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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1일 일요일, 두타와 청옥산 산행에 나섰습니다. 백두대간에 위치한 두타산과 청옥산은 한 쌍의 자웅이기도 하였습니다. 두 산은 어깨동무를 한 친구의 모습이기도 하고 다정히 손을 잡은 견우와 직녀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산행버스가 두타산 입구의 댓재에 다다른 시각은 오전 10시 정각이었습니다. 신갈 인터체인지를 개찰하여 대관령을 너머 동해 바다를 지나 꼭 3시간 30분만이었습니다. 교통 사정이 좋으니 이렇듯 단숨에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었습니다.
댓재는 큰 고개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충청남도 대전(大田)의 순우리말 이름인 한밭과 유사한 의미였습니다. 댓재는 곧 대현(大峴)을 지칭하는 바, 댓재 보다는 큰재 또는 한재로 써야 할 것입니다. 두타산 입구의 댓재에는 근자에 세운 두타산산신각이 서있었습니다. 그 앞으로 백두대간의 산길이 신록의 산등성이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숲길에는 철쭉이 먼저 나와 일행을 맞이하였습니다. 철쭉은 연한 살빛을 내는가 하면 진한 분홍빛을 띠는 것도 있었습니다. 연달래, 진달래, 난달래처럼 연철쭉, 진철쭉, 홍철쭉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빛깔은 개체에 따라 조금씩 달랐습니다. 이처럼 한적한 산길이 좋습니다. 바래봉, 황매산 철쭉제가 한창이라지만 사람의 발길에 채이지 않는 한가한 산길이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 인공으로 조성된 조밀한 철쭉밭 보다는 자연으로 드문드문 피어있는 철쭉길이 더 마음에 닿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오늘 산행에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어디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찼습니다. 산을 제대로 알고 느끼는 분들로 만원이었습니다. 두타산으로 가는 숲길에는 듬직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백두대간 깊은 산중의 소나무 숲이어서 송진 채취의 칼자국이 없어 좋았습니다. 칼자국을 생각하니 어제 괴한에게 피습당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아름다운 오른쪽 얼굴 자상(刺傷)이 걱정이 되는군요. 일제가 한반도의 아름다운 소나무에 칼집을 넣어 송진을 빨아내던 일과 겹쳐져 가슴 아픈 일로 아련해집니다. 총잡이는 총으로 망하고 칼잡이는 칼로 망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사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나치의 패망이 그러하였고 왜구의 궤멸이 그러하였습니다. 젊은 시절 칼잡이 자객이었던 이등박문은 안중근 의사에게 그리 망하지 않았습니까? 최근 우리 사회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어지럽습니다. 이는 최고 권력자들의 불안정한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인내천 사상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의 마음이 불안정한 때문입니다. 불안한 마음은 조류독감처럼 번져 나가서 삼각산에 방화를 하고 미군지기 이전 반대 시위에 나서고 밥 안 먹는 자녀를 지도하는 교사를 무릎 꿇리는 것입니다. 두타산 아래의 작은 봉우리에 이제 막 조성한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아름드리를 베어낸 서너 그루의 소나무 그루터기에서 아직도 아쉬운 솔향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동해 바다에 면한 산줄기를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푸른 이내가 걷힌다면 아마도 얼음에 재운 초정 탄산수라도 마시는 기분일 것입니다. 해발 1,352m의 두타산에 오르니 이미 꽤 많은 등산객이 올라와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라면을 끓이는 사람도 있었고 산에서 채취한 나물에 쌈을 싸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두타산에서 동해를 조망하고자 하였으나 푸른 이내로 먼 바다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지난해는 안개 빗길이더니 올해는 푸른 이내가 앞을 가렸습니다. 이는 백두대간의 높은 산줄기와 동해 바다가 만나 이루는 해양성 기후의 특징일 것입니다. 러쎌산악회의 간판 회원인 용붕, 태왕, 봉우 3인방의 뒤를 ?i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박달령에 이르러 점심을 들었습니다.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끝낸 선두가 내준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검은 콩을 드문드문 놓은 밥에 김 몇 장과 멸치 몇 마리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삶아온 달걀과 오렌지를 후식으로 일행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해발 1,403m의 청옥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작은 마당 크기의 공터인 청옥산 정상은 정상이란 이름을 무색하게 하였습니다. 숲과 나무가 시야를 가려 사방이 조망되지 않아 정상의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한 봉우리 더 나아가 고적대에 이르러서야 주변이 조망이 될 모양이었습니다. 청옥산 정상에서 삼화사로 하산하여야 하였지만 한 봉우리를 더 가고자 길을 나섰습니다. 청옥산 정상에서 고적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숲길이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드리 주목과 신갈나무 고목이 드문 드문 섞여 있는 숲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복주머니난과 노랑 매미꽃이 무더기로 솟아난 풀밭이 이채로웠습니다. 다음 주에 이르면 아마도 이곳은 또하나의 천상화원으로 불릴 것이었습니다. 