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집
주말이면 동네 친구 두엇과 인근의 재래시장 가에 위치한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어느덧 굳어지고 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당구실력들로서 나와 친구들이 고만고만하여 승부는 매번 엇갈리지만, 요즘 들어서는 내 쪽에 승률이 많았다. 오늘도 두 시간 가량 기량을 겨룬 결과 최종 승자는 나였다. 마지막 결정구決定球를 먹이며 내심으로 ‘이제 이 녀석들 보다 미세한 실력의 우위를 가졌구나’ 하는 자부심에 지긋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셋이서 게임을 하면, 우승자는 공으로 먹고(지출이 없고) 2등한 사람이 게임 값을 내며 꼴찌한 사람은 석양주를 책임지는데, 석양주가 2,3차 거나해지면 셋이서 갹출을 하여 술값을 치루는 묵계가 편하게 이루어진지 오래다.
당구장 옆 골목에 있는 ‘개코 막걸리집’에서 탁주 두되를 마시고는 귀갓길에 올랐다. 저녁 무렵인데도 인적드믄 시장통에는 썰렁한 바람이 휘돌고 있었는데, 드문드문 명멸하는 네온사인 불빛들도 스잔해 보였다. 아! 이곳이 흥청거리던 때는 언제였던가. 아득한 기억 저편을 더듬어보면서 그런 시절이 과연 있기는 있었던가 하는 회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그러나 희미하게 떠오르다가 점점 선명해지는 이 시장통의 전성기를 곧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흑백사진의 고졸古拙한 냄새처럼 뇌리에 박혀있는 칠 십년대의 풍경이었다.
나라가 온통 수출입국입네, 경제개발5개년계획입네, 새마을운동입네 하면서 국민 모두가 거대한 톱니바퀴에 물려서 돌아가던 활기찼던 그 시절, 인천항 부두가 지척인 이 시장통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였었다. 대다수가 가난을 매달고 살았어도 이곳의 식당과 대폿집에는 왁자지껄하는 누항의 고함소리가 넘쳐났고, 두런대며 머리를 맞댄 노동자들의 열기가 넘쳐흘렀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주점의 목로에는 날마다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작부들의 젓가락 장단이 골목마다 실바람처럼 풍미했었지. 지나간 옛 시절 생각해봐야 뭐하나, 양극화된 요즘 세상 누항에는 찬바람만 부는구나.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고는 친구들과 동네어귀로 들어섰다. 밤하늘에 춥게 매달린 초승달이 날카롭게 벼린 검미劍眉 그대로여서 어깨를 웅크렸다.
밤 기온이 뚝 떨어졌는지 콧김으로 막걸리 기운을 훅훅 불어내는데도, 귀때기가 아프도록 시립다. 이야! 바람 한번 매운데. 중얼거리면서 친구들과 막 헤어지려고 하는 차에, 어디선가 아주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향수어린 흡인력으로 소매를 부여잡는 가느다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친구하나가 골목입구 얕은 처마 집에 붙어있는 궁상스런 술집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어? 해뜨는 집 노랜디….
볼품없는 주점의 모양새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알미늄 새시 문짝을 반쯤열고 실내를 두리번거리니, 손님하나 없는 썰렁한 주탁 너머에서 어서 오세요! 하는 가냘픈 목소리가 ‘해뜨는 집’ 노래에 묻어서 나왔다. 주인여자는 갓 쉰쯤 되었을까. 옹색한 주점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듯 분주히 문을 열어젖혔다. 이 노래가 좋아서 소주 한잔 하고 갈랍니다. 너스레를 치면서 친구들과 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밖에서는 가느다랗게 들리던 음악이 점점 커다랗게 실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해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 칠 십년대 초중반 이른바 백판을 엘피 전축에 틀어놓고 지겹게 듣던 추억의 팝송이다. 60년대 후반 비틀스와 쌍벽을 이뤘던 4인조 록그룹 애니멀스(Animals)의 대표곡인데, 애절한 멜로디를 배경삼아 절규하는 듯한 창법을 구사하는 리드보컬 에릭 버든의 열창이 심금을 사로잡는 팝송의 고전인 노래다. 당시 정부는 이 노래의 가사가 퇴폐적이고 절망적이라 하여 금지곡으로 묶어놓아 공중파를 타지 못했다. 금기에 대한 탐닉일까. 그 시절 나와 또래들은 주흥이 도도하면 암울한 현실을 잊고자 이 노래를 틀어놓고, 서로를 부둥켜안고는 서툰 몸짓으로 부르스를 추기도 했다.
