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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5일
멕시코시티를 떠나 아름다운 휴양지인 칸쿤으로 이동한다. 새벽 호텔 창밖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 끝없는 푸른 바다라 그런지 새벽 3시에 우리 부부는 파도소리에 매료되어 잠을 설치고 한동안 바닷가를 거닐며 이국의 멋진 모래알을 한발 두발 밟으며 오랫동안 그리던 지구 반대편 남미의 아름다운풍경을 피부로 느끼며 감상에 저져본다.
아침을 먹고 칸쿤 전체 섬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 맑은 하늘의 빛이 내려 쪼이는 아름다운 푸른 카리브해를 구경한다. 지금까지 말로 들어보고 사진으로 보아오던 해안을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니 마치 내 자신이 한 폭의 그림을 스스로 그러놓고 감상하듯 색다른 감정을 맛보며 즐겨본다.
쿠바로 가기위해 호텔을 떠난다. 칸쿤을 오후2시 35분에 출발 아바나에 오후 6시 10분에 도착할 예정인데 돌연 쿠바 근처에서 예기치 않던 토네이도가 급습하여 비상 착륙을 한다.
만일 우리 비행기가 비행 중이라면 어떠했을까하고 한 순간 모든 여행객들이 한숨을 쉰다. 남미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기후의 변화를 우리 스스로 맛보게 되는 현실이 닥쳐온 것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본 우리들의 눈에는 너무 엄청난 강풍에 현지 비행장에 있는 가로수가 넘어져 쓰러진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곳곳에 피해가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니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불시착한 작은 비행장에서 각국의 여행자들은 비좁지만 서로 테이블과 의자들에 둘러앉아 불안한 시간을, 혹자는 맥주를 혹자는 간식을 먹으며 초조함을 잡담을 하면서 기다린다.
허지만 몇 시간 후 매점에는 간식과 맥주가 동이 나는 기형상이 나타난다. 많은 시간이 지체한 후 비행당국에서 급히 마련한 음료수 한 병과 빵 한 개씩을 주어 급한 허기를 면하기도 하는 진귀한 여행의 맛을 본다. 무려 6시간 반 동안 목적지 근처 비행장에 비상 착륙하여 대피하는 초조함은 무섭기도 하고 불안했다.
여행 일자를 잘못 결정하여 이렇게 혼이 나는지, 마음의 갈등을 갖게 된다. 또한 작년에 여행할 작정이었던 때도 남미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포기한 일들이 문득 일어난다. 이곳은 정말 여행하기 힘든 나라들이 있는 남미로구나 생각하며, 걱정을 하면서도 희망적인 날씨의 회복을 빌 뿐이었다.
하지만 일진이 나빠서인지 또 다시 목적지인 아바나 비행장에 내린 일행 중 한부부가 화물을 챙기는데 혼선(간혹 분실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이 와 또 한 번 한 시간이나 지체를 하여 호텔엔 새벽 4시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에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 직원들도 다 퇴근하여 부득이 식은 빵과 음료수로 저녁을 대신 주는데 모두들 혼이 나고 이른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거의 다들 그대로 놓고 각자의 호텔 방으로 달려간다.
옛날 스페인시대의 잔재로 호텔건물 자체는 고급스럽지만 내부는 빈약해 보인다. 밤에 본 하바나 거리는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거리를 연상케 하며 집들은 낡은 편이다. 국가가 전체적 경제문제로 그런지 근래에 보수들을 하지 못한 뜻한 집들이 많으나, 역시 옛날의 영광을 느낄만한 거대한 빌딩들이 가득한 거리로 중심지를 이어간다.
아침에 일어나, 이곳을 설명하고 안내할 가이드를 만났는데 현지에서 급하게 구한 탓인지, 오히려 훌륭한 안내자를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평양에서 7년간 살며, 김 일성 대학 출신으로 북한주재 외교관으로 생활했던 잘 생긴 가이드다. 97년에 북한 외교관으로 파견되었다가 현재는 쿠바에서 여행객 가이드 노릇을 하는데 외교관 때보다 더 편하고 급료도 좋다고 하면서 특히 한국여행객들을 위한 배려를 몹시 신경 쓰는 눈치다. 북한에서 말을 배워서 그런지 정통 한국 표준어를 사용하는 그의 행동과 미려한 태도에 반하여. 우리 부부가 2년 전 평양에 가보고, 경험한 일들과 그곳의 사정들을 서로 교환하면서 잠시나마, 버스 옆자리에서 담소함으로 또 다른 전 세계인의 인감미를 느껴본다. 정말 세계는 좁은 뜻한 인간 삶이 이곳 먼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루어짐을 실감한다.
