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화단에 물을 주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자리에서 어린 방아깨비 한 마리가 톡 튀어 달아났다.
“꽤 많이 컸네.”
나는 방아깨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 달 전만 해도 조그만 패랭이 꽃잎 위에 올라앉을 만큼, 말 그대로 손톱만 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몸집을 키워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리 집 잔디밭에는 곤충들이 많이 산다. 방아깨비를 비롯해 메뚜기, 귀뚜라미, 사마귀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참새나 까치뿐 아니라 이름 모를 철새들도 간간이 잔디밭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는다.
곤충들은 잔디밭에만 머물지 않는다. 텃밭과 화단까지 제 세상인 양 돌아다닌다. 꽃잎은 물론이고 들깻잎, 상춧잎 등 입맛에 맞는 잎들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잡초를 많이 먹어주면 좋으련만, 녀석들도 맛있는 잎만 골라 먹는 편식쟁이들이다.
엄마는 텃밭 작물을 갉아 먹는 곤충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 없앤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곤충에게 꽤 관대한 편이다. 특히 방아깨비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래전, 어미 방아깨비가 알을 낳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배 끝을 길게 늘여 땅속 깊숙이 박은 채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에 밟힐 수도 있고 새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을 텐데,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한 채 녀석은 목숨을 걸고 알을 낳고 있었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괜스레 안쓰러웠다. 저 작은 몸으로 다음 생명을 남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산란을 마치고 머지않아 생을 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그날 이후 나는 잎을 갉아 먹는 방아깨비를 발견해도 차마 내치지 못했다.
하지만 사마귀는 달랐다.
사마귀가 다른 곤충들을 잡아먹는 포식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사마귀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을 보면 왠지 더 얄미웠다.
사마귀도 알을 낳는다. 주로 나뭇가지에 알집을 붙이는데, 가끔 우리 집의 울퉁불퉁한 외벽에도 알집을 만들어 놓곤 했다.
겨울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 무궁화나무 가지에 갈색빛의 단단한 덩어리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나비 번데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얼마나 예쁜 나비가 나오려나.’
오며 가며 들여다보았다. 봄이 되고 날이 따뜻해져도 그대로였다.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느 날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래쪽에 작은 구멍까지 나 있었다.
이상한 마음에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사마귀 알집이었다.
그것도 그냥 사마귀가 아니라 왕사마귀의 알집이었다.
사마귀는 알을 낳은 뒤 거품 같은 물질로 알들을 겹겹이 감싼다. 그 거품이 굳으면서 단단한 알집이 되어 겨울 추위로부터 알을 보호한다.
나는 사마귀를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사마귀의 새끼들이 들어 있는 알집을 나비의 번데기인 줄 알고 몇 달 동안 애지중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마귀에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새끼를 위하는 마음은 인간이나 방아깨비나 사마귀나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마귀가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것도 먹이 사슬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방아깨비는 가엾은 약자로, 사마귀는 그 약자를 괴롭히는 못된 포식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지를 정해 놓은 것은 자연이 아니라 나였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사마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낸 눈에는 방아깨비가 가엾고, 그 방아깨비를 잡아먹는 사마귀가 얄밉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사마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방아깨비를 편애할 것이다.
2026. 8. 17.
화단에서 뛰어다니는 방아깨비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