을씨년스런 주점 창밖으로 내가 삼십여 년을 살아온 동네의 지붕들이 보였다. 지금은 빌라 촌처럼 되었지만 칠십 년대를 거쳐 팔십 년대 초까지 이 동네는 달동네의 전형이었다. 속칭 하꼬방이라 불리는 게딱지같은 열평 남짓 가옥들이 루핑과 슬레이트를 지붕에 두른 채, 양팔간격 골목길을 마주하고 야산을 까맣게 점령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절실한 꿈과 확신이 없었던 나를 비롯한 동네 중졸, 고졸짜리 청년들은 달동네 골방에서 막소주에 취해서 비틀거렸다. 당시 이 땅을 휩쓸고 있던 팝송과 록큰롤이 담긴 백판을 틀어놓고, 운명처럼 어김없이 찾아올 입영영장을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어느 해인가 추운 겨울 아침나절에 동네 외곽 비탈길에서 동사한 사내가 발견 되었다. 허름하고 얇은 점퍼를 얼굴에 뒤집어 쓴 시신의 머리맡에는 빈 소주병 두어 개가 뒹굴고 있었는데, 하얗게 성에가 낀 망자의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통곡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프게 회상된다. 동사한 사람은 삼십대 중반의 노동자로서 나와 절친한 친구의 큰형이었다. 그날 후미진 동네의 골목에서 우울한 청년들은 예의 해뜨는 집 선율 속에서 깡소주에 젖었었다. 건설의 망치소리가 활기찼지만 도시빈민들의 음울한 비애가 도처에서 피어오르던 칠십 년대의 한 자화상이었다.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And God I know I'm one
뉴올리언스에 집이 한 채 있어요
사람들은 해 뜨는 집이라 불렀어요
그 집은 수많은 불쌍한 소년들이
파멸하게 된 곳 이었어요
하느님 나도 그 소년들 중 한 사람인걸 알아요
-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의 도입부 가사)
작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대재앙. 끔찍한 허리케인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어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린 그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오륙 십 년대 미국 하층민들의 애환을 담은 이 노래는, 후일 내가 성장하면서 고통스러울 때나 낙담했을 때 귓가에 환청처럼 울려 퍼지는 애증이 배어있는 노래가 되었다.
‘힛트 팝송 베스트10’ 류의 지나간 카셋트 테입을 틀어 놨는지, 귀에 익은 팝송들이 연이어 주점 안을 수놓고 있는 가운데 주탁에는 빈 소주병들이 열 지어 있었다. 주인여자의 창백했던 얼굴은 어느새 취기와 더불어 발그레 펴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동석했는지 모르게 주석에 끼어들어 나와 친구들도 놀랄 입담을 풀어놓고 있었다. 충청도 서산이 고향이라며 소주잔을 부딪치는 그녀는 술김을 빌어 지나간 생애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을 구수한 안주처럼 서술했다.
들어보니 십대후반에 인천에 올라와 당시 이곳에서 유명했던 00방직공장에 취직하여 청춘을 여직공으로 지냈으며, 그 시절 한 떨기 꽃 같아서 총각들 눈길을 한 몸에 받은 적도 있었다며 아슴한 눈길로 술잔을 기울였다. 아하! 그랬군요. 우리들도 그 시절 동인천 바닥 돌아다니며 공순이들 꽁무니 꽤나 쫒아 다녔지. 옆의 친구가 너스레를 치면서 웃다가 불쑥 물었다. 아저씨는 무얼 하시우? 그녀는 잠간 멀쑥한 표정이 되어 주점 안에 붙어있는 내실같은 방문을 흘끔 바라봤다. 그때 울려 퍼지던 메들리 팝송 음악소리가 끊어지더니 직직대는 소리가 잠시 들리다가 예의 해뜨는 집 전주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리드 기타의 애잔한 전주음악이 실내에 가느다란 애상哀傷의 파장을 만들어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대고 있는 가운데, 주인여자의 낮은 목소리가 주탁에 눅눅하게 흘러내렸다. 한때는 사업도하고 잘 나갔지요. 방직공장에 더 다닐 수도 있었는데 저이 때문에 관두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럭저럭 돈도 손에 쥐어보고 이것저것 투자할 곳도 알아봤지요. 그러나 세상사 한바탕 꿈이래요. 꿈…. 저이가 쓰러지고 나서 여기저기서 험한 꼴 보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구만요. 나와 친구들은 그때서야 안쪽에 달려있는 방문 안에 한 남자가 누워있다는 걸 알아챘고, 예의 해뜨는 집 음악이 순식간에 다른 노래를 밀치고 리바이벌 되는 이유를 알았다.
