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레트>
19세기에서 20세기 초는 다양한 영역에서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고 틀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또한 개인적인 욕망이 분출하던 시대였다. 산업혁명을 통해 확산된 물질적 부는 인간의 오래된 관습과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였다. 노동자들은 정당한 댓가를 원했으며, 노예제도는 더 이상 인간의 의식 속에 수용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세부적이고 미세한 수준까지의 차별철폐는 불가능했지만 형식적이고 표현적인 측면에서는 명백한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 영역이 바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었다. 여성들은 결코 창조적인 위치와 독립적인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들에게 허용된 것은 가정에서의 권력과 사교적인 자리에서의 허영적 찬사에 지나지 않았다. 여성들이 예술적 작품을 발표하거나 과학적 활동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권리를 갖는 일은 뭔가 부적절하고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남성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많은 여성들 또한 동조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이 시대는 여성들을 억압하고 쪼여대는 무형의 사슬과의 투쟁의 시간이었다. 능력과 용기를 갖춘 여성들은 인간이 당연하게 가져야 할 권리를 위해 싸웠고, 여성의 능력과 자질을 남성과 차별 없이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엄청난 비난과 내부에서 끌어내리는 두려움과의 투쟁이었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여성을 소외시키려는 음모에 대한 끈질긴 저항이었다. 그러한 노력이 완전하지 않지만 여성의 변화를 조금씩 이끌어내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인 ‘여성 운동’ 흐름을 선도하였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콜레트>는 분명 현재 전 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투쟁의 일환 속에서 탄생하였음에 분명하다. 과거 위대한 선배의 투쟁을 통하여 여성 운동의 역사성과 진정성에 대한 의미를 제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영화는 보통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하며, 또한 사람들의 내면적 의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콜레트>는 현재적 의미로 진행 중인 여성운동과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과거의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의지를 결집시킨다.
시골에 살고 있던 콜레트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다. 이를 주목한 대필을 통해 작품을 생산하는 파리의 유명 작가와 결혼하게 된다. 남성의 열렬한 구애에 매료된 그녀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남성의 결혼 목적은 그녀를 문학적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소설을 쓰도록 강요했고 그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작품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남편은 작가로서 명성과 수입을 동시에 획득하게 된다.
콜레트의 일련의 작품은 계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문학적인 성공은 남편의 부도덕한 행동을 더욱 무절제하게 만들고 도덕적인 타락과 아내의 재능을 이용하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이에 실망한 콜레트는 글을 쓰는 대신에 지방연극 무대에 서기도 하고 동성의 친구를 만나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문학적 성공이 필요했던 남편은 그녀에게 작품을 강요하자 그녀는 공동저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요구를 거절한 남편과의 갈등은 커지고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된다.
이혼 이후 그녀는 자신의 삶을 다룬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성공하게 된다. 또한 그동안 남편의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들의 저작권을 재판을 통해서 다시 찾게 된다. 평범하고 남편에게 순종적인 삶을 살려고 했지만 남편의 위선과 거짓, 여성의 권리와 능력을 모욕하는 사회를 향해 그녀는 투쟁을 선포하고 결국 작가로서의 자신의 권리와 여성도 문학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녀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할 때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을 제공한 것은 그녀의 동성친구(애인)였다. 결국 그들은 여성의 권리 확산의 중요한 이정표를 획득한 것이다.
이 영화는 실제 프랑스의 유명 작가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의 실화이다.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낸 위대한 도전의 기록인 것이다. 당시에는 남성들이 원하는 고정적인 여성상이 있었다. 이 여성상에 벗어난 모습은 그들에게 모욕과 공격의 대상이었다. 영화 속 콜레트와 동성친구 사이에 나타난 동성애적 모습에 극도로 흥분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그것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남성의 욕구 이상을 욕망하고 표현했을 때 그것은 수용할 수 없는 도전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영화는 여성들이 빠질 수밖에 없는 오래된 함정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것은 일종의 능력있고 매혹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 의한 유혹이다. 사랑과 행복에 대한 달콤한 약속과 끊임없는 찬사는 결국 부도덕한 여성편력과 약속파기와 같은 신뢰의 파국으로 드러난다. 어떤 심리학자의 능력과 성실은 공존하기 어려운 자질이라는 말처럼 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남성들이 한 여자에게만 성실하고 충실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성들이 이러한 아이러니에 무너진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인간관계의 현실이다.
결국 영화는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인 삶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그린다. 비록 의존적인 삶이 물질적 행복과 안정을 제공할지라도 그것은 근본적인 통제력을 외부에 맡기는 수동적인 형태이다. 자신에게 통제력이 없는 삶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당시의 여성들은 독립적인 삶이 어렵고 힘들었다. 그것은 생존의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독립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특별한 능력과 주변의 지지였다. 이러한 사실은 ‘능력’이 전제되지 않는 독립적 삶의 비극적 상황을 고민하게 한다.
현재 수많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독립과 자율에 대한 선언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여성들이 충분히 자신의 삶을 통제할 능력과 자질이 있는데 이것을 막는 것은 자신의 욕심으로 타인을 통제하려는 태도이다. 자유와 인권의 근본은 ‘자기결정권’이다. 최근 헌재의 ‘낙태’에 대한 위헌판정도 결국 인간의 가장 중요한 권리를 핵심에 둔 것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생명의 소중함’도 엄격하게 관리하다면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영화 <콜레트>를 보면서 남성과 대립적인 시선을 통해 표현되는 ‘페미니즘적’ 관점을 넘어선, 보편적인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바탕으로 당연하게 인정되어야 하는 인간적 관점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록 콜레트의 시대와 같이 완고한 사람들에게는 도전적 태도와 차이에 대한 강조가 중요했지만 지금의 시대는 좀 더 남성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방식이 의미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선 남성들의 시각이 많이 바뀌었고 여성 운동의 근본목적이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 차별과 멸시에 대한 완전한 종식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권리는 그 자체로 절대적 목표가 아닌 인간의 차별 종식을 위한 협력적 과제로 작용할 때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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