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방방곡곡에서 야기되고 있는 정치 현상을 보면 무엇인가 이율배반적인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 국경 없는 세계, 국제적 상호 의존이라는 초현대적인 개념이 풍미하는가 하면 민족과 국가라는 비교적 오래된 개념들이 다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서유럽 제국들은 하나의 유럽으로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반면, 동부 유럽에서는 열정적인 민족주의의 물결이 높습니다. 세계화의 주도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에도 9.11 이후 '전투적 애국주의'(combative patriotism)라고 불리는 미국판 민족주의가 高唱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중국의 경우도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이 다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仇敵관계인 독일과 프랑스가 지금 상호간의 평화와 협력을 말하면서 반미를 외치는 것 역시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독일, 프랑스가 협력과 평화를 말할 수 있는 원천적인 배경이 駐獨 美軍이라는 사실은 미국이 독일로부터 철군하겠다고 말 할 그 날까지 독불 양국의 일반 시민들에게는 전혀 인식되지 못할 변수일 것입니다.
지난해는 우리나라 국민들도 민족주의적 열정을 마음껏 토로한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민족적 열정을 표현하는 양식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월드컵 8강과 4강에 올랐을 때 터져 나온 민족적 열정은 민족적 자긍심의 분출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군 병사 무죄판결 결과 터져 나온 민족주의적 감정 표현은 자긍심과는 반대가 되는 그 무엇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비하 당했다는 데 대한 분노심의 표출은 결국 반미주의의 표현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결국 反韓이라는 미국 민족주의의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계가 혼란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함은 두 가지 반대적인 흐름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세계화와 민족주의가 곳곳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말하는 간판 부근에 身土不二라는 간판이 함께 서 있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자동차를 탄다는 광고와 함께 우리 농민을 살리기 위해 외국 농산품 수입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산품 생산은 우리 국민이 필요로 하는 식량의 1/3도 안 된다는 현실에서 국산 농산품이 외국 것 보다 훨씬 좋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결국 외국산 농산품을 사 먹을 수밖에 없는 더 많은 수의 한국 국민들의 입장을 고려하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과 미국과의 거래가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역사상 최고수준에 이른 현시점에서 반미주의 역시 최고조에 이른 역설적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까? 9.11 직후 미국의 한 방송은 아랍국가들의 수도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미국행 비자를 받으려는 아랍인들의 행렬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미국에 대한 아랍의 증오심도 함께 높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위의 분석은 반미주의를 아랍권 내부의 갈등으로 설명하는 것이지만 현실적 설명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민족의 개념
민족이란 용어는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민족이란 단어는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을 ‘동족’ 혹은 ‘동포’란 말과 동일시합니다. 즉 피를 함께 나눈 동포를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남한에 사는 4500만 북한에 사는 2200만 그리고 해외에 사는 수백만 동포를 합쳐 7,000만 한민족이라고 말합니다. 이념과 행동이 엄청나게 달라도 피가 같으니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의 민족주의입니다. 북한도 한국 민족주의에 편승하는 정책을 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강조하는 ‘혈연’은 민족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인중 하나일 뿐입니다. 정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민족을 구성하는 요인으로 역사, 문화, 사상, 종교, 생활양식, 언어, 혈연의 공통성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제시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일지 모르나 혈연은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오히려 중요성의 정도가 낮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란 결국 ‘우리는 하나라는 감정’(emotion that make us one), ‘우리는 한 집단에 속한다는 느낌’(feeling of belonging)입니다. 나는 프랑스인, 나는 중국인, 나는 미국인, 나는 이태리인 이라는 민족감정을 혈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혈연을 민족의 본질적 요인으로 삼을 경우 어느 정도까지가 같은 민족이며 혹은 어느 선에서 다른 민족으로 간주해야 하느냐의 기준도 애매합니다. 세계의 인종 중 한국인과 일본인은 대표적으로 가깝습니다만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는 상대방에 대해 강력한 배타적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지구상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약 민족주의를 동족의 개념으로 정의한다면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 다 인종 국가에는 민족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황당무계한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2차 대전 당시 가장 많은 무공훈장을 받은 미 육군 제442 전투 연대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부대였습니다. 이 부대는 銀星 무공 훈장 560개 銅星 무공 훈장 4,000개라는 경이적인 戰功을 올렸습니다. 혈연과 민족이 같은 것이 아님을 반증하는 좋은 예가 됩니다.