아마도 주인여자의 남편은 테입을 갈아 끼우며 아내와 주객들이 나누는 농과 주담을 빠짐없이 듣고 있으리라. 거 나오실 수 있으면 소주나 한잔 같이 하실 수 있소? 짐짓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주인여자에게 물으니, 황급히 입술에 손가락을 대면서 손사래를 친다. 모두들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술잔을 들었다.
한사코 남는다며 되돌려 주려는 만 원권 한 장을 주인여자 손에 쥐어주고는 밖으로 나오니 차디 찬 밤하늘에는 초승달이 굴절되어 일렁이는 듯하다. 아까 귀때기를 아리게 하던 추위는 어디로 갔는지 느껴지지 않았고, 반쯤 열려진 주점 문짝 틈새로 머리를 내민 여인의 음영陰影 뒤로 예의 해뜨는 집 노래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허라! 두 부부의 가게에도 둥실 해가 떠올라 내일은 소담스레 웃었으면 좋겠구나.
친구들과 헤어져 이슥해진 밤기운에 몸을 맡긴 채 동네 골목을 오르면서 계단을 헤쳐 나가는데, 희미한 달빛을 받고 있는 오래된 굴뚝의 잔재와 길바닥 검은 시멘트 틈 속에 박혀있는 한때는 구들장 이였을 갈색 돌들을 바라보면서 자꾸만 눈시울이 젖어왔다. 이 골목길에서 있었던 아린 옛 추억의 그림자가 환영처럼 어른거려서다. 기실 해뜨는 집 노래에는 잊지 못할 내 나름의 아픔이 있었다. 그래…. 고무신 거꾸로 신기를 잘했지. 그녀는 무척이나 나를 사랑했었다. 아니 거의 순애보적인 맹목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었었지. 그러나 군 복무가 끝나갈 즈음 그녀는 다른 인연으로 나를 택할 수 없었다. 아니 내 자신이 그녀를 택하지 못하도록 단호했다. 제대 후 만난 그녀는 재회를 애타게 원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로서 할말이 아니었다. 매몰찬 나의 태도에 절규하던 그녀의 이십 칠년 전 모습이 정지된 영상으로 초승달에 아슴히 투영되어 망연히 서있었다. 그때도 이지러진 달빛이 이 언덕배기에 차갑게 떨어졌었지. 골목 어느 판잣집에서 흘러나오는 해뜨는 집 선율을 타고.
(2006 . 1 . 5)
1 [이한이] 병술년 새해를 맞아 올리신 첫 작품 해 뜨는 집, 한 작가님께서도 이 한 해가 아름다운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는 가슴에 강이 흐르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든 해였습니다. 아침을 여는 창이 희망적이듯 해 뜨는 집을 읽으며 친구분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시는 모습이 그려져 제게도 친구간의 정겨움이 전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길게 드리워진 중년의 커튼을 열어젖히면 눈앞이 훤히 트이듯 아슴히 젖어드는 그리움들은 다시는 돌릴 수없는 멀리 떠나 살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만나고 싶은 소망이 있어도 열 몇 시간 비행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소중했던 친구들 한 작가님의 해뜨는 집을 감상하며 내게도 힘들 때 힘이 되었고 마음이 아플 때 약과 같이 서로의 마음을 다독거리며 치유해 주던 친구가 있었는데 생각을 하면 한 작가님의 친구분들과의 주말의 만남이 부럽기만 합니다. 해뜨는 집, CD를 찾아 얹고 이 밤이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엄습하는 시간, 한 작가님의 글 잘 읽고 허접한 감상 소감 한 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2006.01.09>
2 [한비] 이한이 선생님, 병술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행운이 충만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졸편에 보내주시는 감사의 말씀, 마음깊이 새기면서 창작의 길에 큰 보탬의 금언으로 삼겠습니다. 동네의 오래된 친구들과 가끔씩 하루의 소일을 편안하게 보내다 보면, 요즘 코드에 어울리지않는 눅눅하고 고답스런 분위기가 자연스레 주위를 감싸 편안한 마음입니다. 당구장과 주점을 오가면서 주말의 반나절을 흥에 젖다보면, 무상한 세월에 대한 한탄이나 여과되지 못하는 삶의 굴레에서 어느정도 자유스러운 해방감을 느끼게되지요. 수필의 진수는 삶의 진한 페이소스를 불러내 통렬한 자기성찰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있다고 볼때, 윗글은 어느정도 길에서 벗어난 듯합니다. 그러나 저의 주말편린에 대한 한가닥 소회로서 그런대로 소임(?)을 다했다고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이선생님!! 자주 들리셔서 졸편에 대한 고언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이카루스의 꿈을 쫒아 헤메지만, 타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이성을 부여잡으며 산문의 문을 계속 노크할랍니다. 건안하시길. <200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