▲ 하계 해수욕장 피서지문고 개소식 장면 |
하계피서지 문고 운영
해수욕장 개장에 맞춰 피서지 문고를 열어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으로 건전한 휴가 문화의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 23개 읍·면·동 순번제로 새마을지도자들이 해수욕장 주변 자연정화활동을 하는 환경안내소와 2000여 권의 책을 구비해 피서객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피서지문고를 운영하고 있다.
경주시민 문화 한마당
해마다 가을이면 새마을회와 함께 황성공원 일원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경주시민 문화 한마당-사랑나눔 벼룩장터를 열고 있다. 유·초·중·고등학생, 일반인 등이 참석해 백일장, 사생대회 및 오행시와 도자기만들기체험, 폼아트체험 이벤트 등 다채로운 행사를 2010년까지 가졌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 퀴즈대회 및 4가지 체험부스를 운영했다.
<서라벌신문 / 2012.01.09 / 김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