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청첩장이 와 있길래 펼쳐 보았습니다. 신부의 혼주 되시는 분이 보내셨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신랑의 부모님 성이 같습니다. 두 분다 박씨인데다
부자지간의 돌림자가 역으로 되어있습니다. 돌림자는 오행의 순으로 밟아가게
되는데 지금은 한글 이름도 많이 쓰니 퇴색이 되어있지만 삼십 정도 넘어선 나이라면
이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고리타분 하게'
하겠지만 아직 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잔재입니다. 아마 대기업이나
공직에 취업하실 때 원적이 어디인지를 묻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뿌리를 보는 거지요.
딱히 나쁘다 좋다 하기는 애매하지만 말입니다.
올해가 대선이 있는 해이고, 총선은 이미 처렀습니다만 선거철만 되면 전라도, 경상도하면서
난리가 아닙니다. 이런 지역감정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밀리든 박정희가 꺼내들고 조작했던 시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신라와 백제가 나오고, 고려의 훈요십조까지 들먹였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참 나쁘고 웃기는 얘기이자 큰 죄를 저지른 겁니다.
예를 들어 박씨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경로를 살펴보면, 물론 제가 아는 선에서
얘기하는 것이니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큰 흐름만 보십시오. 신라 54대 경명왕의
성이 박씨예요. 이 분한테 아홉 아들이 있어 대군이라 칭하고 전국에 식읍을 내립니다.
밀양, 고령, 월성, 강남(순천)...이런 식이고 이식읍이 본관이 됩니다. 최대계파인 밀양 박씨는
밀양에서 출발하고 모여 살게 되는 것이지요. 혼인등으로 인근의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고려조와 조선조에서 벼슬을 했으면 개성과 한양에 천착하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조선조에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몇 몇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연산군 때에 벌어진 무오, 갑자사화와 선조 때 벌어진 기축사화는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반역으로 규정되었던 정여립의 '대동계'로 인한 기축사화는 엄청난 인구 이동을 야기
합니다. 조선에 살고 있든 거의 모든 선비들이 연루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죽지 않기
위해 도망을 하게 된겁니다. 오래전부터 타 지역에 살고 있는 밀양 박씨들은 거의 이 때쯤에
근거를 옮겼을 겁니다. 또 다른 성씨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지금 부산에 살고 있는 전라도가 고향인 사람이 약 25-30%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산업 혁명 초기에 부산은 신발산업이 번창했는데 이게 전형적인 노동인력 중심 이다보니,
시골에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시골땅
곳곳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던 사람들이
몇 세대 그 지역에서 살았다고 나는 여기 사람이고 너는 저기 사람이니 나쁘다 좋다 하며
서로 적대시하는게 우습지 않습니까?
지금 인구 오천만중 절반이 서울 경기에 살고있습니다. 당장 제 집안에서도 거의 대다수가
서울과 수원 같은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제 자식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자식이 자식을 낳게
되면 손주와 손녀는 서울 사람일까요? 어쨌든 고향을 떠난 자식들은 그 부모가 죽게 되면
다시 돌아갈 곳이 없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처연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길이고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너 고향이 어디냐? 고 물어보세요.
십중팔구는 무슨 무슨 아파트. 타워 팰리스에 살면 좀 더 자랑스럽게 얘기할거고
힐스테이트다, 래미안이다 뭐 그럴 겁니다. 농경 사회에서 유목사회로의 전환.
그것도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위한 구성원도 못 갖춘 불쌍한 유목민들. 이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자화상입니다.
과거도 그래왔지만 현재 역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의지가 모이고 이행을 해나가는
과정이 역사가 됩니다. 과거 어느 한 시점에 권력욕에 사로잡힌 한사람이 총칼과
언론을 동원해서 이 좁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형제같은 사람들을 서로 원수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남아있는 우리들이 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시작되는 더러운 작태에 한방
철퇴를 가해야되지 않을까요?
역사는 다수 민중의 삶과 생각들이 모여서 흐르는 것이지 잘난체하는 몇 몇 영웅들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 겁니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고작 숟가락 하나 얹고서는 뭔 욕심이
그리 많은지 참으로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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