쿠바의 평균 기온은 섭씨 25도로서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 연간 강수량은 1224mm로 5월부터 11월은 습도가 높다. 쿠바는 태풍 통로지역이어서, 아바나도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2005년 7월에 태풍이 강타하여 피해를 입었다.
아바나 구 시가지는 전성기의 스페인 콜로니얼 양식(건축· 공예의 양식. 고전주의적 경향이 있으며 간소하고 실용적이다. 미국에서 성행했다.)이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으며, 1982년에 구시가지가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쿠바의 올드 하바나(아바나)는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이 많이 모이므로 잘 가꿔진 올드 아바나의 모습과, 한편 정말 오래된 건물 속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올드 아바나의 그 모습이다. 두 곳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서, 올드 아바나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덧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진정한 올드 하바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 휴머니스트 혁명가의 목표가 된 체 게바라가 남긴 어록이다. 검은 베레모를 쓰고 강렬하지만 우수에 찬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는 내 머릿속의 아우라가 됐다. “네가 항상 부조리에 분노한다면 너는 곧 내 동료다”라고 했던 그가 나를 쿠바로 이끌어주었다. 서울에서 알기로는 모나리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복제가 가장 많이 된 이미지인 체 게바라 사진이라고 생각이 들며, 거리의 대형 사진이 정말 카스트로와 함께 거창한 모습으로 전시 되어있어 이곳이 바로 쿠바로구나, 하고 느껴진다.
쿠바에 있는 동안 관광지에 있는 몇몇 쿠바 사람들을 제외하면, 쿠바사람들은 정말 친절함에 있어서 타국에 비해 훨씬 앞선 감을 줄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뭐랄까, 이방인으로서 대한 색다른 점에 반해서 그런지 만양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그대로 친절함으로 바뀌는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대부분의 쿠바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길거리에는 시가를 태우는 사람들과 시가를 파는 상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중남미 여러 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시가는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등이 있지만, 쿠바산이 가장 품질이 좋다. 이유는 쿠바의 기후가 세계적으로 적당한 곳이기 때문이란다.
점심은 현지식당에서 먹었는데, 트로피카나(태국의 알카자 쇼, 프랑스의 리도 쇼와 버금가는 쇼로)공연을 특히 앞자리에서 잘 볼 수 있어 좋았다. 쿠바혁명이 일어나기 전 1939년에 아바나에서 처음 소개된 귀족풍의 고급스런 디너쇼로, 머리에 화려한 화관과 몸에는 꽃단장을 한 무희들이 정열적인 춤을 춘다. 아름다운 쇼라 생각한다.
이곳에는 달라나, 여행자수표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관광지역과 거주구역간의 차이는 단지 깔끔하게 잘 관리된 건물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이곳 사람들도 호객을 하고, 무언가를 팔기 위해서 애쓰지만. 거주지역의 상점에 가면 물건을 파는 것 보다는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말 한마디를 거는 것에 더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치노(중국인-Chino)'라는 단어로 시작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함이지 어떤 다른 의도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쿠바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인구는 극히 드물고, 거주하는 동양 사람의 대부분이 중국 사람으로 동양인 여행객들을 모두 중국 사람으로 오인하는데 큰 이유가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코리아라고 하면 자신들이 먼저 "안녕 하세요?“하고 말을 걸어오며 익숙한 몇 마디의 한국말을 하면서 친근감을 보낸다.
풍파가 많은 도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바나는 국가 전쟁과 혁명 속에서 그리 많은 건물 파손을 입지 않아서인지 오늘날 100여 년 전 지어진 도시의 이미지가 그대로남아 있다. 5.6십 년 대 식 미국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이곳저곳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들이 즐비하며, 한때 부유했던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거대한 건축물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는 밤의 이벤트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밤거리의 사실상의 주민생활상을, 그리고 특이한 이곳의 말레콘을 연상하면서, 약간은 두렵기도 하고 너무 생소한 이곳의 분위기 때문에 포기했다.
아바나를 둘러싸고 있는 긴 방파제를 말레꼰이라 하는데 도시 풍경과 방파제가 어우러진 유명한 아바나의 풍경사진들 덕분에 쿠바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말레꼰은 아바나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도시보다 교통도 덜 막히고 상업화도 덜 되어 숨통 트이는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도시로 보인다.
