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이야기 (2) ‘트로트 황제’ 나훈아 25일 서울 이태원동 ‘아라기획’ 3층 사무실에서 만난 ‘트로트 황제’ 나훈아는 세월을 거꾸로 먹는듯 했다. 시커먼 눈썹 아래 쏘는듯 강렬한 눈빛과 셔츠 아래 근육. 쉰여섯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2월 9·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2002 나훈아 콘서트’ (02-3431-2154)를 갖는 그는 “공연 전엔 신경이 날카롭다” 면서도 반갑게 맞았다. -데뷔 37년인데, ‘트로트 황제’로 불리고 매진을 기록하는 저력은 뭘까요. “끊임없이 연습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건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어요. 무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도 이유겠죠. 스타는 ‘동네 아저씨’가 되면 안돼요. 꿈이고 특별해야죠. 매스컴은 그게 나빠요. 잠 자는데까지 카메라 들이대니, 까발기면 스타도 별 거 아니잖아요.” -출연료 깎아달란 소리 들으면 은퇴한다던 기억이 나는데, 변함 없나요. “오늘 그만 둘지 내일 그만 둘지 몰라요. 자존심을 굽히며 연연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후배들 걸핏하면 은퇴니 뭐니 요란 떠는데, 은퇴란 말 함부로 쓰는 게 아닙니다. 가수 그만 두는 거는 자랑스러운 게 아니니까, 시작이 그랬듯 조용히 사라져야죠.” -데뷔가 1966년이지요.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천리길’을 내면서죠. 2500곡 취입했고, 작사-작곡한 건 800곡, 빅히트했다고 생각되는 곡을 제 나름대로 세보니 ‘사랑’ ‘잡초’ ‘갈무리’ ‘무시로’ 등등 53곡이더 군요. 음반 200여장에, 판매량은 2000만장 넘을 거예요.” -초창기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땐 느낌이 다른가요. “그때 노래엔 젊음이 있다는 게 차이죠. 지금은 허연 수염처럼 세월이 묻어나는 거고.” -흰머리와 수염만 아니면 청년 같습니다. “매일 몇시간 운동을 거르지 않아요. 힘 부대끼면 노래도 끝이니까요. 선배나 후배들 노래하며 힘 딸리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힘 빠지면 소리를 다루지 못하고 끌려가요. 담배도 안피운지 2년8개월 됐구요.” -나훈아씨는 소리를 꺽고 뒤집는 창법의 원조입니다만, 그 창법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어려서 민요를 좋아하다보니 민요창법이 입에 붙었어요. 노래시키면 난 그렇게 밖에 못해요. 그게 ‘뽕짝 교과서’ 처럼 됐어요. 작년 미국 신문에서 수퍼스타는 30%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통계기사를 봤어요. 수퍼스타는 두리뭉실 않고 튀니까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겠죠.” -요즘 노래는 왜 그렇게 생명이 짧을까요. “요즘엔 빨리 히트시켜 판 빨리 팔겠다고 계산하고 노래를 만듭니다. 음악은 그리 되는 게 아니예요. 순수해야죠. 감정과 느낌을 진솔하게 뱉어내고, 결과는 나중에 봐야 합니다. 사는 것도 그래요. 와장창 벌고 급히 하려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한 계단씩 가면 고꾸라질 일 뭐 있겠어요.” -달관한 분 같습니다. “그건 아니고, 살다보니 자신에게 눈 뜨는 게 중요하단 걸 느끼게 되데요.” -책을 많이 읽으시나 봅니다. “소설은 별로고, 인물이나 세상 사는 얘기를 좋아합니다. 젊어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하고 잘난 줄 알았어요. 그러다 마흔쯤에 혼란스러운 시절이 있었는데, 책을 읽다가 몽둥이로 얻어맞듯 덜커덩했어요. (그는 ‘도덕경’과 수첩을 꺼내왔다) 이 책이었죠. 그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모르고 모자라는지 깨달았죠. 계속 건방 떨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겁니다. 좋은 글귀는 이 수첩에 메모해 다시 보면서 ‘아 내가 이걸 잊고 사는구나’ 반성합니다.” -몰래 선행을 하고, 재산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라던데요. “나를 좋아해준 사람들 덕에 내가 있으니 빚을 지고 사는 겁니다. 그렇게 번 돈 사회에 내놔야죠. 애들(고3 아들과 중학생 딸)도 1억 주면 1억어치 바보됩니다. 공부는 맘껏 시켜줘도 물려줄 돈은 1원도 없다고 했어요. 아들이 올해 미국 명문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을만큼 제 앞가림을 하니 다행이예요.” 인터뷰 말미, 그는 새 노래를 들어보겠냐더니 기타를 들었다.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인생을 관조하는 가사에 포크록 리듬을 살린 노래 제목은 ‘공’이라 했다. “나이 들수록 헛된 욕망이나 야망이 얼마나 부질없나 돌아보게 되더라”는 그는 세월에 씻긴 바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