약초 뿌리와 나물 채취로 곳곳이 훼손되어 있었던 두타산-청옥산 구간과는 달랐습니다 . 대간 꾼들이나 지나는 인적이 드문 산길이기에 숲길이 손상되지 않은 것입니다. 연칠성령에 이르러 무릉계곡을 거쳐 삼화사로 하산하였습니다. 고적대, 갈미봉, 이기령, 백복령은 다음의 백두대간 길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깊고 푸른 숲을 자랑하는 청옥산 무릉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계곡의 풍경을 감상하였습니다. 희고 너른 암반을 자랑하는 무릉계곡의 풍경이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칠성폭포를 찾아 계곡을 따라 나서는데 이름 모를 폭포가 하나 있었습니다. 폭포는 높았으나 계곡이 좁고 협소하여 어두웠습니다. 5m짜리 로프를 걸고 계곡으로 내려가 폭포를 살펴보았습니다. 폭포는 깊었으나 햇빛이 닿지 않고 음침하여 품격이 떨어졌습니다. 한 참을 내려오다 무릉반석에 이어진 칠성폭포에 이르렀습니다. 주변 경관도 좋고 암벽도 훌륭하여 암반을 타고 폭포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사원터 대피소에 이르러 한 줌의 칡순을 채취하였습니다. 민간요법으로 칡순을 설탕에 재워 만든 효소는 잦은 기침 해소에 효과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문간재에 이르러 힘을 내어 신선봉에 올랐습니다.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청옥산과 두타산의 높은 암봉과 그 사이에 솟은 금강산 바위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산에서 발원하는 무릉계곡의 하얀 물줄기가 발 아래의 한 곳으로 모여 들고 있었습니다. 또한 신선봉에는 연인들이 많이 찾는 사랑바위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암반을 사랑바위라 일컫는 사람들의 생각이 청옥산 처럼 싱그러웠습니다.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빼어 닮은 두타산과 청옥산이 손 잡은 곳에 솟은 암봉이 바로 금강바위와 사랑바위인 것입니다. 신선봉 사랑바위 아래에는 용추폭포와 쌍폭포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청옥산 줄기에서 시작한 용추폭포와 두타산 줄기에서 시작한 쌍폭포가 서로 만나는 절경이었습니다. 문지방성터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이 일품이라 하였습니다. 삼형제봉과 이기령이 이루는 하늘금의 백두대간 아래에 위치한 관음폭포와 관음사가 절경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가 적은 탓에 관음폭포의 물줄기는 희미하였습니다. 관음폭포의 절경을 만나려면 장대비 내린 다음 날에 찾아 와야 할 것입니다. 삼화사에 들러 마른 목을 축였습니다.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흑연대의 터에 세운 사찰이라 하였습니다. 경내에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3층 석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세운 높이 20척이나 되는 금동여래불상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삼학사를 나서자 운동장처럼 너른 무릉반석이었습니다. 무릉반석 위로 돌다리가 보이고 그 옆에 금란정이 있었습니다. 무릉반석은 무릉계곡 입구에 위치한 너럭 암반으로 수 백명이 함께 앉아도 될 만큼 넓었습니다. 계류가 흘러내리는 반석에는 무릉계곡을 찾았던 선인들이 풍류가 살아 있는 한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선비들의 싯구가 여기저기 빼곡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중에는 조선시대 4대 명필 중의 한 분이자 강릉부사였던 양사언이 남긴 싯구가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군요. 무릉반석 옆에 세워진 금란정은 항일 유적지로 기념되고 있었습니다. 구한말, 일제의 강압으로 한일합방이라는 국치에 분개한 유생들이 모여 금란계를 조직하고 걱정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였던 곳입니다. 금란정은 해방 후, 유생들의 후손들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만든 정자였습니다. 주차장에 이르니 산나물을 채취하여 파는 가게가 많았습니다. 향기 좋은 취나물과 삽사름한 곰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단으로 묶어 파는 곰취와 취나물은 자연산은 아닙니다. 이 지방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입니다. 이곳 동해 바다에 면한 강원도 영동 사람들은 곰취를 깻잎처럼 즐겨 먹습니다. 깻잎처럼 곰취 장아찌를 담가 밑반찬으로 밥상에 올립니다. 그래서 신토불이라는 말이 그 지방에 어울리는 말일 것입니다. 섬 사람들의 먹거리와 산 사람들의 먹거리가 다르기에 그들의 생활 풍습과 마을 인심이 지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두타산?청옥산 산행은 예상보다 1~시간 길어진 6~7시간이었습니다. 몇몇 산나물 채취에 나선 사람도 있었지만 그 만큼 볼 것 많고 골짜기도 깊은 무릉계곡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6시 30분에 산을 나와 동해 바닷가 도로를 달리는데 안개가 자욱하였습니다. 백두대간이 준령이 바닷가에 면한 지역이기에 여느 지역과 다른 일기를 보였습니다. 그러기에 댓재와 백복령을 오르는 산길에서는 특히 운전에 유의해야 하는 지역임을 알겠습니다. 부부나 연인이 손잡고 등산하기 좋은 산, 그래서 두타와 청옥산은 언제나 함께 이름 불리는 아름다운 산이었습니다. |
첫댓글 우리친구들과 함께봐도 될까요? 스크랩해가겠습니다!.(염치불구하고.....!.)
늘 감사합니다.
두타,청옥산으로 이어지는 싱그러운 산행길! 님의 글따라 마음따라 다시 가봅니다.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무릉계곡이 있기에 그리워집니다.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군요.ㅎㅎ
산행을 같이 했지만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을 찾아 볼 여력이 아직 않되어 아쉬웠어요~ 다음에는 차분하게 볼려구요... 후기 잘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