쿠바는 클래식 카의 천국이다. 정말 언제 멈출지 모를 정도의 차도 돌아다니지만, 어제 갓 나온 것 같은 현대식 카도 돌아다닌다. 미국의 무역제제가 시작되기 전에는 쿠바에서도 차량의 개인 소유가 가능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차들을 개조하고 잘 관리해서 아직도 잘 굴러다니는 것이 이곳 사람들이 전하는 말이며, 또한 이것이 현실적인 쿠바의 실상이다.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쿠바를 클래식 카의 전시장으로 만들어버렸나 싶다. 지금에야 수입차들이 꽤 들어온다지만, 딱 10년 전만해도 신차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쿠바였다.
어쨌든, 60~70년대의 클래식 카들이 온 거리를 누비며 달리는 자동차 전시장은 세계 어디서나 없지 않을까 느껴지는 이곳의 풍경이다.
올드 아바나에서 본 하바나 클럽. 쿠바의 럼주인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칵테일 모히토는 이 하바나 클럽으로 만들어야만 제대로 된 모히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말 괜찮은 럼주이다. 등급이 있어서 비싼 것은 가격이 약간 고가지만, 그래도 다른 럼주에 비하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편이 아니라서 쿠바에서는 은근히 즐겨마시게 되는 술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지나가는 올드 아바나 거리에는 공연도 끊이지 않는다. 화려한 원색의 옷을 입은 공연단이 길을 걸어가면서 연주하고, 그 뒤에 따라다니는 사람은 팁을 걷는다. 팁을 달라고는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는 분위기. 꽤나 흥겨운 부위기를 만들어내는 이 공연단의 팁 바구니는 생각보다 빨리 차올랐다.
왠지 서양 사람들은 패키지여행을 잘 안 할 것 같지만, 쿠바에서는 '서양 깃발 부대'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역시 사상적인 문제와 서로 간에 오랜 세월동안 왕래가 없었다는 점을 표출 하는 듯싶다. 특히 올드 아바나의 중앙이 되는 광장에서는 쿠바 사람보다도 여행을 온 유럽, 캐나다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빡빡한 일정 때문일까, 올드 아바나 북쪽의 유명하다는 곳들만 몇 카트 찍고 돌아가는 그들. 생각해보면, 우리 패키지여행과도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인다.
빨래를 창 밖에 내다 거는 것은 홍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유물은 아니다. 아바나에서도 햇빛이 좋아서 빨래가 쉽게 마르는 듯, 길거리 곳곳 건물 밖 베란다 난간에 걸어 논 빨래들을 볼 수 있었다. 옷들을 다양하게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 쿠바의 빨래들을 곰곰이 보고 있노라면, 옷들이 경제수준과 개방적이지 못한 탓인지 단조롭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쿠바를 여행하면서 만난 쿠바 여인네들도, 서양 여행자들이 멋진 드레스나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 부럽다고 하는데. 아름다움을 찾는 여인들의 심성은 어느 나라나 동일한 것 같다.
올드 아바나에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이 많다. 그리고 일방통행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자동차 뿐 만 아니라 자전거도 일방통행을 지켜야 한다는 것. 자전거로 거꾸로 달려가면, 현지인이 말을 건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 했고, 그들의 여인을 사랑하며, 럼주를 사랑한 소설가다. 미국과 쿠바관계가 악화로 쿠바를 떠났지만 그의 흔적은 쿠바 곳곳에 남아있다. 헤밍웨이는 아바나 도심의 암모스 문도스 호텔에 머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으며, 해가 저물면 주점에 들려 럼주를 기울였다.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그의 숨결은 낮선 해변과 골목 바에 잔잔히 녹아들어 현재까지도 우리를 찾게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그의 박물관과 동상이 있는 코르바(컬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원주민이 살던 큰 섬)에 비록 미국인이었던 그였지만 그를 아끼는 순박한 쿠바인들의 아름다운 삶을 엿 볼 수 있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곳에 요트가 많이 정박해 있어 관광지로 변모되었고, 실제로 거주한 아바나 남쪽의 저택은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박물관 안에는 그가 살았던 모습과 여러 서적. 기타 생활 용품들이 전시 되었으며, 특히 그의 애장품인 낚시 배가 전시 되어있다.
