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부활의 확증, 부활의 증인
본문: 누가복음 24:44-49
사람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불행한 소식이나 충격적인 이야기는 쉽게 믿고, 빠르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합니다. 반면 좋은 소식은 쉽게 믿지 않으려 하고, 들었어도 마음에 확신을 갖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가장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제자들은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무덤에 장사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니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을 책망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부활의 사실을 여러 방법으로 확증해 주시고, 마침내 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확증과 부활의 증인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부활을 더디 믿는 제자들
9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덤에 다녀온 여인들을 통해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라고 기록합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였습니다. 그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서도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른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여전히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36절 이하를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하며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을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에는 얼마나 민감합니까? 세상 소식은 실시간으로 찾아보고 자세히 읽습니다. 나쁜 소식은 누가 전해주지 않아도 금방 퍼집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기쁜 소식인 복음에는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죄 사함과 구원의 소식에는 오히려 더디 반응할 때가 많습니다. 인생은 죄를 짓는 데는 빠르고 선을 행하는 데는 더딘 연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소식에는 민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둔감하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활의 확증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의심과 더디 믿음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손과 발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아직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배가 고프셔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을 유령으로 생각하는 제자들의 의심을 풀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더욱 확실한 부활의 근거를 말씀하셨습니다. 44절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예수님의 부활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 일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믿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구원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계셨습니다. 이제 제자들과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사실을 거듭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부활을 확실히 믿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돼라
제자들이 부활을 확신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들의 믿음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을 믿은 다음에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47-4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경험한 제자들은 이제 그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이 어떻게 이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부활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바울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자신들이 믿은 부활의 주님을 전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증거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했던 것처럼 오늘도 부활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꼭 외국에 나가야만 부활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오셨던 채영애 박사님께서도 바로 그런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 힘쓰고 계십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대회에 참여하여 여러 나라의 언어로 전도지를 만들고,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계십니다.
특히 채영애 박사님께서 주창하시는 ‘구심전도’는 외국으로 나가는 것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머물거나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여러 국제대회 현장에서 직접 부활의 소식을 전했던 귀한 경험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제자들에게 부활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예수님께서 친히 확증하셨으며, 더디 믿었던 제자들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확신을 품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