피의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히틀러의 전쟁정책을 정당화시킨 `피의 신화` 때문이기도 합니다. 게르만인종을 모든 인종 중 가장 우수한 족속이라 규정하고, 게르만인이 살기에 독일 땅은 너무 좁다고 외친 나치즘은 게르만의 인종주의(피)와 나치스의 국가주의가 콤비를 이루어 만들어낸 국제정치사상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多인종국가인 미국의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는 사상 최강의 강대국을 건설케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1차 대전, 2차 대전 등을 거치며 미국인들이 보여준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신념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민족주의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민족주의는 `같은 과거`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반해 미국의 민족주의는 `같은 미래`에 근거하고 있다는 역설적 현상이 그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라 함은 같은 종교, 언어, 역사, 전통, 인종 의 측면에서 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는 전혀 다르지만 `같은 미래`를 살아가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입니다. 미국은 민족주의의 전통적 해석을 뒤집어 놓은 사례입니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과거를 공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데서 나오고 있으며 필자는 이를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강대국이 된 가장 중요한 요인중 하나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反美와 反韓
세계화의 시대란 각 국가 국민들의 삶이 국경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 때문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게된 세상을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주가 변동이 우리나라 내부의 일보다 외국에서 발생하는 일 때문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에서의 반미주의와 이에 자극 받은 미국내의 반한 감정 표출은 우려 할만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반미 촛불시위가 자주 열렸던 광화문 부근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는 반미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방 모 대학 앞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도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의 행동은 곧 다른 나라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오늘날 세계화의 시대입니다. 미국에서 우리가 수출한 현대 자동차를 사려고 계약을 했다가 한국에서의 반미 데모에 충격을 받아 계약을 취소했다는 미국시민도 있으며 한국제 자동차 판매점에 돌팔매질을 하는 미국인도 있답니다. 세계는, 더 더욱 우주는 한국을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는 미국인의 말은 충고보다는 경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국제정치에 훨씬 둔감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두 달 정도 지난 1950년 8월 미국에서 행한 여론조사는 미국 시민의 대부분이 어디서 전쟁이 발발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9.11 이전까지는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최근까지도 미국 군인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국 시민은 미국인의 절반에도 훨씬 미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각종 뉴스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한국내의 반미 운동은 한국에 자국 군대가 있는 줄도 몰랐던 미국 시민들을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은 언제라도 국내 여론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정책결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여론도, 유엔의 결의도 아닌, 바로 미국 국민의 여론입니다. 이런 상황은 9.11 이후 한껏 고조된 미국의 민족주의와 결부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인이 원하면 주한 미군을 철수한다고 하지만 한국인이 원치 않을 경우라도 미 국민이 원한다면 주한 미군을 철수 할 것입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여당 의원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주한 미군 철수 논의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인식은 매우 안이하고 아전 인수격’ 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한 미군이 한국전쟁 발발이래 한국에 계속 주둔했기 때문에 주한 미군이라는 존재가 없을 경우의 상황을 상상하는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사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경우를 보면 미군 주둔의 군사 전략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991년 12월 6일 필리핀 의회는 미국에게 앞으로 1년 이내에 주 필리핀 미군이 모두 철수 해 줄 것을 통보했습니다. 미군은 필리핀이 요구한 시한보다 빠른 1992년 11월 24일 철군을 완료했습니다.
필리핀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약 1년이 지난 1994년 중국은 필리핀과 영토 분쟁중에 있던 남지나해 스프라틀리(중국명 南沙) 군도의 일부 섬들에 대해 강도 높은 영유권을 주장했고 결국 필리핀인들이 팡가니반(Panganiban) 이라 부르는, 국제적으로는 미스치프 환초(Mischief Reef)라고 알려진 섬을 점령, 군사 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이 철수함을 자주권 회복의 상징으로 생각한 필리핀 인들은 주 필리핀 미군이 중국과 분쟁 중에 있는 필리핀 영토에 대한 중국인의 공격 야욕을 억제하는 잠재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족감정보다는 국가이익이 우선이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1월 9일자 신문에서 서울의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던 한국의 젊은 여성과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미군 철수에 관한 질문에 대해 한국 여성은 ‘나는 관심 없다. 미국이 떠나도 우리는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런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국방의 목적은 싸워 이긴다는데 보다는 아예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방위(defense) 보다는 억제(deterrence)가 더 중요합니다. 억제란 심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상대방보다 얼마나 강해야 상대를 억제할 수 있을지에 관한 상한선이 없습니다. 바로 이 심리적인 상한선을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채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숫자는 3,7000명에 불과하지만 주한미군은 한국군이 1년 간 쓰는 군사비와 버금가는 군사비를 쓰고 있으며 미군이 보유한 장비의 가격은 한국 국방예산 10년 치와 맞먹습니다.
전쟁 억제보다 더욱 중요한 한미동맹의 기능은 경제적인 것입니다. 한국의 안정을 세계의 투자가들에게 保證 해 주고 있는 것이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의존재 입니다. 누구도 불안정한 지역에 투자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세계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반도의 안정에 대해 훨씬 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주한미군 사령부를 방문, 한미동맹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중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과거와 현재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미래에도 그 역할이 거의 그대로 유지 될 것입니다. 특히 한반도 주변국들이 모두 군사, 경제의 강대국이 될 21세기의 국제정치에서 주한 미군의 존재는 우리가 중국, 일본의 군사정책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일이 신경 쓰며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판의 역할을 제공할 할 것입니다.
외교란 국제환경에 적응하는 일이며 외교의 목표는 국가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국가 이익 우선 순위의 최상단에 있는 것은 安保와 經濟입니다.
‘당당한 외교’ 란 안보가 보장되고 경제가 발전한 결과 저절로 주어지는 국가 이익의 요소인 것입니다. 한반도의 장래가 대단히 불투명한 시점입니다. 민족주의의 뜨거운 가슴보다 국가 이익 계산에 투철한 차가운 머리가 훨씬 더 시급하게 요구되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