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가자
김재선 김진섭 김태원 문찬술 백웅열 이성우 허정구 허헌구
1. 답사내역
효창동명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무덤 효창원이 있던 곳에서 유래한다.
뿐만 아니라 세자의 생모 의빈 성씨묘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 그리고 그의 딸 영온옹주 묘도 함께 있었다.
일제가 지금의 서삼릉 권역으로 이장을 하고 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무덤과 관련된 동명이 중구 정동 동대문구 회기동 휘경동 성북구 정릉동 광진구 능동 등이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혹은 조선의 정신을 폄훼시키려 혹은 개발에 밀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옮겨졌다.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 된지도 어언 만 65년이 되어 가지만 훼손된 얼룩은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편리한 서양 문물에 흠뻑 취해
우리 고유의 정신이 무엇인지 잊은지 이미 오래인데 새삼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은...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니
괜한 기우에 울적한 마음 나 홀로 씨부려 보는 것이니 친구들 마음 상하기 없기요^^
횟수가 거듭되면서 약속 시간 어기는 친구 한 사람도 없다.
늦으면 늦는다고 반드시 알려오며 그래도 5분이상 늦지 않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시 5분후면 출발이다.
모인 친구 모두 여덟명이 1번출구를 나와 우측으로 돌아 효창공원을 향해 출발한다.
먼저 효창구장과 효창공원 사잇길로 이봉창의사 동상 앞을 지나 오늘의 첫번째로 볼 곳 백범기념관으로 들어간다.
전시관 입구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흰옷 차림의 선생이
의자에 앉은 소상인가 호분을 칠한 동상인가 우리들을 그윽한 눈길로 보고계신다.
환국후 백의민족의 표상인 흰옷을 즐겨 입었던 선생이시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백의 모습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너무도 인위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내눈에 어색해 보인다.
흰옷의 색갈이 무명이던 모시던 자연스런 색갈로 눈에 익은 탓일까 표백제로 탈색한 듯한 것이 좀 내눈엔 거스른다.
선생님께 새옷을 해 입혀 그런가 색감이나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면서 왈가왈부 하는 것 조차 불경스런 일이거늘...^^
입구 벽면에 선생의 일평생 걸어온 길을 년표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국운이 기우러져 가는 조국을 일으켜 세우려 무진 애를 쓰셨지만 쇠망해 가는 나라는 허망하게 허물어 지고 말았다.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는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이 살길이라고 독립운동에 매진하셨고
어수선 한 해방정국의 중심에 서서 온전한 하나의 조선을 만들고자 고군분투 노력했지만 시대의 흐름은 선생을 외면했다.
조국해방의 기쁨도 잠시 천수를 다 하지 못하고 저격수의 흉탄에 쓰러져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마셨다.
일이층 전시실을 가득 메운 선생의 일대기를 보며 마지막 가시는 국민장 모습 마지막 본 데드마스크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일정 부분은 우리 어렸을 때 살아온 과정과 오버랩 되면서 친구들도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기념관을 나와 우리는 선생의 묘소를 향하고 측면으로 보이는 이곳에 함께 잠든 이의 위패가 모셔진 의열사 이야기 나눈다.
선생의 묘역에 도착하여 석물에 대한 이야기 나누고 함께 도열하여 묵념 을 올린다.
이어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 묘역에 도착하고 선생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안중근의사 가묘도 함께 참배한다.
체육시설이 있는 언덕에 올라서니 원효대사 동상이 반긴다.
왜 원효대사가 효창동에 계실까 했더니 허회장이 용산구에 원효로가 있잔아 한다.
아직 원효로가 왜 용산구에 있는지 확인은 못했지만
필경 원효와 용산구는 무슨 연고가 있음이 틀림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직도 허회장의 머리는 하나도 녹슬지 않았다고 했더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여 함께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동녕선생 조성환선생 차이석선생 임정요인 묘역을 진섭이 찬술이와 돌아보고 용문해장국집으로 향한다.
이쪽 지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집이라고 안내하였는데 점심 시간이 끝나지 않아 제법 붐빈다.
공원에서 출발하면서 전화 예약하였더니 우리들을 위한 여덟자리를 마련해 놓아 어렵지 않게 좁지만 자리잡을 수 있었다.
좀 짜서 그렇지 맛도 괜찮은 편이고
날씨도 가는 눈발이 날리는 날이라 뜨끈한 국물에 반주를 곁들이니 금상첨화라 궁합이 딱이다. ^^
좀 일찍 끝나 상암동으로 갈가 하고 일어 나서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
자판기 커피 빼 들었는데 커피 동전 나누어 주던 재선이 나오면서 웅열이 신발이 없어졌단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게 웬 날 벼락인가 웅열이 못나오고 서 있다.
임자 없는 신발 한 켤레가 있어 웅열이 신고 카운터 아주머니 말이 술이 취해 먼저 나간 손님이 바꾸어 신고 간 것 같단다.
당장은 연락이 안되어 나중에 알아보고 연락준다고 하여 우린 함께 역으로 향한다.
일진이 안 좋은 것 같고 갈 사람도 적어 상암동 행은 포기하고 전철에 승차하여 각자 제갈길을 향하였다.^^
웅열에게 확인도 못해보고 지면으로 확인한다 웅열이 연락받았어?
친구들과 아주 즐거운 하루였는데 그만 마지막에 우울해 지고 말았다.
우야든둥 친구들 잘 들어갔겄지?
다음 부턴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다니다 방에 들어갈 땐 들고 들어가야 할려나...
건강한 모습으로 2월 2목 정기산행 때 다시 만나 봅세나~~~^^
첫댓글 此際에 "白凡逸志"를 읽어들 보세요.
이성우대장님의 적극 추천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