최근에 새로 칠을 해서인지 삘라르는(배의 이름) 새 배인 것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바다를 사랑했고, 덕분에 노인과 바다라는 걸작을 쓸 수 있었던 헤밍웨이는 그 외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너무 많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꼬히마르는 헤밍웨이 관련 투어를 하면 꼭 찾아오는 곳이기는 하지만, 해변에 있는 동상을 보러오는 것이 사실상 이곳 방문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식당 정도.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곳은 아바나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 “마리나 헤밍웨이”이다. 헤밍웨이 소설 배경이 되어서인지 지역의 이름마저 헤밍웨이를 포함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을 때에는 아주 작은 어촌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쿠바의 부자들과 해외 관광객들이 와서 요트를 즐기는 리조트 타운이 되었다.
아쉽게도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것 없는 쿠바에서 쉽게 보기 힘든 부유한 리조트 마을 일 뿐이다.
마리나 헤밍웨이에는 고급스럽고 다양한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마리나(Marina)라는 단어가 요트 정박지라는 의미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리고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곳 뒤로는 쿠바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리조트들이 가득하다. 쿠바 같지 않은 쿠바.
아바나 항구는 쿠바 최대의 무역 항구로 쿠바가 수입한 제품의 약 90%가 이 항구를 통해 국내로 반입된다. 또한 주로 아바나 주변에서 재배되는 담배와 사탕수수가 이 항구에서 수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관광 진흥 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주로 러시아, 유럽, 캐나다 등의 관광객이 모여든다. 17세기~18세기에 걸쳐 지어진 하바나 만의 서쪽 반도를 차지하는 구시가지는 하얀 건물이 많은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거리 풍경으로 지금도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 온 역사적인 유물들이 남아 있다.
구 시가지의 서쪽에 있는 광대한 신도시 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쿠바의 자본가와 바티스타 정권 정부 요원의 고급 주택지로 개발된 지역으로, 넓은 도로와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나란히 서 있다.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는 혁명 광장이 있다. 또한 소규모 차이나타운이 있으며, 중국계 쿠바인이 살고 있고, 중국 식당이 몇 개 있다.
1898년 아바나 항구에서 미국 해군의 전함이 침범하여 미국-스페인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아바나는 1902년에 쿠바공화국을 선포하고 이곳은 쿠바의 수도가 되었다. 독립 이전부터 쿠바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미국 자본이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 되면서 1920년대에 미국의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미국인들은 향락을 찾아 아바나를 방문하게 된다. 그 결과 아바나는 미국 부자들의 별장이 많이 들어서게 되며, 많은 관광객을 통해 고급 클럽이나 카지노가 붐비는 리조트 환락 도시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락 시설의 대부분은1959년의 쿠바 혁명에 의해 폐쇄되었다.
1959년 쿠바 혁명으로 인한 바티스타 정권의 붕괴와 공산당 혁명 정권 수립 이후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위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 정부는 하바나 쿠바 사회주의 건설의 중심지인 생산 도시로 바꾸기 위해 "대 아바나 도시권"으로 주거 지역, 새로운 산업 지역, 자연 공원 등 도시 정비를 도모하는 도시 계획을 실시했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시내의 상점과 호텔이 국영화된 저택은 모두 학교와 공공 건물로 유용되었다. 또한 바티스타 정권 하에서 컬럼비아 병영이었던 시설은 교육 센터로, 옛 대통령궁은 혁명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주로 돈 많은 사람들과 상류계급이 살았던 화려한 주택들은 박물관과 학교로 이용되었고, "체 게바라 사적 관"은 공산정권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 하였다.
또한 아바나는 해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휴양지로 유명하다.
쿠바에서 멕시코 입국 시 시가는 1상자만 가능하다
모든 사회의 혁명주체들이 영웅화되고 묘역은 성역화 되면서 혁명은 멈추고 갇혀버렸다. 사회주의 혁명이란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은 것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자기혁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정체되고 혁명의 성과들은 퇴색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일 텐데.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그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이미 잊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그냥 다녀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 비로소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후6시에 하바나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약 3시간 후 파나마의 파나마 시티 국제공항에 도착 중에 저녁을 기내에서 약식으로 한다. 공항 내에서 1시간 40분후에 또다시 페루로 가기위해 짐을 찾아 이동하며 앞으로 약 7시간 10분이 넘는 비행을 하기 위해 피곤함을 견디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