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숲에 마음 한 자락 숨기고"
순천만, 한 폭 수채화에 반해
▲지난 9월초 순천만
풍경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신경림 시인의 시 ‘갈대’ 중에서.
순천만에 발길이 닿으면 쓸쓸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갈대의 서걱거림에 마음을 뒤척이면서도 그곳을 향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시인이 노래한 갈대와 함께 사계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두 번 방문한 순천만인데,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이곳 “순천만”이라고 부를 것이다. 순천만에 가려면
울산에서 일찍 서둘러야 한다. 요행이 낙조가 좋은 날이면 근사한 낙조 사진도 건질 수 있기에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
남해고속도로에서 타고 가다 서순천IC(2번 국도)로 빠져 나와 순천 시내를 들러 청암대학 사거리에서 좌회전, 대대포구에
도착했다.
▲추위를 버금고 있는 듯, 쓸쓸해 보이는
갈대숲
해가 기울어지자 급한 마음에 S자 코스를 놓치고 말았다. 평상심을 가졌더라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성급한 마음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때가 종종 있다. 이번일도 그와 같은 예로 아깝고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S’자 수로의 절경을 감상하려면 대대포구 건너편 야산
숲길을 20분쯤 걸어 용산전망대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 서면 순천만이 한눈에 들어오며, 특히 갈대밭을 헤집고 다니는 ‘S’자 수로는 절경중
절경.
순천만 구석구석을 보기 위해서는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대대포구를 떠나 북쪽 갈대밭을 감상한 후 남쪽으로 내려가 석양이 아름다운
와온해변까지 다녀오는 30분 코스다.
▲해는 기울어 어둠이 사방에 깔렸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었던 순천만 갈대밭은 세계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돼 올해1월 ‘람사협약’에 등록됐다.
갯벌을 포함한 면적이 800만 평(갈대밭은 70만평)이 넘을 정도로 경제적 가치 또한 무량한 곳으로 생태계의 소중한 보고인데,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탑승객을 기다립니다"
순천만의 갈 숲과 갯벌은 철새들의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정화능력이 뛰어나 ‘자연의 콩팥’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9월 초에 보았던
붉은 띠를 두른 칠면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움은 배신감마저 들었다. 일곱 번 색이 변한다는 칠면초가 지고 없어도 갈대는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장대처럼 긴키를 자랑하는 갈대는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움직이지만 결코 꺾이지 않았다.
▲갯벌이 워낙 건강해 갯내음이 나지 않는
순천만
순천만 갈대가 현재의 규모처럼 커지게 된 연유가 있다. 갈대는 한때 이곳 주민들의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다. 이삭을 모아 빗자루를
만들거나 말려 땔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갈대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곳을 찾는 사람의 발길도 뜸해지자 자생력 강한
갈대가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1998년 15만 평에 불과하던 갈대밭은 8년 만에 무려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 것.
지난 10월 제1회
갈대 축제를 치르기도 한 순천은 갯벌과 갈대가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온갖 희귀 철새들만의 안식처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 안식처도
되는 곳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갈대의 속성을 닮고 싶은 마음을 갈 숲에 살짝 숨겨 두고 천천히 나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